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책

아디,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읽고

순돌이 아빠^.^ 2023. 12. 13. 22:26

이 책은 아디에서 만든 인권 보고서입니다. (내려받기)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는 겁니다. 팔레스타인 사람, 그 가운데서도 여성의 목소리가, 누군가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들의 말과 글로 전해집니다. 

괜찮아?

<웰컴투 삼달리>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제주도가 고향인 삼달은 서울로 가서 유명한 사진작가가 됩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갑질 논란이 벌어지고, 온 언론에서 욕을 먹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급하게 하던 일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오지요. 개천에서 난 용이 되는 게 꿈이었지만, 용은커녕 오랫동안 고생고생해서 쌓아올린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웰컴투 삼달리

삼달은 많이 아프고 상처입었지만, 누구에게 시원하게 말을 하지도 못합니다. 기자들에게 말을 해봐야 이상한 방향으로 기사가 나고, 부모한테는 미안하고 쪽팔리고, 동네 사람들은 수군대니 그저 끙끙 속으로 앓고만 있습니다. 3화에 보면 그런 삼달에게 친구 용필이 묻습니다.

야, 조삼달….너 괜찮아?

그러자 삼달의 목은 메고 눈물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하루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십니다. 취한 삼달이 울면서 친구들에게 큰소리로 말합니다.

해명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은 다 물어보는데 내가 해명하고 싶은 사람들은 아무도 안 들어주잖아. 아무도 안 물어보잖아. 

아픈 사람은 말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어떻게 아프고, 내가 왜 아프게 되었는지. 

당신이 저에게 이 인터뷰를 요청 했을 때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처음으로 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132쪽

아마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겁니다. 슬프고 외롭고 답답하고 불안해도 말하지 못하는 거지요. 상대가 묻지 않는데 냅다 말을 하기도 그렇고, 억지로 말을 한다고 해도 상대가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면 죄다 소용없는 일이지요. 

아픈 사람은 말하고 싶어하는데 묻는 사람도 들으려 하는 사람도 없는 겁니다. 그렇기에 더 외롭고 고립된 느낌이 들겠지요. 반대로 누군가 나에게 ‘괜찮아?’라고 묻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고 혼자 고통 받는다는 느낌이 줄어들 수도 있구요.

사람의 말을 듣되 단순히 그가 말하는 단어만이 아닌 그 순간 그에게 중요한 의미를 진실로 들어 줄 때, 내가 그만의 개인적이고 은밀한 의미들을 듣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무엇보다 먼저 그 사람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세계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고 싶어지게 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깊이 들어 주고 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거의 항상 눈물을 흘립니다. 나는 그들이 사실은 기뻐서 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아, 이제 살았다! 누군가 나를 들어주네. 누군가 나를 제대로 알아 주네”라고 말하는 것 같지요. - 칼 로저스, <칼 로저스의 사람-중심 상담>, 학지사, 30쪽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

팔레스타인 하면 이스라엘이 떠오르고, 이스라엘 하면 팔레스타인 점령과 전쟁이 떠오릅니다. 팔레스타인 여성 하면 히잡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 여성들이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지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2년 후 저는 둘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저를 폭행하고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제 머리를 잡고 제가 기절할 때까지 벽에 쳤던 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들을 위해 남편이 가하는 학대를 견뎠습니다. -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101쪽

제 인생은 지옥 같습니다. 매일 새벽 3시반에 일어나 오후 3시까지 일을 하고 4시에 집에 돌아옵니다. 제가 번 돈을 남편은 정부와 함께 썼습니다. 남편에게 여러 번 이혼을 요구했지만 매번 폭행을 이어졌고, 결국 자살 시도 끝에 이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 같은 책, 110쪽

여기 히잡과 침묵이라는 이미지 속에 가려져 있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한국 어느 여성의 목소리와도 비슷힙니다. 결혼, 남편, 폭행 그리고 아이들.

