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14.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순돌이 아빠^.^ 2010. 3. 9. 12:54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14.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세월 참 빨라요. 3년 만에 라말라에서 라에드를 만났습니다. 라에드는 라말라 옆에 있는 비르제이트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주 바빠 보입니다. 지금 아파트에서 같이 사는 친구가 곧 나갈 거라서 그 다음부터는 아무 걱정 말고 자기 집에 와서 지내도 된다고 하네요. 하지만 제가 라말라에서 지낼 생각이 없어서 그냥 고맙다고만 했어요.

 

“세미나가 있어서 독일에 갔었어요”
“우와 정말이요? 이번에 저도 팔레스타인 오느라 비행기 타고 독일 들렀다 왔어요”
“어디요?”
“프랑크푸르트요. 프랑크푸르트에 가 본 것은 아니고 그냥 비행기만 갈아타고 왔어요”
“한동안 여러 나라 사람들과 같이 지냈는데 독일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더라구요. 하루에 3~4시간씩 자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일하더라구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너무 게을러요”
“음...”

 

우리 동네 슈룩도 아랍 남자들은 너무 게으르다고 불만이에요. 저는 라에드나 슈룩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런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니깐요.

 

그야말로 마음 다해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마흐무드가 농장에서 알바 삼아 칠면조를 잡고 있는 모습.

저 칠면조는 잠시 뒤 하늘나라로...


하지만 너무 바쁘게만 살면서 왜 사는지도 잊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다 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한국에서 살다 온 저에게는 3~4시간씩 자면서 열심히 인지 바쁘게 인지 하여튼 그렇게 사는 독일 사람들이 부럽지 않지요. 오히려 팔레스타인에서 느리게 돌아가는 시간이 마음 편하게 느껴지구요.


여기서는 시간 약속이 잘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아요. 어떤 때는 그게 황당하기도 하지만 그게 익숙(?)해지면 삶이 너무 빡빡하지 않고 좀 느슨한 것 같아서 좋기도 해요. 끝임 없이 약속을 만들고 끝임 없이 약속을 확인하고 바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같아 허전해 지는 한국에서의 생활에 비하면 한 숨 돌릴 수 있는 거지요.

 

시간의 의미

 

“내일 우리 집에 놀러 와요”
“좋아요. 몇 시쯤 갈까요?”
“뭐, 저녁 때 와요”
“좋아요. 그러니깐 몇 시쯤...”
“저녁 먹고 올래요?”

 

사람들이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했을 때 나누게 되는 대화 내용이에요.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 때 찾아가려고 ‘몇 시, 몇 분’을 물으면 상대방은 ‘저녁 때’ ‘밤에’ 식으로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처음엔 이런 식의 대화가 낯설어서 시계를 보여 주면서 정확한 시간을 재촉하고도 했어요. 7시, 7시30분 등 정확하게 시간을 잡아야 마음이 편해지는 거지요. 무언가를 한 것 같구요. 지하철이 1, 2분만 늦게 와도 욕을 해대는 사람이 많은 한국에서 살다 왔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자꾸 ‘몇 시’를 묻는 저를 보고 약간 이상하게 느꼈을 지도 모르겠네요.

 


여기서 한동안 생활을 하다보니 ‘저녁 무렵에 만나자’는 식의 말에 익숙해지더라구요. 이런 식의 삶이 사람에게 여유를 주는 것 같아요. 삶의 긴장감도 덜 하구요. 그래서 ‘저녁 무렵’하면 저녁 먹고 좀 쉬었다가 ‘이제 가 볼까?’ 싶으면 마실을 가는 거에요. 다른 사람의 집에 마실을 가는 길인데도 여기저기서 자기 집에 오라고도 하고 팔을 잡아끌기도 하지요.

 

“우리 집에 잠깐 왔다 가요”
“고마워요. 그런데 00네에 가기로 해서...”
“00? 괜찮아유~ 내가 전화할게요”
"아... 네...“

 

그러면 정말 그 사람이 00한테 전화를 걸어서 미니가 우리 집에 있다가 갈 거니깐 그리 알고 있으라고 해요. 00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라고 하고, 나중에 먼저 들른 자기 친구 집은 어땠냐고 물어보고 그래요.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집을 찾고, 사람들이 정말 마음으로 따뜻하게 맞아 주니 차 한 잔도 그리 맛날 수가 없고 말이 안 통해도 행복해지는 거지요.


‘요즘 바쁘죠?’ ‘바쁘실 거니깐 본론만 얘기 할게요’와 같은 말들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저에게 사람과 시간에 대한 여유로움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게 해 준 거지요. 사람 만나는 것이 반갑고 기다려져야 할 건데 ‘바쁘실텐데 제가 괜히 찾아뵌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하며 미안해하는 일이 많아져 버린 제 삶을 되돌아보게 하더라구요. 사람을 위해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사람을 끼워 맞추면서 살았던 것은 아닌가 싶었구요.

 

관계의 의미
  
“부모님들과는 자주 만나요?”
“일년에 두세 번 정도요”
“네? 왜 그것 밖에...”
“그냥... 저는 우리 동네에서 딱 한 사람 알고 지내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는 옆집에 사는 사람 한 명만 1년에 서, 너 번 잠깐 얼굴을 볼 뿐이에요. 나머지는 우리 동네에 누가 사는 지 아무도 몰라요. 제가 집에서 혼자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에요”
“네? 정말이요? 왜요?”

