사랑.평화.함께 살기/삶.사랑.평화-책과 영화

<묵자>를 읽고

순돌이 아빠^.^ 2022. 5. 11. 21:41

오랜만에 묵자를 다시 읽고 싶더라구요. 예전에는 기세춘이 번역한 책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번역을 읽어보려고 인터넷을 뒤졌지요.

 

신동준 번역의 책을 보고는…살짝 망설였어요. 5만원 가까운 책값 때문에 ㅋㅋㅋ 헌책을 뒤져봐도 비슷하더라구요. 

 

물론 번역자나 출판사에 불만이 있는 건 전혀 아니구요. 책을 몇 장 읽고 나니 책값이 어떠니 하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지더라구요.  ^^

 

뭐랄까…하나의 깊고 큰 세계를 만난 기분입니다. 

<묵자>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내용 자체가 그리 어려울 건 없어요. 두루 사랑하며 삽시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됩시다, 전쟁하지 맙시다…뭐 그런 것들이 어려울 게 없잖아요.

 

그리고 어쩌면…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살이를 풀어가는 기본(?) 아니면 뿌리(?)도 그 단순하고 쉬운 것들 속에 있는지도 모르지요.

 

중요한 건 그 단순하고 쉬워보이는 것을 우리가 얼마만큼 깊이 받아들이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는 거겠지요.

 

사랑? 인간은 과연 다른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랑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스스로 다른 존재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천날 만날 죽이고 때리고 싸우는 인간 세상에서 사랑이란 것이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인간이란 사랑 가능한 존재일까요?

 

어쩌면 다행히도 인간이란 생물이 진화하면서 사랑이란 기능을 품고 있는지도 몰라요. 물론 사이코패스니  뭐니 하면서 그렇지 않은 인간도 있겠지요.

 

하지만 대부분, 아니면 많은 인간이 사랑 가능한 존재로 태어났는지도 몰라요. 무언가를 바라보거나 냄새를 맡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기쁨과 슬픔의 감정의 기능을 가지고 있듯이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는 거겠지요. 

 

우리 서로가 사랑 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이 벌렁거리는 거겠지요. 

 

개인의 삶도 그렇고 세상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서로 더욱 사랑할 수 있고 서로 더욱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에이~~~ 서로 사랑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겠어? 싶을 수도 있어요. 

 

그럼 달리 생각해서, 사랑 말고 무엇이 우리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평화롭게 하고 빛나게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묵자도 정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서로에게 이익을 주라고 하고, 전쟁을 하지 말자고 하고, 공격받는 사람들이 있으면 함께 맞서 싸우자고 했지요. 

당연한 이야기에요. 당장에 자식들 먹일 것도 없는데 사랑을 외친다고 먹을 게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또 따져보면 자식이 먹을 게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바로 사랑이지 않을까 싶어요. 자식이 굶거나 말거나 나라는 존재가 생존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자식이 굶으면 내 가슴이 찢어지고 미칠 것 같지 않을까요. 나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하더라도 화가 나고 안타깝고 안절부절하고 무어라도 방법을 찾으려 하겠지요. 사랑하니까요.

 

사랑하면 무어라도 방법을 찾으려 하겠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천만가지 좋은 방법이 있어도 소용이 없겠지요.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도, 정치인이 시민들을 대할 때도, 친구가 이웃을 대할 때도 사랑愛하는 마음이 있으면 도움을 주려고 하고 이로움利을 주려고 할 겁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해치려 하지 않고, 상대가 위험에 처하면 구해주려 하겠지요.

 

물이 있어야 콜라도 만들고 커피도 만들 수 있겠지요. 땅이 있어야 콩도 심고 팥도 심을 수 있을 거에요. 

 

사랑하는 마음이 근본이고 뿌리라면, 이로움을 주려는 것은 구체적인 행동이고 실천이겠지요. 

 

그래서 겸애와 교리는 함께 다니나봅니다. 

