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예술과 함께

부천시립합창단, 멘델스존, <사도 바울>을 듣고

순돌이 아빠^.^ 2023. 5. 28. 19:40

1.새 집, 새 소리

제가 부천아트센터에서 연주를 들은 날이 2023년5월25일, 그리고 부천아트센터가 개관한 날이 5월19일. 그야말로 새깔깔이 집 구경을 간 셈이죠.

부천아트센터

공연장이 참 아늑한 느낌이어서 좋았어요. 뭐랄까…무대의 나무 색깔이나 은은한 조명과도 닮은 편안한 느낌이었어요. 왠지 좌석도 조금 더 넓은 것도 같고 ^^

지휘자를 잘 보려고 합창석에 앉았어요. 근데 이게 정말 좋은 선택이었어요.

지휘자를 잘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연주자 한 명 한 명의 모습도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더라구요. 어떤 악기 소리나 나며 그게 누가 연주하고 있고, 어떤 악기인지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더라구요. 

제 시각과 청각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왼편으로부터 지휘자와 현악기들, 가운데로 관악기와 합창단, 그리고 맨 오른편에 오르간이 놓인 상태가 되는 거지요. 

오르간 연주자의 발 움직임까지 다 볼 수 있었어요. 오르간이 연주를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순간 순간 그 소리가 정말…멋지더라구요. 오르간 소리만으로 뭔가 천상의 소리 같고 신성한 느낌이 드는 것 같은. ^^

부천아트센터를 세로 지으면서 오르간을 설치했다고 자랑할만 했어요 ^^

2. 충실함과 무던함


이번 멘델스존, <사도 바울> 연주의 지휘자는 김선아에요. 이번 공연을 찾아간 이유이기도 하구요. 지난번 콜레기움 보칼레의 <마테 수난곡>이 참 좋았거든요.

한번 들어보니 좋아서 또 찾게 되는 연주자들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 같아요. 뭐랄까…순돌이하고 산책하다 한번씩 들러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는 찻집이 있는 느낌? ^^

이번 연주를 들으면서 많이 든 생각 하나는 연주의 ‘충실함’이에요.

어떤 연주는 음표나 악보에 충실하다 싶을 때가 있어요. 정해져 있는 길을 아주 잘 가는 느낌? 그러면서도 듣고 나면 약간 뭔가 아쉬울 때가 있어요.

그러면에서 이번 연주는 곡이나 음악에 충실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음音과 악樂이 함께 있는 것이고, 음을 통해서 악樂을 표현하고 듣고 즐기는 거니까요.

음악[音樂]
박자, 가락, 음성, 화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시키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하여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풍류 악, 즐거울 락, 좋아할 요
예술 [藝術]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복잡한 음표를 연주하는 것이나 셈여림을 살리고 스타카토의 표현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모든 것은 악樂과 아름다움에 이르기 위한 것은 아닐까 싶어요.

물론 각각의 음을 살려야 전체적인 악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야 당연한 거구요. ^^

아무튼 그런 면에서 이번 연주는 음과 악 모두 곡에 맞게 충실하게 표현된 것 같아 좋았어요. 

좋은 연주를 들어서 그런지 제 마음에 계속 떠오른 말이 ‘무던함’이었어요. 무던하다는 게 아무 색깔없이 물렁하다거나 이래도 저래도 그만인 밋밋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구요.

따뜻할 때 따뜻하고, 부드러울 때 부드럽고, 밝을 때 밝을 수 있는 무던함이에요.

저는 살면서 제 멋대로 일 때도 울분에 찰 때도 많았고, 성질을 부릴 때도 많았고 손가락질 할 때도 많았어요.

물론 그런 것이 필요할 때가 있지요. 당연히요.

그런데 문제는 그러지 않는 게 좋을 때나 그러지 말아야 할 때조차 그랬다는 거에요.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고, 문제가 있어도 때론 부드럽게 풀어하고, 같은 말이라도 밝게 할 수 있었으면 싶어요.
https://youtu.be/_z4KwnjM0x0

Mendelssohn: Paulus, Op. 36, MWV A14 / Part 1 - No. 1 Ouvertüre

이 곡을 듣고 있으면 그런 ‘무던함’이 생각나요. 아마 제가 이런 주제로 곡을 썼으면 보다 격정적이고 강하게 표현했을 것 같아요.

