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땅콩을 먹으며 <지금 우리 학교는> 시즌 1, 5화까지 봤습니다.
분명 좀비물인데…왠지 마음이 씁쓸하고 그렇더라구요.
나연이란 인물이 나옵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자기 밖에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경수를 ‘기생수’라고 조롱까지 합니다.
교사가 묻지요. 그게 기생수가 무슨 뜻이냐고.
기초 생활 수급자라네요.
기초 생활 수급자라고 경멸하고 놀리다니…
나연을 보면 딱 윤석열 같은 인간이다 싶습니다.
제가 정말 싫어하는 유형이 다른 사람을 가난하다고 업신여기고 조롱하는 인간들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인간을 아주 싫어했어요.
제가 윤석열을 인간 그 자체로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그런 지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라 서울대까지 나왔으면서 인생을 그딴 식으로 사냐 싶구요.
귀남이란 인물도 나옵니다. 완전 나쁜 놈이지요. 여학생을 협박해 옷을 벗기고 동영상을 찍고, 이를 퍼뜨리겠다고 또 협박하는 인간 쓰레기입니다.
귀남이 좀비에게 쫓기다 교장실로 피합니다. 거기에 교장과 둘이 남게 되지요.
이때 교장이 차 열쇠를 주면서 주차장 가서 차를 가져오라고 합니니다. 밖에는 좀비들이 와글와글 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귀남이 결국 교장을 죽입니다.
나연이 경수에게, 교장이 귀남에게 그런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가졌거나 가지고 있다고 믿는 지위 때문이겠지요.
이 때의 지위란 돈이 많다던가 어떤 직책에 있다든가 하는 거구요.
그런데 그 거지는 개를 보고 달아났지? 거기에 권력이라는 것의 위대한 모습이 있는 거야. 개라도 직책이랍시고 짖으면 사람이 복종한다.
- 셰익스피어, <리어 왕> 가운데
지위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경멸하거나 자신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명령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경멸하던 거나 주인이 노예에게 고된 노동을 시키는 것과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나연이나 교장에게 그런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모든 인간이 그런 지위나 사회적 권력 같은 게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면 어떨까요?
가량 어떤 신이 50명 또는 그 이상의 노예를 갖고 있는 한 사람을 그 나라에서 들어올려서는, 자유민들 가운데서 아무도 그를 지원해 줄 엄두를 낼 수 없는 외진 곳에다 그와 처자를 다른 자산 및 가노들과 함께 내려 놓는다면 말일세. 이 사람이 자신과 처자가 가노들한테 살해되지 않을까 하여 어떤 두려움에 그리고 얼마나 큰 두려움에 처하게 될지 짐작이 가는가?
- 플라톤, <플라톤의 국가>, 서광사, 1997
플라톤은 신이 주인과 노예를 어느 외진 곳에 놓아둔다고 했지요.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는 좀비 때문에 기존의 체계나 질서는 무너지고, 다른 사람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교장실이라는 특정한 공간에 교장과 귀남만 남겨진 거지요.
이때에 교장은 여전히 자신이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고 귀남에게 명령을 합니다. 하지만 귀남은 이미 기존의 체계와 질서가 무너녔다는 것을 직감하지요.
교장-학생이라는 지위나 서열의 관계에서 벗어나 그냥 개인:개인이 적대적인 상황에 놓인 겁니다.
플라톤의 이야기에서 주인은 살해될까 두려움을 느낄 거라 했고,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교장은 실제로 살해당했지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그를 돕도록 만드는 힘이나 시스템이 없다면 그냥 무력한 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를 거들먹거리고 이짓저짓 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은 바로 그 힘과 시스템이지요.
사무실에 갇혀 있는 한 국회의원이 나옵니다. 소방관이 헬기로 구조를 요청합니다. 그러자 내일 11시에 헬기가 올 수 있다고 합니다. 보좌관이 따집니다. 의원님을 얼른 빨리 모셔야 된다는 거지요.
그러자 소방관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구조의 순서는 지위의 순서가 아니라 위급의 순서입니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844372
[단독]참사 당일 '빈 집'인 尹 관저 지킨 경찰…지원 불가했나
서울 이태원 참사 당일 사고 현장에서 차량으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한 윤석열 대통령의 '한남동 관저'에도 대규모 경찰 인력이 대기 중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현재 서초구
www.nocutnews.co.kr
얼마전에 이태원 참사가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나고 답답합니다.
