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11. 알 자지라로 영어 공부를? - 두 번째 이야기

순돌이 아빠^.^ 2010. 3. 2. 15:28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11. 알 자지라로 영어 공부를? - 두 번째 이야기

 

한번은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2003년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2004년에 한국이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군인을 이라크에 파병했지요. 그리고 한 이라크인 조직이 이라크에 있던 한국인 김선일을 붙잡았어요. 이들은 영상으로 김선일의 모습을 세계로 전했고, 한국 정부가 한국군을 철수시키지 않으면 김선일을 죽이겠다고 했지요. 김선일이 붙잡혔다는 얘기가 한국에 전해지자 한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어요. 곳곳에서 촛불집회가 벌어지고 한국 정부를 향해 한국군을 철수시키라고 했어요.

 

테러리스트에게 돈을 주지 말라는 광고가 나오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방송 MBC. 누가 누구의 테러리스트인지...


이 과정에서 제가 들은 뉴스 하나는 한국의 네티즌들이 이라크인들에게 김선일을 죽이지 말라는 글을 알자지라 홈페이지 게시판에 남기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한국과 중동, 한국과 이라크가 워낙 관계맺음이 적고 그나마 알자지라가 아랍권에서 많이 알려져 있어서 다급한 마음에 그렇게라도 했던 거지요.


각종 방송에서 이런 네티즌들의 행동을 보도 하는데 약간 의아했어요. 일단 외국의 사이트들은 한국과 달리 게시판이라는 것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알자지라도 마찬가지구요. 제가 모르는 게시판이 있나 보다 했어요. 뉴스 화면에 네티즌들의 행동을 보도하는 장면이 나왔고 거기서 알자지라 홈페이지라고 비추었는데 제가 평소에 보던 알자지라 홈페이지와는 다른 거에요. 홈페이지도 주소도 ‘알자지라 쩜 넷’이 아니라 ‘알자지라 쩜 컴’이었구요.


나중에 찾아보니 ‘알자지라 쩜 컴’은 알자지라와는 관계없는 유사 사이트였어요. 한국 네티즌들이 다급한 마음에 잘 모르고 엉뚱한 곳에 글을 남겼던 거지요. 안타까웠지만 이미 너무 많은 분들이 그 일에 나서고 계셨고, 제가 어떻게 할 수도 없더라구요.


시민들은 어떻게든 김선일을 살려 보려고 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냅다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은 없다’고 선언했지요. 죽이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정말 이라크인들은 김선일을 죽였고, 죽이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공개 됐지요. 이라크 사람들이라고 예전부터 아무 외국인이나 잡아서 죽이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외국 군대가 이라크로 쳐들어 간 뒤에 이런 일까지 벌어진 겁니다. 한국 사람들은 슬픔과 충격에 빠졌고, 이제라도 미국은 침략 전쟁을 그만두고 한국도 전쟁 도우미 짓을 그만 두라는 목소리가 커졌지요. 한편에서는 공수부대를 파병해서 복수를 하자는 사람도 있었구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이 일을 통해 다시 한 번 한국과 중동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고, 한국이 아랍이나 중동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습니다. 알 자지라에 얽힌 일은 작은 사례일 뿐이겠지요. 자동차와 핸드폰 팔 생각만 하지 말고 아랍과 중동을 좀 더 알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싶었구요. 

 

테러리스트 안중근?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뉴스하면 알 자지라를 보는 이유는 간단해요. 다른 언론들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침묵하거나 현장에 기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도 알 자지라는 계속 방송을 했거든요. 단순히 방송만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잔혹함과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계속 전했어요. 만약 안중근이나 조선 독립군을 일본 언론이 ‘조선인 테러리스트’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열 받겠어요? 일본이 조선으로 ‘진출’했다고 하는 것과 일본이 조선을 ‘정복’했다는 것은 단어 하나의 차이지만 상황을 엄청나게 다르게 보이게 만들지요. 팔레스타인인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시장에서 과일 파는 아저씨.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 언론들은 이들을 너무도 쉽게 테러리스트라 부른다


예전에 한 번은 방송국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한국에서 국제 문제를 다룰 때 뉴스가 너무 미국 중심으로 편향되어 있지 않냐고 하니깐 그분이 제 얘기에 공감은 하는데 방송국에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방송국에 세계의 수많은 방송이 들어오면 그걸 방송국 사람들이 보고 뉴스 할 만한 것을 골라서 화면을 만들고 말을 만들어서 방송을 하게 되는데 아랍어를 못하니 영어 중심, 미국 중심으로 가게 된다는 거지요.


처음에는 알 자지라라도 아랍어 방송만 있었어요. 그런데 몇 년 전에 영어 방송을 시작하면서 방송도 그렇고 홈페이지도 아랍어와 영어로 운영해요. 그러니깐 CNN이나 워싱턴 포스트를 참고할 수 있는 방송국이나 언론사는 알 자지라도 참고할 수 있다는 거지요.

