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27_점령이 인간의 수염에 미치는 영향?
밤에 와엘 집에서 인터넷으로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고 있는데 인터넷이 끊겼습니다. 인터넷 강국 한국에서야 흔치 않는 일이지만 여기서는 자주 있는 일입니다.
자주 인터넷이 끊기다보니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인터넷은 자료도 찾아보고 한국과 이메일을 주고받기도 하고 인터넷 아랍어-영어 번역기를 통해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존재지요.
누구는 낭만을 위해 전등을 끄고 초를 켠다고도 하지만
인터넷이 끊기고 나서 칠면조 농장에 갔습니다. 미국에서 만든 신나게 두들겨 부수고 총질하는 영화도 보고, 사람들과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놀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기가 나갔습니다.
저 멀리를 보니 역시 이스라엘 지역에는 불이 환합니다. 이럴 때는 달빛 밝은 것이 좋다고 해야 될까 아니라고 해야 될까요? 달빛에 기대어 사람들이 차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그랬습니다.
문제는 내일 아침까지 칠면조 70마리를 잡아서 팔아야 되는데 어떻게 할지 싶습니다. 칠면조 잡는 곳으로 내려가 보니 사람들이 손전등을 켜 놓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농장에 조금 더 있다 집으로 왔습니다. 와엘이 초를 찾아서 켜는 동안 ‘우리에겐 전기는 없지만 담배는 있잖아. 뭐가 걱정이야’하면서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기왕 이렇게 된 거 자자고, 서로의 소파에 기대어 잠들었습니다. 아침이 되니 전등이 켜지고 전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행입니다.
기름으로 불밝히던 것들
느지막이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니 인터넷도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자료를 찾고 읽고 있는데 또 전기가 나갑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와엘한테 낮잠이나 자자고 해서 또 잤습니다.
전기가 없다고 해서 모든 생활을 멈추라는 법은 없지만 우리가 주로 밤에 움직이고 더운 낮에는 집에서 자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기가 없으면 뭔가를 하기가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와엘 집이 좀 어두운 편이거든요. 게다가 더운 날에 천장에 달린 선풍기가 없으면 꽤 답답한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무사히(?) 하루가 가는가 싶더니, 와엘과 마흐무드와 함께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또 전기가 나갔습니다. 마침 거의 다 먹어가던 때라 핸드폰 불빛으로 빵을 마저 입에 넣었습니다. 핸드폰이 전등의 역할까지 하는 거지요. 밥을 먹고 촛불에 기대어 차를 마시다가 내가 ‘이것도 로맨스’라고 해서 같이 웃었습니다.
1차 인티파다 시작되자 이스라엘은 이 마을에 2달 동안 전기를 끊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와엘의 집 찬장에는 기름을 넣고 불을 켜는 등이 여러 개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걸 썼지만 지금은 주로 초를 쓰지요.
또다시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는 느낌입니다.
두려움의 길
팔레스타인 얘기를 하다보면 자주 나오는 것이 검문소에 관한 것인데 요즘은 검문소 다니기가 몇 달 전에 비해 수월해졌습니다. 이스라엘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내세운‘경제적 평화’때문이지요.
다니기 수월해 진 것은 좋은 일이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여전히 차를 타고 가다 검문소가 나타나면 얼굴에 긴장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주섬주섬 신분증을 챙기고 그럽니다.
그제는 와엘이 운전을 해서 길을 가는데 검문소에서 군인이 차를 세우고는 어디서 왔느냐, 어디 가느냐를 물었습니다. 와엘이 데이르 알 고쏜에서 왔고, 나블루스 간다고 대답을 하니깐 왜 가냐고 물었습니다.
검문소 통과 하기
검문소의 존재만으로도 짜증이 나는데 왜 길을 가냐고 물으니 더욱 열 받았습니다. 하지만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팔레스타인인과 함께 있는데 열 받는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참았습니다.
문답이 끝나고 차가 슬슬 움직이고 이스라엘 군인도 돌아섰습니다. 제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뻑큐’ ‘크레이지(미쳤어)’라고 했고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한 판 웃었습니다.
그렇게 얘기가 끝날 줄 알았는데, 와엘이 그 다음부터 사람들을 만나면 미니가 이스라엘 군인한테 뻑큐라고 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사람은 그 다음 사람에게 그 얘기를 전하구요.
총을 들고 검문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
그러면 사람들은 한결같이 눈이 똥그래져서 ‘뭐? 뭐?’ ‘정말? 정말?’ 그러고, 저한테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기도 하고 그러지 말라고도 그럽니다. 어떤 사람은 손에 수갑을 차는 시늉을 하면서 만약 이스라엘 군인이 그 소리를 들었으면 깜빵에 갔을 거라고 합니다.
저를 걱정해서 그러는 줄 알지만 사람들이 그러니깐 또 열 받습니다. 군인 눈앞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서로 뒤돌아서서 그런 건데도,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 저의 행동은 혹시나 무슨 일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걱정스러운 짓인 거죠.
일일이 묻지 않아도 그동안 그들이 검문소에서 무슨 일을 당했었는지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마흐무드의 수염
늘 자기 수염이 멋있다고 자랑하던 마흐무드가 하루는 면도를 하고 나타났습니다. 그냥 그런가 했습니다.
마흐무드의 얘기는 자기가 내일 나블루스로 갈 거고,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데 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으면 이스라엘 군인이 차에서 내리라고 하고서는 ‘너 하마스냐?’라고 묻는다는 겁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점령이 오래 계속되면서 일부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슬람 통해 해방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슬람의 영향이 강하면 강해질수록 수염 기른 남성이 많아지구요. 이슬람의 선지자인 무함마드가 수염을 길렀다고 하네요.
이스라엘의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길게 늘어서 기다리고 있는 팔레스타인 차량
하마스나 이슬람 지하드와 같은 이슬람 조직 활동가들은 수염을 많이 기르고 있습니다. 물론 수염을 길렀다고 해서 모두 하마스나 이슬람 지하드는 아닙니다.
굳이 수염을 기르려고 해서 기른 것도 아니고 그냥 놔뒀더니 수염이 자란 건데 하마스라는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 마흐무드는 면도를 해야 하는 거지요.
팔레스타인인들은 검문소에서 일단 차를 세우고 기다립니다. 그러면 수다도 떨고 전화 통화도 하고 카드놀이도 하던 이스라엘 군인이 귀찮다는 듯이 손짓을 하면 정말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갑니다.
점령군의 감시 눈초리에 불쾌해 하면서도 차 안을 훑어보는 군인을 향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거라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저의 속은 부글부글 합니다.
전기부터 수염까지, 참 많은 것 속에 이스라엘과 점령이라는 말이 담겨 있습니다. 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말만 나와도 흥분을 하는지 아시겠죠? 팔레스타인인들이 흥분 잘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신경질이 많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생활 하나 하나를 이스라엘이 쥐락펴락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손전등 켜 놓고 칠면조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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