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팔레스타인, 사람의 가슴에 물든'이 나으려나?)
09_나도 칵테일 좋아해요!
며칠 전에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며 동네에서 부업으로 컴퓨터 가게를 하고 있는 니달이 우리가 술 생각 날 것 같다며 술을 사 온 거예요. 뜻밖이었지요. 니달은 다른 사람에게 무슬림이 되라고 억지로 떼를 쓰지는 않지만 본인은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하거든요. 그런 니달이 맥주를 사 왔으니 말입니다. 저는 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더운 여름밤에 시원한 맥주 한 잔도 괜찮다 싶어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들이켰지요. 근데 이게 웬 일입니까... 이게 술인지 음료수인지 모르겠더라구요.
니달이 사 준 맥주병(왼쪽)에 적혀 있는 자랑스런 한 마디' 무알콜'
니달의 설명은 이슬람에서는 술을 먹지 말라고 하니깐 이슬람 맥주라는 것이 있어서 맛은 술인데 알콜이 0%인 맥주라는 거죠. 병에도 자랑스럽게 0%라고 적혀 있네요. 니달이 마시는 그냥 음료수에도 알콜 0%라고 적혀 있구요. 맥주 아닌 맥주로 음주를 대신하는 상황에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무튼 먼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심심해 할 것 같다고 일부러 맥주를 사 온 니달한테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면 팔레스타인에서는 전혀 술을 살 수 없냐구요? 그런 건 아니에요. 예루살렘이나 라말라, 베들레헴 같은 큰 도시나 기독교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 가면 식당이나 수퍼에서 술을 팔기도 해요. 아예 술 판매 전문점도 있구요. 소주나 막걸리는 없지만 각종 맥주와 위스키 종류가 많습니다.
팔레스타인 회사에서 만드는 맥주도 있구요. 이슬람에서는 술을 못 먹게 한다면서 어떻게 술을 만드냐구요? 팔레스타인인들 가운데는 기독교인들도 있는데 이 분들이 술 만드는 일을 하시나 봐요. 다양한 종교가 어울려 사는 데서 오는 장점이라고 할까요?
술을 판다는 것은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지요. 한국처럼 곳곳에 술집이 있거나 하진 않지만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모였을 때 가볍게 한 잔씩 하곤 하지요. 이슬람에서 먹지 말라고 했는데 왜 먹냐구요? 불교인이라고 모두 채식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
칵테일 먹으러 가요
오늘도 무지 더운 날이었습니다. 낮에는 집안에서 꼼짝 안하고 있었지요. 영화 같은데서 보면 천장에 선풍기가 달려 있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도 그랬지만 그게 뭐 얼마나 시원하겠냐 하시는 분이 계실 거예요. 하지만 그 선풍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그야 말로 ‘감사합니다. 하느님’이랍니다. 바람이 시원하기도 하고 환기가 잘 안 돼서 답답할 때도 선풍기를 틀면 시원한 공기가 들어오거든요.
오늘은 친구들과 놀다 술 얘기가 나왔습니다. 이 동네에서는 술을 안 먹어요. ‘하람(금기)’이지요. 그렇다고 우리가 술 먹는다고 욕 하거나 그렇지도 않구요. 여기서는 술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에요. 한국 사람들이 모여 마리화나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신기하듯이 말입니다.
어떤 분은 사람이 술을 먹으면 모두 정신이 이상해지는 줄 알고 계시기도 하고, 마약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지요. 예전에 요르단에서 만난 이슬람(이름이 이슬람)이라는 친구는 수업 시간에 배웠다며 책을 보여 주면서 사람이 술을 먹으면 어떻게 이상해지는 지를 열심히 설명해 주기도 하더라구요. 술 먹고 이상한 짓 하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그리 생각하는 것도 아주 엉뚱한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사람 마음이란 것이 그렇잖아요. 자기가 해 보지 않은 것은 신기하게 느끼지요. 팔레스타인 친구들과 한국의 술 문화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칵테일 얘기가 나왔어요. 맥주나 위스키는 워낙 유명한 거라 대신 칵테일에 대해서 물어 봤어요.
“와엘, 칵테일 먹어 봤어요?”
“그럼. 나도 칵테일 좋아해요”
“정말?”
“툴카렘에 칵테일 먹으러 갈래요?”
