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20_나도 히잡을 쓰는 것이 좋을까요?

순돌이 아빠^.^ 2010. 3. 24. 12:47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20_나도 히잡을 쓰는 것이 좋을까요?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종교에 대한 해석도 바뀝니다. 꾸란이 1천 년 넘게 한 글자도 안 바뀌고 그대로 전해질 지언정 꾸란을 해석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른 거지요.

 

눈 앞에서 아들이 이스라엘 군인에게 총맞은 이야기를 전해주던 사람 

 

히잡 얘기가 나왔으니 ‘머리를 가리라’라는 6글자만 놓고 생각해 보지요. 예를 들어 여성을 차별하려는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가리라’는 3글자에 힘이 실리겠지요. 그래서 이제는 머리를 지나 가리는 부위가 점점 넓어집니다. 팔레스타인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길에 온 몸을 가리고 손에 장갑까지 낀 여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여성의 자유를 주장하는 힘이 강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슬람에서는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고 했습니다. 여성의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가리라’는 구절보다는 ‘평등하다’라는 구절이 더 힘을 얻게 되겠지요. 이제 남성들이 자유롭게 옷을 선택하는 만큼 여성들도 그럴 수 있다가 됩니다. 이슬람에서는 동성애를 금지 했는데 이 또한 사회가 발전하면서 동성애자도 이성애자와 평등하다는 쪽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요.

 

이슬람에서는 몸에 해로운 것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남성들은 열심히 담배를 피웁니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힘이 커지면 히잡을 쓸지 말지에 대한 판단이 여성의 손에 맡겨지겠지요. 신의 말씀보다는 인간의 자유가 더 중요해지는 겁니다.

 

저의 얘기는 이슬람이 문제없다거나 무슬림들을 이해하기 위해 모든 것이 괜찮다는 식으로 생각해 보자가 아닙니다. 바뀔 수 없는 것,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잘못된 것은 바꿀 수 있다는 거지요.

 

꾸란은 아주 두꺼운 책입니다.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온갖 분야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결국 어느 문장을 어떻게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하느냐는 하느님이나 꾸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 인간들 사이의 힘에 따라 달라지는 거지요.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곳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인간들 사이의 힘을 바꾸기 위한 것이구요.

 

우리도 히잡을 써야 하냐구요?

 

히잡이라고 해서 뭐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쉽게 생각하면 아무 천이나 가지고 머리를 가리는 거지요. 스카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시장에 가면 여러 히잡을 팝니다. 히잡도 패션이어서 알록달록 예쁜 것에서부터 담담한 색의 것까지 다양하지요. 히잡을 쓴 것을 보면 천이 머리에 딱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실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냐구요? 여러 개의 핀으로 고정해서 그렇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하는 이스라엘 군인 

 

여러분이 여성이고, 만약 팔레스타인에 간다면 히잡을 써야 하냐구요? 무슬림도 아니고 외국인이 히잡을 써야 될 이유는 없습니다. 아무도 그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팔레스타인에 오시는 목적에 따라 히잡이나 옷에 대해 이런 것을 생각해 볼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한국에서 어느 시골 마을로 한동안 여행을 갔다고 하지요. 거기는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만 사시구요. 여러분이 아주 짧은 바지에 헐렁한 민소매 옷을 입고 갔다고 해서 그게 무슨 문제는 아니지요. 하지만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는 약간 불편해 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 분들 보시기에 단정하게 옷을 입으면 편안하게 느끼시겠지요. 

 

사람들은 외부에서 누가 왔을 때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지는 않지만, 또 자신과 닮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어디를 가고,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반응은 천차만별입니다. 그 가운데는 외부인이 히잡을 안 쓴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또 히잡을 쓰면 ‘아, 저 사람은 그래도 우리 문화에 대해서 좀 아는가 보다’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어떤 분들은 자신이 쓰던 히잡을 씌워주면서 예쁘다고 웃기도 하고 사진도 찍자고 하실 겁니다. 떠날 때 히잡을 선물로 주시기도 할 거구요. 외국인한테 한복 입혀 주면서 예쁘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결론은 여행 목적에 따라, 원하시는 대로 히잡을 쓰시든 말든 알아서 하시라는 겁니다.

 

히잡 너머

 

여성 아랍인/무슬림하면 우린 가장 먼저 히잡을 떠올립니다. 히잡이 시작과 끝인 경우가 많지요. 우린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정말 그들에게는 히잡 말고 다른 것은 없을까요? 그들에게는 좋아하는 연예인은 없을까요? 좋아하는 옷이나 갖고 싶은 물건은 없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까요? 얻고 싶은 직업은요?

