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17_종교 때문이라고? 그건 니 생각이고~ - 첫 번째 이야기
“종교가 뭐에요?”
“종교 없는데요”
“네? 왜 없어요?”
“왜 없냐구요... 그러니까... 음...”
한국에서는 잘 겪지 않던 일을 여기서는 자주 겪습니다. 저희 가족도 그렇고 제 주변 사람도 대부분 종교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그리 열심이지 않거든요. 또 길에서 교회 나가라는 얘기는 많이 들어 봤어도 왜 종교가 없냐는 질문은 잘 받아 보질 않아서 처음에는 이런 질문이 약간 당황스럽더라구요. 어쨌거나 질문을 받았으니 있는 그대로 대답을 합니다. 그러면 이어지는 이야기도 대부분 정해져 있습니다.
모스크에 모여서 기도를 하고 있는 무슬림들
“이 세상은 누가 창조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저기 저 산과 태양과 땅을 누가 창조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네 별로 안 궁금해요”
“아니 왜요?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안 궁금해요?”
“안 궁금해요”
“죽으면 정말 끝이라고 생각하세요?”
“네”
“아니에요. 죽고 나면 천국과 지옥이 있어서 거기로 가게 돼요”
이런 대화를 자주 하다 보니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농장에 모여서 놀고 있는데 처음 보는 분이 들어 왔어요. 당연히 저에 대해서 궁금해 하셔서 마흐무드가 설명을 했지요. 그분과 인사를 하고 나니깐 그분이 또 똑같은 얘기를 시작하시는 거에요.
제가 몇 마디 답을 하고 있으니깐 와엘이 그만 하라고 해요. 제가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거지요. 와엘이 그만 하라고 하니깐 그분은 좀 기분 나빴나 봐요.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조금 있다가 가 버리시더라구요.
나블루스에 있는 알 나자 대학 풍경. 여러 단과 대학 가운데 이슬람 대학에서 바라본 모습
종교에 대해서 함께 얘기를 나누는 사람이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빨리 대화를 끝내고 싶으면 여기서 그냥 적당한 때 ‘네’하고 알겠다고 하면 됩니다. 또 빨리 대화를 끝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저는 꼬뮤니스트에요’라고 하는 겁니다. 꼬뮤니스트라는 말 한마디에 대화의 분위기가 급격히 냉각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묻거나 하지 않고 알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꼬뮤니즘은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한 친구가 웃으며 얘기 합니다.
“미니는 지옥 갈 거에요”
“왜요?”
“꼬뮤니스트니깐”“그럼 당신은?”
“나는 무슬림이니깐 천국 갈 거에요”
“그러면 무슬림은 게으르게 놀아도 천국 가고 꼬뮤니스트는 열심히 일해도 지옥 가요?”
“당연하지요. 무슬림 천국, 꼬뮤니스트 지옥”
“그래요? 할 수 없지요. 지옥 가서 지옥을 인간 살기 행복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일하면 돼지요”
“네? 하하하”
이런 대화를 하다보면 옆에서 아니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무슬림이라고 다 천국 가는 게 아니고 무슬림 가운데도 신의 말씀을 따라 열심히 살아야 천국 간다는 거지요.
기도 안 하는 무슬림?
다른 나라에 한국을 소개할 때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는 무엇일까요? 김치? 한복?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는 돈이 아닐까요? 굳이 말하자면 한국은 김치의 나라가 아니라 돈의 나라인 셈이지요. 돈은 한국인의 신과 같은 존재지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이며 석가모니나 예수에 대한 믿음 보다는 돈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하니깐요.
팔레스타인인은 어떨까요? 팔레스타인에는 무슬림 많고, 무슬림이 많으니깐 모두 종교의 힘으로 움직일 것 같다구요? 하하하. 단군의 자손들이 모두 단군을 믿는 거는 아니잖아요. 추석에 제사상에 절한다고 진짜 귀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하나로 말할 수는 없고 대략 말하자면 팔레스타인에서 이슬람은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무슬림이에요?”
“네. 당연하지요”
“기도 안 해요?”
“네 안 해요”
“왜요?”
“그냥...”
한국에서 이슬람에 대해 조금 아는 분들은 무슬림들은 하루 5번 기도를 한다고 알고 계십니다. 이슬람에서는 원래는 하루 5번 기도하라고 했지요. 그래서 무슬림을 만나면 하루 5번 기도하는지 물어보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인이나 불교인이라고 해서 때 맞춰 늘 기도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무슬림도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하루 2~3번 기도하기도 하고 어떤 무슬림은 안 하기도 하지요.
인기 절정의 드라마 밥알하라
‘밥알하라’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20세기 초 프랑스가 시리아를 지배하고 있을 때 시리아인들의 대프랑스 저항운동에 관한 드라마입니다. 요즘 이 드라마가 그야 말로 인기 절정입니다. 밥알하라가 하는 시간이면 정말 거리가 조용해집니다. 마흐무드 여동생들은 재방송을 또 보고 또 보고 한다더라구요.
