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마인드 헌터> 시즌1 8화에 보면 주인공 홀든이 여러 차례 여성들을 납치 살인 강간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제리 브루도스를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브루도스 : 여자가 내 사진에 관심을 보였거든 she was interested in my photography.
홀든 : 모델 돼준다고 했어요? did she also want to be a model?
브루도스 : 그래yeah
홀든이 ‘그녀가 모델이 되길 원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want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누가 원했냐는 거지요? 누가 그 일의 주체냐는 거지요.
정말 그 여성이 브루도스의 모델이 되길 원했을까요? 아니면 그 여성이 원한 게 아니고 브루도스가 강제로 시켰을 뿐인 걸까요.
여성이 원하지 않고 브루도스가 원해서 그런 거면 브루도스가 살인 강간을 저질렀다는 또 다른 증거가 되겠지요.
그런데 그녀가 원했고, 브루도스는 수동적으로 응했을 뿐이라고 하면…마치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는 것처럼 되는 거지요.
짧은 옷을 입고 가는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해 놓고는 이렇게 말하는 놈이 있다고 하지요
저 년이 옷을 저 따위로 입고 다니는 건 어차피 날 잡아 잡숴 하는 거잖아. 내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다른 놈이 저 년의 소원을 들어줬을 거라고.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거라면 거짓말이고, 정말 그렇게 믿고 있다면 이 놈의 정신 세계가 실재하는 것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요.
상상하고 준비된
홀든 : 첫 번째 여자를 죽이기 전에도 여자를 죽이는 상상을 했을까요? do you think that even before the first one, he fantasized about murdering a woman?
브루도스 : 당연하지definitely
피해 대상이 그 여성이 된 것은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브루도스가 남성 아닌 여성을 죽이겠다고 한 거는 이미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일 수 있겠지요.
왜 그런 상상을 하게 되었는지와는 별개로, 상상 속에 한 여성을 상정해 놓고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겠지요. 한 번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그랬을 수 있구요.
홀든 : 그럼 살인은 이미 갖고 있던 생각의 연장일 뿐이었네요. 오래된 생각일 수도 있고. so the murders were just an extension of thoughts he already had. maybe for a long time.
브루도스 : 그런 걸 해내려면 머리를 열심히 굴려야 할 거야. 말하자면…의욕이 넘쳐야지. you’d have to think about it pretty hard to go through it. you have to be…driven.
홀든 : 걷잡을 수 없을만큼? you mean like, out of control?
살인에 대해 생각을 한다고 해서 모두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떤 살인이 일어난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기보다는 이미 다양한 형태로 그런 류의 생각을 하고 있었을 수 있겠지요.
저도 누군가를 해치거나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지요. 왜냐하면 저 인간을 때려주고 싶다가도 ‘내가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나쁜 생각을 하다가도 스스로를 통제하고 제어하는 겁니다. 걷잡을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는 것은 우리 내면의 또 다른 힘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도덕성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 상상을 현실화했을 때의 벌어질 온갖 일들을 넘어서게 하는 거지요.
브루도스가 의욕이라고 한 거, 그러니까 driven…음…분명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내가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인지한다고 해도 잘 억제/통제되지 않고 몰아가고 밀어붙이는 어떤 힘이 있다는 거겠지요.
브루도스가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지만, 내가 그 힘을 인지했거나 아니거나 결국 내가 벌인 일입니다. 억제/통제control 할 수 있어도 나의 일이고, 그렇지 못해도 나의 일이지요.
내 뜻대로
홀든이 걷잡을 수 없는, 통제할 수 없는out of control이라는 말을 꺼냅니다.
브루도스 : 현실은 시궁창이라도 환상 속 삶에선… maybe his real life was out of control, but his fantasy life was…
홀든 : 강해지는 느낌을 받았겠죠. place where he could feel powerful.
브루도스 : 그것도 말 되네. makes sense.
권력을 가지고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의 의지나 뜻과 관계없이 내 의지나 뜻대로 할 수 있다는 거겠지요.
브루도스가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했던 건 현실의 삶은 내 의지나 뜻대로 어찌하지 못하는out of control 상황이었다는 걸 겁니다. 그것도 아주 부정적이고 불쾌하게.
