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10_알 자지라로 영어 공부를? - 첫 번째 이야기

순돌이 아빠^.^ 2010. 3. 2. 14:12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10_알 자지라로 영어 공부를? - 첫 번째 이야기

 

어제는 마흐무드 집에 놀러 갔는데 아랍 음악 방송이 나오고 있더라구요. 어느 집이나 가게에 가나 흔히 있는 일이에요. 하루죙일 여성들이 성적 매력을 과시하며 음악에 맞춰 허리와 엉덩이를 계속 흔들며 춤을 추고 있는 거지요. 제가 집에 들어서니 아이야가 춤을 추기 시작해요. 마흐무드에게는 누나 2명이 있고, 남동생 1명과 여동생 3명이 있는데 그 가운데 아이야는 끝에서 두 번째로 초등학생이에요.

 

 마흐무드의 세 여동생. 왼쪽 위편부터 시계방향으로 저밀라, 아이야, 마라

 

“미니, 미니 나 봐요”

 

아이야가 먼저 저 보라면서 허리와 엉덩이, 손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춤을 춰요. 그러면 막내 마라도 나서지요.

 

“미니, 미니 나도 나도”

 

하면서 마라가 언니를 따라 춤을 추면서 자기를 보라고 해요. 마라가 자기를 보라고 할 때 안 보면 난리가 나요. 고개가 다른 곳에 돌아가 있으면 작은 손으로 제 머리를 잡고 고개를 자기 쪽으로 돌려서라도 보라고 그래요. 그런데 마라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언니를 따라 하기는 하는데 춤사위가 제대로 안 나와요. 그에 비해 아이야는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정말 춤을 잘 춰요.


아이들이 춤을 추면 저는 할아버지가 손주 재롱잔치 보는 것도 아니고 즐거워 박수를 치지요. 주머니에서 사탕이라도 꺼내서 줘야 할 것 같아요. 남성인 제가 여성들의 춤을 보기는 쉽지 않아요. 잔치가 벌어져도 여성들은 여성들끼리 있을 때만 춤을 추거든요. 라말라 같은 도시나 개방적인 분위기의 사람들과 있으면 여성들과 함께 맥주도 마시고 춤도 추고 그러지만 말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독도 수호를?

 

오늘도 친구들과 모여 저녁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봤어요. 사실 텔레비전을 본다고 해야 아랍어로 나오는 거라 그냥 화면만 봐요. 와엘이 한 번씩 혼자 뉴스를 보고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화면만 봐도 대강 무슨 일인지 알거나 물어 볼 수 있으니깐 옆에 앉아서 같이 보기도 해요. 그러지 않고 여러 사람이 모이면 뉴스를 보는 경우는 잘 없어서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가 나오면 그냥 남들 웃으면 웃는 정도지요.


팔레스타인에 방송국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구요? 모두 위성 텔레비전이에요. 한국은 KBS, MBC, SBS 등 공중파를 중심으로 케이블과 위성 텔레비전이 있지요. 한국에서는 한국말로 하는 방송, 일본에서는 일본말로 하는 방송, 중국에서는 중국말로 하는 방송이 있구요. 그런데 팔레스타인은 달라요.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쏘아대는 수 백 개의 아랍어 위성 텔레비전이 있어요. 그걸 중계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회사가 몇 개 있구요. 미국과 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같은 조직들도 각각 방송을 하고 있지요. 미국계 방송인 FOX도 몇 개의 채널을 가지고 있구요.


어떤 방송에서는 하루죙일 꾸란을 읽어 줘요. 한국에서 불자이신 할머니들이 집에서 불경 읽는 것을 틀어 놓는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에요. 또 어떤 방송은 하루죙일 인도 영화만 나와요. 마흐무드 작은 누나인 슈룩도 인도 영화 채널과 인도 배우들을 좋아해요. 마흐무드 동생 아셈도 유튜브에서 인도 영화배우들 영상 찾아보는 걸 좋아하구요. 저도 춤과 노래가 많이 나오는 인도 영화를 좋아해서 ‘나도 샤룩칸 좋아해’ 하면서 슈룩이나 아셈과 의기투합(?)을 하기도 하지요. 어려운 점은 여기서는 힌디로 말하고 아랍어로 자막이 나오니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알아먹으면 같이 영화를 볼 건데...