‘죽이시오 죽이시오’ 할 때 정말 죽일 듯이 했을 거고, ‘나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저 예루살렘에서 묶일 것과 죽음까지도 다 준비되었소’할 때는 그야말로 비장함이 넘쳤을 거에요.

하지만 때론 세상을, 나 밖의 존재들과 나조차까지도 멘델스존처럼 무던하게 바라보고 싶어요.

격정의 순간까지도 조금은 차근히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 싶어요. 폭발하는 심정은 지난 세월동안 수도 많이 많이 느껴왔으니. 

그렇게 해서 노래의 날개 위에 가벼이 떠도는 바람처럼 살았으면…^^

https://youtu.be/AHIwoFt12E4

멘델스존, 노래의 날개 위에, 크리스티앙 페라스

3.죽이려 자와 빛내려는 자

38.
이 자가 바로 율법과 성전을 반대하라고 가르친 그 자이다. 돌로 쳐서 죽이시오.

<사도 바울>에 나오는 노래의 일부입니다. 그냥 죽이는 것도 아니고 돌로 쳐서 죽이랍니다. 연쇄살인범을 죽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무언가 어떤 생각을 표현했다고 죽이라는 겁니다. 

37.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선동하여 사도들을 향하여 악의를 품게 하니 그들을 향한 분노의 외침이 가득했다.

선동하여 악의를 품게 하니 분노의 외침이 가득했겠지요.

이들이 왜 이렇게까지 선동을 하고 분노하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기독교인도 아니고 성경을 읽어본 적도 없으니까요.

그냥 제가 보고 들은 세상 일이 비춰보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학생일 때는 경찰이 서점 안에 있는 책들을 빼앗아가고, 읽지 못하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명 불온서적이지요.

알라딘

이명박정권 때는 군대에서 불온서적을 지정하여 읽지 못하도록 하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법무관들을 짜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자유 대한민국인데,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자유가 없던 거지요.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311051&ref=A

 

‘불온서적’ 헌법소원 내 강제전역된 군법무관…10년 만에 복직 판결

2008년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가 부당하게 강제 전역을 당하고 10년 동안 소송...

news.kbs.co.kr

이렇게 불온이니 불순이니 반체제니 빨갱이니 하면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분노케 하며 죽이려드는 일이 여전히 계속 되고 있습니다.

jtbc

과연 윤석열이 건설현장에 한번이라도 가봤을까요? 뭐라도 직접 보고 들은 게 있을까요? 

아니면 아무것 아는 것도 없이 그냥 시민들의 가슴에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계기로 검찰과 경찰을 동원하여 죄없는 사람들을 잡아가두고 죽이려고 그러는 걸까요?

노동과 세계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듯이 온갖 나쁘고 더러운 이미지를 덮어 씌워서 직접 죽이든 아니면 사회적으로 매장 시키려고 그러는 건 아닐까요?

이유는 간단해요. 내가 시키는대로 그대로 따르면 가만 두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두들겨 조지는 거에요. 종교의 권력자나 정치의 권력자나 하는 짓은 비슷하지요.

https://youtu.be/2jAR6ujzO94

고 양회동 열사 조문 다녀온 송년홍 신부 “정녕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사람 누구인가”, 오마이TV

29.b
오, 주는 참된 빛이니 당신을 모르는 자들에게 비추사 그들을 당신의 집으로 이끄시고 그 영혼을 축복하소서.
길 잃은 자를 인도하여 그 앞길을 늘 비추소서.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고 그 마음에 확신을 주소서.

어두운 탐욕으로 거친 권력을 휘두르며 다른이를 죽이고 짓밟는 이들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밝히고 세상을 어둠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노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화려한 교회에 있지 않고, 번쩍번쩍 금칠을 한 대통령실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조르주 루오, <교외의 그리스도>

조르주 루오의 <교외의 그리스도>라는 작품입니다. 어두컴컴한 골목 한켠에 아이들과 함께 서 있는 예수의 모습입니다. 

그에게는 화려한 찬사도 빛나는 영광도 없습니다. 누군가 부와 권력을 쫓아 헤매는 동안 그/그녀는 여리고 약한 생명의 곁에 함께 있을 뿐입니다.

<교외의 그리스도>를 통해 저는 인간이 가진 따뜻하고 선한 마음을 느낍니다.

