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착취.폭력/지배.착취.폭력-책과영화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죄인처럼 살아간다.”

순돌이 아빠^.^ 2006. 10. 9. 15:22
1. 포이동 266번지: 넝마주이마을과 넝마공동체 / 윤수종 / 진보평론 2006년 가을호
 
‘국가는 넝마주이들을 집단 관리하다가 다시 내팽겨 쳤다. 특히 도시화가 진전되어 넝마주이 마을에 부동산 투기의 여파가 미치면서, 정부는 넝마주이들을 몰아내고 돈벌이가 되는 사업(주차장이나 아파트 건설 등)을 펴나가려고 한다.’ - 본문 가운데
 
지구라는 별이 생겨나고, 그 지구라는 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뒤 언제부터 땅이 누군가의 소유가 되었을까요? 언제부터 멀쩡한 땅에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금을 그어놓고 ‘이건 내 꺼야. 넌 들어 오지 마’라고 하게 되었을까요? 만약 지금 누군가 하늘에다 금을 그어 놓고 ‘여기까진 내 꺼야. 그러니깐 넌 쳐다보려면 돈을 내야 돼’라고 하면 사람들은 말하겠지요. ‘쟤, 미친 거 아냐?’
 
하늘에 누군가 금을 그어 놓고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쟤 미친 거 아냐?’라고 하듯이 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미친 짓이기 때문에 그 미친 짓을 보호하고 미친 짓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법을 동원하고 국가 권력을 동원하는 거지요. 누군가 제 다리 뻗어 자고, 제 몸으로 농사지을 것 이상으로 땅을 소유하고 있는 동안 누군가는 편하게 다리를 뻗을 곳도, 농사지을 땅도 없다면 과다 소유한 행위 자체가 사회 불평등을 조장하는 미친 짓이겠지요. 다만 지금의 사회는 그 미친 짓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을 뿐이지요. 종을 부리던 사회에서 사람을 팔고 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포이동 266번지 사람들은 이 미친 세상의 한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도 살지 않는 땅에서 살겠다고 하는데 국가가 나서서 집을 때려 부수고 사람들을 몰아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심지어는 불법토지이용변상금이라는 것을 물려서 가구당 5천~7천만 원 가량을 내라고 하니 국가의 횡포가 이만 저만 아닙니다. 국가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가 시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없는 집을 지어주기는커녕 있는 집마저 부수고 있느니 대한민국 국가는 직무유기에다 주택까지 파괴한 것에 대해 배상해야 할 것입니다.
 
포이동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이름이 “인;연 맺기 학교”라고 합니다. 사람 인人자에 자연自然할 때 그 연이라고 하네요. 이 이름을 보면서 참 좋은 이름이다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으니 인연이요, 자연의 선물인 땅을 통해 사람이 만났으니 그것도 인연이다 싶습니다.
 
굳이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론에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겪는 인연 자체가 아주 구체적입니다. 가을 길을 가다가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내 머리에 떨어지는 것도 구체적인 인연인 것입니다. 우리 살아가는 동안 맺게 되는 수많은 구체적인 인연 속에서 우리가 다른 인간에 대한 애정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때 이 글의 마지막 말이 조금씩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자율적 코뮌’말입니다.
 
 
2. 유랑가족 / 공선옥 / 실천문학사
 
‘녹두장군’ ‘아리랑’ ‘장길산’ ‘임꺽정’과 같은 소설들을 좋아할 때가 있었습니다. 또 언제부터인가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전쟁과 소년’ ‘슬픈 아일랜드’ ‘들’과 같은 윤정모의 소설이 좋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언젠가부터 ‘수수밭으로 오세요’ ‘멋진 한세상’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와 같은 공선옥의 글이 좋아졌습니다.
 
“왜 웃어싸시오?”
“자네는 왜 웃었는가?”
“몰라라우.”
달곤이 영갑의 아이한테 묻는다.
“아가, 너는 왜 웃느냐?”
“안 웃으면 슬프니까.”
아이의 그 말에 두 남자는 정말 슬픈 표정으로 상점 유리창에 비친 자신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마주 보고 서 있었다.

