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05_다시 찾은 라말라
오늘은 예루살렘을 떠나 먼저 라말라에 있는 YDA 사무실로 간 날입니다. YDA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청년 운동 단체입니다. 거기서 앞으로 우리가 신세 지게 될 사람을 만나기로 했거든요. 게스트 하우스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 들고 버스 터미널로 갔습니다. 먼저 칼란디야로 갔다가 라말라로 갈 거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칼란디야로 가는 버스가 뭔지 물어 봤습니다. 버스 기사에게 칼란디야로 가냐니깐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한 분이 어디로 가냐고 묻습니다. 칼란디야로 간다고 하니깐 라말라 가냐고 합니다. 칼란디야로 가서 라말라로 갈 거라고 하니깐 그러면 칼란디야 가는 버스 말고 라말라 가는 버스를 타라고 합니다. 약간 의아했지만 라말라로 가는 버스가 새로 생겼나 보다 하고 다른 버스를 탔습니다.
한 20분 길을 가니 칼란디야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왔을 때는 칼란디야에서 모두 버스에서 내려 검문소를 지나고 다시 세르비스를 타고 라말라로 갔었는데 이제 보니 도로가 새로 생겨 버스를 탄 채로 검문소를 지나는 것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오기 전에 YDA에서 활동하는 몬타하에게 예루살렘에서 칼란디야를 거쳐 라말라로 가면 되죠?’라고 물었을 때도 몬타하가 ‘맞아요’라고 했었습니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가운데 예루살렘을 방문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서안지구 안에서만 살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라말라로 가는 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닭고기나 양고기로 만드는 샤오르망
서안지구가 아래, 위로 길게 생겼는데 맨 아래 쪽에 있는 헤브론(아랍어로 칼릴)에 사는 사람들은 위쪽에 있는 제닌에 가 볼 일이 잘 없지요. 거꾸로 위쪽에 있는 칼킬리야나 툴카렘에 사는 사람들은 아래쪽에 있는 베들레헴에 가 볼 일이 잘 없구요. 특히나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사이는 이스라엘이 가로막고 있어서 양쪽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오갈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제가 제닌에 사는 사람에게 헤브론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 줘야 하고, 서안지구에 있는 사람에게 가자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해 주면 신기해하기도 하지요.
아무튼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버스를 갈아타지 않고 편하게 라말라로 한 번에 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라말라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네요. 팔레스타인인들이 원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게 되면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는 겁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국가도 예루살렘도 ‘안 돼’라고 하고 있어서 지금은 라말라에 자치정부 청사가 있습니다. 라말라는 예루살렘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정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경제·문화·교육의 중심지가 되어 있습니다.
각종 정당이나 사회단체의 본부도 라말라에 많이 있구요. 한국으로 치면 서울과 비슷합니다. 다른 지역에서 서울하면 크고 화려하고 일자리도 많고 교육 수준도 높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팔레스타인인들은 라말라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말라로 일자리를 구하러 가기도 하고, 대학을 다니러 가기도 하지요. 라말라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많아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행동하기에 좀 자유롭기도 하고, 아파트나 가게 임대료와 물가가 엄청 비싸기도 합니다. 시골 마을에서 한 1.5셰켈 하던 필라펠 샌드위치가 여기서는 10셰켈 가까이 하기도 하구요.
전화기 찾아 삼만리
일단 라말라로 가서 YDA로 전화를 하면 사람이 우리를 데리러 나오기로 했습니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아랍은행 앞에 일단 짐들을 내려놓고 둘러보니 주변에 파란색 공중전화기들이 ‘저를 찾아주세요’ 하며 제게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제 경험은 공중전화기 가운데 되는 것보다는 안 되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찾다보면 되는 전화를 만날 수 있겠지요. 먼저 공중전화카드를 사야겠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더운 여름 한낮에 이 가게, 저 가게 다니면서 열심히 전화카드 있냐고 물어 봐도 모두 없다고 하네요. 우째 이런 일이...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 사람이 제게 다가와서는 ‘뭘 찾으세요?’라고 물어요. 그래서 제가 ‘친구한테 전화를 하려고 전화카드를 사야하는데 파는 곳이 없네요’라고 했더니 그 팔레스타인인이 얼른 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제 전화기 쓰세요’하는 거에요. 어찌나 고맙던지... 하지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전화번호를 가방에 놓고 온 거에요. 할 수 없이 고맙고, 미안한데 전화번호를 안 가져 왔다고 할 수 밖에 없었지요.
중동에도 생선이 있냐구요? 팔레스타인은 지중해와 붙어 있고 요즘은 베트남 등지에서 온 냉동 생선을 먹기도 한답니다
다시 아랍은행 앞으로 가서 전화번호를 들고 전화를 하기 위해 돌아다녔어요. 마침 한 가게에 가니 전화카드는 없는데 1셰켈을 넣으면 전화를 할 수 있는 전화기가 있네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자신 있게 1셰켈을 넣고 몬타하한테 전화를 했어요. 몬타하가 ‘여보세요’ 하네요. 제가 ‘여보세요. 미니에요’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몬타하는 제 목소리를 못 듣네요. 그렇게 몇 번 시도를 하고 나니 이 전화기도 고장인가 보다 하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열심히 다른 데를 찾아보니 한 가게에 동전 전화기가 있는 거에요. ‘이번에는 제발 걸려라’라고 빌면서 전화기 앞으로 다가서니 가게 주인 아저씨가 친절하게도 ‘저쪽에서 여보세요라고 하면 이 단추를 눌러야 통화가 됩니다’라고 하시는 거에요. 아차 싶었었어요. 동전전화기는 저쪽에서 응답을 하면 이쪽에서 ‘통화’ 단추를 눌러야 통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거에요.
