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계산이나 기하학 그리고 변증술에 앞서 교육받아야 할 일체 ‘예비 교육’의 교과들은 아이들일 때에 제공되어야만 하는데, 이 가르침의 형태는 강제로 배우게 되는 것이어서는 아니 되네”
“어째서죠?”
“자유인은 어떤 교과도 굴종에 의하여 배워서는 아니 되기 때문일세…그 어떤 강제적인 배움도 혼(마음)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테니까” - 플라톤, <플라톤의 국가>, 서광사, 1997, 494쪽
장동건이 나왔던 영화 <친구>에 보면 유명한 장면이 나오지요. 교사가 학생의 뺨을 때리면서 묻습니다.
너거 아버지 머하시노?
권상우가 나왔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보면 학생들을 엎드리게 해놓고 교사가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군가에게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고, 누군가에게는 저런 일도 있었어? 싶은 장면일 겁니다.
제게는…
제가 직접 겪었던 일이기도 하고, 두고 두고 생각해도 화나고 어이없고 열 받는 상황입니다.
왜 교사는 저렇게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을까요?
무엇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지속적이고 강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들었을까요?
그들은 교육자였을까요 범죄자였을까요? 아니면 교육을 내세운 폭력 범죄자였을까요?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63263.html?_fr=mt2
이란에서 자유와 인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투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투쟁의 계기가 된 것은 한 여성이 경찰에게 잡혀간 뒤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여성을 잡아간 것이 ‘도덕경찰’이고, 잡아간 이유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겁니다.
여성들의 외모나 머리 모양을 단속하는 경찰이 거리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들이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거지요.
영화 <친구>의 교사가 교육을 내세우며 폭력을 행사했듯이, 이란에서는 도덕을 내세우며 국가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겁니다.
https://m.khan.co.kr/world/mideast-africa/article/202208142144025#c2b
아프가니스탄에도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국가에 ‘권선징악부’라는 게 있어서 이들이 여성들의 외모를 단속하고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그러니까 그들이 주장하는 도덕과 선악의 내용이 어떤지를 떠나서 생각해보지요.
그들이 말하는 도덕을 따르게 하고 선악을 가르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몽둥이와 감옥인가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교사들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버릇을 바로잡겠다느니,행실이 나쁘다느니, 다 니 잘돼라고 한다느니, 그렇게라도 공부를 시키려고 했다느니…
공부요?
제가 중고등학교 6년을 다니면서 교사한테 두들겨 맺은 것만 해도 한 1천대 정도는 되지 싶어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맞아보지 않은 부위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몽둥이로 배를 두들겨 맞아본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냐구요?
두들겨 맞아서 공부를 잘하게 될 것 같으면 제가 이미 노벨상을 3번은 탔을 겁니다.
맞아도 안 하고, 맞지 않아도 안 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자유인이라고 하기에는어려운, 그리고 노예를 닮은 대우와 폭력이 제게 배우자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맞아서 배운 거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놈의 학교와 교육이 정말 문제가 많다는 겁니다. 우리가 인간답게 대우 받으며 살려면 학교와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로 해서는 안된다고도 하지요.
그러면 달리 물어보지요.
두들겨 패면 비도덕적이던 사람이 도덕적으로 되고, 인성에 문제가 있던 사람의 인성이 바뀌나요?
범죄자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에 보면 범죄자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 경우 부모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욕먹고 두들겨 맞고 모욕을 당하고 굴종을 강요당했던 사람들이지요.
노예의 배움은 주인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것일 뿐입니다. 아니면 두들겨 맞지 않기 위한 방법을 찾을 뿐이구요.
반대로 자유인의 배움은 주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배우는 겁니다. 내가 더 훌륭한 삶을 살고, 세상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배우는 겁니다.
그런 자유인에게 누군가 억지로 무언가를 배우게 하거나 학습 시키려 한다면 자유인은 당연하게도 반발하고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설사 그것이 세상 모든 것을 갖게 해주는 길이라 할지라도 자유인은 강제나 굴종에 의해서는 배우려 하지 않을 겁니다.
힘으로 강제하면 입을 다물게 할 수도 있고, 감옥에 가둘 수 있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자유인의 마음에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스스로의 의지와 선택으로 배우려 하니까 자유인이겠지요. 스스로의 의지와 선택으로 배우려고 하니까 더 깊이,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거구요.
노예는 두들겨 맞지 않을만큼 배우려 할 거고, 자유인은 배움에 대한 열정의 크기만큼 최대한 배우려고 할 겁니다.
윤석열차 사건이 있었지요. 고등학생이 그린 만화를 가지고 국가가 경고를 하고 관련자들을 조사하겠다고 했습니다.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이 작품을 비난했지요.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이 그림을 그린 학생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일단은 많이 당황하고 혼란스러웠을 거에요. 자기 작품 하나가 이렇게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진 못했겠지요.
따져보면 '윤석열차'가 문제가 아니라 그 작품을 문제 삼은 국가가 이상한 거지요.
여성이 머리카락을 가리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단속하겠다고 몽둥이를 들고 나선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가가 이상하듯이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국가가 그렇게 나선 것은 무언가 메시지를 주려는 거겠지요. 권력자를 비판하는 하는 것에는 댓가가 따를 것이고,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겁니다.
불안이나 두려움을 일으킴으로써 시민의 정신을 개조하려는 거겠지요.
시민들에게 굴종을 요구하는 것일테구요.
주인도 아닌 놈들이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고, 노예가 아닌 사람들에게 노예처럼 행동하라는 겁니다.
윤석열차의 작가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 저는 모릅니다.
바람이 있다면
국가가 예술 작품을 매개로 시민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압박하더라도 당당하게 이겨나가길 바랍니다.
yes면 yes이고, no이면 no인 거지요.
지배자들은 굴종을 요구하며 강제로 길들이려고 합니다
자유인들은 자유를 요구하며 스스로 배우려고 할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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