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12.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순돌이 아빠^.^ 2010. 3. 5. 12:45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12.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여러분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어떤 게 궁금하시나요? 궁금한 게 있으면 저한테 말씀 하세요. 제가 아는 거면 말씀드릴게요. 거꾸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뭐가 궁금할까요? 심심찮게 이런 대화를 하게 됩니다.

 

“한국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대부분은 잘 모르고, 언론에서 보여주는 데로 믿는 사람이 많아요”
“언론이 문제에요. 미국과 이스라엘이 언론을 쥐고 있으니...”
“그래도 몇 년 사이에 한국 사람들 가운데도 팔레스타인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한국도 예전에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식민지라고 이야기를 하면 한국 사람들이 이해를 잘 해요.”
“정말요? 좋아요. 그러면 한국 사람들한테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꼭 말해 주세요. 보세요. 저 애들이 테러리스트로 보여요? 직접 봤으니깐 알 거에요. 꼭 본대로 전해 주세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민감하게 느끼는 것 가운데 하나가 국제 사회가 팔레스타인을 어떻게 바라 보느냐와 언론이 팔레스타인을 어떻게 비추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게 순하고 잘 놀던 사람들이 이런 얘기만 나오면 눈빛부터가 달라져요. 그만큼 많이 당했고, 억울한 마음이 큰 거지요.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는 어떤가요? 한국 사회나 언론이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제대로 말을 하고 있는 가요?  혹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있지는 않나요?

 

GL과 애니쿨

 

오늘은 팔레스타인 여성농민 단체에서 활동하는 란다를 만나러 툴카렘에 나갔다 왔어요. 낮에 다니려니 정말 덥더라구요. 길에 나서자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사람을 더 덥게 하는 것 같아요.


팔레스타인에는 담배가 그렇듯이 자동차도 정말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 온갖 상표의 자동차들이 거리를 누벼요. 그 가운데 현대와 기아는 인기 좋은 차구요. 참, 여기서는 현대라고 하지 않고 ‘현다이’라고 해요. 현대를 영어로 쓰면 Hyundai가 되기 때문인가 봐요.

 

큰 웃음 주신 세탁기


잠깐 길을 걷는데 길거리에 있는 전자제품 가게 앞에 어디서 많이 보던 것이 있더라구요. LG라는 글자였어요. LG와 SAMSUNG이라는 글자는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지요. 그런데 LG면 LG인데 왠지 그 글자에서 눈이 잘 안 떨어지는 거에요.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니깐 LG가 아니라 GL이라는 상표를 달고 있는 세탁기더라구요. LG의 문양까지 비슷했어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LG 짝퉁 상품이었던 거죠. 더운 여름날 제게 큰 웃음 주시더라구요.


저는 지금 노키아에서 나온 핸드폰을 쓰고 있어요. 노키아는 핀란드 출신 기업이지요. 100~150셰켈 정도 주면 중고나 새 노키아 핸드폰을 살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노키아를 쓰는 사람이 잘 없지만 여기서는 대부분이 노키아를 써요. 요즘 인기 있는 제품은 삼성에서 나온 핸드폰이에요. 저도 아직 한 번도 안 써 본, 화면에 손가락을 대면 기계가 움직이는 거 있잖아요. 근데 이건 좀 비싸요. 어떤 사람은 노키아가 이스라엘을 후원하고 있다고 삼성 핸드폰을 써요. 순간 한국에서 삼성이 벌이는 온갖 나쁜 짓이 생각나더라구요. 


한번은 어떤 사람이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 핸드폰을 보여 줬어요.

 

“제 핸드폰이에요. 잘 보세요”
“네? 음... 뭐...”
“애니쿨이에요”
“애니쿨? 애니콜 아니구요?”
“애니콜 아니고 애니쿨이에요”
“네? 어디... 정말 애니쿨(Anycool)이네요”
“중국에서 만든 거지요. 하하하”
“하하하”

 

한국 사람들이 온갖 외국 유명 상표의 물건들을 짝퉁으로 만들어 팔듯이 중국을 중심으로 온갖 한국 상품 짝퉁을 만들어서 수출까지 하나 봐요. 팔레스타인인들이 쓰는 웬만한 공산품이 중국산인 것은 물론이고 무슬림들이 기도할 때 쓰는 작은 카페트나 아랍과 팔레스타인을 상징하는 스카프의 일종인 쿠피예(팔레스타인에서는 핫따라고 부름)까지 대부분 중국산이에요. ‘made in palestine'을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려워요.


