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29_ 더 먹어 더 먹어

순돌이 아빠^.^ 2010. 3. 29. 21:10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29_ 더 먹어 더 먹어

 

와엘과 거의 24시간을 함께 지냅니다. 곁에서 자고 함께 밥 먹고 함께 농장이나 놀러 다니고 그러지요. 아무튼 멀리서 온 친구들을 위해 때 되면 밥하랴 인터뷰 챙겨주랴 와엘이 이래저래 고생입니다.

 

와엘은 참 음식을 잘해요. 어떻게 해서 이렇게 음식을 잘하냐고 하니깐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둘이 살았는데 어머니가 10여년을 병으로 누워 계셨대요. 그래서 어머니가 올 2월 돌아가시기 전까지 와엘에게 음식 만드는 법을 이것저것 가르쳐 주셨대요.

 

팔레스타인 차력쇼. 와엘 발바닥에 담뱃불 끄기

 

저는 와엘이 음식을 만들면 아무 거나 잘 먹어요. 딱 하나만 빼구요. 과자를 직접 만들기도 하는데 설탕을 그야 말로 때려 부어요. 이걸 먹으면 정말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에요. 정성은 고마운데 이건 정말 어쩔 수 없이 많이 못 먹는 거지요.

 

어디 아파요?

 

와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우리가 지내는데 뭐 불편한 거 없냐고 계속 물어요. 사실 별로 불편할 게 없어요. 다만 가끔 몸이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살 때 병원이라고 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비염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기에 지난해에 이비인후과를 한 번 갔었습니다. 의사가 ‘약을 쓸 수도 있지만 약은 임시처방 밖에는 안 되고, 또 약이 독해서 오래 먹을 수도 없어요. 그냥 조용한 시골에 가서 마음 편하게 사세요’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대강 살기로 했습니다.

 

먼지가 많거나 공기가 건조하거나 찬바람을 쐬거나 하면 콧물과 재채기가 나오고 그럽니다. 상태가 좀 안 좋다 싶으면 열도 나고 식은땀도 흐르구요. 그런데 여기가 바로 먼지 많고 공기가 건조해요.

 

닭고기와 쌀 견과류 등을 함께 쪄서 먹는 팔레스타인 전통 음식

 

와엘 집은 환기가 잘 안 되는 구조에요. 오래된 소파에는 먼지가 가득하구요. 그 위에서 제가 자지요. 요즘은 우기가 아니라 비라고는 거의 보기 힘들지요. 더운 날 함께 지내는데 저 좋자고 선풍기를 끄자고 할 수도 없구요. 선풍기를 틀고 있으면 찬바람이 이는 것을 물론 그 많은 먼지들이 하늘을 날아다니지요.

 

가끔 몸이 안 좋으면 누워 있는 시간이 조금 길어집니다. 기침을 하기도 하구요. 그러면 와엘의 걱정하는 표정은 뚜렷해져요. 와엘은 좋다, 싫다 감정 표현을 많이 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뭔가 불편한 일이 생길까봐 작은 것 하나하나 신경 쓴다는 게 느껴져요.

 

“미니 어디 아파요?”
“아니요. 괜찮아요. 약간 피곤할 뿐이에요”
“밥이 맛없어요?”
“아니요 맛있어요.
“근데 왜 많이 안 먹어요?”
“잘 먹고 있어요”
“먹는 거 뭐 좋아해요?”
“아무 거나 다 좋아요”

 

이런 대화가 끝나고 다음 밥 때가 되면 닭고기가 올라오고 칠면조가 올라오고 그래요. 먹고 기운 내라는 거지요. 문제는 제가 아무 거나 다 잘 먹지만 그렇다고 고기를 많이 먹는 것도 아니거든요.

 

저 먹으라고 만든 게 뻔해서 좀 먹고 나면 와엘은 또 왜 맛이 없냐며 걱정이에요. 그러면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먹고 싶어도 와엘의 마음을 생각해서 맛있다고 닭다리를 하나 더 뜯게 됩니다. 어떤 때는 와엘이 밥과 고기를 자꾸 얹어줘서 정말 꾸역꾸역 씹어 삼키기도 해요.

 

사실 건강은 저 보다 와엘이 더 문제에요. 당뇨에 고혈압이거든요. 얼마 전에는 같이 툴카렘에 있는 병원에 갔었어요. 처방은 간단해요. 단 거 먹지 말고 채소 중심으로 먹고 운동을 해야 해요. 와엘이 몸 생각해서 차에 넣는 설탕도 반 숟가락으로 줄였지만 그마저도 좋지 않아요.

 

 

홍차를 기다리고 있는 하얀 설탕

  

병원에서 설탕 대신 먹으라고 준 것을 보니 사카린이더라구요. 사카린도 몸에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단 거 먹지 마라, 담배 줄여라, 운동해라 잔소리 하는 거와 가끔 과일과 야채를 사다 냉장고에 넣어 두는 것 밖에는 없네요. 당뇨에 좋다는 무 비슷하게 생긴 야채가 있더라구요.

 

그러면 와엘은 와엘대로 감동 먹은 표정이에요. 사람들이 오면 미니가 이거 나 먹으라고 사다 놨다고 자랑하구요. 와엘이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았으면 좋겠는데 걱정이에요.

 

사실 와엘과 함께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특별한 정을 쌓을 시간도 없었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쌓인 정 때문에 저의 행동이 달라져요. 어떻게냐구요?

 

예를 들어 제가 라말라나 예루살렘이나 다른 곳에 갈 때면 거기서 돌아오기 전에 출발한다고 전화를 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와엘 걱정할까봐 그러는 거지요. 한국에 있을 때는 가족들한테도 잘 안하던 짓인데...