그/그녀를 빛나게 하는 건 재물도 명예도 아닙니다. 어쩌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배고파하고 있을지도 모를 아이들 곁을 지키는 그 마음과 행동이 그/그녀를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길을 잃었거나 먹을 것을 구하지 못했거나, 누군가 자기 곁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 길이든 먹을 것이든 찾아나설 용기가 생길 수도 있구요.

4. 지배의 대상에서 사랑의 주체로

36. 
선지자의 말처럼 그대들의 신들은 다 생명이 없는 헛된 것이라. 사람들이 모두 벌 받을 때에 그들도 쓰러지리라.
사람이 만든 성전에 주는 살지 않으신다. 그대의 몸은 주의 성전이니 그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리라. 그러므로 주님의 성전을 멸하는 자를 주께서 파멸하시리라. 주의 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다. 

사람이 만든 성전에는 없다네요. 그리고 우리의 몸이 곧 성전이라네요. 그만큼 우리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이겠지요. 

케테 콜비츠, <어머니들>

인간은 귀하고 다른 존재는 하찮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돈이 없고 지위가 낮다고 해서 하찮은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존재하기에 그 자체로 귀한 존재라는 거겠지요.

힘 없다고 돈 없다고 사람을 업신여기고 욕하고 침을 뱉고 때리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파멸할 거라는 거겠지요. 

https://youtu.be/42y0E7SsB_A

Mendelssohn: Paulus, Op. 36, MWV A14 / Part 2 - No. 43 Chor: "Sehet, welche Liebe"

27.
주의 자비하심 노래하리. 그의 진실하심 전하리.

43.
보라, 주가 보여주신 사랑은 넓고 깊도다.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주의 자녀 되었도다. 

타인에게 자비롭고 자신에 진실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말처럼 들리지만, 정말 그리 실천하며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그 귀한 존재들을 귀하게 여기며 사랑으로 대하며 산다는 것도..

자비와 진실과 사랑.

남들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겠지요. 남이 대신해 줄 수 있다해도 그리하면 어차피 의미 없는 일일테구요.

오직 내가 나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비롭고 진실하며 사랑을 실천할 때 참된 의미가 생기는 것일테구요.

5. 종교적 음악, 음악적 종교

이 곡은 성경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바흐의 <마테 수난곡>과도 닮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두 곡은 제게 꽤나 큰 차이를 두고 다가옵니다.

뭐랄까…멘델스존의 곡이 바흐의 곡보다 좀 덜 종교적이고, 좀 더 세속적이랄까…

https://youtu.be/tRfvjJqy_3M

Mendelssohn: Paulus, Op. 36, MWV A14 / Part 2 - No. 44 Rezitativ: "Und wenn er gleich geopfert wird"

바흐의 곡이 종교적 의미를 음악을 통해 전달하려는 것처럼 들린다면 멘델스존의 곡은 음악, 그러니까 우리 같은 세속적인 인간이 음악이라는 큰 틀 안에서 종교적 의미를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 같아요.

인간/시민이 종교를 가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지 종교가 인간을 규정하고 지배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세속적인 음악을 통해 종교적 의미를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자유로워지고 주체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구요.

당연히도 멘델스존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아닌지는 몰라요. 다만 제가 멘델스존의 음악을 듣고 떠오른 생각일 뿐이에요. 노랫말을 떠나 곡만 들으면 그렇다는 거에요. ^^

베토벤이 교향곡 9번에서 신이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시민들이 서로 형제자매가 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자고 했던 것처럼 말이에요.

세속의 권력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릴 필요 없이, 예수의 삶의 길을 따라가자고 했듯이
종교적 권위 앞에 복종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자비로움과 사랑의 힘으로 나아가자는 것처럼 들리는 거지요.

조르주 루오, <그리스도와 두 제자>

자비로움과 사랑의 주체가 되어 행동하고 실천하는 과정에는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 수 밖에 없겠지요. 내가 나에게 큰 걸림돌이 되어 쓰러질 때도 있고, 또 아니면 탐욕과 거짓된 세력에 맞설 일도 생길 거니까요.

하지만 되짚고 살피면서 보다 나은 길이 어떤 길인지를 찾는다면 하지 못할 것 같은 일을 해낼지도 모르구요.

그 과정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감사한 일일테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