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치야는 1934년 4월, 출정한 지 2년 4개월 만에 관동헌병대 치치하얼 헌병분소의 헌병이 되었고, 같은 해 11월에는 동부 국경의 도시, 평양진에 파견되었다. 여기서 처음으로 고문을 실습한다.
그는 ‘이 도시로 장을 보러 왔다’는 농민을 연행해 오장의 지도로 폭행했다. 나무 몽둥이로 두드려 패고 난 뒤, 손을 뒤로 묶어 매달고 그 상태에서 돌을 매달아 어깨 관절에 통증을 가했다.
…
물고문을 할 때는 음식도 물도 주지 않고 남자를 발가벗겨 천장을 향해 긴 의자에 눕게 한 뒤 의자에 묶는다. 그리고 커다란 주전자로 입과 코에 쉬지 않고 물을 부었다.
…
기절한 남자를 고문한다고 자백할 리 없지만, 몇 번이나 반복했다. - 332
3일간 계속한 물고문으로 죽기 직전까지 몰고 갔다. 이틀 후 다른 헌병이 다시 물고문하다 주깅고 말았다. 평양진에서 첫 고문 실습을 할 때 ‘벌 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가, 이때는 물고문을 멈춰야 하는 극한을 터득할 정도로 변해 있었다. 몸이 차게 식는 상태, 가쁜 숨소리, 가슴과 배의 부풀어 오른 상태를 보고 판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문이 잔혹하다는 느낌은 사라지고, 그것도 하나의 기술이 되어갔다. - 335
- 노다 마사아키, <전쟁과 죄책>, 또다른우주
살인하고 고문하고 강간하던 자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닐 겁니다.
어떤 체계나 시스템 속에서 처음에는 망설이기도 하고 주저하기도 했겠지요.
하지만 한 발 두 발 내딛고, 한 번 두 번 하면서 점점 더 잔인한 인간으로 변했던 거겠지요.
나중에는 그짓을 하면서도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렸을 거구요.
개인도 그렇고 집단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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