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18_종교 때문이라고? 그건 니 생각이고~ - 두 번째 이야기
“저 돌과 나무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정말 우리가 어디서 왔고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전 그거 보다는 지금 이번 생에 어떻게 해야 세상이 더 살기 좋아질지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같이 차를 마시다가도 때 되면 집에서 카펫을 깔고 기도하는 아부 마흐무드. 우리 먹으라고 수박 자르는 모습
팔레 선생님도 말씀 하셨지만 신도 인간에게 열심히 살라고 하셨지요. 신이 있어도 열심히 살아야 하고 신이 없어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면 신의 존재 여부는 중요해지지 않지요. 저에게 종교는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사상이나 철학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약 누군가 제사상에 절하면서 복을 비는 것이 미신이라고 한다면 교회에서 예수를 향해 복을 비는 것 또한 미신이겠지요.
제게 중요한 건 신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누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느냐 이지요. 지금 해야 될 일은 하지 않으면서 다음의 행복만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동안 지구상에서 만들어졌던 많은 신들 가운데 어떤 신들은 사람과 똑같이 울고 웃고 질투하고 화내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그랬지요. 어떤 신들은 완벽하고 완전한 존재입니다. 모든 것을 만들었고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분이지요. 불완전한 것은 인간에게로 보내고 완전한 것만 신에게로 보내는 거지요.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독일에서 유대인에 대한 억압과 학살이 벌어질 때 유대인 가운데는 이 고난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이겨내라고 주신 일이라며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만드시고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신이, 왜 신을 믿고 따르는 무슬림들에게 전쟁과 점령의 고통을 주셨을까요? 어떤 이는 고난을 통해 신의 존재를 느끼라는 것이다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무슬림들이 신을 믿는 일을 점점 게을리 했기 때문에 신이 벌을 내리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분에게는 너무 뜬금없는 얘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생각의 하나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많이 보게 되는 게 ‘예수천국 불신지옥’인데, 쉽게 해석하면 예수의 말씀을 따르면 천국에 가게 되고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된다는 거지요.
당연한 얘기입니다. 완전한 존재가 하는 말대로 따르면 잘 살게 되는 거지요. 자동차 내비게이션대로 따라가면 길을 찾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길은 정해져 있고 남은 것은 그 길을 따르느냐 아니냐는 정도지요.
이렇게 사는 방법의 장점은 속 편하다는 겁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 주는 대로 따라 갈건 지 말건지만 선택하면 되는 거지요. 깊이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단점은 만약 내비게이션이 길을 잘못 알려주면 어떻게 할 거냐는 거지요.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신의 말씀을 알고 있다는 일부 성직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먹이며 자신의 부와 권력을 추구하지요. 신앙인들은 그게 진짜 하느님의 말씀인 줄 알고 열심히 따라가는 거구요. 신은 믿음의 대상이지 판단의 대상은 아니니깐요.
아무 거나 적어 넣어
팔레스타인은 한국보다는 종교의 영향이 강한 사회입니다. 학교 조회 시간에 꾸란을 읽기도 하고 정치인들이 회의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신분증에도 종교가 표시되어 있어서 제가 아부 마흐무드에게 ‘저는 종교가 없는데, 만약 제가 팔레스타인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부 마흐무드가 웃으며 하는 대답이 이슬람이든 불교든 힌두든 아무 거나 집어넣으라고 합니다. 진짜로 믿느냐 안 믿느냐는 별로 안 중요하다는 거지요.
아부 마흐무드가 늘 가지고 다니는 여러가지 신분 증명서. 오른쪽 초록색이 팔레스타인인판 주민등록증
탈리반이나 알 카에다와 같이 무슬림들이 테러도 하고 사람도 죽이는 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냐구요?
무슬림들은 하느님 앞에 평등하지요. 그래서 기도할 때 서로 어깨를 마주대고 하는 거지요. 이슬람은 계급이나 인종, 국가를 뛰어 넘어 종교로 하나 된 집단이기 때문에 모든 무슬림은 서로의 형제요 자매가 되지요. 그렇게 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처럼 다른 무슬림의 삶은 외면한 채 혼자 호의호식 하는 사람은 무슬림이 아니거나 신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거지요.
무슬림이 서로를 죽이는 거는 형제, 자매를 죽이는 것과 같은 거에요. 전쟁도 공격을 받으면 방어차원에서 전쟁을 하라고 했지 먼저 나서서 전쟁을 일으키지는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사람 사는 게 어디 말처럼 되나요?
기독교나 불교가 그렇듯이 이슬람 안에서도 순니니 시아니 하면서 여러 종파가 갈립니다. 기독교나 불교가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느 종파에 속하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꼭 이 속에도 꼴통들이 있어서 다른 종파를 공격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는 이슬람에서도 여러 선지자 가운데 한 분입니다. 종교로만 놓고 보면 기독교와 이슬람은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또 꼴통들이 있어서 괜한 다툼을 만들기도 하지요. 종교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정치나 경제 문제 때문에 일이 벌어졌는데 괜히 종교를 들먹이기도 하구요.
