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것들/스치는생각

영어만 잘하면 뭐해

순돌이 아빠^.^ 2023. 2. 5. 11:29

혼자 찻집에 앉았습니다. 순돌이와 함께 살기 전에는 자주 혼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하던 단골집입니다.. 

순돌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순돌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짧게 하려고 가급적 밖에 나가는 일이 아니면 늘 함께 있었습니다. 혼자 찻집에 있는 일도 없어졌지요.

그러다 오늘은 그냥 오랜만에 호사(?)를 누렸습니다. ^^ 

사장님: 어? 오랜만에 오셨네요

순돌이아빠: 안녕하세요 ^^

사장님: 어떻게 오늘은 시간이 되셨나봐요

순돌이아빠: 강아지를 집에 두고 잠깐 왔어요 ^^

사장님: 그러셨구나 ^^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 계신 두 분은 영어 과외를 하고 계신가봐요. 가까이 있는데다 목소리가 작지 않아서 다 들리더라구요. 

샘: 여기 이거 읽고 해석해봐

학생: 하와이…플라이트 어텐던트…

학생이 우물쭈물 애를 먹네요 ^^

샘: 너 요즘 리스닝 공부 잘 안하지?

학생: 어…

샘: 내가 저번부터 얘기했잖아. 리스팅이 정말 중요하다고. 그리고 특히 어릴 때부터 열심히 해야 된다고. 

학생: 네….

샘: 난 말야. 한국에서 왜 이렇게 리딩하고 시험 문제 풀고 이런 걸 계속 열심히 시키는지 모르겠어. 어차피 이제 AI나 구글에 물어보면 다 되는데.

학생: …

샘: 문제만 열심히 풀면 뭐해. 영어권 사람을 만나면 말도 한마디 못하고, 알아 듣지도 못하는데. 일단 알아 들어야 뭔 말을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학생 : 네…

한창 리스닝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 하시더니, 자기가 대학에 들어가서 첫 수업 시간에 교수가 BBC 드라마를 틀어놓고 얘기를 시키더라는 말씀도 하시더라구요.

샘: 물론 영어를 잘 하는 건 중요해요. 그런데 영어만 잘하면 뭐해. 내용이 있어야지 내용이.

학생: 네…

샘: 넌 아직 학생이라서 잘 못 느낄 수 있는데…너가 나중에 커서 미국이든 영국이든 가봐. 영어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뭔 내용이 있어야 말을 하지.

학생: 네…

샘: 그러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뭐 이런 것을 키우는 것도 정말 중요한 거야.

학생 : 네...

아마 찻집에 있던 모든 분들이 그 얘길 들으셨을 거에요. 좀 크게 강조하시면서 말씀 하셨거든요. ^^

어쨌거나 정말 맞는 말 같아요. ‘가, 나, 다, 라’도 그렇고 ‘A, B, C, D’도 그렇고 모두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잖아요.

그러려면 ‘의사’를 가지고 ‘소통’을 해야 할 거구요. 

샘의 말씀처럼 그 내용이나 세상에 대한 시각 같은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피아노 건반을 잘 두드린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 속에 기쁨이나 슬픔, 불안이나 행복 같은 인간의 감정이 담길 때 연주가 더욱 빛나게 되는 것 같아요.

김씨네 편의점

<김씨네 편의점>이라는 드라마가 있죠. 캐다나에 사는 한인들이 얘기에요. 

저야 물론 한글 자막을 읽지만…아무튼 기술적인 의미에서 영어만 잘하는 것보다는 백인 주류의 사회에서 조금은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더 재미 있기도 할 거에요.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106081442001#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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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삶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제작 뒷얘기도 더욱 깊게 다가올 것 같구요.

영어로 말을 하는데, 단순한 영어 이상의 그 무언가가 있는 거지요.

https://youtu.be/t0m5SXA6MVs?list=LL

Irish MP calls out Israel’s actions on Palestinian territory

리처드 보이드 바렛Richard Boyd Barrett, 아일랜드 정치인이라네요. 누군지 몰라서 구글에 검색해봤지요 ㅋㅋㅋ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난리를 피우는 것에 대해서는 비난을 하면서, 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서 그짓거리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말 하지 않느냐는 것 같아요.

