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07_달빛 아래 춤을

순돌이 아빠^.^ 2010. 2. 1. 13:57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팔레스타인, 사람의 가슴에 물든'이 나으려나?)



07_달빛 아래 춤을

 

오늘은 자주 가서 시간을 보내고, 제가 주로 어울리는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칠면조 농장에 대해서 말씀 드릴게요. 팔레스타인에 칠면조 농장이 있다고 하니 좀 색다르게 들리시죠? 저도 처음 봤을 때 ‘아하, 역시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내가 잊고 있었네’ 싶었습니다. 수 천 마리의 칠면조가 몇 개의 칠면조 집에서 ‘구륵구륵’ 소리를 내며 살고 있고, 그 옆에는 소와 염소, 양 몇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병든 칠면조를 따로 모아 둔 곳 옆에는 닭도 몇 마리 있구요. 처음에는 칠면조 냄새도 소리도 익숙치 않았지만 이제는 귀여운 친구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일하는 친구들한테 가졌던 불만 가운데 하나는 죽은 칠면조를 농장 근처에 툭 버려놓지 말고 땅에 묻었으면 하는 거였습니다. 주위에 널리고 널린 게 땅인데 말입니다. 물론 이제는 그것도 그저 그런가보다 합니다.

 


무함마드와 칠면조들과 함께


어제 밤에는 한 집에 있던 칠면조들을 다른 집으로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작은 집에 많은 칠면조들이 살다보니 이리저리 죽는 일이 생겨서 좀 큰 집으로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할 때면 친구들이 저에게 같이 하자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여기도 이런 일은 더럽고 힘든 일로 여겨지는데 먼 길 비행기 타고 날라 온 소중한 친구에게 같이 하자고 하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일이 시작되고 친구들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아, 오늘은 칠면조 옮기는 일을 하는구나’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 제가 그들과 어울리는 방법은 같이 일을 하는 겁니다. 일을 하기 위해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어울리기 위해서 일을 하는 거지요. 간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겨우 칠면조들을 가까이서 보는 것에 익숙해 졌는데, 도망다니는 칠면조들을 쫓아가서 허리를 숙이고 칠면조 다리를 낚아채야 하니 말입니다. 처음에는 뒤뚱거리며 도망가는 칠면조 다리를 잡으려다 다리에 손만 닿고 꽉 잡지 못했습니다. 몇 번 실패를 하고 나니 열심히 땀 흘리며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부끄럽더라구요.

 

친구들이 ‘내 그럴 줄 알았다. 안 해도 되는 일을 괜히 해 가지고...’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 같아 오기가 발동했지요. 좀 느려보이는 칠면조에게 살살 다가가서 냅다 다리를 낚아 챘습니다.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칠면조 다리가 따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뜻함을 채 느끼기도 전에 칠면조가 날개를 퍼덕이며 달아나려고 합니다. 손에 힘을 더 주니 칠면조는 그 큰 날개를 더 세게 퍼덕입니다. 바람이 일고 먼지가 날립니다. 많은 한국 분들은 칠면조가 얼마나 크고 힘이 센지 모르실거에요.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칠면조 한 마리를 집 밖으로 꺼냈습니다. 왠지 뿌듯한 기분도 들고 친구들도 박수를 쳐주더라구요. 그때부터 용기도 생기도 요령도 생겨서 처음에는 한 마리를 겨우 잡아서 옮겼다면 그 다음에는 한 손에 한 마리씩, 나중에는 한손에 두 마리를 잡아 옮겼습니다.

생존 아랍어 한 마디

 

'고맙습니다(thank you)'는 ‘슈크란’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괜찮아유~(your welcome)'의 뜻으로 ‘아프완’이라고 합니다. ‘네’, ‘그래’ 등 yes라는 말은 ‘나암’이라고 하고, ‘아니’ ‘싫어’ 등 no의 뜻으로 ‘라’라고 하지요. 한국에서 ‘거시기’ 수준의 말은 없냐구요? 아마 팔레스타인인들과 생활하시다보면 수 천 개의 뜻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는 한마디 ‘얄라’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게 될 겁니다.

