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출판되어 있는 팔레스타인 관련 책이 많지 않고, 지난 100여년의 팔레스타인 역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도 많지 않습니다. 또 그 가운데 사건이나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시각이 제 마음과 비슷한 책도 많지 않습니다.
이번에 읽은 라시드 할리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이 그래서 여러가지 측면에서 반갑고 고맙습니다.
어떤 사실이나 사건을 보고 듣고 느끼느냐에 따라 세상을 달라보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만해도 학교에서 교사들이 ‘한국은 이스라엘을 따라배워야 된다’ ‘저 작은 나라가 사막에서 저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유대인들이 그만큼 똑똑하고 부지런하기 때문이다’ 등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왠지 이스라엘과 유대인은 좋은 것, 긍정적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당시 영화를 볼 기회가 많지는 않았는데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에서 자주 봤던 것이 일명 ‘서부영화’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메리카 대륙에서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때려잡으면서 점점 땅을 넓혀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데…그때는 제가 마치 백인이된양 그 내용에 공감하고 빠져들었습니다.
한 세기가 넘도록 식민주의자들은 다른 지역의 원주민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바로 이런 언어로 묘사했다. 테오도르 헤르츨을 비롯한 시온주의 지도자들이 구사하는 경멸적인 언어는 다른 유럽인 동료들의 언어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헤르츨은 유대 국가는 <아시아에서 유럽을 위한 방어역의 일부이자 야만에 맞서는 문명의 전초 기지를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아메리카 변경을 정복하는 가운데 결국 19세기에 대륙 전체에서 토착민을 뿌리 뽑거나 정복하고 끝난 과정에서 구사된 언어와 비슷하다. -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27쪽
지금 다시 생각해도 어이 없네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사람들을 죽여대던 것에는 분노하면서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그리 하는 것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니…
이래서 역사 속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느냐와 함께 그 사건을 어떤 시각이나 관점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 책에도 나와 있지만 ‘오슬로 협정’이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슬로 협정을 들어 평화를 위한 큰 양보와 타협인양 했지만…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나니 상황이 더욱 악화된 부분이 많습니다. 막연하게 느끼는 이미지나 느낌과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사이에서 큰 괴리가 있는 거지요.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봉쇄와 통제도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주변에 철조망을 치기 시작했고 외부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에게 특별 허가를 받으라 고 했습니다. 또 가자 지구와 서안지구 곳곳에 검문소 설치가 본격화 되었으며 검문소를 통해서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검문소는 사람뿐만 아니라 각종 물자의 이동을 차단・통제하고 수배자들을 체포하는 데 이용되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일어나면 이스라엘은 수백 개의 검문소를 닫아걸고 일터・병원・학교 등 생활에 필요한 장소로의 이동을 가로 막았습니다. - 안영민, ‘추천의 글 : 오슬로 협정 이후의 팔레스타인’, 에드워드 사이드, <펜과 칼>, 마티, 9쪽
제가 시오니스트이거나 근본주의자여서 모든 평화나 협상을 반대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무조건 치고 박고 싸우자는 것도 아니구요.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어떤 평화든 협상이든 그것이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나아지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현실의 삶은 개선되지 않는데 화려한 말잔치나 언론의 찬사가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제가 반대하는 것은 평화나 협상이 아니라 현실의 삶을 더욱 악화시키고 옥죄는 수단으로써의 정치적 거래입니다. 가뜩이나 고달픈 삶인데, 뭔가 대단한 것을 줄 것인양 잔치를 벌이더니 결국 지들만 배불리 먹고 사진 찍고 끝나버리면 안 되잖아요.
오슬로 협정 이후 사반세기 동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상황은 흔히 거의 동등한 세력, 이스라엘 국가와 팔레스타인 자치당국이라는 준국가의 충돌이라고 그릇되게 묘사되어 왔다. 이런 묘사는 변함없이 불평등한 식민지적 현실을 가린다. 자치당국은 이스라엘이 허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주권과 관할권, 권한이 없으며, 이스라엘은 심지어 관세와 기타 세금의 형태로 자치당국의 세입의 주요 부분을 통제한다. 예산의 대부분이 투입되는 자치당국의 주요 기능은 치안이지만, 이것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치 당국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폭력적인 저항이든 다른 어떤 저항이든)에 맞서 이스라엘 정착민과 점령군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295쪽
글쓴이는 10대 시절 3년동안 한국의 이태원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전쟁이나 식민 지배에 관한 책들도 읽었다고 하네요. 제가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만났던 여러 분들도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아시더라구요. 그러면서 지금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일본의 한국 지배와 비슷하다고 했구요. 그 말에 저도 동감합니다.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잔인하게 굴었듯이,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참 잔인해요. 어쩌면 인간이 저럴 수 있나 싶어요. 예를 들면, 이래요. 1987년 팔레스타인에서 인티파다(민중봉기)가 일어나요.
인티파다는 시위와 나란히 파업, 물매 운동, 세금 납부 거부에서부터 다른 창의적인 형태의 시민 불복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술을 활용했다. 항의는 때로 폭력 사태로 바뀌었는데, 대개 비무장 시위대나 돌멩이를 던지는 젊은이들에게 군인들이 실탄과 고무총탄을 발사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불이 붙었다. 하지만 봉기는 비무장, 비폭력적인 방식이 압도했다. - 같은 책, 252쪽
팔레스타인인들이 인티파다를 일으키자 이스라엘은 탱크와 총을 동원해 이를 진압하려고 했지요. 그리고 시위 도중 붙잡은 청소년들의 팔과 다리를 부러뜨렸어요. 본보기를 보여주고 다시 덤비지 말라는 거겠지요.
혹시 중국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천안문 시위가 있었을 때 탱크를 가로막던 중국인의 사진을 본 적이 있나요? 일본이든 이스라엘이든 중국이든 이들은 왜 이렇게 폭력을 사용해 사람을 죽이고 때리는 걸까요.
이스라엘의 잔인함은 2023년 하반기에 극에 달했어요. 가자지구를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지요. 2달넘게 폭격을 퍼붓고 있고 화학 무기를 사용하고, 이슬람 사원이고 병원이도 닥치는대로 때려부수고 있어요. 그야말로 가자지구를 초토화 시키겠다고 하고 있는 거지요. 지난 100여년에 걸친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한 살인과 추방, 고립과 학대가 마치 화산이 터지듯 폭발하고 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잔인한 폭력에 희생되고 있구요.
이럴 때는 가만히 책을 읽고 있는 것도 힘들어요. 마음이 답답하고 화가 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니까요. 그렇다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에요.
그래서 더욱 이럴 때일수록 팔레스타인에서 어떤 일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글을 읽고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에요. 다만, 팔레스타인과 관련한 책을 처음 접하시는 분은 약간 어려울 수도 있어요.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빠르게 지나가거든요.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들의 삶에 대해 차근히 공부를 하시고 싶은 신 분들께는 이 책과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만한 책 몇 권을 추천해요.
일란 파페 - 팔레스타인 현대사
조 사코 - 팔레스타인
안영민 - 팔레스타인에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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