최근에 보고 들은 영어로 된 말 가운데 가장 마음에 크게 다가온 이야기였어요. 

이 영상을 보고 있으니 찻집에서 봤던 그 영어샘의 이야기가 다시 떠오르더라구요.

영어만 잘하면 뭐해. 내용이 있어야지 내용이.

리처드의 말을 해석하는 것이야 구글에게 맡기면 될 거에요.

그보다는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하고, 저것이 어떤 의미가 있길래 손짓으로 따옴표까지 해가면서 그런 말을 하는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더 팩트

하루는 A가 묻더라구요.

A: 인게이지먼트가 뭐야?

순돌이아빠: engage? 드라마 같은데 나오면 약혼이라는 얘길테고, 아니면 참여나 개입 같은 거?

A: 어그레시브는?

순돌이아빠: aggressive? 야구나 스포츠 같은데서 나오면 뭔가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하라는 걸 거고, 아니면 인간 관계 같은데서는 좀 공격적이라는 걸 거고…근데 왜?

A: 아니…윤석열이 영어로 얘길했다는데…이 기사 좀 봐

순돌이 아빠: 가버먼트 인게이지먼트…레귤레이션…어그레시브…하하하…이 새끼 도대체 왜 이런데? ㅋㅋㅋ

대통령이란 작자가 저런 말을 굳이 영어로 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백번 양보해서 가버먼트는 글로벌 가버넌스 같은 말을 쓰기도 하니깐 그렇다 치고, 인게이지먼트나 레귤레이션은 도대체 누구보고 알아들으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저런 태도는 영어를 이용해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앞에 놓고 그냥 지 혼자 떠드는 게 아닌가 싶네요. 

진짜 어그레시브하게 욕을 해주고 싶네요.

kbs

근데 한편 생각해보니…저렇게 하면 뭔가 멋지다고 생각한 걸까요? 자신이 영어를 쓰면 나를 멋지다, 훌륭하다고 칭찬해 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 걸까요? 

아니면 영어에 대한 열등감 같은 게 있어서. 영어를 쓰면서 자신을 돋보이려고 한 걸까요?

대한민국 사람이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게 무슨 창피한 일은 아니잖아요. 영어를 잘 한다는 게 자랑거리일 이유도 없구요. 

당구를 못친다는 게 창피한 일이 아니고, 당구를 친다는 게 자랑거리일 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 싶어요. 

노컷뉴스

정말 많은 한국 사람들이 영어 공부를 해요. 시험 치는 거 말고는 대체로 평생 가도 그렇게 공부한 영어를 쓸 일이 별로 없구요. 

필요한 사람은 필요한 대로 공부하면 되고, 그냥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게 좋은 사람도 그렇게 배우면 되는 거지요.

잘한다고 으쓱할 필요도 없고, 못한다고 쭈그러들 이유가 전혀 없는 일이지요.

게다가 영어만 잘 하면 뭐해요? 그 안에 담을 내용이 있어야지요. 담을 내용도 없이 영어를 통해 자신을 돋보이려 하다보니 윤석열식의 영어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자주 듣는 영어 교육 프로그램이 <굿모닝 팝스>에요. 이근철, 조승연 등등의 진행자를 지나 지금은 조정현 샘이 진행을 해요.

조승연도 그렇고 조정현도 그렇고 늘 비슷하게 한 얘기가 억지로 막 외우고 그러지 말고 영어를 즐기라는 거에요.

달달 외우는 건 힘들잖아요. 기억이 그리 오래 가지도 못하고. 게다가 달달 외우기만 하면 정작 영어로 말을 해야 할 순간에 할 말이 없어지지요. 

아니면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는데 사전에나 나올 법한 말이 절로 튀어나오기도 하구요. 

‘거버먼트 인게이지먼트가 레귤레이션’처럼요. 

형식이나 내용, 소통의 측면에서 모두 적절치 않아 보이는 말이 되는 거지요. 

https://youtu.be/VGvHJwtY2rM?list=LL 

Irish MEP Clare Daly Names & Shames EU & America Over State-Sponsored Terrorism In Viral Speech

다시 한번 그 영어샘의 말이 떠오르네요.

영어만 잘하면 뭐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뭐 이런 것을 키우는 것도 정말 중요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