차에 어느 만큼 칠면조를 실어 보내고 나서 마흐무드와 마제드와 함께 쉬었습니다. 바위 위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마흐무드가 핸드폰으로 노래를 틉니다. 한국에서 저에게 핸드폰은 걸고 받고 문자가 전부였는데 여기 사람들은 참 여러 가지 용도로 씁니다. 걸고 받는 것은 기본이고 사진도 찍고 노래도 듣고 계산기로도 쓰고 블루투스를 이용해 파일도 주고 받고 그러더라구요. 쿵짝쿵짝 노래가 나오니 친구들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노래는 노래방, 춤은 클럽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수시로 곳곳에서 춤과 노래가 벌어집니다. 칠면조를 나르느라 땀을 흘려 웃옷을 벗고 있던 우리들은 노래가 나오자 팔레스타인의 달빛 아래서 함께 춤을 췄습니다. 저의 춤 실력이야 엉망진창이지만 어울리기 위해 일을 하듯 어울리기 위해서 춤을 췄지요. 그들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돼지고기 먹으면 병나는 거 아니에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칠면조를 먹냐구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칠면조하면 미국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봤을 겁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아요. 한번은 한국에 있는 팔레스타인 친구와 식당에 갔다가 그 친구가 돈까스를 시키는 거에요. 그래서 ‘어? 이 친구는 돼지고기를 먹나?’ 싶었죠. 그렇게 한참 밥을 먹다가 우연히 제가 이거 돼지고기라는 말을 하니깐 함께 있던 두 명의 팔레스타인 친구의 얼굴색이 싸악 변하더라구요. 갑자기 돈까쓰를 먹던 친구는 토하는 자세를 취했고, 옆에 있던 친구도 얼른 화장실 가서 뱉고 오라고 합니다. 그 친구는 닭고기인 줄 알고 시켰고, 저는 돼지고기를 먹는 무슬림인줄 알고 가만히 있었던 거지요. 여러분도 언젠가 무슬림을 만날 일 있으면 삼겹살이나 돈까스 같은 것을 먹으러 가자고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에요. 김치찌개를 시킬 때도 돼지고기를 빼 달라고 하는 것이 무슬림 친구를 위한 길일 거구요.

 


이슬람에서는 돼지가 더럽고 병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 돼지를 먹으면 사람의 몸도 마음도 해친다는 거지요. 신종플루가 떠도는 것을 보면서 ‘거 봐. 돼지고기를 먹으니깐 저렇게 되는 거야’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삼겹살에 쏘주 한 잔 하는 걸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도대체 이해 안 되는 거지요. 소고기나 닭고기와 무엇이 다르냐고 따지고도 싶을 거구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아버지들의 아버지]라는 소설에서는 돼지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혹시 이슬람도 불교처럼 채식을 가르치냐구요? 물론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몇몇 동물과 이슬람 방식으로 잡지 않은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지요. 돼지고기에 대한 무슬림들의 반응은 아마 한국 사람들이 누군가 쥐를 잡아먹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요즘 중국에서도 ‘도덕의 세계적 수준’을 맞춘다고 개고기를 금지하느니 마느니 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던데, 어떤 분들은 개고기 먹으면 큰일난다고 생각하지요. 더운 여름 논밭에서 일하다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개고기 먹으며 기운을 내는 농민들이 들으면 우스운 이야기 일테구요. 인도에 많이 살고 있는 힌두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지요. 이슬람에서는 돼지를 더럽다고 생각하고, 힌두교에서는 소를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차이가 있겠네요. 제가 한동안 인도에 있었는데, 인도에는 힌두도 많고 무슬림도 많잖아요. 그러니깐 돼지고기도 소고기도 모두 보기 쉽지 않지요.

 

누군가는 ‘꼭 그렇게 해야 된다’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별 일도 아닌데’가 되어 버리지요. 아무튼 사회에 따라 꼭 먹으라는 것보다는 꼭 먹지 말라는 것들이 있으니 그 사회에 가면 그냥 거기에 맞게 조심하면 될 것 같아요. 팔레스타인에 있는 식당에 가서 ‘돈까스 있어요?’라고 하지 않으면 되는 거지요.