팔레스타인인이기에 이스라엘의 지배로부터 받는 고통이 있습니다. 여기에 남성의 학대로부터 받는 고통까지 더해지는 거지요.

pixabay

불안감과 끊임없는 박해 외에도 한 번은 공장에서 일하는동안 고용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고, 그때 저는 이 일을 견디지 못하고 그 공장을 떠나 다른 직장을 찾았습니다. - 같은 책, 166쪽

이 또한 한국의 어느 여성노동자가 오늘도 겪고 있는 일이겠지요.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일을 하는데 누군가의 괴롭힘이 계속되는 겁니다. .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야만 점령군이 주둔하기 전 1948년 영토 주변 울타리 구멍을 통해 국경을 넘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험준한 산을 넘어 출근하기도 하고, 늦은 밤 집에 가는 길에 마주치는 점령군 때문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점령군은 울타리 구멍과 우회로를 통해 1948년 영토를 오고 가는 사람에게 최루탄을 던지거나 실탄을 발사하기도 했습니다. - 같은 책, 185쪽

새벽 3시에 나가서 밤 늦게 돌아온다고? 이런 얘기를 처음 듣는 분은 깜짝 놀라실 겁니다. 저도 예전에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이런 얘기를 듣고 도무지 믿기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그러냐고 되묻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 겁니다. 이스라엘이 운영하는 검문소를 통과하든 아니면 몰래 구멍을 통과하든 어떻든 출퇴근 길에 많은 시간이 걸리니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돈을 벌 수 있으면 다행이니까요. 

그다음 얘기 또한 깜짝 놀랄 일입니다. 출퇴근을 하는 사람에게 최루탄과 총을 쏘다니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그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현실인 것이 팔레스타인입니다. 

삶의 즐거움도

저는 1988년 1월29일 체포되었고, 당시 저는 14살의 어린 소녀였습니다…심문 중에 제가 계속 그들이 씌우는 혐의를 부인하자, 화가 난 한 이스라엘 병사가 제 귀를 힘껏 때렸고 그렇게 청력의 일부를 잃었습니다. - 같은 책, 220~221쪽

체포 당시 저는 42살이었어요. 2018년 2월6일, 젊은 팔레스타인 남자가 이스라엘 점령군에 의해 순교했어요. 저는 정말 화가 낳고, 페이스북에 글을 썼어요. “오늘은 좋은 아침이 아니야. 망할 이스라엘”

페이스북에서 저의 의견을 공유하고,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이 체포로 이어졌죠.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알몸 수색이었어요. - 같은 책, 226~228쪽

이것이 ‘자칭’ 중동 지역 유일의 민주국가 이스라엘이 하는 행동입니다. 아무 잘못 없어도 귀싸대기를 날리고, 페이스북에 하고 싶은 말을 썼다고 감옥에 보내는 게 이스라엘이지요. 아마 많은 분들은 아무리 그래도 이스라엘이…하며 갸우뚱 하실 겁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하면 떠오르던 이미지와 많이 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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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년12월13일입니다. 지난 10월7일부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해서 벌써 1만8천명 넘게 죽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뉴스거리일뿐인 이 전쟁과 폭격 속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가자 지구가 계속해서 공습을 받고 무너지는 모습은 제 아버지께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고, 이로 인해서 아버지는 깊은 우울증과 불안감에 빠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쟁은 저에게 두려움, 불안, 그리고 계속되는 우울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 같은 책, 267~268쪽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직접 죽고 다치는 것은 물론이고, 살아남은 사람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주겠지요. 당장에 살아남아야 하고, 오늘도 아이들을 먹여야 하기에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채 알기도 전에 생존의 한계에 내몰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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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우울증의 결정적인 특징은 즐거움을 잃는다는 것이다. 주요 우울증을 내 나름대로 정의 하자면 ‘유전적 또는 신경 화학적 장애의 하나로, 어떤 환경에 기인하는 강한 자극이 원인 되어 발생하며, 특징적 증상은 석양 노을조차 즐길 줄 모르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로버트 새폴스키, <스트레스:당신을 병들게 하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 사이언스북스, 405쪽

즐거움을 잃는다…참 무서운 말입니다. 전쟁과 폭격 속에 어떻게든 살아 남았다고 하더라도…계속해서 우울하고 불안하고 두렵다면 살아도 어찌 제대로 산다고 하겠습니까. 전쟁과 폭력이 사람의 목숨도 빼앗고, 삶의 즐거움도 빼앗는다고 할 밖에요.

