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30_ 아이고 목 말라

순돌이 아빠^.^ 2010. 3. 29. 21:51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살람 알레이쿰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 띄우는 00통의 편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30_ 아이고 목 말라

 

여러분 라마단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어렴풋이 들어는 본 것 같다구요? 저도 그동안 이 말을 들어 보기는 했는데 실제 체험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약 1달 정도 되는 기간에 무슬림들은 단식을 해요. 온전히 굶는 것은 아니구요,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러니깐 대략 새벽 4~5시부터 저녁 7시까지 밥은 물론이요 물도 안 먹어요. 그 좋아하던 차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지요.

라마단 기간에는 거짓말도 하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고 해요. 심지어는 성 관계도 하지 말라고 하지요. 인간의 모든 욕망을 절제하면서 몸과 영혼을 다시 한 번 깨끗하게 하자는 거지요. 그러면서 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느끼는 거구요.

 

배는 고파도 하늘은 맑고 푸른날

 

모든 사람들이 단식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어린이들, 임산부, 노인,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 등은 단식을 하지 않아도 돼요. 이슬람이 가지는 여유로움과 배려가 이런 곳에 보이는 거지요.

 

저희는 무슬림도 아니고 외국인이어서 라마단을 지킬 이유도, 단식을 해야 할 이유도 없어요. 다만 주위 친구들이 그렇게 하니깐 따라 하는 거고, 어차피 팔레스타인의 삶의 모습을 배우려고 온 마당에 남들이 하는 건 함께 하는 거지요.

 

친구들과 함께 길을 가다 사람을 만나 인사를 할 때면 친구들이 만난 사람에게 제가 단식을 하고 있다고 말해요. 그러면 상대방은 놀라면서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어요. 반갑다는 표정으로 다시 악수를 청하기도 하구요. 아직 그 느낌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자신들의 문화를 존중하기 위해 단식까지 하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가 봐요.

 

목마름

 

단식을 하면 배가 제일 고플 줄 알았어요. 그런데 배고픔보다 더 힘든 건 목마름이더라구요. 물이 이렇게 귀한 건 줄 몰랐어요. 하루해가 지고 저녁때가 되어 밥을 먹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거에요.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물보다는 담배가 더 문제라고 하더라구요.

 

라마단을 함께 지내보면 참 재미있기도 해요. 예를 들어 저녁 밥 먹기 한두시간 전부터 음식을 만들기 시작해요. 그러면 밥시간을 알리는 아단이 나올 때쯤 미리 상을 다 차려 놓고 때가 되기만을 기다리는 거지요. 제가 배고프다고 빨리 아단 나오라고 숟가락을 들고 모스크를 향해 배고파 배고파 하면 친구들이 웃지요.

 

라마단 시작하고 처음 먹은 밥. 닭고기와 땅콩을 얹은 밥 나뭇잎으로 만들었는데 파래 맛이 나는 국까지

 

처음엔 이 생활이 익숙하지 않아 설사를 하기도 하더라구요. 하루 죙일 굶다가 라마단이라고 잘 차려진 음식을 허겁지겁 먹다보니 탈이 나는 거지요.

 

저녁을 먹고 나면 사람들이 놀다가 한 밤에 또 먹어요. 새벽이 되면 첫 아단이 나오기 전에 일어나서 밥 먹으라는 소리가 모스크에서 울려 퍼지기도 하고, 일어나서 밥 먹으라고 북을 치며 마을을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다음날 생각해서 먹기도 하고 졸리면 그냥 자기도 하지요.

 

무슬림들은 어릴 때부터 해 오던 거라 힘들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지낼만 하대요. 저도 며칠 지나니깐 곧 익숙해지더라구요.

 

또 재미난 건 역시 세상 어디나 탈선(?)이 있다는 거에요. 배고프고 목마르고 그러면 사람들이 남들 안 보게 몰래 먹기도 해요. 그런다고 해서 누가 크게 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눈치가 살짝 보이기도 하니깐 몰래 먹는 거지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여성 농민 단체에서 활동하는 란다를 만나러 툴카렘에 갔어요. 그런데 스페인에서 란다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 빵과 음료수, 먹을 거를 사 와서 그 앞에서 막 먹는 거에요.

