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21_팔레스타인과 나의 마음이 만나는 길
여기서 생활을 하다보면 깜짝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난리를 뽀개서 놀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때문에 놀라는 거지요.
동네 사람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는데 어떤 사람의 옷이 색달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거는 팔레스타인 전통 옷인가요?’라고 그냥 묻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제 눈앞에 그와 같은 옷이 선물로 나타났습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 저 사진 찍으라고 소리치는 아이야. 밑에는 마라
하루는 올리브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올리브 비누가 피부에 좋다고 얘기 했더니 그 다음날 올리브 비누 한 바구니가 제게 선물로 왔습니다. 한국에서 함께 온 친구가 고기를 안 먹는다고 했더니 어느 집에서는 생선을 준비해서 저희를 불렀습니다. 볼펜을 사러 가게에 갔더니 가게 주인이 선물이라며 그냥 가져가라고 합니다.
빵을 사러 길을 나섰습니다. 영어 교사 팔레 씨가 일하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어디 가냐기에 빵 사러 간다니깐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합니다. 처음 사는 것도 아니고 어디 파는 지도 알지만 따라오라기에 따라 갔습니다. 빵을 손에 쥐고 돈을 내려고 하니 주인이 빵 값은 안 내도 되고 그냥 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빵 가게 주인집에 들어가서 차를 마시고 빵을 들고 나왔습니다.
빵을 사들고 교장 선생님과 함께 나오는데 교장 선생님이 어디다 전화를 합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합니다. 밥 먹고 가라는 거지요. 따라가 보니 이미 밥을 준비하고 계시더라구요. 온갖 반찬에 맛있는 밥 먹고 차 마시고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도 빵을 사러 나섰다가 교장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자기가 돈을 내네요. 다음부터는 교장 선생님을 피해 다녀야겠습니다.
니는 내 친구 아이가
이발소 주인 아베드와 있었던 일도 말씀 드릴게요. 와엘 집으로 옮기기 전에 와엘 동생 살람 집에서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중요한 전화를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핸드폰 빳떼리가 꼴까닥한 거에요. 저희한테는 충전기가 없구요.
친한 친구들은 새벽까지 놀거나 일을 해서 아침에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어찌할까 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길에서 두어 번 마주치며 인사를 했던 이발소 아저씨입니다.
핸드폰을 들고 무작정 이발소로 가서 빳떼리가 없다고 하니깐 아무 걱정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나가던 사람을 불러서 뭐라 뭐라 하니깐 조금 있다가 그 사람이 충전기를 들고 왔습니다. 근데 충전기가 제 핸드폰과는 다른 기종이었는지 안 맞더라구요. 그러니깐 또 아저씨가 여기 저기 전화를 하고 지나는 다른 사람한테 뭐라 뭐라 하더니 결국 맞는 충전기를 가져 와서 충전을 했습니다.
빳떼리 충전을 하는 동안 머리도 길고 해서 이발을 했습니다. 이발을 했으니 당연히 돈을 내야겠어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얼마냐고 했더니 그냥 가라고 하네요. 제가 어쩔 줄 몰라 하니깐 ‘개안타. 니는 내 친구 아이가. 니가 돈을 안 내는 기 내한테 더 좋다’ 그러네요. 그러면서 커피나 한잔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생활을 하다보면 한국에서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때로는 서로의 차가운 가슴 곁에서 얼어 죽을 것 같았던 것을 생각하면 우린 왜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 싶은 마음도 듭니다. 더 나은 세상,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하면서도 무언가에 끊임없이 쫓기며 서로의 가슴을 할퀴는 것까지 이제는 무덤덤해져버린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어떤 게 지원이고 연대일까
팔레스타인을 다니다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이 학교는 독일이 지어줬다, 이 소방차는 일본이 보내줬다, 이 컴퓨터는 EU가 보내 줬다 등의 기록이나 광고입니다. 미국 정부도 보건사업, 영상교육, 식량지원 등 여러 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2002년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으로 크게 부셔졌던 제닌의 난민촌도 얼마 있지 않아 한 아랍국가의 지원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얼마 전에 만났던 팔레스타인 정부의 한 공무원은 너무도 당연한 듯 ‘일본은 팔레스타인에 지원을 많이 하는데 왜 한국은 적게 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단체에서 하는 각종 사업도 외국 정부나 사회단체들이 재정을 지원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은 국제적인 지원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지원의 핵심은 ‘돈’ ‘돈’ ‘돈’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물질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도대체 팔레스타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직접 와서 보고,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영국이며 프랑스며 독일 등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들은 이스라엘을 지원한다는 겁니다. 아랍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큰 액수를 지원하면서 지원의 조건으로 하마스나 이슬람 지하드와 같은 이스라엘이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조직들을 자치정부가 직접 두들기는 조건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 기가 찹니다. 그야 말로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지요. 아랍 국가들이 무조건 팔레스타인을 지원할 거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올리브유 공정 무역에 관한 연극의 한 장면
