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나가도 눈가리개를 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상대의 얼굴이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지하 감방에 들어가 일본군에게 죽어간 중국인 포로의 피를 토해 놓은 듯한 낙서를 보았을 때, 그동안 질서정연하게 집단에 적응해 살아온 자세는 무너져갔다. 상대는 패배자 일반이 아니라 고통스러워하는 인간, 가족이 있고 사회관계 속에서 사는,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인간으로 바뀌었다. 그가 억제해왔던 상상력이 되살아났다. - 225
오노시카가 얘기한, 사역에 동원돼 죽어간 덩치 큰 남자, 강간당한 자매와 소녀, 북베트남에서 주먹밥을 손에 들고 죽은 아이, 그리고 그가 죽인 네그로스섬의 남자, 모두가 오노시카의 눈에는 다 제대로 된 표정을 갖고 있으며, 고민이 있는 온전한 인간이었지 죽임을 당하는 ‘물건’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다. - 391
- 노다 마사아키, <전쟁과 죄책>, 또다른우주
단순하고 기계적이고 무감각하게
그저 조선인, 중국인이 아니라
그저 유대인, 팔레스타인인이 아니라
모두가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누구의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이며
가해자와 같은 생명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을 느낀다는 것
누구는 죽는 것이 당연하다거나
누구의 생명은 값어치가 없다거나
누구는 이 세상에 있으나 없으나 매한가지라거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지배.착취.폭력 > 지배.착취.폭력-여러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점점 더 잔인한 인간으로 변하는 (0) | 2023.11.16 |
---|---|
전쟁범죄를 사죄한다는 것 (0) | 2023.11.16 |
전쟁에서 살인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 (0) | 2023.11.16 |
전쟁과 폭력, 경직되고 공격적인 인간 (0) | 2023.11.16 |
전쟁과 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보기 (0) | 2023.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