 

묵자, <묵자>, 인간사랑, 2018

 

‘천하에 남이란 없다’는 구절의 원문은 천하무인天下無人이다. 여기의 인人은 나를 제외한 타인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 38

 

사상사적으로 보면 ‘천하무인’을 통해 궁극적으로 실현코자 하는 겸애 역시 공자가 역설한 충서忠恕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충서’는 남을 내 몸처럼 헤아리며 매사에 성실한 자세로 대하는 것을 뜻한다. ‘충’을 [설문해자]는 진심盡心으로 풀이해 놓았다. 남송대의 주희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는 진기盡己로 새겼다. ‘서’ 대해 [설문해자]는 인仁으로 풀이했다. 주희는 자신의 마음과 같이 대하는 여심如心으로 새겼다. - 39

 

사실 유가의 ‘별애’는 주나라 존립의 기반인 종법을 합리화한 빈부귀천의 차별에 지나지 않는다. ‘겸애’는 이런 차별을 근원적으로 부인한다. 유가와 묵가가 갈리는 대목이다. ‘겸애’는 자신과 남을 구별하지 않는데서 출발한다. 그게 바로 천하무인 사상이다.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듯 남의 부모도 사랑하여 자신과 남 사이에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를 실천하면 남과 다툴 일이 없게 된다. 혼란스런 것은 사람들이 이를 실천치 않기 때문이라는 게 묵자의 확고한 생각이었다.

일종의 인류애에 해당한다. 

당시 묵가의 주장이 끊임없는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서민들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얻은 이유다. 기댈 곳은 물론 하소연할 곳도 없는 서민들로서는 형제애를 통한 화목한 인간관계를 가치로 내세운 묵가의 주장에 크게 공명했다. - 51

 

묵가의 ‘겸애’를 유가의 ‘별애’ 내지 기독교의 ‘박애’와 구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겸애

는 유가처럼 친족공동체를 기준으로 한 ‘별애’와도 다르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순수한 사랑 그 자체도 아니다. 천하인의 이익이 ‘겸애’의 근거이다. 

‘겸애’는 반드시 ‘교리’ 위에 서 있어야만 한다. ‘교리’를 전제로 하지 않은 ‘겸애’는 한낱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교리’는 반드시 먼저 남에게 이익을 주고자 하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한다. - 56

 

하늘의 뜻을 좇아 두루 서로 사랑하는 겸애兼愛와 오가며 서로 이롭게 하는 교리交利를 행하면 반드시 하늘로부터 상을 받을 것이다. 반대로 천지를 어겨 차별하여 서로 미워하는 별오別惡와 오가며 서로 해치는 교적交賊을 행하면 반드시 하늘로부터 벌을 받을 것이다. - 387

 

내가 듣건대, ‘편치 못한 것은 편안한 집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편안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고, 만족치 못하는 것은 충분한 재물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만족해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 137

 

설령 일반인과 섞여 지낼지라도 끝내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다. 스스로 믿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여겨지는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 반드시 바라는 것을 얻는 이유다. - 137

 

군자는 전쟁을 할 때 전법을 쓰지만 용맹을 근본으로 삼고, 상을 치를 때 상례를 갖추지만 애도를 근본으로 삼고, 선비 또한 학문을 연마할 때 실천을 근본으로 삼는다. 

 

군자의 도는 가난할 때는 청렴, 부유할 때는 인의, 생자에 대해서는 자애, 사자에 대해서는 애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 4가지 품행은 짐짓 가장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구비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품행을 마음에 두는 것은 무궁한 자애이고,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비할 바 없는 공경이고, 입으로 말하는 것은 무한한 선행이다. 이들 4가지 품행이 사지와 피부에 두루 뻗치고, 머리가 성성해져 빠질 때까지 버리지 않아야 한다. - 145

 

말만앞서고 실행이 더디면 비록 말을 잘할지라도 반드시 들어줄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내심 훤히 꿸지라도 번다하게 얘기하지 않고, 열심히 일할지라도 공을 자랑하지 않는다.

..

말을 번다하게 하려고 애쓰지 말고, 지혜를 넓히는데 힘써야 한다. 스스로 자랑하는데 애쓰지 말고, 잘 살피는데 힘써야 한다. 

군자는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을 말한다. - 147

 

묵자가 실을 염색하는 자를 보고 탄식했다.

 

“실은 파란 물감에 물들이면 파래지고, 노란 물감에 물들이면 노래진다. 넣는 물감이 변하면 그 색깔도 변한다. 5번 물통에 넣었다 나중에 보니 곧 오색이 되어 있다”

 

염색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실을 물들이는 것만 그런 게 아니다. 나라도 염색 과정이 있다. 순 임금은 허유와 백양에게 물들었고, 하나라 우왕은 고요와 백익에게 물들었고 - 149

 

벗들이 모두 인의를 좋아하고, 순박하고 삼가는 자세로 법령을 두려워하면 집안은 날로 흥성하고, 자신을 날로 편안해지고, 명성은 날로 높아지고, 벼슬을 살아도 이치에 맞게 일을 처리케 된다.

