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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 코이젯트, <엘리사와 마르셀라>를 보고

순돌이 아빠^.^ 2022. 8. 28. 19:12

영화 <북샵>이 참 좋아서 같은 감독의 영화를 또 찾아봤습니다. 이번에도 참 참 참 좋았습니다.

 

혹시 보실 분이 계시면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다 보시길 권합니다. 

 

 

남편을 사랑합니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2화에 보면 한 여성이 나옵니다. 결혼식 가운데 사고(?)가 있어서 파혼 직전까지 가 있지요. 

 

권민우 변호사는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그러고 나서 우영우가  묻습니다.

 

남편을 사랑합니까

 

딸이 별로 원하지 않는데 결혼을 밀어붙인 아빠도, 아빠의 요구로 소송에 뛰어든 변호사들도 이 여성이 어떤 마음일지는 별로 관심 없던 상황에서 말입니다

사랑,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요?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던 사람도 함께 살다 보면 마음이 변하고 서로에게 싫증 날 수도 있는데…

 

사랑,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요?

 

<엘리사와 마르셀라>에서 마르셀라의 딸 아나가 묻습니다

 

꼭 그래야만 했어요? 이 모든 걸…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나요?

 

사랑과 결혼

 

하루는 엘리사와 마르셀라가 바닷가에서 함께 놉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당장 죽는다면 바다에서 함께 있던 시간이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 거야

 

엘리사는 수녀들과 함께 삽니다. 그녀 앞에는 2가지 삶의 길이 놓여 있지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든 아니면 그냥 그대로 수녀들과 함께 살든.

 

그런데 엘리사는 결혼보다는 다른 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말을 타고 바다를 건너고도 싶구요.

마르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 애매합니다. 남들은 은근히 그렇게 하라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어찌 보면 결혼이란 건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특정 나이 때가 되면 여성들에게는 삶의 큰 숙제처럼 다가옵니다. 

 

결혼하면 좋나요? 마르셀라의 엄마 아빠를 보세요. 

 

결혼은 왜 하는 걸까요? 그렇게 살기 위해 결혼하는 건가요? 그렇게 살라고 결혼을 권하는 건가요? 

 

이것도 저것도

 

무겁고 어두운 표정의 마르셀라의 아빠가 이렇게 말합니다.

 

공부도 좋지만 너무 많이 배울 필요는 없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를 오랜만에 들었네요.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나요?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못쓴다

 

제가 직접 들었던 얘기예요. 웃기는 얘기죠? 

 

여자가 너무 많이 배우거나 똑똑하면 남편한테 대들거나 제멋대로 될 거라는 거지요.

 

너무 아무것도 모르면 안 되니까 배우긴 배워야 되는데, 그렇다고 너무 많이 배워서 똑똑해지거나 잘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설사 똑똑하고 잘났더라도 남자/남편 앞에서는 모르는 척, 멍청한 척 입을 다물라는 거지요.

 

마르셀라 아빠가 하도 X자식이다보니 엄마는 책을 몰래 숨겨서 읽어요. 세상에나…책을 몰려 숨겨 읽어야 하다니…

 

똑똑해지지도 마라, 하고 싶은 일을 찾지도 마라, 크게 웃거나 말하지 말라, 섹스를 하고 싶은지 아닌지 내색하지 말라, 다른 사람을 만나지 마라 등등등. 

 

이러려고 사는 건가요?

 

창살 없는 감옥

 

감옥에 갇혔던 엘리사와 마르셀라가 석방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르셀라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엘리사 : 곧 이 감옥을 나갈 거야

마르셀라 : 감옥엔 불만 없어. 오히려 밖이 문제야. 밖에선 우리를 구경거리로 알아…우릴 비웃을 거야. 숨을 곳도 없어. 영원히 그럴 거야.

 

이들을 가장 많이 괴롭혔던 것이 바로 바깥 세상이고, 그곳의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감옥이라면 어느 한 곳이 정해져 있기라고 하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고, 함께 빨래를 해서 널던 이웃 사람들이고, 마르셀라가 가르쳤던 학생의 부모들이고, 길을 오가며 마주치고 대화를 나눴던 동네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수군대기 시작했고, 의심하기 시작했고,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더니 결국에는 엘리사와 마르셀라에게 돌을 던지고 욕을 하고 농기구를 들고 위협했지요.

 

그녀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동네 우물에 농약을 풀었나요? 남의 집 소를 훔쳤나요? 아이들을 때렸나요? 남 모르게 누구를 죽였나요?

 

여자 둘이 결혼해서 함께 살았기 때문이라구요? 

 

그래서 어쨌길래요? 여자 둘이 결혼해서 함께 사는 것이 누구의 삶을 망가트리는 일인가요? 그게 누군가의 수명을 줄이나요? 밥이나 빵이 돌과 모레로 바뀌게 만드나요? 아이들에게 인생을 자포자기하게 만드나요? 10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만드나요? 

 

그들이 사랑하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나요? 그들이 결혼하는 것이 남의 혼삿길을 망치나요?

그런데 왜 돌을 던져 피 흘리게 하고, 살던 집을 떠나게 하고, 남몰래 숨어 지내며 거짓말하게 하고, 감옥까지 가게 만드나요?

 

내가 당신이 짬뽕을 먹든 짜장면을 먹든 상관하지 않는데 당신은 왜 내가 누구와 사랑하는지에 대해 구시렁대나요? 

 

내가 당신이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든, 소스를 탕수육에 부어 먹든 상관하지 않는데 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법률 위반이 되고 신성모독이 되나요?

 

그들이 당신들의 삶을 망치는 게 없는데, 당신이 그들의 삶을 망치고 있는 게 아닌가요? 

서울신문

누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나요? 어디가 감옥인가요?

 

나치가 유대인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유대인들이 아랍인들을 두들겨 패던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그들에게 큰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신의 생각이 편협하고 당신의 마음이 분노로 가득 차 있어서 틈만 나면 누군가를 공격하려 드는 거 아닌가요?

 

삶도 사랑도

 

괴롭히고 위협하는 사람들을 피해 먼 길을 떠나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서 도와주는 사람을 만납니다.

 

우습다고 해야 할지,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유롭다고 느꼈을 때는 자유롭지 않았는데, 자유를 잃었다고 느꼈을 때 오히려…

이 영화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이 저렇게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가 싶어 놀랍고

 

그것이 그저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일이라 놀랍습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그 고난과 어려움을 딛고 삶도 사랑도 계속 이어 나가 주셔서...

그리고 응원합니다.

 

오늘도 사랑을 위해 큰 용기를 내어야만 하는 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