‘나중에는 아랍 사람까지 중국에서 만들 거에요’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니 중국의 힘이 정말 대단하네요.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메이드 인 차이나’가 없으면 하루도 안 굴러 갈 거라는 거지요.

 

나블루스에 있는 YDA 사무실에서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하는 모습


많은 사람이 LG나 삼성, 현대가 한국 기업인 줄 몰라요. 한국 사람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자부심까지 느끼는 사실을 모르는 거죠. 싸다 싶으면 중국산, 좋은 물건이다 싶으면 일본산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산은 중국산과 일본산의 중간쯤으로 가격도 괜찮고 품질도 좋은 정도라고 할까요? 저야 뭐 삼성이 일본 기업이든 한국 기업이든 상관없지만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별 관심 없어요. 그나마 조금 아는 사람이 일본 식민지였다는 거, 전쟁이 있었다는 거, 남북한의 대결, 월드컵 정도를 안다고 할까요? 미국이나 이스라엘처럼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영국처럼 역사적인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처럼 돈을 많이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니깐요.


한국이 팔레스타인을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으로 느끼듯이 팔레스타인도 한국을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것으로 느끼는 것 같아요. 한국에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소수이듯이 팔레스타인에 있는 한국인들도 소수이구요. 그저 말로만 듣던 한국이란 나라에서 사람이 와서 이 조그마한 마을에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죠. 앞으로는 양쪽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만나고 함께 웃고 얘기도 하면 좋겠네요.

 

조선일보 때문에 웃고 어이 없고

 

예전에 한 팔레스타인인을 만났어요.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깐 자기도 한국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며 명함을 하나 보여 주더라구요. 거기에는 조선일보라고 적혀 있었어요. 평소에 조선일보를 좋아하지 않던 저에게 팔레스타인에 와서까지 조선일보라는 글자를 보게 되니 그리 즐겁지는 않더라구요. 하지만 팔레스타인인이야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지도 모르고, 제가 먼저 일일이 설명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아, 네~’하면서 살짝 웃고 말았지요.


그런데 대뜸 그 분이 ‘조선일보는 우파 신문이죠?’하더라구요. 약간 놀랍기도 하고 상황이 재밌기도 해서 제가 어떻게 알았냐니깐 ‘돈이 많더라구요’ 하시네요. 그냥 하하 웃었습니다. 기왕 말이 나와서 제가 조선일보는 이런 저런 신문이다라고 설명을 해 주니깐 그 분이 그럴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구요.

 

인터넷 조선일보의 기사 모습


지난 2008년 12월27일이었어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마을을 두드려 부수고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냐 늘 있는 일이지만 이 날부터는 가자지구를 완전히 박살내기 시작했어요. 22일 동안 죽은 사람의 숫자만 약 1,400명이에요. 그런데 2009년 1월8일자 조선일보에 뭐라고 났는지 아세요? (제가 꼭 여러분한테 무슨 고자질을 하는 것 같네요. ^^)


커다란 기사의 제목 부분에 “이스라엘, ‘100만 명이 로켓위협에 노출, 자위차원의 전쟁’, ‘하마스, 피폐한 경제로 민심 흔들리자 강경 전략 선택’이라고 했어요. 이스라엘은 위험에 처해 어쩔 수 없이 자위 차원에서 전쟁에 나선 것이고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는 불순한 의도로 로켓을 날렸다는 거지요.


중간에 작은 제목도 ‘하마스는 왜 도발했나’, ‘이스라엘은 왜 응전했나’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이 도발한 전쟁을 마치 하마스가 도발한 것처럼 면죄부를 줬지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과 하마스를 두들겨 부수려고 전쟁을 일으켰는데 갑자기 팔레스타인인들이 멀쩡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려고 전쟁을 일으킨 셈이 되어 버린 거에요. 어이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요?


