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32_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

순돌이 아빠^.^ 2010. 4. 4. 11:33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32_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

 

팔레스타인 지도를 펼쳐 서안지구 쪽을 보면 한 가운데 예루살렘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아래에 보면 예수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 베들레헴이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가면 예수 관련 유적지도 많고 기독교인들도 많이 살고 있지요.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탄생 교회 앞에서

 

베들레헴을 따라 내려가면 헤브론이라는 지역 있는데, 이 헤브론은 예루살렘과 함께 이스라엘이 추진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비우기’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 비우기’는 말 그대로 쫓아내든, 못 살게 하던 팔레스타인인을 몰아내고 유대인을 이주 시키겠다는 겁니다.

 

역사와 종교와 땅

 

문명의 충돌이 어쩌니 종교 전쟁이 저쩌니 하면서 기독교와 이슬람은 공존할 수 없고,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과 유대인은 함께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기독교인이 많은 미국과 유대인이 많은 이스라엘은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에게 예수를 죽이자고 한 것이 유대인들이잖습니까.

 

시오니즘 운동이 팔레스타인으로 확산되기 이전에 헤브론에서는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말 시오니즘 운동이 성장하고, 20세기 초부터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몰려들면서 헤브론에서도 유대인과 무슬림, 거주 유대인과 이주 유대인(시오니스트)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12월, 헤브론 지역 점령민이 불태운 팔레스타인인의 집

 

1929년 무슬림과 유대인 모두에게 성지인 예루살렘에서 시오니스트들이 반아랍 시위를 벌입니다. 이들은 시오니스트 깃발을 들고 알 아크사 지역의(그들이 말하는 통곡의 벽) 소유권을 주장하였습니다. 유대인의 대규모 이주와 토지 매입 등으로 가뜩이나 불만이 쌓여가던 아랍인들은 이 시위를 계기로 폭발하였고, 전국적으로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 큰 충돌이 벌어져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칩니다.

 

헤브론에서도 아랍인이 유대인 수 십 명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 당시 살해당한 대부분의 유대인은 시오니스트들이었고, 아랍인들이 보호해 주고 숨겨준 유대인들은 대부분  그 전부터 헤브론 지역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1967년이 되면 이스라엘이 헤브론을 포함해 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를 점령합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이 설치한 군사 기지가 나중에 점령촌이 되었고, 아랍인의 학교는 유대인의 학교로 바뀌어 이스라엘 깃발을 휘날리고 있습니다. 1977년 이후에는 ‘성지’라는 명분으로 점령촌 건설을 확대하고 있구요.

 

세월 가도 변하지 않는 것

 

2006년에 이어 3년 만에 다시 헤브론을 찾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휘날리는 이스라엘 깃발, 곳곳에 또아리를 튼 점령촌, 여기저기 문을 굳게 닫은 가게 등은 여전하더라구요. 여러분도 헤브론 시내에 있는 시장을 걸어 보시면 쉽게 그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점령 이후 이스라엘은 헤브론에 있는 상점 500여개를 강제로 문 닫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게 철문을 용접해 버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헤브론의 숨소리를 죽이겠다는 거지요. 그러다 보니 닫은 가게 문을 다시 열고 장사를 하자는 운동이 생길 정도입니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거지요.

 

위층에 사는 점령민들이 아래층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돌, 의자, 쓰레기 등을 던지기 때문에 하늘을 향해 쳐 놓은 철조망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가게를 따라 늘어선 길 위로 하늘을 향해 철망을 쳐 놓고 장사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구요?

 

시장통 건물들은 2층 건물이 많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점령한 이후 2층을 몰수해서 유대인 점령민들을 이주 시켰습니다. 위층에 살고 있는 점령민들은 아래를 지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돌과 쓰레기와 각종 오물 등을 집어 던집니다. 할 수 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은 하늘을 향해 철조망을 쳤지요.

 

3년 만에 다시 와 보니 일부에는 철조망에 덧대서 천막까지 쳐 놨더라구요. 천막에는 곳곳에 큰 구멍이 나 있었는데 점령민들이 화학물질을 뿌려서 그렇게 됐다네요. 의자도 집어던지고 화학물질도 뿌려대니 군인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점령민과 군인들은 집과 집 사이에 놓은 다리와 지붕을 건너다니며 팔레스타인인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반대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리저리 길이 막혀 할 수 없이 이 집 저 집 지붕을 넘어 다니기도 하구요.

 

헤브론은 도시 한 가운데 있는 길을 하나 놓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리 지역과 이스라엘 관리 지역으로 나뉩니다. 이스라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면서 도시 자체를 이리 저리 잘라서 관리권을 분배한 거지요. 그러다 보니 도시 한 가운데서 팔레스타인 경찰이 도로를 건너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관리권한이 없으니 경찰 복장을 하고는 길을 갈 수 없는 거지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떠나게 만드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겁니다. 점령민이 팔레스타인인을 괴롭히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도 이스라엘 군인들은 가만히 있는 거지요. 만약 팔레스타인인이 억울함을 하소연 하러 경찰서로 가면 몇 시간도 좋고 하루도 좋고 그냥 기다리게 합니다. 그러니 팔레스타인인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고 있을 밖에요.

