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예술과 함께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 <바흐 마태 수난곡>을 보고

순돌이 아빠^.^ 2023. 3. 6. 10:23

저는 예수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예루살렘에도 가보고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 탄생 교회도 가봤지만, 그건 그야 말로 여행(?) 차원의 일이었으니까요

처음 예수에 대해 접해본 것은 김동리의 소설 <사반의 십자가>였어요. 아주 오래된 일이지요.

그리고 예수의 삶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멜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였어요.

예수가 실존 인물이었는지 아닌지,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지 아닌지는 제게 중요하지 않아요. 

제게 중요한 건 영화 속 예수의 삶이 제게 큰 무게로 다가왔다는 거에요. 비디오로 영화를 볼 때라 비디오 가게에서 몇 번 테잎을 빌려서 봤지요. 

예수의 삶을 생각하며 이번 공연을 보러 간 것은 아니었어요. 이 작품이 마태 복음을 바탕으로 한 예수의 삶에 관한 것이라는 건 들었지만, 제게 중요했던 건 예수보다는 바흐의 음악이라는 점이었어요.

물론 공연이 끝나고 나니 예수의 삶이 제 가슴에 콱 박혔지만. ^^

그런 면에서 보면 바흐는 성공한 거에요. 감상용 음악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음악이기도 한 것이니까요.

바흐

공연이 시작되고 처음에 다~다다다 하는데 벌써 마음이 울컥하더라구요.

합창단의 노래를 들을 때는 ‘아, 천상의 소리가 있다면 이런 소리를 말하는 거겠구나’ 싶었어요.

고악기로 연주를 했다고 하던데, 첼로와 챔발로와 오르간이 함께 내는 소리가 정말 좋더라구요. 

판소리와 닮았다는 생각도 했어요. 소리꾼이 ‘아, 이때 춘향이가 변사또를 보고 소리를 치는디~~~’하는 것처럼 복음사가 가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고 이르되…’ 이런 식인 거지요 ^^

1부는 1부대로 좋았지만, 2부가 되니 점점 저조차 감정이 울컥하더라구요. 

https://youtu.be/-0POLmmexVg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마태수난곡 중 39번 알토 아리아 나의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너무 너무 좋은 곡이었고, 연주였어요.

눈물이 많이 나더라구요.

음악이 좋아서 감동 받은 것도 있지만…뭐랄까…제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곡이었어요.

음악이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뭐냐구요? ^^

베토벤, visiting vienna

음…베토벤 교향곡 9번과도 비슷해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듣고 있으면 귀로 듣기에 좋은 것도 있지만, 가슴을 울리면서 정신이 번쩍들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어요. 제 인생에 대해 다시 느끼게 하는 거지요.

마태 수난곡도 제게는 그런 음악이에요.

예전 피아노샘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피아노 전공하는 사람에게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 구약성서라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신약성서에요.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음악에 대해서도 그리 잘 알지 못해서 샘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그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정도로 받아들여요.

구약이 뭔지 신약이 뭔지 모르는데, 아무튼 제게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과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있어요.

베토벤 교향곡 9번이 힘겨운 순간들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느낌이라면,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자만심을 거두고 제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음악으로부터 감동을 받는 것을 넘어 삶의 방향이 되고 가치관이 되는 거에요. 

a catholic moment

<마태 수난곡> 가운데 누군가 묻지요. 예수가 무슨 죄를 지었냐구요. 

따지고 보면 예수는 잘못한 게 없어요. 고통 받는 이들과 병든 이들을 도우려고 했을 뿐이에요. 

죄라면 권력과 돈에 환장한 이들을 비난했던 것뿐이겠지요.

오직 선만을 실천하려다 두들겨 맞고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박혀 죽은 거에요. 

‘죽여라 죽여라’하는 군중들의 외침 속에서.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플라톤의 말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도 그렇게 죽었지요. 소크라테스가 큰 죄를 지은 게 아니에요. 

얇은 옷 하나 걸치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더 깊이 생각하게 하고, 어떤 것이 참된 삶인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한 것이 전부에요.

하지만 결국 지배자들은 젊은이들을 선동한다는 명목으로 독약을 마시게 했지요.

‘죽여라 죽여라’하는 군중의 외침 속에서.

인 허 핸즈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선을 실천하고 참된 삶의 길을 찾다 지배자들의 미움을 사서 고난을 겪고 죽음의 길로 들어서고 있을까 싶어요.

‘죽여라 죽여라’하는 군중의 외침 속에서.

침묵과 십자가

모든 연주가 끝난 바로 그 순간, 지휘자도 연주자들도 모두 동작을 멈췄어요. 청중들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그대로 있었지요.

그 짧은 침묵의 순간이 정말 크게 다가오더라구요. 

연주가 끝났다고 누구 하나 박수를 치는 것도 아닌 바로 그 침묵의 순간.

그렇게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지휘자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박수 소리가 울렸어요. 

침묵의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연주의 잔향 속에 조금 더 남아 있을 수 있어 좋았겠지만…^^

시사in

지휘자가 마이크를 잡고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지진으로,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헌신과 사랑을 생각하며 앵콜곡을 연주하겠습니다.

연주가 끝나면 사순절의 전통에 따라 박수는 치지 마시고 조용히 묵상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앵콜 연주가 끝나고 모두 박수 없이 조용히 자리를 떴습니다.

 

저는 연주의 감동이 남아 좀 더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조금 있다 일하시는 분이 오셔서 조용히 말씀 하시더라구요

저…죄송한데…오늘 공연이 모두 끝나서 로비로 이동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왔습니다.

다음날이 되어 순돌이와 산책을 하는데 동네에 있는 교회 앞에 큰 현수막이 걸려 있더라구요. 평소 같았으면 별 관심 없이 지나쳤을 건데, ‘사순절’이라는 글자가 눈에 확 들어오더라구요.

 사순절이 뭔지 저는 몰라요. 다만 어제 공연장에서 사회자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괜히 숙연해지더라구요.

 순돌이를 데리고 약국에서 약을 사서 나오는데 바로 앞에 성당이 있어요. 성당 위에 있는 십자가를 보니 괜히 제 마음이 정말 뭉클하더라구요.

 제가 기독교인도 아니고 예수나 십자가에 대해 평소에 생각했던 것도 없는데, 바흐의 곡을 듣고 나니 그렇게 되더라구요.

 

저 자신을 보며 이게 예술의 힘인가 싶었습니다. 

 그 하나의 곡이 저로 하여금 십자가를 보고 울컥하게 하고

그 하나의 곡이 저로 하여금 삶에 대한 경건함과 숙연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의 헌신과 사랑이 무언지 저에게 물으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모르니까요.

 다만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통해 

제가 가진 것이 있으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좀 더 내어 놓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고통 받는 이들을 좀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 싶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