얼마 전에는 올리브유 공정무역과 관련된 연극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랍어로 하는 연극이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순간 ‘공정무역? 누구를 위해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단체를 포함해 한국에서도 공정무역을 통해 팔레스타인산 올리브유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공정무역을 통해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소득을 보장하고, 소비자들은 질 좋은 올리브유를 사용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올리브유를 통해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은 너무 좋은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누구를 위해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팔레스타인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것들이 외국 정부나 단체의 지원과 요구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 날 보았던 올리브유 공정무역 관련 프로그램도 EU와 옥스팜 등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우려는 올리브유 공정무역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꾸 이러다 보면 ‘그 분들이 원하시는’ ‘그 분들이 돈을 대실만한’ 일들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입니다. 또 그러다 보면 ‘그 분들 보시기 싫어하실 만한 일’은 안하게 될 거구요.
한국에서 팔레스타인연대운동을 하다보면 몇몇 분들이 돈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것은 어떠냐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직접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느냐고 물으시기도 합니다. 저는 빈민․난민․장애인 단체 등 곳곳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미 팔레스타인 사회가 너무 많이 외부의 돈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혹시 잘못해서 우리 또한 거기에 한 숟갈 보태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입니다. 보내는 쪽에서는 연대와 우정의 마음으로 보냈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점점 더 팔레스타인 사회를 외부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은 거지요.
대부분의 물건이 이스라엘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물가도 이스라엘을 따라가고 그러다 보니 서안지구의 물가가 높습니다. 거의 한국과 비슷합니다. 그러면 소득은 낮고, 물가는 높은데 어떻게 사냐구요?
낮은 소득과 높은 물가 사이의 간격을 외부의 원조와 지원으로 메우고 있다는 지적을 들었을 때는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지원하고 연대하는 것일까요?
사람들과 부딪히다 가끔 벌어지는 언짢은 일 말고는 여기서의 생활은 대체로 무난하게 진행됩니다. 어차피 외국인이고 잠깐 머물다 갈 사람이니 큰일을 벌일 것도 없구요. 많은 분들이 팔레스타인에 가면 위험하지 않냐고 하지만, 특히 서안지구는 외국인들이 다니기에 별 위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 분들에게 짧든 길든 팔레스타인에서 생활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물론이요, 한국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될 겁니다. 사회운동을 하시는 분이라면 운동이 뭔지, 연대가 뭔지에 대해서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기도 할 거구요.
저밀라가 돌과 올리브 나뭇잎으로 쓴 'I LOVE YOU MINI(미니 사랑해요)'
벌써부터 이 동네 사람들이 저희보고 한국 가지 말라고, 여기서 살라고 합니다. 카드에 ‘I love you'라고 써서 건네주기도 하고, 우리가 떠나면 슬플 거라고 합니다. 저의 걱정도 한국에 돌아갔는데 뉴스에 팔레스타인에서, 그것도 툴카렘에서 무슨 일이 났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마음이 어떨까 싶은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정 드는 게 무서운 거겠죠? 허투로 생각하지 말고, 마음 다해서 살자고 하면서도 누군가를 마음에 담았을 때 기쁨과 함께 다가오는 묵직함은 어떻게 할까 싶습니다. 너무 좋고 사랑스러운 사람들, 그들의 삶 속에 깊게 드리워진 그림자 그리고 짧은 시간 함께 하고 나서 떠날 나.
제 마음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머물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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