빈 집 상태인 대통령 관저를 지키기 위해 많은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었던 반면, 너무 많은 인파가 모여서 경찰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 요구는 묵살되었지요.
대통령도 아니고 대통령의 비어 있는 집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찰을 배치 했지만, 위험에 처한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배치되지 않았던 거지요.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애쓴 일선 경찰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도움을 요청한 시민들, 지원을 요청한 현장 경찰들의 요구를 묵살한 윗대가리들이 문제겠지요.
시민의 생명보다는
대통령의 기분을 좋게 하고
대통령의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국가와 경찰이 움직이도록 만든
대통령 그 자신과 그의 패거리들의 문제일 거구요.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데 쏟아도 모자랄 인력과 재정을
대통령과 그의 아내의 심기를 경호하는데 쏟아붓고 있으니...
<지금 우리 학교는>의 국회의원도 한 목숨이고 학생들도 한 목숨이듯, 대통령도 한 목숨이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도 한 목숨입니다.
어느 목숨이 더 귀하고 덜 귀한 것이 있겠습니까.
지위와 권력, 힘과 시스템이 누군가의 목숨은 더 귀하고 누군가의 목숨은 덜 귀한 것으로 만드는 것 뿐이지요.
156 < 1
150명이 넘는 시민들의 목숨보다
1명 대통령의 기분을 더 중요하게 지키도록 움직이고 있는 이 시스템에 욕을 퍼붓고 싶네요.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국회의원 무리들과 소방관들이 사무실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됩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내일 11시에 올 헬기를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러자 소방관이 임시로 사무실 한켠에 화장실을 만듭니다.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은 난감을 표정을 짓지요.
학교 방송실에 갇혀 있는 학생들도 화장실을 만듭니다. 서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상황을 보면, 인간이란 게 매한가지이고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좀비에게 쫓기니 무섭고 살고 싶어하는 거는 매한가지입니다.
위기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났다 싶으면 오줌을 싸고 똥을 싸고 싶어하는 것도 매한가지구요.
거기에는 어떤 높음과 낮음도, 귀함과 천함도 없습니다.
구조가 지위의 순서가 아니라 위급의 순서로 정해지듯, 화장실도 권력 순서가 아니라 급한 사람이 먼저 이용하는 겁니다.
지위와 권력의 세계에서 벗어나 오줌과 똥의 세계로 옮겨가면 너나 나나 그게 그거지요.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의 세계에도 지위와 서열이 있습니다. 침팬지나 늑대의 경우가 그렇지요.
인간이든 침팬지든 늑대든 그 사회에서 지위와 서열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생물로서, 유전자와 세포의 구성물로서의 생명으로 보면 지위와 서열의 차이 같은 건 없습니다.
어떤 유전자는 부자의 유전자이고, 어떤 세포는 기초 생활 수급자의 세포라는 게 있겠습니까.
태양이 지구보다 크다고 해서 태양이 지구보다 더 귀하고, 달이 지구보다 더 작다고 해서 달이 지구보다 더 천한 것은 아닐 겁니다.
태양이 아주 밝고 뜨겁다고 해 봐야 다른 빛나는 별에 비하면 아주 아주 작은 꼬맹이일 수도 있는 거지요.
달이 작다고 해도 저나 순돌이에 비하면 엄청 엄청 큰 존재이구요.
당장에 죽고 사는 일이 걸리면 서울대를 나왔건 경찰이나 교사 같은 공무원이건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물론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도 그런 지위를 놓지 못하고 내세우는 인간들도 있지요.
심지어 그런 상황에서조차 그 지위를 이용하고, 지위 낮은 사람을 이용해 자기만 살겠다고 하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지금 우리 학교는>의 온조나 이삭, 청산이나 경수처럼 지위나 권력과 관계 없이 같은 인간이니까, 서로 친구니까 함께 살려고 노력하는 인간들도 있는 거구요.
명령하고 복종케 하는 지위나 권력보다는,
내가 살고 싶듯이 너도 살고 싶은 거라는 점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너를 죽여서라도 나는 살려고 하기보다는,
위험이나 고난이 클수록 함께 의논하고 힘을 쓰고 맞서 싸우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인다는 점 또한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집착하고 매달리고 있는 지위나 권력이란 것도
지금 이 사회가 이런 상황에 있으니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지
이 시스템이 무너지면 순식간에 그 힘은 사라지고
초라하고 나약한 한 인간으로 다른 인간들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것 또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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