“지금?”
“응 지금”
그렇게 해서 우리 패거리는 갑자기 차를 타고 툴카렘으로 나갔습니다. 이 동네는 시골 마을이라 술이 아예 없지만 툴카렘 시내에는 칵테일을 파는 가게가 있나 보다 했습니다. 꼭 술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에서 친구들과 여름밤에 칵테일 한 잔 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
이스라엘 군의 공격과 봉쇄 때문에 밤은 물론이요, 낮에도 마음대로 어디를 갈 수 없는 것이 생활이 되어 버린 사람들과 함께 시원한 바람 쐬며 밤거리를 달린다는 것도 좋았구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두들겨 부수는 동안 서안지구에 속해 있는 이곳은 그나마 요즘 다니기가 조금 수월한 상황이거든요. 이 짧고 작은 자유가 언제, 어떤 모양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드디어 차가 어느 가게 앞에 멈췄고, 저의 기대는 와르르․폭삭․왕창․쿵하고 무너졌답니다. 와엘이 말한 칵테일도 칵테일은 칵테일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칵테일은 술이 들어간 칵테일이었고, 와엘이 말한 칵테일은 과일과 아이스크림과 주스가 섞인 칵테일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섞어서 먹기는 마찬가지지요. 단 한 가지 알콜이 안 들어갔다는 것 뿐. 아무튼 와엘은 자기도 좋아하고 미니한테 맛있는 것 사 줬다고 흐뭇해했습니다.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
와엘의 차 안. 모든 계기판은 멈췄고 차 문도 가끔 안 열린다. 달리던 차의 시동이 자주 꺼지는 것은 아님 ^.^
그래도 오늘 밤에 큰 성과가 하나 있었다면 처음 라말라에서 데이르 알 고쏜으로 올 때 탔던 그 새 차의 정체를 알았다는 겁니다.
“와엘, 그런데 내가 여기 처음 오던 날 탔던 그 차는 어디 갔어요? 그날 이후로는 한 번도 못 봤는데...”
옆에 있던 마젠이 푸하하 크게 웃으며 대답을 해 줍니다.
“사실 그건 와엘 차가 아니고 와엘이 한국 친구들 데리러 간다고 돈을 주고 렌트를 한 거에요”
“네? 렌트요?”
“이 차는 낡고 그래서 와엘이 일부러 빌렸어요”
그냥 버스 타고 오라고 해도 되는데 1시간 넘게 차를 운전해서 라말라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우리를 데리러 온 것도 모자라서, 지금 타고 다니는 차가 많이 낡고 그랬다고 큰 돈을 내고 차를 빌려서 오다니... 한국 사람들 같으면 팔레스타인에서 손님이 온다고 그렇게까지 할까 싶습니다.
콜록콜록
동네에 남아 있는 친구들 주려고 칵테일을 몇 개 더 사서 손에 들고 차에 탔습니다. 차를 타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역시나 와엘과 마젠이 담배를 핍니다. 저는 한국이든 여기든 가끔 그냥 재미 삼아 한 대 피는 정도입니다. 이스라엘이 열 받게 하면 조금 더 피우구요. 여기서 친구들과 지내다 보니 그나마 피던 담배도 거의 안 피우게 됐습니다. 왜냐구요? 저도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서요.
정말 담배를 엄청 피워댑니다. 술을 안 먹어서 그 보상으로 담배를 냅다 피워대는지 모르겠지만 청소년들부터 노인들까지 그야말로 너구리 소굴입니다. 손님이 오면 차를 권하듯이 담배를 권하고, 응접실에는 여러 개의 재떨이가 놓여 있습니다. 각자 하나씩 갖고 담배를 터는 거지요. 남성들의 흡연율이 여성에 비해 훨씬 높구요. 정확한 얘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여기 친구들의 말로는 러시아에 이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세계에서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하네요.
자말 담뱃갑 위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쏜 고무총탄 파편을 올려 놓은 모습
여기 있는 친구들이 제일 많이 피우는 담배는 자말(JAMAL)입니다. 9셰켈로 제일 싸지요. 제일 싸다고 해도 한국의 담뱃값에 비하면 엄청 비싼 거지요. 더 싸게 피우고 싶은 사람들은 담뱃잎과 필터와 종이를 따로 사서 직접 만들어 피우기도 합니다. 자말은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시골 사람들일수록 많이 피우지요. 예전의 한국으로 치면 시골의 청자와 도시의 88이라고 할까요?