 
알자지라를 본다고 해서 아랍과 중동의 모든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거에요. 알 자지라는 정치 뉴스 중심이거든요. 하지만 알 자지라를 보면 정치 분야만이라도 한국 언론의 비뚤어져 있는 모습을 조금 바꿀 수 있겠다 싶어요. 하다못해 아랍인/무슬림들이 맨날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삿대질하고 침 튀겨 가며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거구요. 오죽 했으면 예전에 한 기자분이 저에게 ‘영민씨, 우리 그냥 다른 것 다 빼고 알 자지라 기사 번역해서 올려놓는 사이트를 같이 만들어 보지 않을래요?’라고 했을까도 싶습니다. 


방송국도 아니고 보통 사람들이 알자지라를 볼 수 있냐구요? 한국에서 위성 텔레비전으로 볼 수는 없지만 인터넷을 이용하면 돼요. 알자지라 홈페이지(http://english.aljazeera.net)에 가시면 되고, 아니면 알 자지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방송을 보여 주는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서 보셔도 된답니다.

 

알 자지라로 영어 공부를?

 

한국이 무역 규모가 세계 몇 위고, 올림픽에서 몇 등을 했고 해도 삶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 지수는 세계에서 낮은 편이에요. 한국 사람을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가 영어에 대한 열등감이지 않을까 싶어요.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남녀노소 모두 영어를 한 마디 하고 싶어 하고, 영어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거나 열등감을 느끼지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중국어나 아랍어를 잘 해야 할 필요가 없듯이 영어도 필요한 사람만 배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에서 영어로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하고, 영어로 된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 사람은 몇 사람 안 되잖아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43대). 아버지 부시(41대)와 빌 클린린턴(42대)에 이어 이라크에 대한 폭격과 경제봉쇄, 침공을 계속함으로써 많은 이라크인들을 죽였다  (사진 : 미국 백악관 http://www.whitehouse.gov)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열등감을 이겨 보기 위해서라도 영어 공부를 하는데 죽은 말 배우기가 많은 것 같아요. 말이라는 것이 어차피 살아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기 위한 거잖아요. 다른 사람과 대화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그야 말로 죽은 말 배우기지요. 오죽 했으면 영어를 냅다 외우기만 하다보니 외국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하우 아 유?(괜찮아유?)’ 하니깐 ‘아임 파인(괜찮아유~)’라고 했다는 농담이 있겠나 싶어요.

 

영어를 배우기는 했는데 정작 말을 시키면 할 말이 없는 경우도 있어요. 평소에 사람이나 사회에 대해 생각도 하고, 뉴스도 보고 책도 읽고 그래야 생각이란 것이 머릿속에 있게 되고, 또 그래야 영어든 뭐든 시켜도 말을 하게 되는데 단어만 외어대다 보니 할 말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이 안 해도 되지만 기왕 할 거면, CNN이나 BBC 보다는 알자지라로 영어도 배우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도 알아보면 어떨까 하는 겁니다. 아마 CNN에서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사람을 알자지라에서는 전사(fighter)라고 부르는 경우를 발견하게 될 거에요. CNN에서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사건을 정규방송 중단하고 속보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동안 알자자라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마을을 폭격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도 있을 거구요.


알 자지라를 보면서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관련된 책(한글이든 영어든)도 읽어 보시면 더 좋겠지요. 다른 언론, 다른 책, 다른 정보를 접하면 아마도 다른 세상을 보고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될 거에요. 제가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알고 영어도 배울 겸 CNN을 보다가 알자지라를 보면서부터 다른 세상을 보게 된 것처럼 말이에요. CNN을 보시던 분이 알자지라를 보시면 내가 속았구나 하시면서 ‘CNN 괜히 봤어. 괜히 봤어. 나 어떡해~’ 하는 생각도 들 겁니다.


영어를 단어로만 보지 말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고 듣고 느끼다 보면 영어 공부를 위해 시작한 알 자지라가 다른 사람의 마음도 이해하게 해 주지 않을까 싶어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다 보면 나중에는 영어로 된 방송이나 뉴스를 보지 말라고 해도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싶어서 보게 될 겁니다. 그야 말로 살아 있는 말 배우기가 되는 거지요. 영어라는 징검다리를 사이에 두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겁니다.

 

 선물 11. 까짓 거 알자지라를 부셔버리자!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조지 부시였지요. 미국의 푸들이라고 놀림 당하던 영국의 총리는 토니 블레어였구요. 침공이 한창이던 2004년 4월 부시와 블레어가 워싱턴에서 만났어요.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이 영국의 <데일리 미러>라는 신문에 보도 됐는데, 이 때 부시가 토니 블레어에게 알 자지라를 폭격하고 싶다고 했다네요. 그러자 블레어가 깜짝 놀라서 만약 언론사를 폭격하면 전 세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거라며 겨우 말렸다네요.


에이 아무리 미국이 막나가고, 알 자지라가 밉다고 해도 언론사를 폭격 하겠냐구요? 지난 2001년 10월부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시작했어요. 알 자지라도 열심히 미국의 뜻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보도를 했구요. 그러자 11월13일에는 미군이 미사일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있던 알 자지라 사무실을 폭격했어요. 2003년 4월에는 미군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있던 알 자지라 사무실을 폭격해서 타레크 아이유브라는 기자는 죽고, 주헤이르라는 카메라맨은 부상을 입었답니다. 미국한테 잘못 보이면 기자도 목숨 걸고 보도를 해야 되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