잘 듣기 위하여

제가 국립 학교 교사로 나블루스에서 일할 수 있다면 불법정착촌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싶습니다. 교사 급여는 현재 공장에서의 급여보다 낮겠지만 제가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곳에서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아이들이 등교하기도 전에 집을 나서지 않을 수 있다면, 아이들과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급여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도 좋은 미래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 <선을 넘는 여성들>, 106~107쪽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을 겁니다. 분명 거기도 사람이 살기는 할 건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는 거지요. 분명 사람은 사람인데 생각이나 감정을 가진 존재로 다가오지 않았던 겁니다.

그들이 숨을 쉬고 말을 하고 책을 읽고 친구들과 웃고 예쁜 옷을 사고 큰 소리로 싸움을 하는지 등등에 대해서는 들은바도 아는바도 없었던 거지요.

제 유일한 소원은 석사 학위를 가자 지구 밖에서 받는 거예요. 제 꿈은 경영학 석사 학위를 얻는 것이고,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여성이 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저희의 재정 상황으로 인해 저는 어느 곳에서도 공부할 수 없습니다. 저는 현재 장학금을 찾고 있고 내년에 합격했으면 좋겠네요. 저는 가자 지구 밖에 살며 방해물이나 경계선 없이 세계를 여행하고 싶거든요. - 같은 책, 270쪽

이 짧은 글을 통해 가난한 한 여성이 계속 공부를 하고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여성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성은 ‘가자’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밖’ ‘방해물’ ‘경계선’이란 말도 하구요. 

가자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장벽과 이스라엘 군인. Al Jazeera

‘가자’는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Gaza Strip)’라는 지역을 말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한창 폭탄을 쏟아붓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구요. 지금처럼 이스라엘의 폭격이 거셀 때가 아니어도, 이 여성은 ‘가자의 밖’을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자지구 외곽을 이스라엘이 완전히 봉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30만명 가량의 가자지구 팔레스타인들은 이스라엘의 특별한 허가를 얻지 못하면 가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가자의 상황을 알게 된다면 이 여성의 이야기가 달리 들릴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가난한 여성이 더 공부를 해서 잘되면 좋겠다 싶었을 수도 있지만, 가자지구의 상황을 알고 나면 그 여성의 이야기가 더 무겁고 힘겹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앞에 얘기했던 삼달의 경우는 귀 기울여 듣고자 하면 삼달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그나마 쉽게 알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자 여성의 이야기는 그냥 듣는다고 해서 다 이해할 수 없는 거지요. 말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목소리를 듣고 얼굴 표정을 바라본다고 해도 알 수 없는 겁니다. 왜 자꾸 ‘밖’을 이야기 하는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라도 때로는 공부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공부라고 해서 대단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왜 그런 일을 겪고 있는지, 그의 꿈이 왜 그런 모습인지 그 배경을 알아보자는 거지요.

거기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고통 받고 학대 받는 팔레스타인인을 생각하면 화도 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내가 무어라도 할 수 없을까 싶은 마음도 들구요. 어디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내가 경험한 것 중에는 공감적인 존재방식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다른 상황들이 있다. 사람이 상처를 받고, 혼란스러우며, 고뇌하고 ,불안해하고, 소외되어 있고, 두려워하고, 자기 가치를 의심하거나 정체감이 불확실 할 때는 이해가 요구된다. 공감적인 사람…이 부드럽고 민감하게 동행해 준다면 희망과 깨달음이 제공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깊은 이해라는 것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칼 로저스, 같은 책, 174쪽

요즘 유튜브 영상을 많이 봅니다. 거기에는 미국과 영국, 요르단과 이라크, 인도네시아와 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연일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저도 그 시위에 참여했구요. 물론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스라엘의 공격을 멈추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공격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그리고 만약 우리들의 이런 모습을 팔레스타인인들이 볼 수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거, 세상 아무도 모르게 우리만 이렇게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거, 이스라엘 같이 나쁜 놈들도 있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그 아프고 힘들고 두려운 마음이야 누가 죄다 알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그 누구의 말로도 쉽게 치유될 수 없는 큰 상처겠지요. 

우리가 지금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신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함께 있고 우리가 당신의 아픔을 함께 느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겁니다. 

온전히라고는 하지 못해도
당신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당신들의 삶의 의지에 동행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