- 본문 가운데
 
건설 일용직 노동자로 여기저기 다니는 아빠를 따라 이 여관, 저 여관을 떠도는 아이는 안 웃으면 슬플까봐 웃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와서 쭈욱 밀링 노동자로 살아온 경수는 2천 5백 만 원 짜리 전셋집을 얻고 나서 ‘형, 이제 저 날마다 따순 물로 우리 아이들하고 목욕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라며 좋아합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그나마 경수의 웃음은 아주 좋은, 행복한 순간에 들어갑니다. 중국에서 잘 살아 보겠다고 한국 사람과 결혼해 한국으로 왔지만 나중엔 서울의 노래방들을 옮겨 다니며 일하다 죽는 조선족 여성, 경북 봉화 첩첩 산골에 할머니와 살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갈 곳이 없어진 아이, 집 나간 아내를 찾아 서울을 헤매다 우연히 길에서 아내를 만났지만 아내를 데려갈 수 없었던 남자 등 이 소설집에 나오는 사람들은 온갖 사연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책 맨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이런 글을 남깁니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죄인처럼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생활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인격도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집도 절도 있는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려 해도 분명한 사실 하나는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적 빈곤과 함께 타인으로부터 차별과 외면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차별이 인류 역사의 법칙이 아니듯이 빈곤이 개인의 무능력 때문은 아닙니다. 차별과 빈곤은 사회 제도의 문제이며 인간관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빈곤에 시달린다는 것은 그 사회의 책임이고,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3. 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 / 장귀연 / 책세상
 
이 책 1장의 첫 마디가 ‘지금 이 책을 펼친 당신은 노동자인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미래의 꿈으로 장군이 어떻고, 과학자가 어떻고를 배웁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장군도 과학자도 아닌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학교에서부터 자본주의가 뭐고, 노동자가 뭔지, 그리고 노동자에게는 어떤 권리가 있으니 나중에 노동자가 되면 어떤 방법으로 노동권을 확보해야 되는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삶에서 정말 소중한 교육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한편으로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모습을 얼렁뚱땅 감추려고 합니다. 기업인이니 경영인이니 하는 말들로 말입니다. 심지어는 국익이니 국가경쟁력이니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어떠니 하면서 온갖 거짓말들로 자신을 가립니다. 하지만 앞의 모든 말의 뿌리는 자본가와 이윤입니다. 자신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기업가라고 하는 거지요. 그리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말은 자본이 이윤 생산하기 좋은 나라의 다름 아닙니다.
 
언론과 교육은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자본가라고 하면 왠지 뭔가 섬뜩한 단어인 것 같이 느끼게 만들어서 사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계급투쟁이니 노동운동이니 하는 것을 떠나도 노동자-자본가의 관계는 경제학의 기본인데도 말입니다. 한 마디로 기본적인 교양의 수준도 못 갖추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이지요.
아무튼 (임금)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에게 종속되어 자신의 노동을 팔아 임금을 받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어떻게든 임금을 적게 주고, 행여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단결해서 임금을 높이고 노동조건을 개선하자고 할까봐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이라는 제도는 해고는 쉽게 하고, 임금은 적게 주고, 노동자의 단결권은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임금과 노동권의 저하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느끼는 온갖 모멸감과 박탈감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똑같은 곳에서, 똑같이 일하고도 누구는 임금을 나보다 두 배나 받으며 온갖 복지 혜택을 누리는데, 나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임금은 절반, 복지는 없을 뿐만 아니라 언제 짤리게 될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라고 하면 나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정규직-비정규직의 차별이 심해지자 국가와 자본, 언론은 이 책임이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처럼 꾸며 댑니다. 그래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양보하라고 하고, 노동운동에 대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와 함께 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집단이라고 합니다.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들었습니까? 자본가가 노동운동에 대해 이기적이라고 하다니……. 본문에 나오는 표 하나를 옮겨 보겠습니다.
 
<표4> 개인 소득 증가율과 기업 소득 증가율 비교 (단위 : %)
구분             1980년대   1990~1996   2000~2004   비고
개인소득증가율     10.6         7.0           2.4       임금노동자, 자영업 포함
기업소득증가율      7.8         6.5          18.9
 
이 책은 이렇게 왜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렇게 늘어나는지, 그들의 노동 조건은 어떤지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을 바꾸는데 먼저 필요한 것은 비정규직이란 것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이윤을 보다 많이 생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노동자들부터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과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