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책

<촘스키와 아슈카르, 중동을 이야기하다>를 읽고

순돌이 아빠^.^ 2024. 1. 22. 11:42

노엄 촘스키, 질베르 아슈카르 <촘스키와 아슈카르, 중동을 이야기하다>, 사계절, 2009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촘스키와 아슈카르가 중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입니다. 영어판 <Perilous Power>의 한국어판이구요.

책의 표지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맨 오른쪽에 총을 들고 가는 군인이 있고, 가운데 그 군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 그리고 맨 왼쪽에 입을 굳게 다물고 머리를 숙인채 아이 손을 잡고 가는 여성. 

이라크인들과 미군의 모습이 아닐까 추측은 하는데…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군인이라고 해도 좋을 사진입니다. 이 사진 한장이 중동의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구요.

이들이 대화를 나눈 건 2006~2008년 사이입니다. 이 책이 나온 건 2009년입니다. 지금이 2024년이니까 여러 해가 흘렀지요. 여러해가 흘렀지만 큰 흐름은 지금까지도 비슷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여전히 그 꼬라지고, 팔레스타인인들과 레바논인들은 여전히 두들겨 맞고 있고, 이란은 여전히 악마로 불리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량살상무기

세월이 흘러도 이 책이 참 좋은 책이란 건, 2006~2008년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데도 그 이후 이어지고 있는 여러 일들에 대해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물론 이들의 대화가 2023년에 이루어졌다면, 시리아와 예멘에서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갔겠지요.

부시 행정부가 9.11 이후 군사 작전을 시작 했을 때, 파키스탄의 군부독재정권과 손잡고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습니다. 파키스탄의 군부정권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은 집단입니다. 

이라크 문제는 나중에 또 논의하겠지만, 대량살상무기라는 핑계거리가 2003년 이라크를 침약한 지 수개월 만에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자 부시 행정부는 ‘위대한 중동’이란 개혁 프로그램을 급조해냈습니다. - 86-87쪽

미국의 국제 정책의 기본은 전쟁과 폭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2001년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때 내세웠던 명분이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였지요. 사실 9.11과 탈리반이나 아프가니스탄은 별 상관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슬람을 믿는 놈들이 매한가지 아니냐’라고 한다면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도 매한가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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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내세웠던 것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이라크에는 그런 무기가 없었지요. 그저 침략을 위한 명분이었을 뿐입니다. 과거에 베트남을 침공을 할 때도 적당한 명분을 내세웠듯이 말입니다. 

직접 침공을 해서 전쟁을 벌이고, 상대를 제압하거나 아니면 이스라엘이든 파키스탄이든 폭력을 휘두르길 좋아하는 깡패 국가들을 지원해서 앞세우기도 하지요. 

비핵지대를 설정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 침략을 정당화하려고 조작할 때도,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라고 요구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687호를 위반했다고 이라크를 비난했습니다. 그런 비난이 거짓말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이제 널리 알려졌지만, 결의안 687호에 “중동을 대량살상무기 없고, 그 무기를 운반할 미사일도 없는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 또 화학무기를 완전히 금지하겠다는 목표”를 명시한 조항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결의안을 발의하고 지지한 국가들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 448쪽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져서는 안된다고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또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온갖 압력을 넣고 있지요. 그런데 정작 미국은 러시아와 함께 세계에서 핵무기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입니다. 게다가 이스라엘도 수십기의 핵탄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요. 

미국이 이란에게 핵무기를 갖지 말라고 하려면 자신부터 핵무기를 포기하고 국제적인 감시와 사찰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중동 지역에 더이상 대량살상무기가 확산되는 걸 막고 싶다면 이스라엘에게 핵무기와 화학무기들을 포기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계 각국이 보유한 사용가능 핵탄두 현황. 한겨레



만약 중동을 비핵지대로 만들자고 아랍 국가들이 나서면 어떨까요? 미국도 이스라엘도 싫다고 하겠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전쟁과 폭력으로 지금의 위치를 만들었고, 반대세력을 제압해 왔으니까요. 전쟁이 곧 돈이고 정치적 자산이니까요. 

핵무기 없는 세상도, 평화로운 세상도 그들에게는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겠지요. 전쟁과 폭력이 자기 정체성처럼 되어버렸으니 말입니다. 

2024년 1월 현재, 미국은 이스라엘에 엄청난 무기를 제공해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사람들을 죽이는데 협력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더불어 예멘을 폭격하고 있구요. 

