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23_내가 뭐한다고 이 짓을 해가지고...

순돌이 아빠^.^ 2010. 3. 29. 19:30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23_내가 뭐한다고 이 짓을 해가지고...

 

팔레스타인연대운동을 한답시고 세월을 보낸 것이 벌써 6년을 지나 7년째 접어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이런 일을 하고, 팔레스타인에 와서 이런 글을 쓰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습니다. 제 인생에 국제선 비행기를 탈 일이 있을 거라는 것도 생각하지 못 했으니깐요.

 

지난 몇 년 동안 가끔 ‘내가 뭐한다고 이 짓을 해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이 짓을 한 것을 후회한다거나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한창 팔레스타인인들을 두들기고 있을 때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답답해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요. 누군가는 죽어가는 누군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

 

떨리는 목소리

 

그제는 올해 88세인 사이드 바드란 씨 집에 가서 차를 한 잔 했습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눈에 띄는 것은 벽에 걸려 있는 총을 든 젊은 남성의 사진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 무언지 알지만 그래도 또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가슴에 묻은  아들의 사진 앞에서

 

사연인즉, 2005년 당시 22살 대학생 사이드 씨 아들 압달라가 몸에 폭탄을 안고 이스라엘 지역으로 가서 터뜨린 겁니다. 어차피 성하지 않겠지만 시신은 이스라엘에 있고, 찢어진 옷가지만 지금 집에 보관하고 있답니다.

 

아들이 죽고 사이드 씨는 참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다 묻고 돌아서면 잊어 버려도, 자식이 죽으면 그 자식을 가슴에 묻은 채 울어도 울어도 모자란 것이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가슴이겠지요.

 

옆에는 다른 사진이 한 장 놓여 있었습니다. 누구냐고 물어 보니깐 조카인데 이스라엘 군인한테 총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사진 속 조카의 또 다른 형제도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더 이상 뭔가를 물어 볼 수가 없더라구요. 상대방의 마음이 어떨까를 떠나서 자식과 조카를 먼저 보낸 주름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제가 눈물이 나려 해서 안 되겠더라구요. 말하는 제 목소리가 떨려서 안 되겠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죽은 이들 모두 이슬람 지하드라는 조직 소속이었네요. 이 동네에도 밤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와서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활동가들을 잡아갑니다. ‘까불면 죽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여러 정당과 조직들이 있는데 대이스라엘 투쟁을 강하게 벌이고 있거나 무장투쟁을 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군사작전의 주요 표적이 됩니다.

 

낮말은 쥐가 듣고 밤말은 새가 듣고

 

모한난은 그림 그리는 사람이고 대학에서도 미술을 전공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관련 직업을 구하기 어려워 지금은 옷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한난은 앞에 말한 사이드 바드란이 폭탄을 터뜨리자 이스라엘 군인들한테 끌려 갔다 왔습니다. 왜냐구요? 친구니깐.

 

사격을 하기 위해 이동 중인 이스라엘 군인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총을 쏘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

 

이스라엘이 사람을 잡아갈 때면 아주 신비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누가 어느 조직 소속이고, 누가 누구의 친구인지를 다 아는 거에요. 어떻게 알았을까요?

 

가장 흔한 방법은 스파이(간첩)입니다. 팔레스타인인 가운데 누가 스파이인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정황과 심증만 있을 뿐입니다.

 

스파이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끌고 가서 너희 가족까지 다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아니면 돈을 매수를 하는 거지요. 여성과의 성 관계 장면을 촬영해서 이 테잎을 공개하겠다며 협박을 하기도 한답니다.

 

스파이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활동가 체포는 물론 암살에까지 이용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조직의 고위직 활동가가 있다고 치지요. 이스라엘은 이런 사람은 잡아 가두는 것보다는 죽이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러면 스파이를 통해 이 활동가의 일정과 이동 경로를 파악한 뒤 암살단을 보냅니다. 그러면 정말 영화에서처럼 독침을 쓴다거나 차에 폭탄을 설치해서 터뜨리지요. 아니면 헬기를 띄워 폭격을 해서 그냥 하늘나라로 보내 버립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람 좋아하고 서로 어울려 노는 거 좋아하지만 말 조심, 행동 조심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심지어는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러 온다는 외국인 중에도 스파이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오죽하겠습니까.

