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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묵공]의 포스터 |
옛날 옛날 중국에 공자, 맹자, 노자 하듯이 여러 ‘자’ 가운데 묵자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글 몇 자 할 줄 안다고 임금이나 귀족들한테 기대어 살려고 하지 않고 평생 스스로 노동하며 늘 검은 옷을 입고 하층 민중들의 편에 서서 살았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천하를 두루 평등하게 사랑한다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고 남의 집안을 제 집안 같이 사랑하고 남의 나라를 제 나라같이 사랑하라. - 묵자, [겸애편兼愛篇] 가운데
그 오랜 예전에도 묵자가 네 이웃을 제 집안 같이 사랑하라고 했던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세상이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저 한 몸 비싼 옷 입고, 비싼 자동차 타며 돈 자랑하겠다고 남의 나라에 폭탄을 퍼부어 대니 말입니다.
사람을 죽인 죄는 복숭아를 훔친 죄보다 크다
묵자의 사상 가운데는 비공非攻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남을 공격하지 말라는 거죠. 그런데 묵자의 사상과 함께 하는 묵가들의 비공은 단지 나만 공격하지 않겠다는 개인적인 실천이 아니라 전쟁이 터지려고 하면 직접 전쟁을 막아 나서는 비공非攻입니다. 제가 묵가의 사상을 마음 깊이 담는 까닭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만약 한 사람을 죽였으면 그것은 불의며, 반드시 한 번 죽을 죄가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해 나간다면 열 사람을 죽였으면 열 배 무거운 불의며 반드시 열 번 죽어 마땅한 죄고, 백 사람을 죽였으면 백 배 무거운 불의며 반드시 백 번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다고 해야 한다. 이같은 이치를 천하의 군자들은 다 알고 비난하면서 불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남의 나라를 공격하여 큰 불의를 행하면서, 그 잘못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따르며 명예롭고 의로운 일이라고 칭송한다면, 진실로 불의를 모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묵자, [비공편非功篇] 가운데
영화 [묵공]은 이런 묵가의 사상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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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성을 공격하는 조나라 군대 |
영화의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양성은 조나라의 공격 위협을 받습니다. 그래서 양왕은 묵가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조나라의 공격이 임박했을 때 묵가의 한 사람인 혁리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혁리는 뛰어난 전술을 발휘하며 조나라의 공격을 막아 냅니다. 하지만 조나라의 공격을 막은 혁리가 민심을 크게 얻자 양왕은 되려 혁리가 반역을 꾀했다는 죄를 씌워 죽이려 합니다. 그리고 혁리는 양성을 떠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몇가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의 사례는 혁리가 자신이 짠 전술로 성안에 들어온 조나라 병사들이 화염에 쌓여 죽어가자 마음에 괴로움을 얻습니다. 또 우장군이 조나라 병사들을 많이 죽인 것을 축하한다고 하자 이것이 과연 축하할 일이냐고 되묻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적이기 이전에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전쟁이란 것은 권력자들이 자기 이익만을 위해 일으켜 민중들이 칼을 들고 싸우다 죽는 것이고, 또 그 전쟁을 막자고 나서는 것도 무작정 상대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죽음을 막고 사람을 살리자고 하는 것이니 아군과 적군에 관계없이 누군가 죽어가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요.
또 [묵공]은 난리통에 민중들이 겪는 삶도 보여 줍니다. 온통 천하가 난리통이어서 여기저기 떠돌다 양성으로 오게 된 사람들이 또 전쟁이 터지자 ‘이 놈한테 뜯기나 저 놈한테 뜯기나 마찬가지’라는 식의 말을 합니다. 조나라가 지배를 하든 양왕이 지배를 하든 힘 없고 빽 없는 것들한테는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그들은 바램이 있다면 그저 가족들하고 오순도순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문제는 그런 희망이 이루어지기에는 세상이 너무 어지럽다는 겁니다.
이 영화에 단점도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표현인데요, 여주인공도 처음에는 조국을 지키겠다고 나서지만 결국에는 혁리와의 사랑만이 중요해지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힘없이 죽게 되고 혁리는 그녀의 시신을 안고 괴로워합니다. 예쁜 여주인공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잊고 오직 사랑을 찾다 사랑 속에서 죽어간다는 흔한 이야기입니다.
물들이다
어떤 사상이든 그 사상의 의미를 잘 이해하는 것과 함께 중요한 것이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상이란 것은 그저 실천하기 위한 기준과 길을 조금 보여주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야 누군들 모르겠습니까? 문제는 누가 그것을 실천하냐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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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을 점령한 조나라 군대에 맞서 양성의 민중들이 싸우고 있다. |
여러분은 우리 사는 세상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이를 향한 사랑이 중요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남을 짓누르고 제 재산만 늘리려는 사람들이 되려 큰 소리치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저 기분 나쁘다고, 저 말 안 듣는다고 이 사람, 저 사람 두들겨 패는 것보다 세금 몇 푼 안 내는 것이 더 큰 죄라고 우겨대는 사회는 아닙니까? 저 자식 옷에 흙 묻은 것은 눈에 띄어도 남의 자식 폭탄 맞아 죽어도 내 알바 아니라는 세상이지 않습니까?
세월이 가도 묵자와 같은 사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어지러운 것들은 남아 있고 그것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새로 태어난다는 거지요.
묵자에 ‘물들여 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옷감도, 사람도, 세상도 물들여진다는 거지요.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려고 합니까? 돈에 물들고 권력에 물들어 삶의 참된 의미도 잃는 사람이 될 건지, 아니면 억울한 사람, 괴로운 사람들의 사연을 함께 풀어주며 세상을 희망으로 물들이는 사람이 될 건지는 우리 각자가 선택할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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