 

아랍 영화도 있냐구요? 이집트 쪽 영화가 많아요. 내용은 사랑 이야기 뭐 그런 건데, 뽀뽀 하는 장면에서는 입술이 닿기 전까지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다 입술이 닿는 순간에는 카메라가 갑자기 하늘이나 날아가는 새를 비추기도 해서 사람 속 터지게 해요. 

 

팔레스타인에서 독도를 지키자는 방송을 보게 될 줄이야


시를 읽으며 시에 대해 토론하는 방송을 볼 때는 신기하기도 하고 아랍의 문화와 전통이 보통이 아니구나 싶기도 했어요. 하기야 발전된 아랍의 수학·과학·의학 등이 유럽으로 넘어갔고, 유럽 국가들이 세계를 정복하면서 이것들이 다시 세계 곳곳으로 퍼졌으니 말입니다.  한국에서 지금 쓰고 있는 많은 것들의 뿌리가 아랍일 수도 있겠네요.

 

그러고 보니 한국으로 치면 이제 고3인 아셈의 꿈이 시인이네요. 그 밖에도 드라마, 뉴스, 어린이, 만화 등 여러 가지 방송이 있어요. 전 한국에서 보다 팔레스타인에 와서 ‘쩐의 전쟁’ ‘스타킹’ 등 한국 방송을 더 많이 본 것 같아요. 아랍어 자막이 나오거나 아랍어 더빙을 하는 [코리아 TV Korea TV]라는 것이 있어서 한국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을 보여 주거든요.

 

다른 목소리

 

수많은 채널 가운데 하나가 알 자지라(al Jazeera)에요. 팔레스타인인들이 주로 보는 뉴스 프로그램이 알자지라이기도 하고, 제 컴퓨터로 인터넷을 접속하면 제일 먼저 뜨는 것이 알 자지라 홈페이지도 하구요. 알 자지라가 뭐냐구요? 쉽게 얘기해서 미국의 CNN이나 한국의 YTN과 같은 뉴스 전문 채널이에요. 카타르에 본사가 있구요. 근데 이 알 자지라가 전 세계에 꽤 유명한 방송이에요.

 

 

영어판 알 자지라 홈페이지의 한 장면 


왜 유명해졌냐구요? 미국의 CNN과 중동의 알 자지라를 비교해 보면 돼요. 예를 들어, 2003년 미국이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잖아요. CNN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열심히 미국을 위해 방송했어요. 미국의 승리를 응원했고, 이라크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피를 흘리는 미국 군인들을 보여 줬지요. 올림픽 경기 중계하듯이 전쟁을 무슨 놀이인 것처럼 했구요. 미군은 영웅이 되었고, 이라크인들의 고통은 모른 체 했지요.


그에 비해 알 자지라는 미국의 공격으로 죽고 다친 이라크인들의 모습을 보여 줬어요. CNN이 폭탄을 떨어뜨리는 미군 비행기에서 카메라 화면을 잡는다면 알 자지라는 그 폭탄이 떨어지는 곳에서 카메라 화면을 잡는 거지요. 전쟁이 벌어지자 많은 외국 언론들이 이라크를 떠난 반면 알 자지라는 계속 이라크에 남아서 전쟁의 참혹함과 미국이 내세운 이라크의 해방이 거짓임을 말했어요. 아랍과 중동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CNN에 분노하며 알 자지라에 응원을 보냈어요. 정확한 비교일지는 모르겠지만, CNN이 미국판 조선일보라면 알 자지라가 중동판 경향신문이나 한겨레가 되어 버린 거죠.


아랍/중동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전쟁 영웅이 아니라 전쟁 피해자들을 화면에서 보게 되었고, 세계 곳곳의 반전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지요. 알 자지라는 짧은 시간에 세계 주요 언론사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구요. 한국의 방송 뉴스나 신문을 유심히 지켜보세요. 평소에는 기자들이 ‘CNN에 따르면’ ‘AP에 따르면’ 하다가 중동 지역에서 무슨 큰 일이 터지면 ‘알 자지라에 따르면’이라고 할 거에요.