 

착한 삼촌 되기

 

한창 자주 마흐무드 집에 놀러가다가 한동안 놀러 안 갔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는 아니고 와엘과 그의 무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어제는 오랜만에 마흐무드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어요.

 

슈룩 : 미니, 내한테 칼 많데이.
미니 : 엥?
슈룩 : 내한테 칼이 많으니께 밥 묵고 나서 내가 닐로 직일끼다.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슈룩이 정확히  i will kill you라고 했습니다)
미니 : 와?
슈룩 : 니 와 그동안 우리 집 안 왔노?
미니 : 어... 저기... 그니깐... (미니가 슈룩 동생 저밀라를 바라보며 목을 숙여 내밀면서) 저밀라, 밥 묵고 나서 낼로 무그라
저밀라 : 엥?
미니 : 슈룩이 내 지긴다칸다.

 

밥 먹고 나면 가끔은 착한 삼촌이 되기 위해서 아이들과 놉니다. 별다른 장난감이라고는 없는 집이지요. 한국에서 아이들이 보지도 가지고 놀지도 않는 수많은 책과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생각나더라구요.

 

명절 때만 만나는 저의 조카들도 생각났습니다. 삼촌이라고 오랜만에 만났으니 반가운 마음에 같이 놀자고 하면 30분을 넘기기가 힘들어요. 병원 놀이, 학교 놀이, 미장원 놀이 하다 보면 금방 피곤해 지더라구요. 어떤 때는 추석에 불렀던 노래를 기억하고 있다가 설날에 또 불러 달라고 그러더라구요.

 

공장 일 마치고 와서 쉬었다 밤에는 부업으로 빗자루를 만들고 있는 아무 마흐무드

 

이 집 꼬마 세 자매도 마찬가지에요. ‘우우~’하고 늑대 흉내를 한 번 내고 나면 다음에 꼭 또 해 달라고 해요. 아니면 지들이 먼저 ‘우우~’하고 나서 나보고도 하래요. 한 30분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런데 30분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아이고... 탁구나 당구는 1시간, 2시간씩 쳐도 안 피곤한데 아이들과 노는 거는 왜 잠깐만 시간이 지나도 피곤하지 모르겠어요.

 

별다른 장난감이 없어서 가위로 종이를 잘라서 이런 저런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하고 재미난 몸짓에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그럽니다. 어떤 때는 마라와 아이야가 제 양팔을 잡으면 제가 들어 올려서 돌려주기도 해요.

 

가위 바위 보를 가려쳐 줬어요. 정말 좋아하면서 계속 가위 바위 보를 하자고 하더라구요. 가위 바위 보를 해서 그 결과를 가지고 뭐 특별히 할 것도 없는데 그냥 그게 재미나나 봐요.

 

한번은 막내 마라를 안고 한국 동요 ‘섬집아기’를 불렀더니 마라가 스르르 잠이 드는 거에요. 옆에서 이걸 보던 슈룩이 마라가 그 노래를 알아듣는가 보다 했어요.

 

슈룩이나 마흐무드가 아이들을 야단치기도 하고 말릴 때도 있어요. 제가 피곤하다고 아이들보고 그만하라는 거죠. 어떤 때는 아이들이 언니나 오빠 때문에 그만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메롱’하면서 못 들은 척하고 저한테 달라붙어요.

 

다음날 학교를 가야 하면 어른들이 아이들을 일찍 재우려고 하는데 특히 마라는 버팅기면서 더 놀겠다고 해요. 그러면 또 한 판 난리가 나서 마라는 울고 떼쓰면서 마지못해 방으로 들어가지요.

 

먹어라 먹어라

 

같이 어울리다보면 밤 12시도 되고 새벽 1시도 되고 그래요. 제가 좀 피곤해서 일어나려고 하면 붙잡고 난리가 나요. 10분만, 30분만 더 있다가 가라고 그러지요. 아니면 뭐라도 먹고 가라고 갑자기 부엌으로 달려가서 먹을 것을 가져와요.

 

졸린 눈으로 빵을 찢어 먹다 보면 빵이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모를 때도 있어요. ‘함두릴라’하고 다 먹었다고 손을 털면 ‘더 먹어라’ ‘조금만 더 먹어라’ ‘밥이 맛이 없냐’ 난리가 날 때가 많아요.

 

필라펠 레벤  홈무스 감자 샐러드 등으로 푸짐하게 차린 밥상

 

더 안 먹으면 안 보내준다고 해서 더 먹기도 하구요. 물론 여기서도 제일 큰 소리 치는 건 슈룩이에요. 죽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그러면 저는 목을 빼 내밀면서 죽이라라고 하지요. 

 

마흐무드 가족과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어요. 한번은 우리가 한 이, 삼일 이 마을을 떠나 다른 마을에 머물게 됐어요. 마을을 떠나기 전에 마흐무드 식구들이 집에서 직접 과자를 구워서 싸 주더라구요. 오가며 먹으라구요. 그 정성에 정말 목이 매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혹시 아예 떠나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잠깐 떠나 있는데도 빨리 돌아오라고 문자를 보내고 그랬어요. 우리야 뜨내기라서 그런지 잠깐 여기 저기 옮기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정말 사람의 정이라는 것은 시간의 길이로 쌓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한국에서 오랜 시간 무언가를 함께 한 사람이 많지만 너무도 쉽게 잊혀지는 것을 많이 봤거든요.

 

마흐무드 집 식구들, 짧은 시간 함께 한 사람들이지만 이들과 쌓은 정 때문에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섬집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