세계 최강 군사 대국 미국과 그의 동맹 이스라엘이 폭력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을 보니 주변 국가나 집단들이 쉽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지요. 잘못 까딱했다가는 미국과 이스라엘 전투기의 폭격을 받아야 하니까요.

이란보다 이스라엘

이스라엘에서는 철저히 잘못된 원칙 하나가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시민의 국가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타 지역에 사는 유대인의 주권국이라고 규정했거든요. - 275쪽

쉽게 말해서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아랍인들도 유대인과 동등한 시민은 아니라는 거지요. 백인이 지배하는 국가에 흑인도 함께 사는데, 백인에게만 합법적이고 동등한 시민으로써의 권리를 주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이라크나 이란에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와는 한참 거리가 먼 이스라엘의 행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의 이런 인종주의적인 국가 운영을 당연한 듯 인정하고 있지요. 

2006년 6월27일 파타당과 하마스를 비롯해 팔레스타인의 정파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역사적 합의에 이르렀지만, 바로 다음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잔혹한 공격을 퍼부으면서 그 합의가 햇빛을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레바논의 경우처럼, 팔레스타인에서도 워싱턴의 주된 관심사는 두 당파 간의 합의를 막는 겁니다. 따라서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살인적 공격은 이런 틀에서 행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429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어떻게든 비합리적인고 반민주적인 집단처럼 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민주주의의 큰 걸림돌이 미국과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 군인 때린 팔레스타인 10대 소녀 체포 논란. mbc



2006년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가 있었고, 여기서 하마스가 1당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 때려부수기에 나섰습니다. 국제 선거 감시단도 평화롭고 순조롭게 진행된 선거라고 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거지요. 팔레스타인인들이 민주적인 선거를 하더라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원하는 정당이 집권을 하지 못하면 판을 아얘 엎어버리는 겁니다.

팔레스타인 사회가 민주적이고 개방적이고 평등한 사회가 되면 될수록 그들의 지배는 약해질 겁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민족적 화합과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위협인 거지요.

그래서 선거 결과를 뒤엎는 것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인들의 화합과 단결을 가로막기 위해 파타와 하마스 사이의 내분을 조장해서 싸우게 만들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사회가 정치적으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 분할되는 결과를 낳은 겁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을 지원한 이유, 아니 부추긴 이유는 레바논 때문이 아닙니다. 주로 이란을 겨냥한 겁니다. 이란에서 시작해 이라크의 남부와 시리아를 거쳐 레바논의 헤즈볼라 지역까지 뻗어 있는 이른바 ‘시아파 초승달shiite crescent’은 워싱턴에게 일종의 강박관념입니다. - 383쪽

레바논의 헤즈볼라나 예멘의 후티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 ‘이란이 지원하는 무장단체 후티 반군’ 등입니다. 

kbs

실제로 이란이 이들을 지원하는지 여부를 떠나, ‘이란의 지원’이란 말로 해당 단체의 성격을 설명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란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사실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냥 이란이 지원한다고 하니 뭔가 어두침침하고, 음모적이고, 광신도들이고, 무자비한 놈들일 거라는 막연한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지요. 이라크가 미국을 폭격한 일이 있습니까, 반대로 미국은 이라크에 폭탄을 퍼부었지요.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 폭탄을 퍼부은 적이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폭탄은 물론이고 지상군이 직접 레바논 수도 베이루크까지 쳐들어가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지요. 

이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과거부터 최근까지 이란의 군인이나 과학자 등을 암살해 왔습니다. 뉴스 검색만 해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란이 이스라엘 군인이나 과학자를 암살했다는 뉴스를 보셨나요? 

중동 지역에서 어두침침하고 광신적이고 폭력을 애호하면 여기저기서 폭탄을 터뜨리고 암살을 일삼는 세력은 이란보다는 이스라엘입니다. 

중동 지역의 안정이나 평화를 원한다면 가장 시급히 다루어야 할 것이 이란이 아니라 이스라엘이겠지요. 

‘이란의 지원을 받는’ 보다는 ‘이스라엘이 또다시’라는 말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설명하고 예측하게 할 겁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화약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가리켜 ‘중동의 화약고’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거지요.

그러면 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중동의 화약고가 되었을까요? 팔레스타인인들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아님 전투기랑 잠수함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폭격해서? 탱크를 몰고 미군 시설을 공격해서?

역사적으로도 현재로도 결국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학대하고 짓누르고 마구잡이로 죽이기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까지 온 거지요. 미국도 큰 책임을 갖고 있구요. 

mbc

그렇다면 이제라도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중동의 화약고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화약고라고.

그리고 그 화약고가 100년 가까이 계속 펑펑 터지면서 주변의 죄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