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15. 민들레처럼
팔레스타인에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꽤 인기가 좋습니다. 중동의 역사를 조금 아시는 분이 들으면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는 말입니다. 체게바라가 그려진 옷을 입고 체게바라를 좋아한다면서 사담 후세인도 좋다고 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전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
사정은 이렇습니다. 이집트·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등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은 친미국가이고, 이들 국가의 권력자들은 말만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칠 뿐 실제로는 자신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아랍의 단결’은 그야말로 말뿐입니다.
그런데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고 그 때 이라크가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을 날렸습니다. 이스라엘은 곧바로 이라크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미국이 말렸습니다. 이스라엘까지 전쟁에 끼어들면 아랍인들이 크게 반발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아라파트와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고 나섰고 아랍국가들은 아라파트와 PLO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 버렸습니다. 또 쿠웨이트에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났습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이 시골 마을에도 그 때 쿠웨이트에서 일하다 쫓겨 온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아랍인과 쿠르드인들을 죽이고 억압했던 사담 후세인이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고,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처형하자 팔레스타인인들이 반발했던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외부로부터 고립된 채 늘 이스라엘에게 두들겨 맞던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몇 푼의 돈과 말만 늘어놓는 다른 아랍 국가들에 비해 사담 후세인은 뭔가 행동으로 보여 줬던 인물인 거죠.
저는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이리 저리 얽혀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구요.
아마니와 슈룩을 마주치던 때
2006년에 팔레스타인에 왔을 때 아마니와 라말라에서 만나기로 했고, 아마니는 헤브론에서 우리를 데리러 라말라까지 3시간 길을 달려 왔습니다. 헤브론에서 라말라까지가 그렇게 머냐구요? 물론 아니지요. 이스라엘의 검문소와 도로 봉쇄 때문에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고, 길은 길대로 빙빙 돌아 온 거지요. 라말라 한 복판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한 뒤에 아마니는 우리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고, 거기서 며칠 묵었습니다. 제가 한국과 팔레스타인 사람들한테 아마니 얘기를 하면 신기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결혼도 안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혼자 외국도 다니고 그러냐구요. 아마니가 국제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서 몇 달 지냈었거든요.
청계천 공사가 한창일 때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는 아마니
어제는 아침에 빵이며 야채며 먹을거리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슈룩을 만났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절반만 만난 셈입니다. 한 30m 거리를 두고 슈룩이 걸어 왔고,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습니다. 하지만 ‘헬로우’라고도, ‘살람 알레이쿰’이라고도 할 수 없이 그저 눈빛만 잠깐 주고받으며 모르는 사람처럼 서로의 곁을 스쳐야 했습니다. 슈룩은 여자이고 저는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슈룩의 집에서 마주쳤으면 인사도 하고 얘기도 했겠지만 길에서 만나다 보니 인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거지요. 나중에 슈룩이 미안하다며 이해하라고 하더라구요. 당연히 저는 괜찮다고 했지요.
다른 마을에서 행사가 있어서 아랍계(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 여성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한동안 팔레스타인 마을에 있으면서 옷 입는 것 하나, 춤추는 것 하나까지 눈치 받고 욕먹어야 하는 것이 싫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사는 것도 힘들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사는 것 보다는 차라리 낫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배도 문제지만 남성의 지배, 문화적 억압이 더 문제인 셈이지요.
길을 갈 때 동네 꼬마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말을 걸면 어떤 때는 어찌나 귀여운지 악수도 하고 잘 안 통하는 말이지만 이름도 물어보고 그럽니다. 또 어떤 때는 10~20명씩 우리를 둘러싸고 졸졸 따라오며 ‘차이나 차이나’ ‘코리아 코리아’ ‘헬로우 헬로우’를 계속할 때면 솔직히 좀 귀찮습니다. 대답하고 인사하는 것도 한 두 번이고, 하루 이틀이지 매번 그러기는 어렵습니다. 못 들은 척하면 옆에 바짝 붙어서 제가 어떤 느낌을 가질지 생각을 하는지 안 하는지 제 이름을 고래고래 부르기도 합니다. 또 그러다가 제가 무언가를 찾고 있거나 무거운 것을 들고 가면 당장에 달려 와서 도와주려고 하지요.