몬타하와 통화를 하고 아랍 은행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깐 마흐무드가 우리를 데리러 나왔어요. 아랍은행에서 YDA까지는 불과 150여 미터 밖에 되지 않아 힘들지 않게 짐을 끌고 갔지요. 사무실에 들어가니 몬타하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 합니다. 그동안 YDA에서는 할라가 우리와 같이 일을 했었는데 할라가 한 달 정도 스페인에 일이 있어 가는 바람에 그 사이에 몬타하가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거지요. 몬타하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탈랄과 칼리드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 합니다. 정말 반갑더라구요. 특히 칼리드는 지난 번 팔레스타인에 왔을 때 우리를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이리 저리 안내도 해 주던 친구인데 3년 만에 팔레스타인에서 다시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던지...
탁자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 가운데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번에 우리를 도와줄 사람인가 보다 싶었습니다. 역시나 탈랄이 우리를 데리러 온 와엘이라고 하더라구요. 사정은 이래요. 팔레스타인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YDA로 이메일을 보냈어요. 언제부터 언제까지 있을 계획이고, 이번에는 여기저기를 다니기보다 사람들과 함께 지내보고 싶고, 도시보다는 농촌 지역에서 머물고 싶다구요. 그랬더니 얼마 안 있어서 답이 왔는데 한 농민이 우리를 맞이하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저희로써야 고마울 밖에요. 그리고 두 가지 얘기를 했습니다. 하나는 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러 날 머물 건데 너무 폐를 끼치면 안 되겠다 싶어 많지는 않지만 약간의 돈을 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답이 온 것은 그 농민이 돈은 안 받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혹시나 해서 옆에 앉아 있던 칼리드에게 살짝 얘기를 했습니다.
‘칼리드, 사실 여기 오기 전에 돈에 관한 얘기를 했었는데 저 분이 안 받겠다고 했어요. 그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칼리드가 아랍어로 와엘과 탈랄과 몬타하와 뭐라 뭐라 얘기 하더니 제게 말을 건네주네요.
‘돈을 받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데...’
예상 했던 대답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다가와서 뭐 도와줄 거 없냐고 물으며 자기 전화를 내미는 사람들인데, 게다가 자기 집에 온 손님에게서 돈을 받으려고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지요. 돈 얘기는 그렇게 해서 일단락되었습니다.
살짝 걱정이...
여기 오긴 전 보낸 이메일의 두 번째 얘기는 우리가 아랍어를 전혀 못하니 그 분이 잘은 아니어도 간단한 영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둘러 앉아 얘기를 하는데 와엘이 정말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더라구요. 약간 난감했습니다. 사실 아랍어를 쓰시는 분들이 영어를 못한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이 아무리 학교를 많이 다녀도 외국인이 와서 영어로 뭐라 뭐라 하면 얼굴 빨개져서 ‘아임 낫 잉글리쉬’하면서 도망가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오랜 시간 같이 생활을 해야 하는데 와엘은 영어도 한국어도 못하고, 저희는 아랍어를 못하니 도대체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라말라 거리에서 만난 체 게바라. 아흐메드 야신과 아라파트도 보이네요
여기에 올 때 농촌으로 가겠다고 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말 때문입니다. 한국이든 팔레스타인이든 도시는 도시이고, 도시 사람들은 바쁩니다. 오랜 시간 함께 지긋이 무엇을 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에 비해 한국이든 팔레스타인이든 도시 사람들보다는 농촌 사람들이 덜 바빠서 함께 할 시간이 많게 되지요. 또 말이 안 통할 때 좋은 방법은 함께 일을 하든 무언가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도시에 있는 단체 사무실 같은 데서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 농촌에 가서 사람들이 하는 일을 거들면서 함께 지내다 보면 말이 아니어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게 많지 않을까 싶었던 거지요.
그런데... 아무리 손짓 발짓을 한다고 하지만 전혀 말이 안 통하면... 앞으로 벌어질 일이 기대되는 순간이었습니다.
05_팔레스타인 말이란 것이 있냐구요?
한국 사람들은 한국 정부의 시민으로 있으면서, 한국 땅에서, 한국어를 쓰면서 살지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살면서 민족적으로 아랍인이며 언어는 아랍어를 사용해요. 아랍어는 중동과 북부 아프리카까지 넓게 퍼져 있답니다. 같은 한국말이라고 하지만 부산 말 다르고 광주 말 다르고 서울 말 다르잖아요. 팔레스타인에서도 ‘내일’을 뜻하는 말로 어디서는 ‘부크라’라고 하고 어디서는 ‘부츠라’라고 해요. 외국인이 부츠라라고 발음을 하면 사투리 쓴다고 웃어요. 텔레비전에서 로버트 할리라는 미국 출신의 사람이 나와서 ‘밥 묵었으예?’하며 부산말로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웃는 것과 같습니다. 하물며 아시아에 있는 이라크와 아프리카에 있는 모로코에서 쓰는 아랍어가 같을 수는 없겠지요.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글자도 바뀌지 않았대요. 그래서 꾸란이나 방송용 아랍어는 아랍어권 모두 같거나 비슷하게 쓰는 반면 생활 아랍어는 지역마다 다르게 되는 거지요. 아랍어 글자는 알파벳과도 완전히 달라서 처음 보시는 분들은 무슨 그림인 줄 알 거에요. 한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지만 아랍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구요. 아랍어로 된 MS-WORD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한글과 달리 문장이 자동으로 오른쪽 정리가 된답니다. 그러면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를 쓰겠다구요? 그게 참 신기한 일이네요. 우리가 흔히 쓰는 아라비아 숫자를 쓰기는 하는데요, 생활에서 보면 아랍 숫자라고 해서 아라비아 숫자와는 완전히 다르게 생긴 숫자를 쓴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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