벗들이 모두 뽐내며 분수를 지키지 않고, 무리를 지어 사리를 추구하면 집안은 날로 쇠퇴하고, 자신 또한 날로 위태로워지고, 명성은 날로 욕되게 되고, 벼슬을 살아도 이치에 맞게 일을 처리치 못하게 된다. - 156

 

묵자가 말했다.

 

“천하에 무슨 일을 할지라도 법도가 없어서는 안 된다. 법도가 없는데도 일을 잘 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

 

설령 학문에 뛰어난 선비로서 장수나 재상이 된 자일지라도 일을 처리할 때는 법도가 있어야 하고, 각종 직업에 종사하는 전문 장인일지라도 일을 할 때는 법도가 있어야 한다. 장인들은 곱자로 네모꼴을 만들고 그림쇠로 원을 만들고 먹줄로 직선을 긋고 줄이 달린 추로 수직을 맞추고 수준기로 수평을 헤아린다.

기술 있는 자는 법도에 알맞게 할 수 있을 것이고, 기술 없는 자 또한 비록 알맞게 할 수는 없을지라도 법도에 따르면 일을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160

 

그렇다면 무엇을 치국의 법도로 삼아야 좋은 것일까?

하늘은 반드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이롭게 하는 것을 바랄 뿐 결코 서로 미워하며 해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 162

 

세상에는 사람들을 두루 사랑하고 이롭게 해 복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을 두루 미워하고 해침으로써 화를 입는 자도 존재하는 것이다. - 165

 

나라에는 7가지 환난이 있다….성곽이나 해자를 지키지도 못하면서 궁실을 크게 짓는 게 첫 번째 환난이다.

민력을 쓸 데 없이 소진하여 손님 접대로 재물을 탕진하는 게 세 번째 환난이다. - 167

 

지금 자식을 업고 물을 긷다가 우물 속에 빠뜨릴 경우 그 어미는 반드시 건져 내고자 할 것이다. 지금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며 길에서 아사하는 지경에 이를 경우 이는 자식을 물에 빠뜨린 것보다 더 중한 일이다. 어찌 자세히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 170

 

어찌 옛 성왕인들 오곡을 늘 풍성히 거두고, 가뭄과 홍수가 오지 않도록 만들 수야 있었겠는가? 그런데도 헐벗고 굶주려 죽는 백성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농사철에 맞춰 경작하고 검박한 생활을 영위하며 재화의 소비를 줄였기 때문이다. - 172

 

과도한 상을 공도 없는 자에게 내리고, 국고를 텅 비울 정도로 사치를 부려 거마와 의복 및 기이한 물건 등을 치장하고 백성과 노비를 혹사해 궁실을 건조하며 연회와 오락을 즐기고

백성은 밖에서 고생하고 창고는 안으로 바닥나게 된다. 위에서는 즐기는 일에 싫증을 낼 줄 모르고 ,아래서는 그 괴로움을 감당하지 못한다. - 175

 

옛 성왕은 정사를 펴면서 말하기를, ‘의롭지 않으면 부유하게 만들지도 말고, 귀한 자리에 앉히지도 말고, 친하게 지내지도 말고, 가까이 두지도 말라’고 했다. - 193

 

옛 성왕은 정사를 펼 때 덕 있는 자를 높은 자리에 앉히고 현자를 높였다. 비록 농업과 상공업에 종사하는 자일지라도 능력만 있으면 과감히 발탁해 높은 작위를 내리고 두터운 녹봉을 주었다.

관직에 나아갔다고 늘 귀한 것도 아니고 백성 또한 늘 천한 것도 아니었다. 능력이 있으면 등용되고 능력이 없으면 좌천되었다. - 195

 

무릇 현자를 숭상하는 것은 정치의 근본이다. - 197

 

현명해지는 길은 과연 어떤 것인가? 대답은 이렇다.

