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19_히잡, 여성 억압 아니면 문화 다양성?
하루는 마흐무드 집에 놀러 갔습니다. 문을 똑똑 두드리니 아셈이 문을 엽니다. 들어오라고 해서 문 안으로 발을 집어넣으니 집 안에서 ‘아~악~’하는 비명 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우당탕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립니다. 누군지 물어보지 않아도 이 집에서 이런 식으로 큰 소리를 내는 건 슈룩입니다.
잠깐 뒤 슈룩이 그 특유의 ‘헤~’하는 웃음을 머금고 나타납니다. 저는 들어오라고 해서 불쑥 들어갔는데 슈룩을 비롯해 여성들이 아직 남성 손님 맞을 준비를 하지 못했던 거지요. 갑자기 옷을 갈아입고 히잡을 찾아 쓴다고 우당탕탕 했던 겁니다.
히잡이 뭐에요?
영화든 뉴스든 보시면 여성 무슬림들이 일정 나이가 되면 머리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것을 볼 거에요. 그걸 히잡이라고 해요. 이슬람에서는 여성들보고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이 아니면 머리를 보이지 말라고 해요. 여성 아랍인이라고 하기 보다는 여성 무슬림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은 이유는 아랍인 가운데는 기독교인이 있고, 기독교인은 히잡을 안 쓰거든요.
엄마가 일하는 공장에서 슈룩
히잡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저거 봐. 이슬람에서는 여성을 억압해. 억지로 저런 것까지 씌우잖아’식으로 생각합니다. 또 어떤 분은 히잡이란 말을 들으면 아프가니스탄처럼 여성들이 온 몸을 다 가리고 다니는 부르카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이슬람에서 가리라는 것은 머리입니다. 그래서 온 몸을 다 가리라는 것은 이슬람과는 관계없는 거지요. 아무리 그래도 여성들에게 히잡을 쓰라는 것은 여성 억압이 아니냐구요?
히잡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먼저 ‘이해’라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잘 이해하려면 나에게 익숙한 것이 꼭 정답이거나 맞는 것은 아닐 수도 있는 마음이 필요하겠지요.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구요.
한국에서 많은 수녀님들이 종교 때문에 머리에 무언가를 쓰고 다니십니다. 여름에도 긴팔 옷을 입으시구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성 억압인가요?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몸의 어떤 부위를 가리십니까? 안 가리신다구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늘 하던 거라서 특별히 남 앞에서 가린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알고 보면 우린 모두 몸의 어느 부위를 가리고 삽니다. 목욕을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몸을 부빌 때 정도를 빼면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온 몸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왜 다른 사람 앞에서는 몸의 특정 부위를 가리시나요? 그러지 않으면 부끄럽거나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라구요? 언제부터 몸을 가리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예의에 어긋난 일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아주 어릴 때는 우리 모두 벗고 지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부모님이나 주위 분들이 성기를 중심으로 가리라고 했지요. 남성에 비해서 여성은 가리라고 하는 시기가 빠르고 부위도 넓은 편이지요.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시켜서 몸을 가렸고, 나중에는 그게 당연한 줄 알고 그렇게 했고,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요.
아저씨 누구에요? 어디서 왔어요?
아주 꼬마를 빼면 지금까지 제가 만난 사람의 100%가 몸의 특정 부위를 가리고 살더라구요. 물론 모두 똑같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 어머니 세대만 해도 여성들이 가슴이나 속옷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부끄러워했지요. 어떻게든 가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대가 바뀌고 요즘은 많은 여성들이 가슴 드러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느끼고 속옷도 패션이라며 다른 사람이 내 속옷을 볼 것을 미리 예상해서 옷을 입지요.
팔레스타인에 사는 무슬림들의 경우는 어떨까요? 남성이나 여성이나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모두 히잡을 쓰고 있는 것을 보고 자랐고, 이슬람을 알게 되면서부터 종교에서도 머리를 가리라고 배웠지요. 그러다보니 히잡을 쓰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이 되어버리지 않았을까요? 특별한 의도가 있든 없든 그게 그냥 생활 문화가 된 겁니다.
교실 앞에서 책 읽기
알리야 씨는 한국인 여성 무슬림입니다. 기독교인이었다가 개종을 했지요. 하루는 알리야 씨가 제게 히잡과 얽힌 답답한 마음을 말씀 하시더라구요. 자신은 한국에 살면서 히잡을 쓰고 싶은데, 히잡을 쓰면 한국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는 거에요. 자신은 히잡을 쓰면 안 쓰는 것보다 편안한 느낌을 갖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불편한 것을 왜 쓰냐고 하는 거지요. 그래서 쓰기도 했다가 벗기도 했다가 한답니다.
제 생각은 히잡을 썼으니 억압 받는 여성이고, 벗었으니 자유로운 여성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청바지는 억압의 상징인가요, 자유의 상징인가요? 히잡 하나만을 놓고 억압과 자유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히잡을 써야 너의 마음이 하느님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곧, 겉모양이 속마음을 결정한다는 거지요. 염주를 목에 걸면 부처님 말씀을 좀 더 잘 알 수 있을까요?
배꼽티 논쟁
팔레스타인이나 여성 무슬림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려면 히잡을 썼냐 아니냐를 놓고 판단하기 보다는 히잡과 여성을 둘러싼 사회관계를 보면 좋겠습니다.
벌써 오래된 일입니다. 예전에 한국에 처음 배꼽티라는 것이 생겨날 때였습니다. 광주에서 있었던 일로 기억하는데, 한 여성이 길에서 배꼽티를 입고 가고 있었고 이를 본 한 할아버지가 그 여성을 때린 거지요. 쉽게 말해 복장불량이라는 겁니다. 여자가 함부로 몸을 드러냈다는 거지요.
여성운동의 일부로 여성들이 수공예품이나 먹을 거리, 유기농 비누 등을 만들어 파는 가게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여성들에게 특정한 부위를 가리고, 특정한 옷을 입으라고 요구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법으로 처벌이야 하겠습니까만 도덕이 어떠니 예의가 어떠니 가정교육이 어떠니 하면서 욕을 하지요. 여성에 비해 남성은 옷을 선택하는 것이 보다 자유로운 편입니다.
텔레비전에 한 번 씩 대통령이 외국에서 온 손님들과 만찬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가만히 보면 남성인 대통령은 양복을 입고 여성인 대통령 부인은 한복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성은 양복을 입음으로써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여성은 한복을 입음으로써 한국만의 전통을 지키는 거지요.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가 인간 세상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역사나 전통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대부분의 종교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경전인 ‘화엄경’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계율을 수호할 때 여러 마왕이 아름다운 천녀를 수없이 데리고 와서 보살을 유혹하려고 하여도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이 오욕은 불도의 장애가 된다. 이에 집착해서는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여성은 유혹하고 수행을 방해하고 장애가 되는 존재지요. 유혹하는 여성을 이겨내야 훌륭한 수행자가 된다는 거지요. 불교가 처음 탄생하던 당시 사회가 남성 중심이었고, 수행이라는 것이 남성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여성을 유혹하는 존재로 표현했던 것은 아닌지 추측해 봅니다. 21세기 한국에서 불교가 만들어졌으면 마왕이 돈다발을 가져 왔을지 누가 압니까?
이슬람에서도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존재로, 천국에서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식으로 그려집니다. 이슬람이 만들어지던 때도 남성 중심의 사회였고, 그러다 보니 여성에 대한 표현이 지금으로 치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인 경우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참으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분이 만드셨다면 누구를 차별한다거나 누구를 누구의 선물이라고 하지는 않으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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