 

모든 것을 도둑 맞은  테이시르 씨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테이시르 씨의 사연을 들어보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테이시르 씨의 가게는 1층에 있고, 2층에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해 둔 감시 카메라가 있고 주변 곳곳에는 이스라엘 군 초소가 있습니다.

 

하루는 밤에 도둑이 큰 자물쇠로 단단히 잠가 놓은 문을 뜯고 가게 안에 있던 모든 물건을 들고 갔습니다. 이것을 보고도 군인들은 가만히 있었구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지면 이 지역을 떠날 거라 생각하는 겁니다.

 

함께 산다는 것

 

헤브론에는 무슬림들에게 아주 중요한 아브라함 사원이 있습니다. 무슬림들은 기도하러 가기까지 100미터도 안 되는 길에서 3번 검문을 받아야 합니다.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가방을 열고, 호주머니에 있던 것을 모두 꺼내 보여야 하지요.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함께 갔던 팔레스타인인은 처음 검문소에서 풀었던 허리띠를 다시 매지 않고 아예 들고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풀고, 또 풀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모스크에 들어가기 위해 첫번째 검문소를 통과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총을 들고 검문소를 지키고 있는 군인(오른쪽)과 초소(왼쪽)

 

사원 안의 모습은 다른 사원 마냥 평범합니다. 바닥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고 사람들은 기도를 하고 있고 한쪽에는 꾸란을 읽는 사람들이 있지요. 특별한 점 몇 가지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 1994년에 한 유대인이 총을 들고 모스크에 들어와서 기도하던 사람들을 향해 난사했고 29명이 사망 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의 총탄 자국이 벽에 남아 있습니다.

 

저희를 안내해 주고 있던 히샴 씨에게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이느냐고 물었더니 총을 난사한 사람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우익들의 생각은 아랍인들이 지금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고, 아랍인은 이 땅에서 살 권리가 없다는 겁니다. 유대인의 땅을 점령하고 있는 아랍인을 몰아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거지요.

 

두 번째는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점령한 뒤에 사원을 무슬림 기도 구역과 유대인 기도 구역으로 두 동강 냈습니다. 모스크 안에 들어가면 두 구역을 나누는 철문은 굳게 닫혀 있고, 희미한 창문과 조그만 문틈으로 건너편에서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잠깐 볼 수 있습니다.

 

모스크 안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감시 카메라(가운데 위쪽)

 

세 번째는 이스라엘은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사원 안에 여러 개의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뒀습니다. 무슬림들이 사원 안에 무기를 숨기고 유대인들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거지요. 거리와 건물, 사원 안에까지 곳곳을 24시간 카메라로 감시하고 있는 마당에 팔레스타인인들이 - 설사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도 - 귀신이 아닌 이상 무슨 재주로 무기를 숨기겠습니까.

 

우리는 흑인과 백인, 남성과 여성, 유대인과 무슬림의 공존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제가 헤브론에서 느낀 것은 인간의 공존은 단지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공장에서 사장이 노동자를,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를 두들겨 팬다면 그들이 함께 머물고 있다 해서 공존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브라함 사원 주변 1㎢ 안에 장벽과 철문 등을 100여개 설치해 놓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을 차단하고 있고 아이들이 학교 가기 위해 길을 막고 서 있는 군인과 싸워야 하는데, 단지 좁은 공간에 함께 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공존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은 사는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맺는 상호 이해와 평등의 관계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선물 : 점령촌이 뭐냐구요?


고립장벽처럼 이 말도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만든 말입니다. 흔히 책이나 언론에는 정착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영어의 settlement를 번역한 말이지요. settler를 번역해 정착민이라고 하구요.

 

팔레스타인인에게 settler라는 말을 건네 보세요. 그저 다른 곳에 살다 이사 와서 살고 있는 사람 이상의 느낌을 가질 겁니다. 팔레스타인에서 settler라는 말은 점령과 살인, 폭력 등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식민지 시절 조선인들이 ‘일본인’하면 가졌을 느낌을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유럽 백인들이 북아메리카로 몰려가서 거기 살던 원주민들을 내쫓고 죽이면서 야금야금 땅을 넓혀갔지요. 미국에서 만든 서부영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백인들이 원주민을 살해하고 땅을 빼앗아 가는 과정이지요. 유럽에서 와 아메리카의 동쪽에 닿은 백인들이 서부를 개척한 것이 아니라 서부를 정복한 겁니다.

 

저희가 점령촌이나 점령민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입니다. 단순 이주가 아니라 점령과 추방의 결과로 그들이 지금 머물고 있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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