그런데 나보다 힘이 약한 여성을 상대로 권력을 행사하고 그녀를 지배하게 되면 내 의지나 뜻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그렇게 되니까 힘을 가진 것 같고 강해지는 느낌도 받는 걸 테구요.
자신보다 약한 동물들을 괴롭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수 있구요.
동물에서 사람으로 범죄의 방향이 바뀌어가듯, 브루도스의 행동도 점차적으로 강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브루도스 : 첫 번째는 어쩌다 보니 죽였을 거야. 그런데 그 다음에는 맛을 알았겠지. maybe the first one fell into his lap, but then maybe after that, he got a taste for it.
브루도스가 맛taste이라고 합니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다는 거겠지요. 그리고 범행을 계속하는 것은 그 느낌을 반복적으로 갖고 싶어서일 거구요.
그것이 섹스든 뭐든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고, 상대를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고, 상황 전반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그런 느낌을 포함할 테구요.
권력과 통제
그렇게 나쁜 짓을 많이 하던 히틀러는 결국 자살을 합니다. 스탈린도 어느 날 갑자기 죽었지요.
이들이 살아 있을 때 했던 공통된 일 가운데 하나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인간이 있으면 가차 없이 죽이거나 감옥/수용소로 보냈다는 겁니다.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않아도 그럴 거라고 의심을 하면 그만입니다. 작은 의심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게 권력이란 거겠지요.
자신에게 반대했다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고 통제되지 않았다는 거겠지요.
그러면 혹시 이들이 그토록 권력을 쥐고 유지하려 했던 것은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고, 전반적인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들려는 마음에서 그런 걸까요?
물론 정확한 것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그런 면도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보는 거지요. 권력 추구의 심리적 요인과 그 체계mechanism을 찾아보려는 겁니다.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 <하얀 리본>을 보면 마르틴이라는 아이가 나옵니다. 아빠는 목사. 목사인 아빠는 늘 경직되고 어두운 표정으로 아이들을 훈계하고 때리고 욕을 하고 모욕감을 안겨 주지요. 마르킨의 눈에서는 분노와 원망과 수치심이 드러납니다.
이 아이는 장치 어떤 마음과 어떤 행동 패턴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하게 될까요
윤석열은 아버지한테 많이 맞으며 자랐다고 했지요. 그러면 맞기만 했을까요. 혹시...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대체로 중요한 일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실제로 어땠는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저렇게 권력과 힘을 좋아하고, 그것을 갖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는 걸 보니 뭔가 이유가 있겠다 싶더라구요.
여러 가지 일에서 우물쭈물하고 자신 없어하고 당황스러워하는데도, 권력을 쥐는 것과 방해되는 인물을 제거/공격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열심히더라고요.
김건희는 왜 윤석열을 앞세워서 권력을 잡았을까요? 정확한 이유야 모르지요.
다만 이런 생각해봤어요. 본인이 인지하든 아니든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한 건 아닐까 싶더라구요.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만큼 반대로 내 뜻대로 되도록 만들고 싶었을지도...그리고 세상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면 권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구요.
내가 권력을 잡으면 나에게 반대하거나 나를 공격하는 것들을 없애버릴 수 있다는 생각도 했을까요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데는 그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 이유가 무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요. 현재 인간이 가진 지식이나 과학의 수준으로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 이유/체계를 알거나 말거나 세상에는 오만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그 일이 어떤 일인지를 어느만큼이라도 알아야 대응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은 왜 권력을 추구할까요? 우리 정신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권력을 추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 뜻에 따라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요
어쩌다 작게라도 한 번 경험-브루도스가 맛taste이라고 했던 것-해보고 난 뒤 계속해서 다시 그 느낌을 찾는 거지요. 점 점 더 강한 느낌을 갖고 싶을 수도 있구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힘에 의해 떠밀려가듯이driven 말이에요.
때로는 이제 그만하자 싶다가도 금방 어느새 나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는out of control 상태에 빠져들지요.
알코올 중독자가 이제는 그만 마셔야지 하다가도
또 어느새 술병을 쥐고 흔들며 기분 좋다고 하듯이
권력 중독자도 이제는 그만 하자 싶다가도
또 어느새 권력을 쥐고 흔들며 기분 좋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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