 

익숙해지는 낯선 것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떤 고기를 먹냐구요? 주로 닭고기나 양고기, 소고기 같은 것을 먹어요. 예수나 기독교와 관련된 이야기 가운데 양치기에 대한 것이 여러 개가 있지요. 사진이나 그림에서 보듯이 팔레스타인에서는 실제로 양치기들이 개와 함께 양을 몰고 다닙니다. 그러면 그 양은 어디에 쓰겠습니까? 양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냠냠쩝쩝이지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먹는 여러 고기 가운데 하나가 칠면조입니다. 칠면조는 닭보다는 크고 타조 보다는 작다고 해야 할까요? 여기 농장에서는 칠면조를 산 채로 팔기도 하고 잡아서 팔기도 해요. 동네 사람들이 한, 두 마리 사러 오는 경우도 있고, 소매업자들이 도매로 한 차 가득 실어가기도 하지요. 일이 적을 때는 주로 아이만이나 무함마드가 칠면조를 잡고, 일이 많을 때는 잘 잡는 선수(?)를 초빙해서 돈을 주고 잡아요.

 


칠면조를 잡고 있는 아이만. 놀라는 분이 있을 것 같아 칠면조 모습은 쓰윽쓰윽 지웠음


칠면조 집에서 칠면조를 꺼내서 도축장으로 가지고 들어 갑니다. 그러면 그 안에는 아래쪽이 좁은 깔대기 모양의 통에 있어요. 거기다 칠면조를 머리부터 넣으면 깔대기 아래에 구멍이 있어서 칠면조 머리만 쏘옥 아래로 삐져 나오죠. 그러면 사람이 칼을 들고 칠면조의 목을 따서 피를 빼요. 이렇게 피를 빼서 고기를 만드는 것이 이슬람 방식이라고 해요. 무슬림들은 이렇게 피를 뺀 고기를 먹어야 된다고 하구요.

 

칠면조는 통에 들어가 죽으면서 소리도 치고 퍼덕거리기도 해요. 처음에는 그렇게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운 마음도 있었고, 칠면조의 목을 따는 것도 칠면조가 퍼덕거리는 것도 피가 바닥에 흐르는 것도 보고 있기가 편치 않았어요. 칠면조 잡던 손으로 반갑다고 악수하자며 손을 내밀 때도 겉으로 표는 안 냈지만 속으로는 약간 망설임이 있었구요.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익숙해져서 아이만이나 무함마드가 칠면조를 잡고 있으면 옆에 가서 ‘제이옛(good)'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해요. 제가 그들의 일에 익숙해져가는 만큼 그들 또한 저를 가깝게 느끼는 것 같구요.




팔레스타인, 노을 아래 진다




선물 07_아랍식 이름에는 무함마드나 마흐무드 같은 것 밖에 없냐구요?

 

시 내에서 사람이 많은 길을 가다가 큰 소리로 무함마드Mohammad나 마흐무드Mahmoud, 아베드Abed, 칼리드Khalid 등의 이름을 불러 보세요. 아마 수 십 명이 동시에 쳐다볼 겁니다. 다른 이름도 있지만, 남성들의 경우 이런 것들이 가장 흔한 이름이지요. 여행을 하다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나서 수첩에 적어 두시고 싶으면 꼭 이름 뒤에 사는 동네나 특징을 적어 두세요. 나중에는 그 이름이 그 이름이어서 헷갈릴 때가 있을 거에요. 여기서 자주 어울리는 무리 안에도 마흐무드가 둘이나 있어서 같이 있을 때 ‘마흐무드’라고 부르면 둘 다 쳐다 본 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저희 반에 저를 포함해 영민이가 3명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 랍식 이름의 구성은 한국과는 조금 달라요. 예를 들어 와엘의 이름을 모두 쓰면 ‘와엘 압델라흐만 유세프 오마르Wael Abdelrahman Yousef Omar’입니다. 맨 앞에 자기 이름, 다음에 아버지 이름, 다음에 할아버지 이름, 마지막에 집안 이름(성)이 오지요. 그래서 이름만 잘 봐도 ‘뉘 집 자식’인지 알 수 있게 된답니다.





팔레스타인 그룹 DAM 의 BORN HERE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괴롭히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