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04_아, 예루살렘

순돌이 아빠^.^ 2010. 1. 21. 22:15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04_예루살렘의 밤

 

제가 지금 머물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동예루살렘 올드시티에 있는 다마스커스 게이트 근처에 있습니다. 성처럼 생긴 올드시티는 크게 무슬림 구역, 유대인 구역, 기독교인 구역, 아르메니안 구역으로 나뉩니다. 네모난 성을 따라 여러 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다마스커스 게이트는 무슬림 구역 쪽에 있구요. 무슬림 구역에는 무슬림만 들어갈 수 있냐구요? 그런 건 아니에요. 누구나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이곳도 역시나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이 순찰도 하고 감시도 하고 있지요. 다마스커스 게이트 쪽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시장이 나와요. 한국도 그렇듯이 시장에는 많은 사람이 오가고 많은 물건들을 팔고 있지요. 채소와 과일, 각종 공산품에 전자제품, 옷과 과자 등등 그야말로 북적거립니다. 낮에는요.



예루살렘 올드시티 시장에서 감자 꾸러미를 옮기고있는사람들


올드시티 안에는 사람도 많이 살고 있고, 알 아크사 사원처럼 중요한 건물이나 시설들도 있어요. 4개의 구역을 어떻게 구별 하냐구요? 길을 가면서 유심히 주위를 둘러보세요. 예를 들어 무슬림 구역의 기념품 가게에서는 ‘Free Palestine'이라고 적힌 것이 있다거나 팔레스타인 깃발이 그려진 물건들이 있을 거에요. 길을 따라 쭈욱 가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건물에 이스라엘 깃발이 걸린 것이 보이기도 하고, 'Jewish'니 ’Israel'이니 하는 글자가 적힌 티셔츠를 파는 가게도 있을 거에요. 유대인들이 어떻게 용감하게 예루살렘을 회복(정복)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념관도 있고, 유대교 학교도 있을 거구요.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유대인 구역에 들어오신 겁니다. 또 좁은 길을 따라 이리 저리 구경하는데 기념품 가게에서 예수나 성모 마리아 모양의 물건을 많이 팔고 있는 것 같다 싶으면 거긴 기독교 구역이고, 마치 옛날 영화에 나올 법한 망토처럼 긴 옷을 입고 머리에 큰 모자를 쓴 분들이 걸어 다니시면 아르메니안 구역인지 살펴보시면 될 겁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모두 이슬람을 믿냐구요?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을 무슬림이라고 하는데, 2007년 기준으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 약 400만 명의 97% 가량이 무슬림이고 3%가량이 기독교인들이에요. 기독교인들은 주로 예루살렘·베들레헴·라말라 등지에 많이 살고, 선거 때는 기독교인 할당에 따라 따로 선거를 하기도 한답니다.

예루살렘에 왔으니 알 아크사 사원에 가보자 싶어 시장 중간에 있는 길로 들어갔어요. 사원 입구에는 역시나 이스라엘 경찰이 지키고 있더라구요. 어디 가냐기에 알 아크사에 간다고 하니깐 무슬림이냐고 물어요. 그래서 아니라고 하니깐 외국인은 통곡의 벽 옆에 있는 길로 들어가야 한대요. 에이, 그냥 무슬림이라고 할 걸 그랬나 봐요. 무슬림인지 아닌지가 어디 얼굴에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일단 통곡의 벽 쪽으로 갔어요. 무슬림들은 거기가 그냥 알 아크사 사원의 한쪽 벽이라고 하고, 유대인들은 로마에 의해 무너진 성전의 유적이라고 하는 곳이죠. 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곳을 점령하고서부터는 유대인들의 기도 장소로 변했고, 통곡의 벽이라는 것도 유대인들이 붙인 이름이에요.


알 아크사로 가든 통곡의 벽으로 가든 아무튼 입구에서부터 짐 검색을 당해야 해요. 이스라엘이고 팔레스타인이고 어딜 가나 늘 하는 게 검문·검색이지요. 팔레스타인을 다니려면 검문·검색을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시는 게 속편할 거에요. 검문소를 지나니깐 많은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더라구요. 중간에 쳐진 작은 담을 놓고 왼쪽에는 남자, 오른쪽은 여자가 기도하는 곳이에요. 유대인이 아니어도 기도하는 곳에 갈 수 있냐구요? 먼저 그냥 멀찍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고, 가까이 가보고 싶으면 남자의 경우는 통곡의 벽 앞에서 나눠주는 작은 모자를 머리에 걸쳐야 돼요. 그걸 머리에 걸치고 들어가면 벽 앞에서 기도하는 유대인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답니다. 물론 반바지 등 맨살이 많이 드러나는 옷은 자제하시는 것이 좋겠지요.