 

“힘 있는 자는 재빨리 남을 돕고, 재물 있는 자는 기꺼이 나눠주고, 도를 지닌 자는 힘써 남을 가리치면 된다”

 

그리하면 굶주린 자는 먹을 것을 얻고, 헐벗은 자는 옷을 얻고, 어지럽히는 자는 다스려진다. 굶주리면 양식을 얻고, 헐벗으면 옷을 얻고, 어지럽히면 다스려지는 까닭에 모든 사람이 편히 생업에 종사하며 살게 된다” - 229

 

선왕의 글인 <서경> [술령]에서 말하기를, ‘오직 입은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하나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했다. 이는 입을 잘 사용하는 자는 좋은 결과를 얻고, 그렇지 못한 자는 남을 음해하거나 내란과 외침을 야기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어찌 입 자체가 좋지 않아 그런 것이겠는가? 입의 사용이 좋지 못했기에 남을 음해하거나 내란과 외침을 야기한 것이다 - 252

 

선왕의 글로 원로의 얘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무릇 나라를 세우면서 도읍을 정하고 제후들을 봉한 것은 그들이 교만하고 태평하게 지내도록 하려는 취지가 아니었다. 경대부와 관장을 둔 것 또한 그들이 편히 지내도록 하려는 취지가 아니었다. 오로지 직책을 나눠 맡아 천하를 고르게 다스리고자 한 것이다”

천하 만민을 유익하게 해주고, 재해를 없애주고, 가난하고 외로운 자를 부귀하게 해주고, 위태로운 것을 편하게 해주고, 어지러운 것을 다스리라는 취지이다. - 253

 

수천만 리 밖에서 선한 일을 한 자가 있을 때 집안사람과 마을삶이 모를지라도 천자는 이를 알아내 상을 내리고, 수천만 리 밖에서 선하지 못한 일을 한 자가 있을 때 집안사람과 마을사람이 모를지라도 천자는 이를 알아내 벌을 내리는 이유다. 천한 만민이 모두 두려워 떨며, 감히 음란하고 포학한 생각을 하지 못한다. - 257

 

지자智者는 일을 할 때 반드시 나라와 백성이 다스려지는 배경을 헤아려 일을 하고, 나라와 백성이 어지러워지는 배경을 헤아려 일을 피한다. 나라와 백성이 다스려지는 배경을 헤아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윗사람이 정사를 펼 때 아랫사람들의 실정을 파악하면 다스려지고, 그렇지 못하면 어지러워진다는 뜻이다. 무엇으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윗사람이 정사를 펴면서 아랫사람의 실정을 파악한다는 것은 곧 백성들의 선행과 비행에 밝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로 백성의 선행과 비행에 밝다면 곧 선한 자를 파악해 상을 주고 포학한 자를 파악해 벌을 줄 것이다. 선한자가 상을 받고 포학한 자가 벌을 받으면 나라는 반드시 잘 다스려질 것이다.

선한 자가 상을 받지 못하고, 포학한 자가 벌을 받지 않으면 아무리 정사를 열심히 한들 나라와 백성은 반드시 어지러워질 것이다. - 261

 

성인은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 종사하는 까닭에 반드시 혼란이 일어나는 까닭을 잘 알아야 한다. 

비유하면 마치 의원이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과 같다. 의원도 반드시 병이 생겨난 까닭을 알아야 병을 고칠 수 있으니, 그렇지 못하면 고칠 길이 없다. - 276

 

일찍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살펴본 적이 있는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도적은 자신의 집안만 사랑하고 다른 집안은 사랑하지 않는 까닭에 다른 집안의 것을 훔쳐 자신의 집을 이롭게 한다…제후들이 서로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 - 278

 

만일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두루 서로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을 자신을 사랑하듯이 하면 어찌 불효하고 불경한 일이 빚어질 것인가?...남의 집안을 자신의 집안을 보듯이 하면 누가 남의 집안 물건을 훔치겠는가? 남을 자신을 보듯이 하면 누가 남을 해치겠는가?

남의 나라를 자신의 나라를 보듯이 하면 누가 남의 나라를 공격하겠는가?

만일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서로 사랑하도록 만들면 나라와 나라는 서로 공격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집안과 집안은 서로 어지럽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성인은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 종사하는 자이다. 어찌 악을 금하고 사랑을 권하는 일을 행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묵자가 말했다.

“남을 두루 사랑하라고 권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 이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 279 

 

천하 사람들이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강자가 반드시 약자를 억누르고, 부자가 반드시 빈자를 업신여기고, 귀인이 반드시 서민을 오만하게 대하고, 약은 자가 반드시 어리석은 자를 속이게 될 것이다. 무릇 천하의 화난과 찬탈, 원망, 통한이 일어나는 근원을 보면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는데서 기인한 것이다. 어진 사람이 이를 비난하는 이유다. - 282

 

이를 비난할 경우 무엇으로 이런 상황을 대신할 수 있는는가? 묵자가 말했다.

