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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폭력과 인종주의

순돌이 아빠^.^ 2024. 3. 26. 20:07

* 민들레 :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736

전라도 것들은 지들끼리만 똘똘 뭉친다.
전라도 것들은 말이야,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니도 조심해라.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가서 식당에 들어가면 밥도 안 준다더라.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제가 주변 어른들에게서 반복적으로 들었던 말입니다.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을 단순히 전달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말들 속에는 분노와 미움 같은 짙은 감정까지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고모부가 바로 그 ‘전라도 사람’으로 오랫동안 부산에서 살다 돌아가셨습니다. 고모부는 저에게 늘 친절하셨고 명절이면 맛있는 것도 사주고, 혹시나 제가 사고라도 치면 언제나 앞서 저를 감싸주셨습니다.

저는 고모부가 거짓말을 하거나 누군가를 경상도 사람이라고 괴롭히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어른들이 말하던 그 ‘전라도 사람’과 제가 직접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전라도 출신의 고모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유대인인가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 어린이와 수용소 밖에 살던 비유대 독일인 어린이가 등장합니다. 이들에게 똑같은 줄무늬 파자마를 입혀 놓으면 누가 유대인이고, 누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독일과 나치는 어떤 규정을 가지고 유대인을 정의했으며, 어떤 기준으로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구별했던 걸까요?

파괴과정이란 특정한 인간집단을 겨냥한 일련의 행정조치들이다. 독일의 관리들은 그 특정 집단, 즉 파괴의 대상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대상은 물론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도대체 누가 유대인이란 말인가? 누가 그 집단의 일원인가?


1920년에 나치당 강령을 작성했던 그 “단순한” 사람들 역시 유대인을 정의하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독일 민족의 동지란 “종교와 무관하게 독일인의 피를 이어받은 자”라고 썼을 뿐이다. - 라울 힐베르크,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나치가 말했던 ‘피’라는 것은 우리가 칼에 베었을 때 흘리는 붉은색 피는 당연히 아니겠지요. 무언가 대대로 이어지는 것도 같고, 생물학적인 것도 같고, 순수한 것도 같은 어떤 것일 뿐입니다. ‘독일인의 피’라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잡다한 관념을 집어넣은 상상 속 그 무엇입니다.

유전자나 혈액 검사로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구분할 수 없을 겁니다. 유대인 가운데는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으니 피부색으로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나치는 코의 모양을 가지고 유대인을 구분하려고 했지만 그것조차 실패합니다. 인종적·종족적 구분이 어렵게 되자 이번에는 종교적 요소를 내세웁니다. 예를 들면 조부모 가운데 유대교 신자가 있느냐 없느냐 같은 겁니다.

이러다보니 부모님은 유대교인이지만, 자신은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사용하며 살아온 무신론자이자 사회주의자인 사람이 유대인이라고 규정되어 수용소에 끌려가기도 합니다. 자신은 독일 민족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치는 이들을 유대인이라고 배척하는 겁니다.

유대인 학살 과정을 자세하게 서술한 라울 힐베르크의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유대인이라면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하던 나치가 막상 현실에 살아있는 인간들을 마주하니 누가 유대인인지 명확하지 않았던 겁니다. 순수한 독일인이니, 타락한 유대인이니 하는 것들은 그저 그들의 분노와 증오심이 만들어낸 상상 속 인종일지 모릅니다.

인종과 인종주의

국가사회주의를 힘차게 이끌고 나가려면 팽창주의를 내걸고, 계속해서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고,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천년 왕국을 집요하게 추구해야 했다. 비전을 좁혀서는 안 된다. 종래의 영토 합의로 여정을 중단했다가는 꿈에 그리던 성배를, 곧 인종 정화와 인종 우위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를 손에 넣을 수가 없다고 히틀러와 추종자들은 생각했다. - 이언 커쇼, 「히틀러」

히틀러가 계속 사용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한편에는 정복·전쟁·지배 같은 것들이 있고, 다른편에는 인종 정화니 인종 우위니 인종 투쟁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종이란 무엇이고, 이런 인종적 사고는 왜 생기는 걸까요?

인종 프로젝트들(racial projects)...인간의 육체와 혈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생겨난 의미 체계들에 의해 그려진 경계선들을 따라 사회적 선을 분배하는 것이다.

19세기 미국 노예 소유주들이 검음을 비합리적임, 감정적임, 자기통제능력이 없음과 연결시켰을 때, 요컨대 그들은 검음은 열등함을 나타낸다는 의미로 인종을 해석하고 있었다. 인종에 대한 이러한 해석을 제안하면서, 그들은 또한 대다수 흑인들을 노예화하는 것과 자유 흑인들을 경제적·정치적 주변인으로 만드는 것을 정당화하거나 해명하고 있었다. - 폴 C. 테일러, 「인종 : 철학적 입문」

육체와 혈통에 어떤 신비한 의미나 운명 같은 게 담겨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인종주의자가 그저 자의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뒤, 그에 따라 인간을 이리저리 분류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의미 규정이나 구분은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나온 것일 테구요.

미국의 인종주의 폭력을 소재로 삼은 진 해크만 주연의 영화 '미시시피 버닝'

인종주의 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이 미국 백인의 흑인 지배입니다. 인종주의자들은 피부색에 따라 성격이나 지능, 심지어 성적 능력까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피부색이 흰 것은 우월함으로 검은 것은 열등함으로 여기고, 우월한 존재가 열등한 존재를 노예로 부리는 것을 당연시 했습니다.

