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22_ 묻는다는 거
“오늘은 왜 이스라엘이 검문소를 설치했대요?”
“모르지요”
“오늘은 왜 검문소만 있고 군인들은 안 보여요?”
“모르지요”
“어제는 왜 저 동네를 공격 했대요?”
“모르지요”
“어제 끌고 간 사람들은 어디로 데려 갔대요?”
“모르지요”
여러분도 저처럼 서안지구나 가자지구를 다녀보면 아마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대화가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왜 모른다는 말 밖에 없는 건지 싶었구요.
팔레스타인에 와서 무언가 질문을 했을 때 답을 듣기 어려운 경우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누구를 두들겨 패거나 잡아가거나 검문을 했다 안 했다 하거나, 하여튼 이스라엘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물어봐도 언제나 대답은 없습니다. 이유를 모르는 거지요. 이스라엘도 언제나 대답은 ‘안보상의 이유’ 밖에 없습니다.
창살 너머 햇살
사람을 끌고 가서도 어디로 끌고 갔는지를 안 알려 주니 알고 싶으면 가족들이 나서서 여기 저기 알아 봐야 합니다. 수감자가 어느 감옥에 있는 건지를 가족들한테 알려 주는 것과 국가안보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건지 물어 보고 싶지만 대답은 여전히 정해져 있으니 물어볼 필요가 없겠지요. 이런 일이 반복 되면 여러분도 더 이상 묻지 않게 될 겁니다. 상황만 있고 이유는 없는 현실이 우리 앞에 있을 뿐이지요.
무언가 물었을 때 대답을 듣기 어려운 또 다른 하나는 팔레스타인의 미래에 대해 물어볼 때입니다. 전체 팔레스타인에 대한 것도 그렇고 개인에 대한 것도 그렇지요.
마흐무드 집 옥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가 마흐무드에게 만약 니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할 수 있다면 앞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의 제약이 많기 때문에 ‘만약 니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면’이라는 단서를 굳이 붙인 겁니다.
별다른 대답 없이 웃으며 모르겠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점령 때문은 아니지만, 또 한편 팔레스타인인으로써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괜한 걸 물었나 싶어 마음에 걸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잠깐 자리를 떠나고 마흐무드를 포함해 7남매를 키우고 있는 아부 마흐무드와 남게 되어서 물었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거 있으세요?”
“음... 없어요. 무얼 할 수 있겠어요? 전 50이 넘으면 나이가 들어서 더 일을 할 수도 없고...”
불빛과 같은 미래
마흐무드 네 가족들과는 주로 옥상에서 놉니다. 다른 집들은 대부분 집안에 응접실이 있어서 거기서 차도 마시도 수다도 떨지만 마흐무드 네는 집 안에는 그럴 만한 공간이 마땅찮습니다. 그래서 늘 옥상에서 의자를 펼쳐 놓고 모여 노는 거지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탁자 위에 저녁 밥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 버립니다. 가끔 있는 일이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도 불은 들어오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뿐만 아니라 주변 마을 모두 불이 꺼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 너머 이스라엘 쪽(48년 점령지)과 발전소에는 불이 환합니다. 이 마을은 48년 전쟁의 휴전선인 그린라인과 아주 가까이 있고 이스라엘이 운영하는 발전소도 눈으로 보이거든요. 이스라엘 지역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이스라엘 점령촌과 이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고립장벽에도 불이 켜져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마을에만 전기가 나간 겁니다. 순간, 더운 날 검문소에서 검문을 받느라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는 이스라엘 차들이 쉭쉭 지나가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가다 멈추고 가다 멈추는 삶과 계속 이어지는 삶이 한 시대,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거지요.
전기 계량기. 카드를 충전해 끼워서 쓴다
한국에서 전기가 끊어지는 일이 벌어졌다면 전기요금 납부거부 운동이라도 하겠지만 여기는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은 핸드폰, 수도, 전기, 가스 등 대부분의 것이 사용을 하고 나서 요금을 내는 방식이지만 여기는 핸드폰이고 전기고 미리 돈을 내고 카드를 기계에 끼워서 쓰는 방식이 대부분입니다.
마을 한 가운데 카드 충전하는 사무실이 있어서 전기가 다 되면 카드를 충전한 뒤 집 앞에 달려 있는 계량기에 끼우면 전기가 들어오는 겁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전기조차 선불카드 요금이 다되면 바로 끊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전기는 이스라엘 회사가 공급합니다. 이스라엘이 전기를 공급하면 동사무소에서 전기를 사와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공급하는 거지요. 이스라엘은 돈만 받아 챙기고 나머지 유지․보수의 책임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있는 겁니다. 이 날 전기가 나간 이유도 팔레스타인 쪽 기계가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네요. 작은 고장이면 팔레스타인인들이 고치지만 큰 고장이 나면 이스라엘 쪽에서 와서 돈 받고 고쳐 준다네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전기 공급을 끊고 싶으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중요한 이익은 이스라엘이 챙기고, 온갖 책임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지우다가 수틀리면 그 마저도 ‘이젠 안녕’이라는 거지요.
지난 2006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할 때 먼저 했던 일이 가자지구에 하나 밖에 없는 발전소를 폭격하는 일이었습니다. 지난겨울 이스라엘이 다시 가자지구를 두들겨 부술 때도 이스라엘 쪽에서 공급하던 전기를 끊어 버렸습니다.
한밤의 로맨스
전기가 끊어지자 마흐무드 가족들은 익숙한 듯 초를 가져와 켜고는 밥을 차리고, 마흐무드는 촛불 아래 차려진 밥상을 보고 로맨스라며 웃습니다. 불빛이 어두워서라기보다는 마음이 어두워서 밥이 잘 안 넘어 갑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미래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계획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전기가 끊긴 뒤 초를 들고 노는 아이들
그래도 아이들은 꺄르르 웃으며 치고 박고 싸웁니다. 이리저리 초를 들고 다니며 촛농을 떨어뜨리고, 촛불에 얼굴을 대며 자기 사진 찍으라고 합니다.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팔레스타인 초딩들은 학교 가기 위해 이스라엘 군인들과 몸싸움을 벌입니다. 멀쩡한 올리브 나무를 베어내는 군인들 앞에서 팔레스타인 농민들은 나무에 쇠사슬로 제 몸을 묶고 나무를 베지 말라고 합니다. 삶을 멈추려는 자와 멈추지 않으려는 자와의 투쟁이죠.
전기나 이동의 자유와 같은 어쩌면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그것이 어떻게 내 앞에 오게 되었는지 묻지도 않는 것들을 위해, 느리고 울퉁불퉁한 길이라도 멈추지 않기 위해 힘겹지만 조금씩 삶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는 하루입니다.
선물. 아랍식 이름의 비밀
와엘의 경우는 아부 사할레에요. 아들이 있냐구요? 아니요. 와엘은 결혼을 안 했고 아이도 없어요. 단지 나이가 어느 정도 되니깐 꼭 아이가 없어도 아부라는 말에다 본인이 좋아하는 이름을 하나 붙여서 부르기도 한다네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 이름이 마흐무드 압바스인데 흔히들 아부 마젠이라고 부른 답니다. 그러다 보니 선거 운동 때 이름을 ‘아부 마젠(마흐무드 압바스)’라고 쓰기도 하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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