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그 다음으로 우리가 찾아서 보여 주도록 할 것은 오늘날 나라들에 있어서 잘못되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이들 나라들이 그런 식으로 다스려지지 못하고 있는지, 그리고 최소의 것으로 무엇이 변혁을 봄으로써 한 나라가 이런 형태의 정체政體로 옮겨 갈수 있을 것인지 하는 것일 것 같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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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내 생각으론 한 가지 변혁을 통해서도 나라가 바뀌는 것을 우리가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으이. 그렇더라도 그건 작은 것도 쉬운 것도 아니나 가능은 한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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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지혜를 사랑하는이)들이 나라들에 있어서 군왕들로서 다스리거나, 아니면 현재 이른바 군왕 또는 ‘최고 권력자’들로 불리는 이들이 ‘진실로 그리고 충분히 철학을 하게(지혜를 사랑하게)’ 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이게 즉 ‘정치 권력’과 철학(지혜에 대한 사랑)이 한데 합쳐지는 한편으로, 다양한 성향들이 지금처럼 그 둘 중의 어느 한쪽으로 따로따로 향해 가는 상태가 강제적으로나마 저지되지 않는 한, 여보게나 글라우콘, 나라들에 있어서, 아니 내 생각으로는 인류에게 있어서도 ‘나쁜 것들의 종식’은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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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리는 철학자(愛知者)도 지혜(sophia)를 욕구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지혜는 욕구하되 어떤 지혜는 욕구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모든 지혜를 욕구하는 자라고 주장하지 않겠는가
- 플라톤, <플라톤의 국가>, 서광사, 1997, 355쪽
러시아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대한민국도 그렇고 정치인이나 행정가가 어떤 인물인지는 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대통령 같은 자리는 여성 노동 경제 장애 교육 환경 등등 워낙 많은 일에 관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그녀가 가지는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할 겁니다.
그렇다고 대통령 같은 정치인/행정가가 그 많은 각 분야에 대해 다 잘 알 수는 없습니다. 한 인간이 한계라는 게 있는데 어떻게 다 잘 알겠습니까.
우리 자신을 봐도 그렇지만 한 분야에 대해서도 잘 알기가 어렵습니다.
벼를 잘 재배한다고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아닐 것이며, 블랙홀의 탄생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심리치료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닐 겁니다.
오히려 이것저것 여러 분야에 대해 다 잘 알고 통달 했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조심해야겠지요
아무튼 워낙 복잡한 일들이 얽혀 있는 사회에서 모든 분야에 대해 잘 알 수는 없어도 대략의 감(?) 같은 것은 가질 수 있습니다.
스토킹에 이어진 여성 살해 뉴스를 보면서 ‘아! 지금 스토킹과 폭력의 문제가 심각하구나’,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는 걸 보면서 ‘아! 맞아. 장애인들의 이동권 문제가 심각하구나’ 등등에 대해 느낌을 가질 수는 있는 거지요.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나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갖는 겁니다.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062151.html
작업장에서 일하다 죽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아니 어떻게 먹고 살려고 일하다 죽는단 말이야. 이건 반드시 해결해야 해’라는 의지를 갖는 거지요.
문제를 알고 의지를 가졌다면, 그 다음에 할 일은 이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과 정책을 찾는 겁니다.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니까요.
http://nationalatlas.ngii.go.kr/pages/page_1882.php
내가 모든 것을 해결 할 수는 없어도 이런 일들이 대략 어떤 방향으로 해결되는 게 좋을지, 누가 이런 일을 잘 할 수 있을지를 어느정도는 알 수 있겠지요.
그러면 그 일이 잘 풀리도록 그 일을 잘 할 사람과 정책 방향으로 힘을 실어주면 됩니다.
이상적으로는 그런데 현실에서는 다른 쪽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 A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이 어떤 한 분야에 대해서 잘 안다고 했지만 나중에 보니 그 분야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거에요..
다른 사회 문제나 인생살이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지요. 잘 모르는정도가 심해서 도대체 이런 사람이 그동안 사회 생활을 어떻게 해 온 거지 싶고, 냉동인간으로 있다 해동된 건가 싶을정도인 겁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으면 이제라도 뭔가 알아보려고 하고 배우려고 해야 하는데 전혀 배울 생각을 하지 않는 겁니다.
게다가 각 분야의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알지도 못하고 그런 사람들과 친분도 없습니다.
https://m.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210051034001#c2b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과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충성할 사람과 자기 패거리의 이익에 도움이 될만한 정책에만 힘을 실어주는 겁니다.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아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도 않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愛知者이라고 했습니다. 세상 모든 일에 대해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알고자 하고 배우려는 사람입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그냥 그 사람의 선택이고 인생이겠지요.