19세기 중후반을 지나며 미국에서 점점 노예제도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많은 백인들이 흑인과 평등하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KKK 같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흑인에 대해 무차별 살인과 린치를 일삼은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요. 법으로도 이들의 폭력을 막기 어려웠던 것은 흑인에 대한 경멸감과 증오심이 워낙 컸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백인들이 이를 방조한 탓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폭력과 인종주의

2023년 10월 7일에 시작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대한 전쟁이 5개월을 지나면서 사망자만 3만 2천 명을 넘고 있습니다. 사망자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은 학교와 병원까지 죄다 때려부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공급되던 수도와 전기를 끊고 식량과 의약품의 반입을 차단했습니다. 게다가 먹을 게 없어 구호 식량을 받으러 나온 사람들에게 총을 난사해서 수백 명을 살해했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pixabay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옷을 벗기고 줄줄이 엮어 끌고가면서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이곳 저곳 건물을 폭파하면서 축제 때 불꽃놀이라도 하듯 환호성을 지르고 큰 소리로 웃습니다. 피난을 떠나며 두고간 팔레스타인 여성의 속옷을 들고 낄낄대거나 조롱의 말을 내뱉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이스라엘 군인이 자신의 행동을 영상으로 찍어 직접 인터넷에 올린 것들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지금도 보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전쟁이 났다고 하지만, 도대체 이들은 왜 이런 행동까지 하는 걸까요?

그러나 ‘인종적 편견’의 신속하고 광범위한 전파는 바로 그 전파의 근원이 인간 성격의 비합리적 측면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인종이론이 파시즘의 산물인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즉 파시즘은 바로 인종적 증오의 산물이며, 그 인종증오가 정치적으로 조직되어 표현된 것이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이스라엘 군인들이 스스로 비도덕적이거나 부끄럽다고 느낀다면 그런 영상을 찍지도, 인터넷에 올리지도 않겠지요.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군대에 끌려와서 단지 명령에 복종하고 있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인종적 증오심에 사로잡혀 흥분한 상태이거나, 자신이 가진 공격성을 표출하면서 쾌감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루살렘에서 기도하고 있는 유대인들. 미니

이스라엘이 벌이는 전쟁과 폭력의 양상은 그들이 가진 심리 상태나 인종주의와 깊은 연관이 있을 겁니다. 이를 엿볼 수 있는 몇몇 인물과 발언이 있습니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 장관

2022년 8월 이스라엘 언론 <하레츠(Haaretz)>의 보도에 따르면, 벤그비르는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아랍계 국회의원들을 언급하며 이스라엘에 충성하지 않는 자들은 추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2023년 1월 보도에 따르면 벤그비르는 경찰에게 공공장소에서 팔레스타인 깃발을 제거하라 지시하였고,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드는 것은 테러리즘을 부추기는 행위라고도 했습니다. 2023년 5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인들이 ‘아랍인들에게 죽음을’ 같은 구호를 외치며 이스라엘 깃발을 들고 행진을 벌였습니다. 이 행진 참가자 가운데는 벤그비르도 있습니다.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부 장관

2016년 4월 이스라엘 언론 <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The Times of Israel)>에 따르면, 스모트리히는 병원의 산부인과 병동에서 유대인과 아랍인 산모의 분리를 지지한다고 했습니다. 해당 발언에 대해 비판이 일자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아랍인은 나의 적이고, 그것이 그들 곁에 있고 싶지 않은 이유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2023년 3월에 유대 정착민이 공격한 ‘후와라’라는 팔레스타인 마을을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벤그비르와 스모트리히는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을 외국으로 내쫓고, 그 자리에 유대인들을 이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팔을 뒤로 묶인 채 무장한 이스라엘인에게 끌려가는 팔레스타인인. 미니

●2023년 10월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는 이번 전쟁을 문명 대 야만의 대결이라고 했고, 국방장관 갈란트는 ‘우리는 인간 짐승들(human animals)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2023년 11월 아미하이 엘리야후 이스라엘 예루살렘 문제와 유산 담당 장관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에는 현재 비전투 요원이 없다’며 핵무기 사용도 선택지 가운데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지금 이스라엘인들은 경멸감과 증오심에 사로잡혀 팔레스타인인들을 오직 제거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히틀러와 나치가 그랬듯이.

사랑을 나누고 기쁨을 느끼며

넷플릭스, '재즈맨 블루스'

넷플릭스에 <재즈맨 블루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30~1940년대가 주요 배경으로 백인 우월주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미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에는 바이우라는 흑인 남성과 리앤이라는 백인 여성이 나옵니다. 하루는 리앤이 바이우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표정이 어둡네. 얼굴 펴. 같이 있을 때만은 행복을 느끼고 싶어.

함께 있고 싶고,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고, 함께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리앤에게는 자신을 괴롭히고 무시하고 학대하는 할아버지나 엄마, 남편보다 흑인인 바이우가 훨씬 소중한 존재입니다. 리앤과 바이우의 관계는 그야말로 살아 숨쉬고 감정을 느끼며, 다른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입니다.

리앤이 백인이고 바이우가 흑인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가진 수많은 의미나 정체성 가운데 하나일뿐입니다. 훨씬 풍부하고 다채로운 것들이 그들의 삶 속에,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쌍둥이. 미니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인에게 성스러운 유대 민족의 땅을 차지한 '더러운 아랍놈들’이라고 하는 것은, 망상에 빠진 자들이 갖는 오만과 편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흑인을 무시하고 조롱하던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다를바 없습니다.

이들의 오만과 편견은 정치인들이 부추기거나 조장한 이데올로기의 측면일 수도 있고, 각각의 개인들이 지닌 불안·분노·공격성을 표출하는 하나의 통로일 수도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도 이스라엘인들처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학교에서 배우고 병원에서 치료 받고, 카페에서 수다떨고 시장에서 사과값을 흥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고 기쁨을 느끼며, 슬플 땐 눈물을 흘리고 아쉬울 땐 고개를 숙이는 우리와 같은 인간들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