 

모두가 단식을 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 먹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안 먹고 있는데 탁자 위에 먹을 것을 펼쳐 놓고 먹는 모습을 볼 때는 우습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새벽부터 밥 먹는다고 일어나서 움직이고 하다 보니 낮 시간에 모두들 피곤해 해요. 학생들은 학교에서 졸고 일터에서도 사람들은 기운이 없어요. 그래서 학교도 은행도 일찍 문을 닫고 그래요. 여러분들이 만약 팔레스타인에서 무언가 해 보고 싶다면 라마단 기간은 피하는 것도 요령일 거에요.

 

라마단은 무슬림들에게 소중한 시간이어서 ‘해피 라마단’ ‘라마단 잘 지내세요’라며 서로 인사를 하기도 하고 문자를 보내기도 해요. 텔레비전에서도 라마단에 맞춰 특집 영화나 드라마를 하기도 하구요. 

 

자카트

 

이슬람에서는 무슬림이 꼭 지켜야할 것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자카트에요. 쉽게 얘기해서 수입의 일정부분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내어 놓아야 한다는 거지요. 직접 가난한 사람에게 전하기도 하고 이슬람 사원으로 모으기도 해요. 외국의 이슬람 사원이나 관련 단체에서 자카트로 모은 돈이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오기도 하구요.

 

우리는 무슬림이 아니지만 서로 돕고 살자는 의미가 좋아서 함께 자카트에 동참하기로 했어요. 와엘한테 물어보니 쌀이며 식용유며 먹을 것을 사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와엘 삼촌이 하는 가게에 가서 먹을 것을 잔뜩 샀어요.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바랍니다’ ‘한국의 친구들로부터’ 등의 내용이 담긴 편지도 써서 준비했구요.

 

저녁 밥 배부르게 먹고 와엘과 함께 뒹굴기

 

그런데 와엘이 운전은 자기가 할 테니 산 물건들을 차에 싣고 직접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주라고 하더라구요. 순간 망설였어요. 받을 사람한테 우리 얼굴을 내밀고 직접 이것들을 건넨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더라구요. 여기서는 다 이렇게 하냐고 물어보니깐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4집을 직접 돌면서 먹을 것을 전해 드렸지요. 

 

라마단이 끝나면 ‘이드 알 피트르’라는 명절이 와요. 명절을 앞두고 농장도 많이 바빠요. 라마단 기간에 제법 팔리던 칠면조들이 이드를 앞두고 죄다 팔려나가는 거지요. 밤새 칠면조를 잡고 사람과 차와 돈이 오가고 그럽니다. 

명절날에는 새 옷 사 입고, 맛있는 음식해서 먹고, 친척들한테 인사 다니고 그래요. 여동생이 시집을 갔으면 오빠들이 여동생을 찾아가 돈을 주고 오기도 하구요. 저도 명절이라고 평소에 입지 않던 셔츠를 꺼내 입었어요.

 

달을 보며

 

라마단 기간은 언제냐구요? 추석이 그렇듯이 라마단도 음력에 맞춰요. 양력을 기준으로 보면 라마단의 시작일은 해마다 변하는 거지요. 해마다 변하는 정도가 아니라 라마단이 언제 시작되는 지는 텔레비전에서 라마단이 시작되었다고 나와야 ‘아하, 이제 시작이구나’를 알게 돼요. 무슨 말이냐구요?

 

명절을 앞두고 옷 사러 툴카렘에 나갔다가 만난 사람. 왼쪽 사람의 아버니는 팔레스타인인이고 어머니는 필리핀 출신

 

이슬람에서는 달이 중요해요. 라마단의 시작도 달의 모양을 보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결정을 해요.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만들고, 이슬람의 틀을 갖추고, 메카나 메디나 같은 성지가 있는 곳이 사우디아라비아거든요.

 

라마단 시작이 눈앞에 다가와도 사람들은 언제 시작될지 몰라요. 그저 ‘내일 아니면 모레쯤?’ 정도로 생각하며 사우디아라비아가 발표하기만을 기다리는 거지요.

 

푸른 땅과 사람의 길 

 

라마단 지내보니 어떠냐구요? 이번이 처음이기도 하고 제가 무슬림이 아니어서 그런지 사실 큰 느낌은 없어요. 주위 사람들이 하니깐 그렇게 하는 것뿐이지요.

 

한 가지 느낀 거라면 평소에 쉽게 흘렸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이지요. 물 한 모금이 이렇게 큰 건 줄 몰랐거든요. 인간이 아무리 큰 소리 쳐도 먹고 마시는 작은 욕망 앞에 이렇게 쉽게 흔들릴 줄 몰랐거든요.

 

어때요, 여러분도 한 달 동안 새벽부터 저녁까지 먹는 것을 멀리는 하는 경험을 해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