 

“두루 서로 사랑하고, 오가며 서로 이롭게 하는 방법으로 이를 대신하면 된다”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서로 사랑하면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거나, 다수가 소수를 겁박하거나, 부자가 빈자를 업신여기거나, 귀인이 서민을 오만하게 대하거나, 약은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거나 하는 일이 없게 된다. 무릇 천하의 화난과 찬탈, 원망, 통한이 빚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오직 서로 사랑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어린 사람이 이를 칭송하는 이유다. - 283

 

남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데서…남을 미워하고 해치는데서… - 294 

 

천하에 남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자들을 분별해 생각해보자. 그들은 과연 남과 두루 어울리는가, 아니면 서로 차별을 하는가? 반드시 ‘두루 어울린다’고 말할 것이다. - 296

 

지금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는 방법을 찾아내 시행코자 할 경우 그 해답은 바로 ‘겸애’로 정사를 펴는데 있다.

덕분에 늙도록 처자가 없는 자도 시중과 봉양을 받아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 수 있고, 어리고 약한 고아도 의지할 곳이 있어 무사히 성장할 수 있다. - 297

 

지금 두루 서로 사랑하는 겸애와 오가며 서로 이롭게 하는 교리는 매우 유익하고도 쉽게 행할 수 있는 것으로 굳이 따질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짐작컨대 사람들이 겸애와 교리를 행하는 것은 마치 불이 위로 타오르고,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과 같다. 천하에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 311

 

지금 어떤 사람이 남의 과수원에 들어가 그곳의 복숭아나 자두를 훔치면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 모두 이를 비난할 것이고, 위정자 또한 그를 잡아 처벌할 것이다. 이는 무슨 까닭인가? 남을 해치면서 자신을 이롭게 했기 때문이다. - 315

 

사람 1명을 죽이면 불의하다는 지탄을 받고 반드시 그에 따른 사죄死罪를 짊어진다. 이를 확장하면 10명을 죽일 경우 10배의 불의가 되고, 10명의 살인에 따른 사죄를 짊어지게 된다. 100명을 죽일 경우 100배의 불의가 되고, 100명의 살인에 따른 사죄를 짊어지게 된다. 이 경우 천하의 군자들 모두 이를 알면 크게 비난하며 ‘불의’라고 말한다. 지금 남의 나를 공격하는 불의를 저지르면서 비난을 할 줄도 모른다. 실로 그것이 불의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다. - 316

 

묵자가 말했다.

 

“옛날 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 모습만 보게 되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다’고 했다. - 327

 

옛날 지혜로운 사람은 천하를 위해 계책을 낼 때면 반드시 사안이 의에 합당한지 여부를 생각한 뒤 에 일을 추진했다. - 329 

 

지금 서로 신의로 사귀며 천하를 먼저 이롭게 할 제후가 있다면 불의를 행하는 대국에 합세해 대항하고, 대국의 침공을 받은 소국을 합세해 구해주고, 소국의 성곽이 허술하면 반드시 합세해 수리해 주고,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모자라면 합세해 보내주고 - 342

 

성왕은 비용만 많이 들고 백성의 편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 361

 

옛 성왕은 먹고 마시는 음식의 법도를 정할 때 이같이 선언했다.

 

“허기를 채우고, 기운을 차리고, 수족을 강하게 하고, 이목을 밝게 하는데서 그친다. 오미五味와 향내의 조화를 끝까지 추구하지 않고, 먼 나라의 진귀하고 특이한 음식을 탐하지 않는다” - 352

 

옛 성왕은 큰 강과 넓은 계곡의 물을 그대로 건널 수 없어 배와 노를 만들었다. 그러나 배와 노는 건너는데 필요한 수준에서 그쳤다. 비록 귀한 신분으로 삼공과 제후 등이 올지라도 배와 노를 바꾸지 않았고, 뱃사공 또한 장식을 더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 354

 

묵자가 음악을 반대하는 것은 대종과 명고 및 금슬과 우생 등의 악기소리가 즐겁지 않다거나, 조각한 무늬와 장식 색깔 등이 아름답지 않다거나, 알맞게 부치거나 불에 구운 소와 돼지 등의 고기 맛이 없다거나, 높은 큰 누대나 고대광실에서 지내는 게 편안치 않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몸이 편안함을 좇고, 입이 맛난 것을 것을 좇고, 눈이 아름다움을 좇고 귀가 즐거움을 좇을지라도 그것이 위로는 성황의 사적에 부합치 않고, 아래로는 백성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왕공대인은 나라 안에서 악기의 제조와 연주를 일삼고 있다. 이는 단지 고여 있는 물을 푸거나 흙더미에서 그러모아 만드는 게 아니다. 반드시 백성들로부터 무겁게 징수해 대종과 명고 및 금슬과 우생 등의 악기소리를 즐기는 것이다. 