자말과 관련해서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야 대부분이 한국산 담배를 피우고,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이나 일본 담배도 많이 피우게 됐지요. 팔레스타인은 그 반대로 대부분의 담배가 일본, 미국, 프랑스 등지에서 온 것들이고 아랍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만드는 담배는 자말과 다른 두 어 가지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으로 치면 ‘국산품 애용운동’ 삼아 자말을 피우자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자말이 엄청 독한 담배라는 겁니다. 제가 청자, 백자, 백솔, 도라지 등등 여러 담배를 피워 봤는데 자말은 청자와 가깝다고 하면 될지 모르겠네요. 제가 담배를 안 피워도 피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 대부분이 담배를 피우고, 또 대부분이 자말을 피우고, 그 연기 속에 있다 보면 어떤 때는 머리가 띵하고 기침이 나올 정도입니다. 예전에 한국에서도 그랬듯이 애기들이 옆에 있든 말든 피워대지요. 안타까운 것은 폐암 환자가 엄청 많다는 것입니다. 어디 누구 집에서 초상이 났다고 하면 ‘또 폐암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폐암도 안타깝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어요? 그냥 담배나 피우는 거지’라는 말을 들으면 제 마음까지 답답해집니다. 어디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고,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고, 수시로 사람들은 이스라엘 군인한테 끌려가거나 총 맞아 죽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부패해서 제 잇속만 챙기며 사람들을 분노케 하는 상황에 살다보면 그 속 타는 마음이 오죽 하겠습니까. ‘휴~’하며 담배 연기와 함께 한 숨을 내뱉으며 ‘이 놈의 세상’하기도 했다가 ‘이번에는 좀 달라질까?’ 싶기도 하겠지요.
담배를 좀 적게 펴서 모두들 건강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그 답답한 마음을 달리 풀어줄 방법도 없어 되레 저까지 담배를 입에 물게 됩니다.
선물 09_ 비둔 수까르
여러분이 만약 팔레스타인인의 집에 놀러 가면 커피나 홍차를 대접하는 경우가 많을 거에요. 물론 콜라나 주스 같은 것을 내어오는 집도 있는데, 기본이 커피와 홍차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에요. 커피는 한국에서 흔히 보는 믹스 커피와도 다르고 요즘 많이 퍼지고 있는 내려먹는 커피와도 달라요. 주전자에 물을 끓인 뒤에 커피 가루를 넣어서 마시는 방식으로 커피 잔에 커피 가루가 그대로 가라 앉아 있기도 해요.
한국에서 ‘잔칫집 스타일’이나 아메리카노와 같이 연한 커피를 벌컥 벌컥 들이키시던 분은 아주 진하다는 생각을 하실 거에요. 조금 익숙해지면 에스프레소를 마시듯이 아랍 커피의 진한 맛에 오히려 끌릴 수도 있구요. 제가 그렇거든요. 믹스 커피나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엥? 이거 뭐 이렇게 싱거워’ 싶어요.
차는 샤이(한국에서는 차, 인도에서는 짜이라고 하지요)라고 해요. 여기 사람들은 차에 설탕을 타서 먹어요. 설탕을 적게는 차 숟가락으로 하나, 많게는 세 숟가락씩 넣고 마시는 사람도 있어요. 이상하게 느껴지죠? 한국에서는 커피 아니고서야 차에 설탕을 넣는 경우는 없으니 말입니다. 차에 설탕을 넣으면 달기도 하지만 독특한 맛이 나요. 여러분도 한국에서 홍차를 마시게 되면 차에 설탕을 한 번 넣어보세요. ‘어? 단맛만 나는 것은 아니네’ 하실 거에요.
문제는 커피·차, 커피·차를 반복해서 권하는 경우에요. 저처럼 음식이 단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은 설탕 든 차를 계속 마시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어느 집에서 차를 대접하겠다고 하면 미리 ‘비둔 수까르(설탕 넣지 마세요. 영어의 no sugar 정도의 말)’라고 말을 한답니다. 수까르는 영어의 슈거sugar하고 발음이 비슷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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