 

쉽게 말해 옆집에서 오늘 저녁에 뭐 먹었는지, 어느 집 애가 학교에서 사고를 쳤는지를 다음 날이면 온 동네 사람이 다 아는 동네에서 저 같은 사람의 얘기가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수도 배관 고치러 온 아빠를 따라온 쿠사이. 낯설어서 그런지 가까지 가면 도망 가네요.

한 번은 혼자 길을 가다가 제가 동네 꼬마가 쏜 장난감 총알에 맞았어요. 기분이 안 좋더라구요. 하지만 친구들이 알면 안 좋아할 것 같아서 집에 와서도 말 안하고 있었는데, 이미 다 알고 있더라구요. 와엘이 굳은 표정으로 괜찮냐며 미안하다고 그래요. 와엘이 미안해 할 일도 아니고 애들이 그럴 수도 있다고 그랬지요.


사람의 관계에서 보자면 한국의 도시 생활과 팔레스타인의 시골 생활이 장단점이 있어요. 서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함께 돕고 풀어가려고 하지요. 또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뭘 마음대로 할 수 없기도 해요. 앞에서는 뭐라 하지 않는 경우도 뒤에서 계속 수군덕거리거든요. 말 그대로 소문나는 게 아주 무서워요.


그러니깐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연애를 하는 일이 벌어져요. 그게 무슨 말이냐구요? 이스라엘 도로봉쇄와 검문소 때문이기도 하고 툴카렘 시내에서 데이르 알 고쏜으로 들어오는 차가 대여섯 시면 떨어지기도 하니 사람들이 다른 지역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소문이 나면 결혼을 하든지 어떻게 해야 돼요.


한 번은 친구와 길을 걸어가는데 저기서 사랑하는 사람이 걸어오는 거에요. 그런데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체를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더라구요. 어떤 경우는 양쪽 집안에서 두 사람 결혼에 합의한 뒤에 약혼을 하고나서부터 연애를 시작하기도 해요. 마음대로 누구를 만나거나 하기가 어려운 거죠.


그런데 사람이 어디 하지 말라고 안 하게 되나요? 이런 저런 일로 우연히 만나게 됐든 친구가 소개를 해 줬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메신저나 핸드폰으로 계속 연락을 해요.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만남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메신저가 만남의 길을 열어주는 거지요. 메신저나 핸드폰으로 사진도 오가구요. 물론 주변 사람들한테는 비밀인 경우도 많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혹시 다음에 팔레스타인에 오시거든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결혼한 경험이 있는지를 살짝 물어보세요.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을 거에요. 내일 다른 사람과의 결혼식을 앞두고 ‘사랑한다’고 보내온 문자를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제 마음도 참 거시기 해요.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만큼 서로 더 이해하고 서로 더 감싸주고 격려해 주면 좋을 텐데...

 

서로 더 나아졌으면

 

“한국이 좋아요, 팔레스타인이 좋아요?”
“한국이 좋은 점도 있고 팔레스타인이 좋은 점도 있어요”
“어떤 거요?”
“음... 저는 한국 사람이니깐 한국이 여러 가지 면에서 생활하기가 편해요. 폭격도 없고 총 싸움도 없고, 팔레스타인 보다는 직업 구하기도 쉽지요. 그대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마음이 따뜻해요. 한국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돈은 많아졌는데 마음이 차가운 편이에요. 따뜻한 마음을 버리고 돈을 많이 벌게 된 거지요”
“그래도 한국에는 삼성도 있고, LG도 있고, 현다이도 있잖아요”
“맞아요. 그런 면은 한국이 팔레스타인 보다 좋아요.”

 
팔레스타인인들과 여러 번 나눈 대화 내용이에요. 바쁘게 사니깐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거고, 또 그러니깐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는 거겠지요. 서로를 모르니깐 자유로울 수 있는 거고, 서로를 모르니깐 어떻게든 혼자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눈에 독기를 품어야겠지요. 제가 만약 집에서 혼자 많이 아프다면 구급차를 부르면 오겠지요. 하지만 옆집 사람에게 도움을 구할 수는 없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과일들이 넘쳐나는 팔레스타인


한국도 팔레스타인도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진 사회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만 말할 수는 없어요. 라에드처럼 너무 바빠서 한 번 만나도 1시간 이상을 함께 있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고, 탈랄처럼 매일 같이 나블루스에 있는 집에서 라말라에 있는 사무실을 오가며 일하는 사람도 있지요. 슈룩처럼 밖에서 무언가 하고 싶어도 팔레스타인인이고, 여성이고, 가난한 집 출신이기 때문에 무언가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알라(글자로는 알라지만 아랍어에서 신을 뜻하는 알라와 남자 이름 알라, 여자 이름 알라는 발음이 약간 달라요)처럼 난민촌에 사는 여성이지만 사회단체 활동도 하고 지금 연애하는 사람과 결혼할 거라고 하고 저와 함께  필요한 물건을 사러 나블루스 시내를 다니는 사람도 있지요. 라에드와 슈룩이 싫어하는 게으른 아랍 사람도 있구요.


저에게 한국이 좋냐 팔레스타인이 좋냐는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는 물음과 같아요.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는 거지요. 한국은 좀 더 사람에게 따뜻하고 마음이 여유로웠으면 좋겠고, 팔레스타인은 정치나 경제 상황이 어려우니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 부지런히 노력해야겠지요.


한국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교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싶은 것 가운데 하나도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것도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겠다 싶어서에요. 두 시냇물이 만나 더 넓고 깊은 강물이 될 수 있는 거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