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예술과 함께

아름다움과 살고 싶다는 욕망

순돌이 아빠^.^ 2023. 5. 24. 07:50

베토벤의 곡을 건반으로 누르고 있으면 많은 것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여러가지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소리들이 내 삶의 어두웠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것이 떠오름으로써 위로하게 합니다.

또한 이 소리들이 내게 이야기 하는 것도 같습니다. 작곡가가 느꼈던 떨림과 울분을. 


그래서 자꾸 건반을 누르게 됩니다. 내일 레슨이 있어서 연습 때문에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는데, 건반을 누르다보면 그 소리를 자꾸 듣고 싶어집니다.

어떤 때는 더 자세히 잘 듣고 싶어서 얼굴을 건반 가까이 바싹 갖다 대기도 합니다. 찻집에서 마주 앉은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 고개를 돌려 귀를 그 사람 쪽으로 갖다대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실 고개를 들고 있다가 숙인다고 해서 그 정도의 거리 차이로 소리가 더 잘 들리고 안 들리고가 없을 텐데도 말입니다.

마치 내가 고개를 더 숙이고, 귀를 건반 더 가까이 대면 작곡가의 마음에 더 다가갈 수 있을듯이 그러는 겁니다.

pixabay

그렇게 건반을 눌러 소리를 만들고 듣다보면 마음이 울컥하고 눈물이 맺힙니다. 내가 괜히 그러나 싶다가도 똑같은 음을 다시 누르면 또다시 눈물이 맺힙니다.

소리가 내게 말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왔다고.

소리가 내게 전합니다.

내 가슴이 지금 이렇게 일렁이고 있다고.

베토벤이야 이미 죽었으니 작곡가와 직접 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작곡가가 남긴 이 곡의 소리를 통해 작곡가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떠올려봅니다. 

화가의 그림을 통해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을지를 느껴보는 것과 비슷하겠지요.

나는 그녀 앞에서, 아름다움과 행복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할 때마다 마음속에 되살아나는 살고 싶다는 욕망을 다시 느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동서문화사, 2014

인간이란 존재가 아주 작은 생명으로부터 진화해왔고, 신체 기관이 그렇듯이 정신의 기능도 생존이나 보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해 온 것이 맞다면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생존이나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을 느꼈을 때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구요.

인간이 아름다운 것을 찾는 이유도 그런 까닭일지 모릅니다. 그것이 꽃이든 노을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말이니다.


아름다운 것들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나라는 생명체가 이 세상을 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평가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안심이 되고 기분이 좋아질테구요. 

그러니 두려움이나 불안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줄어들고 계속 살고 싶다는 또는 계속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들게 할테구요.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킬테고
살고 싶다는 욕망은 우리에게 더욱 아름다움을 찾게 만들테지요.

제가 베토벤의 이야기를 더욱 자세히 듣고 싶어 얼굴을 건반에 바짝 갖다대는 것이나
피아노 연습을 한다는 것이 피곤한 일이기도 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기도 해서 당장 때려치고 싶다가도 
다음날이면 잠깐이라도 연습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드는 것도 비슷한 까닭이진 않을까 싶어요.

내가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아름다운 것들이 내게 더욱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니 
내 안의 나가 자꾸 아름다운 것들을 쫓으라고 부추기도 있는지도 모르지요.
내 안의 나, 지가 더 살고 싶으니까 나의 등을 떠밀고 있는지도 모르구요. ^^

고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아쉬운 소리 해가며 빚을 내어 그림을 그리는 것도 
남의 집을 떠돌며 피아노를 빌려 연습을 하는 것도 

아니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니가 지금 그렇게 유난을 떨어본들 세상 사람 누가 니 작품에 박수를 치기나 하겠냐는 비아냥을 뒤로 하며 오선지 위에 음표를 그리는 것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작품이 주는 감동을 느끼기 위해 미술관을 찾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극장 의자에 앉아 콧물을 훌쩍이며 영화를 보는 것도

우리에게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찾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더욱 살고 싶어지게 하기 때문일테구요.

시네마천국

배부르게 밥을 먹고 나서 달달한 과자를 한입 먹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별 큰 일 없는 것과는 달리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곧 살고 싶어지는 순간일지 모릅니다.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살고 싶어지는 마음이 줄어드는 순간일 수도 있고
아름답지 못한 것을 느끼는 순간에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구요.

그만큼 그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이 삶의 의지와 직결되어 있고, 또 그만큼 사는 데 아주 꼭 필요하고 너무나 중요한 것이 되는 겁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그러니 아름다운 것을 찾고 또 찾는 거겠지요. 어제도 밥을 먹었지만 오늘도 또 밥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없으면 우울해지고 답답해지고 외로워지기 때문에 찾고 또 찾는 것일테구요.

그냥 ‘찾는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매달리는 경우도 있을테구요.

남들이 보면 ‘아니 그래 그게 좋다는 건 알겠지만….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싶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것 때문에 살고 싶고, 그것이 없으면 살고 싶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는 거구요.

https://youtu.be/G-CKSDwM6qI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7번 2악장,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밥이 육체에게 에너지를 공급함으로써 생명체가 삶을 이어가도록 도와준다면
아름다운 것은 우리 정신에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불러 일으킴으로써 생명체가 삶을 이어가도록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아름다운 것을 더욱 찾고 싶어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지고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아름다운 것을 더욱 찾는 것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