 

알 자지라의 영향력이 커지자 미국이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오사마 빈 라덴도 세계에 전달할 메쎄지가 있는 경우는 비디오테이프를 알자지라로 보냈고, 알자지라는 이를 방송했지요. 어떻게 테이프를 전달했는지는 쥐도 새도 모르지요.


알자지라는 중동의 권력자들에게도 밉상이었어요. 자신들과 친한 미국에 대해서 진실을 말하는 것도 꼴쌍사나운데 중동의 부패한 정부들에 대해서도 비판을 했거든요. 많은 아랍 방송들은 부패한 아랍 정부들이 만들면서 그야 말로 먹고 놀자 판이거든요. 한국도 그렇고 아랍 국가들도 싫어하는 것이 민중들의 정치의식이 깨어나고, 진실을 알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깐 ‘옛다 이거나 가지고 놀아라’ 식으로 방송이 냅다 놀자 판이 되는 거지요. 아니면 ‘오늘 국왕님께서는 00를 방문하셔서...’식이 되는 거구요.


친미국 성향의 국제 언론들 사이에서 알자지라가 그야 말로 ‘다른 목소리’를 낸 거지요. 한국의 YTN이나 MBN과 비교해 보면 알 자지라가 관점뿐만 아니라 방송의 질 자체가 훨씬 뛰어나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뉴스는 뉴스라고 치고 짧은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봐도 어찌 저런 걸 만들었을까 싶어요. 그야말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에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 싶구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들은 집밖에서는 온 몸을 완전히 가리는 부르카를 써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깐 여성 기자가 차 안에 있을 때만 얼굴을 잠깐 드러내고 카메라에 대고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이것 참...’ 싶기도 하구요.


한국 사람들이 아랍/중동하면 일단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마 아랍/중동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면 그렇게 무시했던 것이 잘못이라는 걸 알게 될 거에요. 미국이 하늘인 줄 알고 살았던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거지요.  

 

 

 

선물 10. 예쁘다는 것에 대한 다른 시각

 

하루는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데 어떤 꼬마가 제 머리를 계속 쓰다듬는 거에요. 처음엔 그냥 외국인이니깐 신기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어요. 저보고 예쁘다고 하네요. 그냥 인사차 건네는 말인 줄 알고 ‘슈크란’하며 고맙다고 웃었지요. 알고 보니 제 머리카락이 신기했던 거에요. 여기 사람들의 생김새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눈이 크고 쌍꺼풀이 진하고 키도 크고 그래요. 쉽게 말해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구형이지요. 머리카락은 곱슬머리가 많아요. 그러니깐 저처럼 쭉 뻗은 직모가 신기하기도 하고 예뻐 보이기도 하나 봐요. 한국 사람들은 일부러 빠마를 해서 뻗은 머리를 구부리는데 말이에요.


여기서는 많은 사람들이 진한 쌍꺼풀을 가지고 있어요. 쌍꺼풀 없는 동쪽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신기하고 예뻐 보이기도 할 거구요. 한국 사람들은 없는 쌍꺼풀을 만들려고 수술까지 하는데도 말입니다. 제가 인도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하루는 사람들이 저보고 한국사람 같지 않다고 하는 거에요. 이유인즉 한국이나 동쪽에서 온 사람들은 쌍꺼풀이 없고 눈이 작은 줄 알았다는 거에요. 제가 인도 가면 인도 사람 닮았다, 팔레스타인에 오면 아랍 사람 닮았다는 얘기를 듣는 것도 눈 때문이에요. 19세기에 유럽 사람들이 ‘동양’을 말하면 일본을 말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때 유럽 사람들이 말한 아름다운 일본(동양) 여성이 바로 쌍꺼풀 없고 작은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하지요.


그러고 보면 예쁘다는 건 어디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들과 함께 살며 어떤 것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