아, 예루살렘

 

올드시티를 간단히 둘러보고 필요한 것도 사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가 잠깐 바람을 쐴까 싶어 밖으로 나갔답니다. 거리가 너무 한산해서 해가 지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조금 있다 보니 저 멀리 서예루살렘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를 따라 이쪽으로 걸어오는 거에요. 잠깐 더 기다려 행렬을 보니 이스라엘 깃발도 나부끼고 경찰과 군인들도 함께 걷고 있네요. 무슨 일이 있나 보다 해서 행렬을 기다렸죠. 사진도 찍고, 행진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2천 여 년 전 로마가 유대교 사원을 파괴한 날을 기념해서 예루살렘을 돌며 행진을 하고 있는 거래요. 행렬 뒤를 따라 갔어요. 이들의 행렬 말고는 정말 거리가 한산하고 차들도 안 다니더라구요. 경찰과 군인이 아랍인들의 이동을 통제했거나 아랍인들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알아서 거리로 안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낮에 그 많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유대인들만이 경찰과 군인의 호위를 받으며 행진하는 모습을 보니 다시 한 번 ‘아, 여기가 팔레스타인이구나’ 싶었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이냐구요? 2008년 기준으로 이스라엘 인구가 약 730만 명 정도가 되는데, 이 가운데 유대인이 75.5%, 무슬림 18.5%, 기독교인 1.7%, 기타 4.3% 정도 된답니다.




2천 여 년 전 로마가 유대교 사원을 파괴한 날을 기념해서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돌며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는 유대인들


집회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2006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나더라구요. 하루는 자파 게이트 주변에서 옥수수 삶은 것도 사먹고 잔디밭에 누워서 낮잠도 자며 빈둥거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다마스커스 게이트 근처에서 ‘펑’하는 소리가 나더라구요. ‘일이 터졌구나’ 싶어 얼른 달려가 보니 역시나 군인과 경찰들이 곤봉과 총을 들고 뛰어다니고,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고 사람들은 이리 저리 쫓겨 다녔어요. 군인들이 버스 정류장 쪽으로 뛰어 가길래 따라 가 봤더니 마침 학생들 하교 시간이라 정류장에 가방을 맨 학생들이 많았는데 남학생들은 일이 터지자 얼른 도망을 가고, 여학생들만 최루탄 날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더라구요.


그 와중에 한 남자는 붙잡혀 손을 뒤로 묶여 끌려 오고 있었구요. 지나는 사람을 발로 차고 곤봉을 휘두르고, 사람들은 최루탄이 매워 콜록거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몇 분의 할머니가 길거리에 야채를 내놓고 팔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군인이 야채 꾸러미를 군화발로 뻥뻥 차버리는 거에요. 정말 야채 꾸러미가 하늘로 슈욱 솟았다가 툭하고 떨어졌지요. 얼른 야채를 주워 모으는 할머니,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할머니 그리고 화가 나서 소리치시는 할머니도 계셨구요. 제가 사진을 찍고 있으니깐 이스라엘 군인이 와서 욕을 하면서 사진을 찍지 말라더라구요. 지들이 잘못한 줄을 알기는 알았나 봐요.


예전에 한국에 있는 한 기독교인들의 모임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창 팔레스타인인들의 힘겨운 삶과 예루살렘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 나니깐 어떤 분이 ‘나도 성지순례 가 봤는데 아무 일 없던데요’ 하시더라구요. 그분의 말씀이 맞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단순 여행이나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정해진 길만 다니면 그야말로 별 일 없게 다닐 수 있지요. 총을 매고 무리지어 다니며 어슬렁거리는 군인들도 그냥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보여요. 여러분이 예루살렘을 방문해서 그 군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면 아마 웃으며 그러자고 할 거에요. 문제는 그러던 군인들이 일이 터지거나 명령이 떨어지고, 유대인들이 행진이나 시위를 하고, 밤이 되면 얼굴을 싸악 바꾼다는 거지요. 점령군의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겁니다.