기도와 밥알하라를 비교해 볼게요. 하루는 이슬람 사원에 갔습니다. 기도하는 모습도 보고 사진도 찍고 있으니깐 동네 아이들이 저를 구경하느라 난리입니다.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는데도 사원 입구에서 낄낄대고 큰 소리치고 그러는 거지요. 그러니깐 어떤 분이 나가셔서 한국말로 하자면 ‘이 놈의 새끼들 조용히 안 하나’라고 호통을 치면 잠깐 조용해졌다가 또 금방 웅성거리고 난리입니다.
이들을 조용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밥알하라를 방영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시내에서는 스크린에 빔프로젝터로 크게 화면을 만들어 놓고 모여 보기도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지요.
이슬람과 중동이라고 하면 모두 종교를 가지고 움직일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어떤 때는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역사와 문화, 정치 등에서 이슬람을 빼 놓을 수는 없는 거니깐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의 비중은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기도보다는 밥알하라가 중요하듯이 꾸란보다는 새로운 청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요새 젊은 것들은...’하며 혀를 차는 거지요 .
무슬림들이 돌을 던지고 총을 쏘며 싸우는 많은 이유는 그들이 무슬림이기 때문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처럼 죽고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히기 때문에 그러는 거지요. 억압에 맞서려면 저항의 길을 찾고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야 하는데 누구는 그 길을 종교에서 찾는 겁니다. 하마스와 같은 조직이 그런 거지요.
알자지라 방송의 한 장면. 이스라엘이 이슬람 사원을 몰수해서 그림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거기서 이슬람 사원을 되찾기 위해 기도하고 있는 무슬림
뉴스 같은데서 이스라엘 군인을 향해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이 ‘알라후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얼마나 종교에 빠진 사람들인가를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만이라도 이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함께 싸우는 공간에 서 보십시오. 그들이 꼭 종교에 빠져서 신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삶의 일부이고, 삶의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쉽게 신을 부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이 무슬림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에서 한국 사람에게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물으면 ‘네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나 민족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한국이기는 하지만 그냥 물으니 한국이라고 하는 거지 특별히 한국인임을 유지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는 않지요. 종교라는 것을 신비한 것, 이상한 것으로 보자면 한이 없지만 인간의 생활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그리 이해 못할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신에게 우리 민족이 당하는 고난을 덜어달라고 기도하겠지요. 어떤 사람은 우리 자식이 이번에 시험을 치는데 좋은 점수 받도록 해 달라고 하겠지요. 어떤 사람은 신을 믿어서 이슬람 사원에 가겠지만 어떤 사람은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슬람 사원에 가기도 하겠지요.
제가 지내고 있는 곳은 무슬림들이 대부분인 지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슬람 사원에서 아단이라고 하는 기도 시간 알리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됩니다. 처음에는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가 아주 신기했어요. 그러면서 ‘역시 이곳이 무슬림들이 사는 곳이구나’ 하지요. 자꾸 듣다 보면 소리가 났는지 안 났는지도 잊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 소리가 자명종처럼 들려서 ‘일어날 때가 됐구나’ ‘밥 먹을 때인가 보네’로 여겨집니다.
낯선 사람에게는 아주 특별한 것이, 익숙해지면 그냥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립니다. 무슬림들에게 이슬람이란 그런 거지요. 생활의 일부라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붙이는 지는 사람마다 차이가 크다는 거지요.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에 외부인들이 쉽게 접근해서 알아보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이슬람이나 신에 대해 예의 없이 말했다가는 욕먹을 수도 있지요.
선물. 팔레스타인에는 적십자사가 없다고?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굳이 왜 그런지 묻지 않는 것들이 있지요.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일요일이 빨간날입니다. 무슬림들에게는 금요일이 빨간날이어서 일요일엔 일을 합니다. 팔레스타인에는 적십자사가 없어요. 대신 적신월사가 있지요.
적신월사의 구급차. 십자가 대신 초승달이 그려져 있다
적십자는 말 그대로 십자가입니다. 기독교 문명을 대표하는 거지요. 그래서 무슬림이 많은 지역에서는 십자가 대신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 모양을 써서 적신월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적신월사는 많은 일을 합니다.
이스라엘 군인에 대항하는 집회가 벌어지면 아예 구급차가 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총에 맞고 최루탄에 맞고 그러니깐요. 이스라엘이 폭격을 하거나 사격을 하면 현장으로 뛰어가 환자들을 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군인들은 의료진이나 구급차를 향해서 직접 사격이나 폭격을 하기도 하지요. 그야 말로 의료인들이 목숨 걸고 환자를 살리는 겁니다. |
'팔레스타인·이스라엘 > 06년·09년 팔레스타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_히잡, 여성 억압 아니면 문화 다양성? (0) | 2010.03.22 |
---|---|
18_종교 때문이라고? 그건 니 생각이고~ - 두 번째 이야기 (0) | 2010.03.22 |
16_ 배워야 희망도 생기지요 (0) | 2010.03.09 |
15. 민들레처럼 (0) | 2010.03.09 |
14.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0) | 2010.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