만일 위정자가 큰 종을 두드리며 북을 치고 거문고를 연주하며, 생황 등을 불고, 문무와 무무를 추는데 열중하면 백성들이 먹고 마시는 재화는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는가? - 457-459

 

묵자가 말했다.

 

“운명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민간 내에 대거 존재한다. 이들은 말하기를, ‘부유해질 운명이면 부유해지고, 가난해질 운명이면 가난해진다….장수할 운명이면 장수하고, 요절할 운명이면 요절한다’고 했다. 만일 그렇다면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는 셈이니 삶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들은 이런 운명론을 이용해 위로는 왕공대인에게 유세해 출세를 꾀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생업을 가로막는 짓을 하고 있다. 운명론을 주장하는 자는 불인不仁한 자들이다 - 473

 

어떤 자가 묵자에게 물었다.

 

“운명론의 시비를 분명히 따지고자 하면 과연 어찌해야 합니까?

 

묵자가 대답했다.

 

“반드시 기준을 세워야 한다. 말을 하면서 기준이 없으면 마치 도자기를 빚을 때 돌리는 녹로 위에서 동서의 방향을 정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 474

 

옛날 폭군은 눈과 귀의 욕망과 편벽된 마음을 참지 못한 채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아 마침내 나라를 잃고, 사직을 무너뜨렸다. 그럼에도 ‘내가 어리석고 못나 정사가 바르지 못하다’고 말하지 않고 예외 없이 ‘내 운명이 본래 그러해 나라를 잃었다’고 말했다. - 482

 

지금 운명론을 주장하는 자의 말을 좇으면 윗사람은 정사를 게을리 하고, 아랫사람은 맡은 바 일을 제대로 하지 않게 된다. - 483

 

옛날 공을 세운 선비와 걸출한 대부들은 말을 신중히 하면서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들에 대한 명성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지는 배경이다. 이를 두고 천하 사람들 모두 ‘그리된 것은 그들의 노력 덕분이다’라고 말하지 결코 ‘운명대로 됐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삼대의 폭군은 눈과 귀가 밝히는 음탕한 욕망과 편벽되 마음을 삼가지 못한 채 밖으로 내달리며 사냥하고 안으로 음주가무에 빠진 나머지 나라와 백성을 돌보는 정사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오히려 쓸데 없는 일만 대거 일으켜 백성을 포학하게 대하면서 하극상을 조장했다. 

그런데도 ‘내가 어리석고 못나 정사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반드시 ‘내 운명 때문에 패망했다’고 말했다. - 488

 

옛날 우, 탕, 문왕과 무왕 등의 성군은 바야흐로 천하를 다스리면서 이같이 말했다..

 

“반드시 굶주린 자는 먹여 주고, 헐벗은 자는 입혀 주고, 수고로운 자는 쉬게 하고, 어지러운 자는 다스려야 한다”

 

덕분에 마침내 천하의 빛나는 영예와 칭송을 받게 됐다. 그러니 어찌 운명론을 들먹일 여지가 있겠는가? 본래 그들의 능력 덕분이다. - 495

 

묵자가 말했다.

 

“지금 천하의 군자들이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은 목구멍과 혀를 수고롭게 하고, 입술을 날카롭게 하려는 게 아니다. 실로 나라와 온 고을의 천하 만민을 위해 형정을 공평히 실시코자 하는 것이다.” - 501

 

지금 농부들이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고, 부지런히 밭을 갈고 씨 뿌리는 경작을 통해 콩과 조 등의 곡식을 수확하면서 감히 나태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대답은 이렇다.