다만 사회나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면 그에 맞는 지적인 능력과 지혜가 어느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의 정치라고 했습니다. 민주주의 제도를 전제로 크게 2가지 의미를 생각합니다.
첫째는 지혜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지혜를 사랑하는 정치인/행정가를 선출할 겁니다.
함께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의 마음도 잘 모르는데, 저 멀리 있는 정치인의 마음이 어떤지를 제대로 알 수는 없지요.
그래도 어느정도 대강은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아, 저 사람이 그래도 공부를 조금 했구나, 사회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게 있구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등등입니다.
어리석은 자를 훌륭한 사람으로 여기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자를 학문에 대한 탐구심이 많은 것으로 여긴다면 스스로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일뿐더러, 그런 자를 중요한 자리에 앉힘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위험과 손해를 끼칠 수 있을 겁니다.
둘째는 지혜를 사랑하는 정치인/행정가는 시민들이 더욱 지혜롭도록 뒷받침할 것입니다.
자신의 무지를 부끄럽게 여기는 자는 다른 사람이 지식이나 지혜를 갖췄다는 것을 질투하거나 미워합니다.
무지하면서도 권력을 좋아하는 자는 지식인을 싫어합니다.
권력형 가스라이터는 지식을 경멸한다. 지식인은 가스라이터의 행동에 반발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터는 과학기술, 엔지니어링, 역사 분야의 지식인을 유독 싫어한다. 왜냐고? 그들은 근거를 갖고 자신들을 비방하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터들은 도전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에 근거한 도전이라면 더더욱.
- 스테파니 몰턴 사카스, <가스라이팅>, 수오서재, 2021
차근히 탐구하고, 오랜 시간 검토하고, 문헌들을 뒤져보고 하는 그런 활동이 낯설기도 하고 답답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번뜩이는 영감, 신의 말씀, 깨달은 자의 가르침 등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큰 노력없이도 얻을 수 있고, 뭔가 특별하고 대단한 것처럼 여겨지니까요.
이것은 학력이나 학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공자가 유명 대학을 나와서 평생 배움에 대해 생각한 것도 아니고, 플라톤이 박사 학위를 받아서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해 깊이 탐구한 것도 아니지요.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배우라고 권할 겁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화와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슨 문제가 있으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고 귀를 열어 들으려고 할 겁니다.
정치인/행정가가 지혜를 사랑한다면 그들은 다른 시민들도 배우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만들고 격려할 겁니다.
반대로 지혜를 사랑하기는커녕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잘난 척이나 하는 인간들’로 여기는 정치인/행정가는 참된 배움의 길을 멀리 할 겁니다.
그딴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할 것이며, 그저 내가 시키는대로 듣고 행동하면 된다고 할 겁니다.
대화보다는 지시를, 토론보다는 명령을 더욱 좋아하겠지요.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062434.html?_fr=mt2
자유로운 탐구 활동보다는 내가 제시하는 것을 그저 열심히 외우면 된다고 할 겁니다.
지혜로운 시민들을 비난하고 억압할 것이며, 지혜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활동을 제한하거나 없애버리려고 할 겁니다.
공자․맹자를 비롯한 당시 학인들이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군주를 찾아 천하를 주유周遊하였다는 것도 일종의 구직 여행이었지만, 선생을 찾아 모여든 제자들의 목적도 대부분 관료가 되기 위한 자질을 배우고 또 선생을 통해 관직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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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많은 제자 중 진실로 호학지사好學之士는 안회뿐이며 3년간 간록干祿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학업에 전념하는 사람도 쉽지 않다고 한탄한 것이나...
- 서울대학교동양사학연구실, <강좌 중국사 1 - 고대문명과 제국의 성립>, 지식산업사, 1989
관직이든 출세든 잘나가는 것이든 그런 것들을 별로 마음에 두지 않고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학문을 탐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아는 것이 적다고 여기고 잠깐이라도 책을 읽으려고 하고 좋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고 더 좋은 길을 생각하려 노력합니다.
온전히 학문에만 몰입하기는 어려우나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리 하는 것이겠지요.
우리 스스로가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차이가 있고 그 정도가 있을뿐이겠지요.
우리 가운데 좀 더 지혜로운 사람이 정치인/행정가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정치인/행정가가 시민들 사이에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도록 부지런히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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