이슬람에서 종교는 권할 수는 있지만 강요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전쟁에서 붙잡은 포로에게 이렇게 하는 거지요. ‘무슬림이 되면 살려 줄게. 선택은 너에게 달려 있어’
이렇게 되면 포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살기 위해서라도 무슬림이 되기도 하겠지요. 따지고 보면 무슬림이 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자기 선택에 의해서 무슬림이 됐다고도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겁니다.
기독교인 가운데 부와 권력 쌓기만 좋아하는 조지 부시나 이명박 같은 사람이 있듯이 무슬림 가운데도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이런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기도 했다가 적어지기도 하지요.
이슬람의 경전 꾸란
탈리반은 이슬람과 관계없는 짓을 벌이면서 이슬람을 들먹이는 꼴통 집단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리반과 같은 꼴통 집단들은 미국이 소련과 싸우라고 돈 대고 무기 대는 과정에서 태어나고 덩치가 커졌지요. 미국이 없었다면 지금의 꼴통들도 없었거나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미국의 지원과 전쟁 통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을 내건 꼴통 들이 태어났듯이 팔레스타인에서도 지금과 같은 전쟁과 점령 상황이 계속 되면 될수록 괴상한 이슬람 조직이 생겨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상황이 극단으로 이르면 이를수록 몇몇은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니깐요.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직접 만들던 아니면 간접 지원을 하던 아무데나 총 쏘고 사람을 죽이면서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는 집단이 늘어나면 날수록 좋겠지요. 대이스라엘 저항은커녕 내부에서 싸우다 힘 다 빼는 겁니다. 국제 사회가 볼 때도 ‘아, 이스라엘도 문제지만 저거봐 역시 팔레스타인인이나 무슬림들은...’ 하면서 좋지 않는 눈빛을 보내게 될 거니깐요.
정교일치가 웬 말이냐구요?
가끔 한국을 보면 여기가 기독교 국가인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만 해도 으리으리하게 큰 교회부터 상가 건물 한 켠의 작은 교회까지 정말 교회가 많습니다. 한번씩은 ‘우리 동네에 중국집이 많을까 교회가 많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팔레스타인에 있는 이슬람 사원의 수보다 한국에 있는 교회의 수가 몇 배 아니 몇 십 배는 더 많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밤에 산에 올라가면 곳곳에 눈에 띄는 것은 붉은 십자가지요. 작은 시골 마을에 가도 언제나 제일 큰 건물은 교회구요. 저는 기독교인이 아닌데도 크리스마스가 휴일이라 일을 안 하구요. 어떤 분들은 이명박이 대통령 된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시지요.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여러 분야에서 힘을 크게 발휘하고 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한국 기독교의 힘이 그 정도면 1천년 넘게 이슬람을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어떻겠습니까? 정치와 종교가 하나로 되어야 한다는 것쯤은 그리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요. 옳든 그르든 말입니다.
니달과 슈룩의 경우만 해도 칼리파 제도의 부활을 원합니다. 쉽게 말해 이슬람이 한 사람의 대통령이자 종교 지도자인 사람을 중심으로 뭉치는 거지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구요? 티벳의 달라이라마라고 들어보셨죠? 달라이라마가 바로 정치 지도자이자 종교 지도자입니다.
정교일치를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아니 21세기에 웬 정교일치?’ 하며 이상하게 여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국가나 자기의 이념이나 사상을 가지게 마련이고, 사회에 따라 그 이념이 종교일 수도 있는 거니깐요.
문제는 어떤 정치와 어떤 종교가 어떻게 결합하느냐는 거지요. 예를 들어 이슬람에서는 돈을 빌려 주고 이자를 못 받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하지요. 이슬람 가운데서도 이런 부분을 정치에 적극 반영하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마디가 하나로 되어 이슬람 사회주의라는 말을 만들 수도 있는 겁니다.
이슬람 하면 이상한 종교, 접근할 수 없는 종교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여러분이나 저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게 좋은 모습이든 나쁜 모습이든 말입니다. 다른 문화나 종교에 대해서도 대체로 열린 마음을 갖고 있으니 큰 걱정 마시고 지구별의 친구로써 무슬림들에게 다가가 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선물. 꾸란을 읽어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구요?
꾸란을 읽고 싶으시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인내심입니다. 웬 인내심 타령이냐구요? 꾸란은 엄청 두꺼운 책이거든요.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책이 꾸란이라고 합니다. 한 글자도 바꿀 수 없지요. 그런데 하느님이 아랍어로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꾸란은 다른 말로 번역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아랍어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그 의미를 다른 말로 옮길 수는 있다고 합니다. 이슬람을 공부하시는 분이 아랍어를 공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요.
한국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 가시면 한국말로 된 꾸란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관련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꾸란을 한국말로 읽는 것을 들을 수도 있을 거구요.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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