 

 

술마시고 노래 하고 춤추고 룰루랄라 ^.^

 

슈룩의 엄마 아빠는 틈만 나면 슈룩 보고 얼른 시집이나 가라고 합니다. 20대 초반이면 벌써 시집갈 나이가 됐다는 거지요. 하지만 슈룩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결혼이 아니고 직업을 얻고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해 보는 겁니다. 슈룩은 저와 달리 학교 성적이 아주 좋지만 직업을 얻는 게 어디 쉬운 일이어야 말이죠.

 

한국과 팔레스타인이 닮은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버스든 택시든 대중교통을 운전하는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지요. 언론에 나와서 정치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도 대부분 남성입니다. 여성은 보호 받아야 하는 존재로 여겨지기 쉽지요. 사회 활동을 많이 하는 여성을 보면 그 여성을 응원하는 아빠나 남편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나저러나 한국도 그렇듯이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삶에는 여러 가지가 벌어집니다. 꼬마 때면 엄마 아빠 심부름으로 가게에 가서 뭔가를 사와야 되고, 때가 되면 학교도 가야지요. 동네 친구들끼리 모여서 수다도 떨어야 되고, 명절이 되면 예쁜 옷을 입고 뽐내고도 싶지요. 결혼 잔치에 가면 그동안 쌓았던 춤 실력도 보여줘야 할 거구요. 어느 집 누구를 좋아하게 됐다고 친구들에게 고백도 하겠지요.

 

원하지 않는 남자와 어느 날 갑자기 약혼을 해야 되면 힘들고 괴롭지만 부모님이 시키는 일이니 어쩔 수 없기도 하지요. 아니면 대학 때 만난 사람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서 아이를 낳기도 하지요. 주부로 냅다 일만 열심히 하다가 남편한테 두들겨 맞기도 할 거구요.

 

교사가 되어 이스라엘의 총격으로 죽은 학생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요. 농민이 되어 이스라엘이 올리브 나무를 베려고 하면 군인들에게 삿대질 하며 싸우기도 하구요. 아이가 이스라엘 깜빵에 갇히면 내 새끼 풀어달라고 소리를 치기도 하지요. 선거에 출마를 하기도 하고 운동하는 조직에서 활동하면서 팔레스타인 해방 전사가 되기도 합니다.

 

푸하하 으하하하

 

누군가 팔레스타인 여성의 삶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런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이슬람과 아랍이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 있고, 침묵하는 존재로써의 팔레스타인 여성이 아니라 살아 있고, 꿈을 꾸는 존재로써의 팔레스타인 여성 말입니다.

 

팔레스타인 여성을 처음 만나 ‘불편한 히잡은 왜 써요?’라고 물어 보는 것보다는 ‘요즘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라고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의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어보고 팔레스타인 정치의 미래에 대해서 토론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녀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보다 그녀들과 함께 이슬람 사원에 가 보는 건 어떨까요?

 

누군가 그랬죠.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선물. 무슬림이 아니어도 이슬람 사원에 가 볼 수 있냐구요?

 

이슬람 사원은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깐 무슬림이 아닌 경우는 이슬람 사원 쪽에 양해를 구하면 됩니다. 남들 기도하는데 떠들면 안 된다는 것이야 당연하겠지요. 남성과 여성은 기도하는 공간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무슬림들은 기도하기 전에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다는 의미로 손발을 씻기 때문에, 손발을 씻도록 시설이 준비 되어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슬람 사원에 갔다가 꾸란이 있어서 손을 대려고 하니깐 옆에 계시던 분이 웃으면서 ‘이건 저희에게 성스러운 책입니다. 저희는 이 책을 만질 때 손을 씻고 만집니다’라고 하시더라구요. 제 얼굴은 빨개졌구요.

팔레스타인에서 불순한(?) 목적으로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 본 적도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은 거에요.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공시설이 이슬람 사원이지요. 들어가서 화장실 좀 써도 되겠냐고 하니깐 당연히 그러라고 하지요.

 

한국에도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이슬람 사원이 있어서 인터넷 검색 해보시면 쉽게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슬람을 경험해 보고 싶으신 분은 교회나 절에 가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가시면 됩니다. 무슬림이 저 먼 별나라 사람이 아니라 지구별 이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