 

내일이면...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게스트하우스로 왔습니다. 좁고 더운 방안에 있기도 그렇고 해서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동네 청년들이 조그만 공터에서 축구를 하고 있더라구요. 저를 보더니 중국에서 왔냐고 합니다. 아니라고 하니깐 일본에서 왔냐고 해요. 아니라고 하니깐 그러면 어디서 왔냐고 합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깐 ‘아하’ 합니다. 흔히 있는 일이고 순서도 ‘중국->일본->그러면 어디?’로 정해져 있어요.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어떤 분은 북에서 왔냐, 남에서 왔냐고 그러구요. 우리에게는 너무 멀리는 있는 북한이 오히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까운 거지요. 예전에 북한이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지원하기도 했었고, 팔레스타인인들이 북한으로 유학을 가기도 했으니깐요.


"미국은 걱정마라. 니 뒤에는 이스라엘이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는 티셔츠


갑자기 저보고 축구를 같이 하자고 하네요. 전 탁구나 당구처럼 공이 작은 놀이는 조금 할 수 있어도 축구, 농구, 배구처럼 공이 커지면 정말 못해요. 낯선 사람이기도 하고 축구를 잘 못하기도 해서 웃으며 안 하겠다고 하니깐 그러지 말고 같이 하자며 팔을 잡아 끌어요. 3:3으로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1명이 알아서 빠지고 제가 대신 끼게 되었어요. 골이 들어가면 ‘이야~’ 함께 소리도 치고, 주변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 밑으로 공이 들어가면 낑낑거리며 공을 꺼내기도 했지요. 하지만 저는 역시나 ‘구멍’이었고, 팔레스타인 친구들을 크게 웃게 해 줬답니다. 두 어 번 그만하겠다고 했는데도 절대 안 된다며 억지로 붙잡아서 계속하고 있는데 어디서 큰 소리가 들려와요. 모두들 고개를 돌려 보니 제가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의 아저씨가 2층에서 뭐라 뭐라 하시더라구요. 그러자 사람들이 주섬주섬 공을 챙기며 ‘아저씨가 시끄럽다고 그만 하라네요’해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어요. 세상 어딜 가나 크게 떠들며 노는 사람과 조용히 좀 살자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봅니다.


드디어 내일이네요. 내일이면 저는 라말라에 가서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 생활을 시작할 거에요. 7월의 더운 예루살렘의 밤이 이렇게 지나갑니다.


04_거기는 물건 살 때 바가지 없나요?

 

정답부터 말씀 드리면 팔레스타인도 사람 사는 곳인데 왜 바가지가 없겠습니까? 예루살렘은 큰 도시인데다 관광객이 많이 오니깐 바가지를 쓸 가능성도 많이 있지요. 특히 올드시티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의 물건은 그야 말로 부르는 게 값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구요? 일단 여기저기를 한 번 다녀도 보고 값도 물어 보세요. 정말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타나고 주인이 값을 부르면 이쪽에서 값을 확 깎아서 불러 보세요.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50% 정도 낮게 값을 부르면 그쪽에서 반응이 있을 거에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안 판다고 하면 그냥 돌아서세요. 한 가게에 있는 물건은 다른 가게에도 있으니깐요. ‘손님, 너무 많이 깎으신다’라는 표정을 지으면 일단 흥정을 잘 하면 그렇게 낮게 부른 값으로 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주인은 ‘이건 당신만을 위한 특별한 가격’이라며 돈을 조금만 더 내라고 할 거에요. 심지어 ‘나는 니가 그냥 관광객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을 도우러 온 것을 안다. 그래서 특별히 너한테만 깎아 줄게’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구요. 하하, 과연 그 말을 우리한테만 하는 걸까요? 꼭 마음에 드는 물건의 가격을 낮추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돌아서기’에요. 적당히 흥정을 하다가 너무 비싸다고 뒤돌아서서 몇 걸음 걸으면 물건 파는 사람이 ‘그래그래 알겠어요. 그렇게 해요’하며 붙잡기도 할 겁니다. 정찰제처럼 가격이 붙어 있다구요? 하하, 물건 값을 부르는 것도 주인 마음이고 가격을 붙이는 것도 주인 마음이니 주인과 협상만 잘하면 깎을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