이 동네에도 미국 등지에서 큰 돈을 벌어온 사람은 언던 위에 으리으리한 집을 짓고 살고 있고, 청소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중동의 뙤약볕 아래서 집짓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한쪽에서는 죽을 동 살 동 치고 박으며 싸우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아랍과 유럽 등지에서 흘러 들어온 돈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팔레스타인입니다.
이 동네에 라히마 씨라고 장애인이 있는데 장애 정도가 심한 편입니다. 가족이라고는 엄마 한 명 있고, 엄마도 몸이 안 좋은데다 딸을 돌봐야 하니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그나마 집세도 내고 먹을 것도 사면서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동네 사람들이 이들을 내팽개치지 않고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바가지와 구멍
저는 그동안 살면서 노동자든 여성이든 학생이든 그 자체로 완전히 해방된 집단도 개인도 본 적이 없습니다. 역사가 그렇고 사회가 그렇듯 모든 존재는 수많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함께 지닌 채 살아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지요.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이스라엘 때문은 아니지만 또 많은 것이 이스라엘 때문에 벌어집니다. 모두 다 함께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두들겨 맞는 동안에도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남성이 여성을 차별합니다. 많은 일들이 서로 이리 저리 관계 맺고 있는 거지요.
쿠바 혁명에 참여 했던 체 게바라(왼쪽)와 피델 카스트로
그렇다고 이런 저런 일들이 있을 수 있다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분명한 것은 나 자신이 자유롭고 싶다면 다른 이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가 나를 존중하기를 바란다면 상대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닌 이상 나 또한 다른 이를 존중해야겠지요.
팔레스타인인들 가운데는 이스라엘이라는 외부의 적도 문제지만 팔레스타인 내부가 더 큰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계급과 성의 차별, 정치와 사회에 대한 무관심, 정부와 정당의 부패와 무능, 게으름, 무지 등의 문제를 지적하는 거지요. 당연합니다. 이스라엘도 문제지만 내부의 이런 문제를 극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스라엘로부터 해방될 것이며, 설사 해방된다고 해도 그 이후의 사회가 도대체 어떤 사회가 되겠습니까. 한국도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는 것을 겪었지요.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법입니다.
이스라엘도 자신이 직접 나서기 보다는 팔레스타인인들끼리 서로 싸우고, 부패로 망하길 바라고 자꾸 부추기지요. PLO가 강하면 하마스를 밀어주고, 하마스가 강하면 파타를 밀어주고, 파타가 강하면 이들에게 돈과 힘을 밀어줘서 부패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정치하면 넌덜머리가 나게 만드는 거지요. 직접 나서지 않아도 지들끼리 알아서 망하는 겁니다. 손 안대고 코풀기지요.
연대와 해방
팔레스타인인 모두가 테러리스트가 아니듯 그들 모두가 투사는 아닙니다. 살아 있는 눈빛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무언가 해 보려고 애 쓰는 이들을 만나면 ‘정말 욕보는구나’ 싶다가도, 빈둥거리며 맨날 놀 궁리만 하면서 세상 탓만 하는 이들을 보면 속 터집니다.
꿈꾸는 자에게 미래는 희망으로 다가온다
이스라엘이 특히 원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무기력해 지는 겁니다. 두들겨 부수고 죽이면 젊은이들이 저항이 강해지겠지만 서서히 마음속에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을 심어 주면 저항이고 뭐고 없어지는 거지요. 그래서 당장에 폭격이 없고 사는 게 좀 나아졌다 싶을 때, 이럴 때일수록 정신차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길게 보면 무기력이 총보다 팔레스타인인들을 지배하는 데 더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는 거니깐요. 프란츠 파농이 프랑스에 대항해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을 하면서 강조했던 것도 민중이 노예 의식을 버리고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는 것지요.
이스라엘도 문제지만 팔레스타인 쪽도 문제가 많은데 왜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이런 활동을 하냐구요? 전 온실에서 펴서 저 혼자 잘난 줄 아는 장미보다는 거친 들에 뿌리를 내리고 새벽 찬 이슬과 한 여름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자라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민들레가 더 좋거든요.
연대라는 말은 다른 이를 해방시키는 과정에서 나 자신이 해방 되는 것이고, 해방이라는 말은 다른 이로부터의 해방이자 스스로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선물.
새로운 인간 - 체 게바라
진정한 혁명은 인간 내부에 있다
이제는 |
Hasta siemp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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