 

발에 입은 총상을 보여준 팔레스타인인

 

모한난은 그냥 봐도 참 사람 좋아 보입니다. 말을 하는 것이나 몸짓도 아주 부드러워요. 총 싸움도, 동네 사람들 크게 떠드는 것도 싫어하구요. 한국말 배우기는 열심입니다. 저한테 이것저것 알려 달라고 해서 종이에 적어서는 다음에 만날 때 ‘안녕하시요’ ‘아름(잠깐 쉬었다가) 답다’ ‘빨강 파랑’ ‘시올(서울)’ 등의 말을 해서 저를 놀라게 만듭니다.

 

명상은 어떻게 하는지 알려 달라고 해서 가부좌 틀고 무릎 위에 손을 올려 놓는 것을 보여 줬더니 따라 합니다. 그러더니 머리와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합니다. 잠깐 앉아 있더니 다리가 아프다고 하네요. 여기 사람들은 주로 의자에 앉아 생활을 하다보니 바닥에 다리 꼬고 앉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가 봐요.

 

모한난 사진첩에 뒤집어져 있는 사진 한 장

 

하루는 모한난이 자기 사진 앨범을 가지고 왔습니다. 고등학교 때 얘기도 하고 나블루스에서 대학교 다닐 때 얘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넘기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사진 한 장이 뒤집어져 있었습니다. 이건 뭐냐고 하니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친한 친구였는데 이스라엘 군인한테 총 맞아 죽었어요. 사진을 볼 때마다 슬퍼서 아예 사진을 뒤집어 놨어요.
 
자치정부라는 게 있기는 한데...

 

이스라엘 군인한테 총 맞아 죽은 얘기를 들으면 마음은 아프지만 심정이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그에 비해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사람들이 죽거나 하면 참 마음 복잡합니다. 어제는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와 한 이슬람 조직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12명이 죽고 100명 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일을 놓고 누구는 이슬람 조직들 사이의 입장 차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고, 누구는 파타가 일을 꾸민 것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가 차단되어 있어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다고도 합니다.

 

팔레스타인 친구들과 가자지구에서 있었던 일을 놓고 얘기를 했는데 아셈이 ‘이스라엘은 즐거워하고 있을 거에요’라고 하더라구요. 정확한 얘기입니다. 이스라엘이 뒤에서 일을 꾸미든 아니면 팔레스타인 사회 내부에서 일어나든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 간의 전투는 팔레스타인 사회를 더욱 분열시키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좌절감과 이스라엘에게는 즐거움을 주는 계기가 되지요. 미국과 이스라엘로써는 손 안대고 코푸는 셈입니다.

 

자신의 작품을 들고 있는 모한난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스라엘만이 원인은 아닙니다. 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부패는 이미 너무 많이 알려져 있어서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해서 미국 손아귀에 놀아난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지요.

 

자치정부에 대한 불만은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지난 겨울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학살을 벌였고,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이에 대한 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조사단장의 이름의 따서 골드스톤 보고서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 보고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쪽 모두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 보고서가 편향됐다며 반발했지요. 그런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이 보고서를 채택할지 말지를 놓고 표결을 하려고 하는데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이 표결을 연기하자고 나섰습니다. 팔레스타인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어서 보고서를 채택해서 이스라엘의 범죄를 세상에 알려도 모자랄 판국에 자치정부 대통령이라는 자가 표결을 연기하자고 했으니 말입니다. 곳곳에서 집회가 벌어지고 마흐무드 압바스의 사진을 찢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압바스도 결국 한 발 물러섰지요.

 

마흐무드 압바스

 

압바스가 이렇게 한 데는 미국의 압력이나 모종의 뒷거래가 있지 않았겠냐는 추측이 있습니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으니 정황으로 봐서 그렇지 않겠냐는 거지요. 아무튼 압바스는 배신자로 찍혔습니다. 

 

현 압바스 정부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세력에 대한 탄압도 대단합니다. 깜빵으로 보내는 것도 예사구요. 자치정부가 있으니 없는 것보다 낫고, 그래도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 된 것  아니냐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때문에 한 번, 자치정부 때문에 또 한 번 조심, 조심하며 살아야 되는 거지요. 이스라엘에 대항해, 부정부패한 현 정부를 향해 두 가지 투쟁을 함께 벌이고 있는 거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