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예술과 함께

가을의 깊이와 사색의 깊이

순돌이 아빠^.^ 2022. 10. 27. 09:14

며칠 연습을 못하다, 오늘은 상태가 좀 좋아지는 것 같아 학원에 갔어요.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스케일 연습을 시작했어요. 보통 때 같으면 스케일을 하면 할수록 손가락도 풀리고 건반에 힘이 들어가는데…오늘은 되레 힘이 계속 빠지더라구요.

10분쯤 하다 도저히 안돼서 짐을 싸서 학원을 나왔어요. 

이런 날은 마음이 많이 울적해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은데 하지 못하게 될 때. 그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라 나 자신의 상태 때문에 하지 못하게 되면 울적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좌절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해요. ㅠㅠ

학원을 나와 자전거 앞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핸드폰으로 라디오를 틀었어요. <명연주 명음반>에서 정만섭이 슈베르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이제 막 귀에 꽂고 자전거에 올라타느라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못 들었는데, 정확하게 들은 건 이 말이에요.

사색의 깊이

사색의 깊이라는 말을 하면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D.960을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연주로 들려주겠다더라구요.

https://youtu.be/lncNcNtGkJY

자전거에 올라타서 건널목에 섰는데 연주가 시작됐어요.

시시라시도레~

마음이 정말 울컥했어요.

 

곡 전체에서 비슷하게 반복되는데, 당당당당당당~하는 이 부분이 저는 그렇게 좋더라구요.

슈베르트가 이 곡을 작곡한 게 1828년이라고 하니까 벌써 2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네요.

그리고 리히터가 1972년에 이 연주를 녹음 했으니까 50년의 세월이 흘렀구요.

지난 200년과 50년의 세월동안 하나의 곡과 하나의 연주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영감을 줬을까 싶어요.

슈베르트. the guardian

연주를 들으며 자전거를 타는데 눈물이 맺혀서 눈이 자꾸 감기더라구요. 사고 날까봐 손잡이를 꽉 잡았지요. 

평소에는 학원에서 나오면 집으로 가는데 오늘은 그냥 집으로 가기 싫더라구요.

자전거를 타고 동네 여기저기를 다녔어요. 이 연주가 끝나면 집으로 가려구요. 

길 옆 의자에 앉았어요. 낙엽은 쌓이고 단풍은 짙어가는 가을에 이 연주를 듣고 있으니 너무 너무 좋더라구요.

가만히 눈을 감았어요. 새로운 세계에 온 것 같았어요.

가을의 깊이와 사색의 깊이가 잘 어울리는 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