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자료

끌려간 사람들

순돌이 아빠^.^ 2024. 5. 30. 10:24

(작은책 2024년6월호. 표지가 너무 예쁨. 4월호부터 연재중 ㅋㅋㅋ)

끌려간 사람들
미니(평화운동가)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가장 큰 요구는 지금 당장 전쟁을 중단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하나의 중요한 요구는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석방입니다. 수감자를 지원하는 팔레스타인 인권단체 ‘앗다미르(양심을 뜻하는 아랍어)’에 따르면 2024년 4월 말 현재 9천5백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감옥에 억류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200명가량의 어린이·청소년과 80명가량의 여성이 포함됩니다. 2023년 10월7일 이후 이스라엘은 직접적인 군사공격으로 3만5천명 넘게 살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쉴새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제가 팔레스타인에 있던 어느날, 함께 생활하던 팔레스타인인이 갑자기 바삐 움직이기에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마을로 쳐들어왔고 무기를 숨겼을지 모른다는 이유를 들어 한 팔레스타인인을 끌고 갔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치 않습니다. ‘행정 구금’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이스라엘 군인이 원하면 혐의가 없어도 팔레스타인인을 체포할 수 있고, 이후에는 기소나 재판 없이 계속 가둬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제가 말했던 9천5백명의 수감자 가운데 3천6백명가량이 행정 구금을 통해 감금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 사람을 잡아가뒀냐?’라고 물어보면 그저 안보상의 이유라며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한국의 일제 식민지 시절이나 군사 정권 때를 떠올리시면 비슷할 것 같습니다. 

고문과 학대

이송되는 날, 여성 군인이 저를 수색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녀는 저에게 옷을 전부 다 벗으라고 요구했고, 저는 거절했어요…그랬더니 남성 군인이 와서 저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렸어요. 그는 저의 얼굴과 온몸을 주먹으로 때렸어요. 그는 마치 제가 자신의 앞에 있는 덩치 큰 남자인 것처럼 저를 때렸어요. - 아디,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이스라엘 감옥에 5년동안 갇혀 있다 풀려난 한 팔레스타인 여성의 증언입니다. 이스라엘은 여성의 알몸 수색을 일삼기도 하고, 강간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각종 성폭력이나 성에 기반한 고문 기술을 사용합니다. 또 가족과 이웃들에게 ‘문란한 여자’라고 소문을 내겠다는 협박도 합니다. 팔레스타인은 여성에게 보수적인 사회여서 이런 낙인이 찍힌다는 것은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심하게 배척당할 수도 있고,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은 여성에게 성매매와 관련된 단어들을 쏟아내며 욕을 하고 윽박지르는 것입니다. 폭행 등 물리적 고문은 물론이고 각종 심리적 고문을 이용해 수감자들로부터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내거나, 그들을 밀정으로 만들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게도 합니다. 

지난해 12월에 공개된 몇 개의 영상 속에는 100여명의 가자 지구 남성들이 체포되어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속옷을 제외한 모든 옷을 벗기고 손은 뒤로 묶고 눈은 검은 천으로 가린채, 길바닥에 무릎을 꿇게 하거나 트럭에 실어 끌고 갔습니다. 이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퍼졌고,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인권단체 ‘알 하크(Al Haq)’의 샤완 자바린(Shawan Jabarin)은 카타르 언론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 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들을 떠올리게 한다며, 비인간적 행위이자 고문이고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이스라엘은 이들이 하마스와 관련된 인물인지 조사중이라고 했고, 가족과 지인들은 그들이 하마스와는 관련 없는 학생과 언론인 등이라고 하였습니다. 

UNRWA(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 사업기구)는 지난 4월 이스라엘에게 감금되어 있다 풀려난 팔레스타인인의 증언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수감자들을 개가 들어있는 철장 안으로 강제로 밀어넣고, 개가 사람을 물어 부상을 입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를 내놓지 않으면 구금 기간을 늘리거나 가족들을 죽이겠다는 협박도 서슴치 않습니다. 34세의 한 여성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샤바크(Shabak)가 어떻게 자신을 협박했는지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그들은 컴퓨터 화면으로 동네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이건 누구야’ ‘이건 누구야’ 식으로 한명 한명에 대해 물었습니다. 만약 제가 알아보지 못하면 이스라엘 군인은 저희 집을 폭격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지금 집에 누가 있는지 물어서 형제들과 아버지가 계시다고 하니, 만약 제가 모든 정보를 자백하지 않으면 저희 집을 폭격해서 가족들을 죽여버리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3월7일 62세의 왈리드 다카(Walid Daqqa)가 이스라엘의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1986년(당시 24세) 체포된 이후 38년동안 수감되어 있었고, 2022년 골수암 진단을 받았음에도 이스라엘은 왈리드를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수감 중인 환자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인도적인 처우를 거부한 또하나의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 벤그비르는 자신이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던 왈리드의 죽음에 대해 이스라엘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벤그비르는 감옥의 과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처형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라고도 했습니다. 

함께 걸어가는 길

제가 만났던 여러 팔레스타인인들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한국인이라면 자신들의 처지를 쉽게 이해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설명할 때 이스라엘이 일본과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면  쉽게 공감하셨습니다. 지배와 저항의 역사는 한국과 팔레스타인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중요 정치인이 수감자 처형을 운운하는동안, 한국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과의 연대 활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한국 인권단체 ‘아디’와 ‘정의기억연대’의 지원으로 ‘팔레스타인 트라우마힐링센터’는 <이스라엘 감옥에 있는 여성 수감자들의 현실>이라는 대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감옥에 있다 풀려난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수감 생활의 현실과 저항 운동의 방향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작은 발걸음이지만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는 두 사회의 연대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자유와 해방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