 

“그들이 부지런하면 반드시 부유해지지만 그렇지 못하면 가난해지고, 부지런하면 반드시 배불리 먹고 살지만 그렇지 않으면 굶주리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나태하지 않는 것이다. - 501

 

“운명론은 폭군이 만들어낸 것으로 궁지에 처한 자들이 사용하는 것이지, 결코 어진 사람의 말이 아니다”

 

지금 인의를 행하는 자들은 이를 잘 살펴 힘써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503

 

만일 모두 어진 사람이면 서로 적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어진 사람은 취사取捨와 시비是非의 이치를 서로 알려주고, 이치에 어긋나거나 내막을 알지 못하는 무리無理와 무지無知는 이치에 부합하고 내막을 아는 유리有理와 유지有知를 좇고, 할 말이 없는 무사無辭는 논리가 정여한 유사有辭에 승복하고, 선행을 하지 못하는 무선無善은 선행을 실천하는 유선有善을 보면 반드시 그 쪽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서로 적대할 리 있겠는가? - 513

 

 지智는 사물을 밝게 아는 것이다 - 532

 

仁, 體愛也

인仁은 사랑을 체화한 박애博愛이다. - 533

 

義, 利也

의義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 534

 

禮, 敬也

예禮는 공경을 말한다. - 535

 

信, 言合於意也

신信은 말과 뜻이 부합한다. - 539

 

임협任俠은 선비 스스로 손해 보며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다 - 542

 

용기는 뜻대로 감히 하는 것이다. - 543

 

법도는 좇아야 할 곳에서 그리하는 것을 말한다 - 544

 

평정平正은 무욕無慾과 무악無惡을 아는 것이다 - 547

 

칭예稱譽는 남의 아름다움을 환히 드러내는 것이다 - 550

 

사려思慮는 깊이 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 611

 

알게 된 후 논할 수 있는 까닭에 아는 바가 없으면 논할 도리가 없다. - 686

 

내가 무엇을 보고 ‘안다’고 말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알고 있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섞어 놓고 물었을 때 반드시 대답하기를, ‘이는 아는 것이고, 이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취하고 버리는 것이 동시에 가능하니 이것이 바로 양쪽을 모두 아는 것이다. - 696

 

천하인은 이롭게 해주면 모두 기뻐한다. ‘성인은 사랑만 있을 뿐 이롭게 하는 일은 없다’고 하는 것은 모두 유자儒者들의 객쩍은 말이다. ‘천하에 남이란 없다’고 한 것은 묵자의 말이다. - 727

 

부득이하여 바라는 것은 진정 바라는 게 아니다. - 728

 

이 세상에 도적이 아무리 많이 존재할지라도 세상 사람을 두루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집에 도적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이 집에 있는 모든 사람을 미워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2인 가운데 1인이 도적이라는 사실을 알 때 2인을 모두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야 어찌 2인 주변의 모든 사람을 미워할 수 있겠는가? - 730

 

도적이 없기를 바란다고 해서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745

 

제자인 치도오와 현자석이 스승인 묵자에게 물었다.

 

“의를 행할 때 무엇을 가장 힘써야 합니까?”

 

묵자가 대답했다.

 

“비유하면 담을 쌓는 것과 같다. 흙을 다지는데 능한 자는 잘 다지고, 흙을 옮기는데 능한 자는 잘 옮기고, 인부를 감독하는데 능한 자는 잘 감독하면 된다. 그러면 담이 제대로 쌓아질 것이다. 의를 행하는 것도 이와 같다. 변론에 능한 자는 잘 변론하고, 해설에 능한 자는 잘 해설하고, 일에 능한 자는 잘 일하면 된다. 그러면 의로운 일들이 모두 성취될 것이다” - 754

 

무마자가 묵자에게 말했다.

 

“선생은 의를 행하고 있으나 사람들은 이를 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도와주지도 않고 있습니다…그런데도 선생은 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광질狂疾입니다”

 

묵자가 물었다

 

“지금 여기 그대에게 2명의 가신이 있다고 합시다. 그 중 한 사람은 그대가 눈에 띄면 일을 하지만 띄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고, 또 한 사람은 그대가 눈에 띄든 말든 일을 할 경우 그대는 두 사람 가운데 누구를 귀하게 여기겠소?”

 

“저는 제가 눈에 띄든 말든 일을 하는 사람을 귀하게 생각합니다”

 

묵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 역시 ‘광질’을 귀하게 여기는 셈이 되오” - 757

 

묵자가 말했다.

 

“말은 능히 실천할 수 있는 것이면 늘 해도 된다. 그러나 실천할 수 없는 것이면 늘 해서는 안 된다. 실천할 수 없으면서 늘 행하면 망언이 된다” - 764

 

내가 듣건대 ‘의를 행하는 것은 비난을 피하고 칭송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라고 했다. - 765

 

고석자가 말했다.