이 사례 말고도 그동안 조선일보가 한 일을 생각하면 참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조선일보가 이렇게 한 번 떠들고 나면 저희는 그 뒷수습(?)을 하는데 엄청 애를 먹어요. 조선일보와 제가 활동하는 단체의 영향력이 다르잖아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꼭 테러리스트라는 말은 아니어도 왠지 팔레스타인하면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되거든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콜럼부스 하면 위인전기에서 보듯이 아주 훌륭한 인물로 배웠잖아요.  세월이 지나고 나서 콜럼부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냥 콜럼부스하면 왠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지요. 하지만 사실은 콜럼부스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면서 현지 사람들을 죽이고 강간하고 노예를 끌고 가고 온갖 질병을 퍼뜨렸죠. 우리가 가지는 느낌과 사실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겁니다.

 

주로 어울리는 사람들. 누워 있는 저를 빼고 왼쪽부터 아셈, 이합, 와엘, 마흐무드, 무함마드


조선일보가 뭐라고 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뭐라고 하던 제가 여러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제 친구들은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엄마 뱃속에서부터 싸움꾼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라는 거에요. 한국 사람들에게 억지로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라고 하면 물대포 맞아가면서 시위도 하고 그러잖아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부당한 일을 당하니 한국 사람들처럼 시위도 하고 항의도 하고 그러는 거에요. 


한국과 팔레스타인, 서로 오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로 잘 알아야 하겠지요. 아랍 속담에도 서로 알아야 친해진다는 말이 있다네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 이유도 서로 잘 알기 위한 것일 거구요.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여러분들이 ‘그렇지.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사람이고, 우리랑 뭐 그리 다를 것 있겠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한국 사람들처럼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화나면 큰소리치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사람이지요. 사람과 사람으로, 아름답고 따뜻한 인연으로 한국과 팔레스타인이 만났으면 좋겠어요.

 

 

선물 12. 헐, 우째 그런 일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축구 한-일전에 흥분하는 한국인들을 보면 이상하게 느끼겠지요. 하지만 한국-일본의 역사를 알면 사람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역사를 잘 알아야겠지요.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팔레스타인이나 이스라엘과 관련된 잘못된 이야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떠돌아다녀요. 여러분은 혹시 보신 거 있으세요? 오늘은 많은 얘기를 할 수는 없으니깐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홈페이지(http://seoul.mfa.gov.il)만 잠깐 볼까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1967년 6일 전쟁’ 부분만 보지요.

 

이집트와 요르단 국경, 너머 아랍 테러 단체들의 기습이 격화되고, 북부 갈릴리 지방의 농경 정착촌에 대한 시리아 포대의 지속적인 포격과 인접 아랍 국가들의 막대한 군비 등으로 이스라엘의 평온이 깨지게 되었다...이스라엘은 고유한 자위권을 발동하여 1967년 6월 5일 남부의 이집트에 대하여 선제공격을 가했으며, 뒤이어 동부의 요르단에 대하여 반격을 가했다. 그리고 시리아 군대의 진로를 북부 골란 고원에서 저지시켰다.

 

이스라엘과 조선일보는 친구인가 봐요. 완전히 상황을 거꾸로 뒤집어서 말하네요. 67년 전쟁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미국은 아랍 민족주의 운동, 사회주의 운동의 힘이 강했던 이집트와 시리아를 무너뜨리고 석유가 많은 중동 지역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고 싶어 했지요. 주변 아랍국가에 비해 무력에서 앞섰던 이스라엘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앞장서 전쟁을 일으켰고, 단 6일 만에 승리로 이끌었지요. 그리고 단번에 시리아의 골란고원,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집어 삼켰습니다. 미국에게도 잘 보이고 땅도 많이 차지한 일타쌍피인 전쟁이었던 거죠. 나중에 시나이 반도는 돌려 줬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점령하고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