 

“제가 그곳을 떠나면서 어찌 감히 도를 거스를 리 있겠습니까? 옛날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천하가 무도하면 어진 선비는 두터운 녹을 받는 자리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위나라 군주가 무도한데 제가 작록을 탐하면 이는 구차하게 남의 곡식을 먹고 사는 게 됩니다”

 

묵자가 기뻐하며 금골리에게 말했다.

 

“고석자의 얘기를 잠시 들어보게! 의를 배반하고 녹을 좇는 자에 관해서는 많이 들어본 바 있네. 그러나 녹을 거절하고 의로움을 좇는 자의 모습을 그를 통해 처음으로 보게 되었네” - 765

 

묵자가 말했다.

 

“천하만사 가운데 의보다 더 귀한 게 없다. 지금 어떤 사람에게 묻기를, ‘그대에게 관과 신발을 줄 터이니 그대의 수족을 자르도록 하시오. 그리 하겠소?”라고 하면 반드시 그리 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관과 신발은 수족보다 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묻기를 ‘그대에게 천하를 줄 터이니 그대 몸을 죽여야 하오. 그리 하겠소?’ 라고 하면 반드시 그리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천하는 자기 몸만큼 귀하지 않기 때문이다. - 775

 

“의를 행하다가 불가능한 게 있을지라도 인의를 탓해서는 안 된다. 목수가 나무를 깎다가 여의치 않을지라도 먹줄을 탓하지 않는 것과 같다” - 781

 

지금 천하의 선비들은 인의 등을 앞에 내세우며 처신하고 있으나 상인이 돈 한 푼을 아끼며 물건을 거래하는 것만큼도 신중하지 못하다. 상인들은 한 푼의 돈으로 물건을 살지라도 멋대로 사지 않고 반드시 좋은 것을 택한다. 지금 천하 선비들의 처신은 그렇지 않다. 내심 원하는 게 있으면 곧바로 이를 행해 심한 자는 형벌을 받고, 가벼운 자는 비난을 받는다. - 783

 

세상의 군자는 의를 행하고자 하면서도 수신을 도와주고자 하면 화를 낸다. 이는 그의 집 담을 쌓으려 하면서도 남이 도와주고자 하면 화를 내는 것과 같다. 이 어찌 도리에 어긋나는 짓이 아니겠는가? - 784

 

공맹자가 말했다.

 

“군자는 반드시 옛날 말을 하고, 옛날 복장을 한 연후에 어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묵자가 말했다.

 

“...인덕仁德의 수양은 옛날 말과 복장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다..” - 799

 

공맹자가 묵자에게 물었다.

“아는 게 남보다 많은 것을 두고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묵자가 대답했다.

“어리석은 자도 아는 게 남보다 많을 수 있소. 그러나 그를 어찌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겠소?” - 805

 

부귀를 바라는 자는 남이 어찌하든 스스로 앞 다퉈 이를 얻고자 애쓴다. 대의大義는 천하의 보기寶器이다. 어찌 반드시 남이 하는 것을 본 뒤 뒤좇아 이를 행하려 들겠는가? - 813

 

고자가 묵자에게 말했다.

“저는 나라를 잘 다스려 정사를 제대로 펼 수 있습니다”

 

묵자가 말했다.

“정사는 입으로 말한 것을 반드시 몸으로 실천하는 것을 뜻하오. 지금 그대는 입으로는 말하면서 몸으로는 실천하지 않고 있으니 이는 그대의 몸이 어지러운 탓이오. 그대는 자신의 몸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면서 어찌 한 나라의 정사를 제대로 펼 수 있겠소? 그대는 잠시 그대의 어지러운 몸부터 바로 추스르도록 하시오” - 818

 

공수자가 대나무와 나무를 깎아 까치 형상의 기계를 만들어 날렸다. 까치 기계가 3일 동안 땅에 내려앉지 않았다. 공수자가 스스로 지극히 정교한 것으로 여기자 묵자가 이같이 힐난했다.

 

“그대가 만든 것은 뛰어난 장인이 수레 빗장을 만든 것만도 못하오. 그는 순식간에 3치의 나무를 깎아 능히 50석의 무게를 실을 수 있는 수레의 빗장을 만들어내오. 장인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이로울 때에 한해 ‘정교하다’고 말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졸렬하다’고 말하는 것이오” - 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