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33_ 놀라게 하는 사람들

순돌이 아빠^.^ 2010. 4. 4. 11:41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33_ 놀라게 하는 사람들

 

 

칼리드 이야기

 

칼리드(가자에 사는 칼리드 말고 라말라에 사는 칼리드)는 그야 말로 저에게 은인입니다. 2006년에 왔을 때 칼리드가 여기 저기 안내 해 주고 먹여 주고 재워 주고 그랬거든요. 그때는 혼자 살았는데 그 사이 결혼을 해서 이번에는 칼리드 집에 하루만 머물렀습니다. 곧 출산을 앞 둔 부인이 불편해 하실 것 같아서요.

 

칼리드와 그의 첫째 아이

 

헤브론에 갈 때 칼리드가 운전을 해서 우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헤브론 방문을 마치고 라말라로 가기 위해 칼리드가 주차된 차를 움직이다 찌익 하고 차 옆을 긁었습니다. 제가 ‘워쪄 워쪄’하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니깐 칼리드가 ‘지금도 전 세계와 팔레스타인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차가 뭐 큰일이냐. 차는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며 웃습니다.

 

순간,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조금 더 중요한 것과 조금 덜 중요한 것을 자주 혼동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눈앞의 작은 일에 매달려 온갖 용을 다 쓰면서 정작 소중한 것은 잊고 사는 거지요.

 

구~~~~웃

 

툴카렘에 가서 ‘영어-아랍어, 아랍어-영어’ 사전을 샀습니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쓰려구요. 가게 아저씨가 65 셰켈짜리를 60셰켈에 가져가라고 하더니 와엘과 저에게 좋은 펜도 하나씩 줬습니다.

 

농장에 와서 노는데 무함마드가 자신의 팔에 하트 모양을 그리면서 자기가 나 좋아한다는 몸짓을 합니다. 여기서는 연인이 아니어도 친구들 사이에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합니다. 무함마드가 펜을 가지고 놀아서 제가 무함마드보고 펜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깐 무함마드는 자기는 글을 쓸 줄 모른다며 펜을 안경에 걸고 웃었습니다. 눈치 없이 괜한 소리를 했다 싶어 미안했습니다.

 

펜을 안경에 걸고 있는 무함마드

 

그러던 무함마드가 어제는 저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굿’이라고 했습니다. 그 소리가 어찌나 놀랍고 반갑던지. 왜냐하면 그동안 무함마드가 영어를 쓰는 경우를 한 번도 못 봤거든요. 영어를 안 쓴다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잘 모르는 동네 꼬마들까지 ‘왓 츄어 네임’ ‘헬로우 헬로우’하는데 거의 매일 얼굴 보는 무함마드는 정작 단 한마디도 영어를 안 하는 거에요. 제가 아랍어로 말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무함마드와 저 사이는 늘 손짓과 웃음뿐이었습니다.

 

알고 보니깐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 때부터 일을 했다네요.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무함마드는 지금도 아랍어를 읽거나 쓰지 못한답니다. 자기 이름 정도 쓸 수 있다네요. 그랬던 무함마드가 비록 딱 한 글자였지만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한 겁니다.

 

아마 직전까지 함께 죽은 칠면조를 맨손으로 날라서 그런가 봐요. 비록 말은 안 통하지만 함께 칠면조를 나르면서 무언가 서로에게 느껴지는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도시 지역에서 머물 수도 있지만 농촌 지역으로 들어온 것이 함께 일하면서 입의 말이 아니라 몸의 말을 나누고 싶었던 건데 그게 어느 정도 이루어진 느낌이랄까요?

 

무함마드는 가끔 와엘한테 야단맞아요. 일 제대로 안 한다구요. 그러면서 농장에서 온갖 궂은 일은 무함마드 차지에요. 무함마드의 손만 봐도 그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알 수 있지요. 제 손을 보면서 여자 손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작고 거친데 없다는 뜻이지요. 제가 살아온 세월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가끔 무함마드가 장난삼아 제 손을 잡고 꽉 힘을 줘요. 그러면 저는 아프다고 살려 달라고 하지요. 무함마드가 자기 팔의 근육을 보여 주면서 일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몸짓을 하네요. 저는 제 팔을 보여 주면서 아무 힘이 없다고 했어요.

 

차를 따르고 있는 왈리드

 

왈리드는 칠면조도 잘 잡고 양도 잘 잡아요. 무함마드와 왈리드의 팔을 보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해서 생긴 근육이 아니라 일을 많이 해서 생긴 근육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어요. 책에서 세상을 배운 인생과 직접 겪고 이겨낸 인생 마냥.

 

왜 그랬을까?

 

탈랄은 지금 우리가 신세를 많이 지고 있는 YDA라는 단체 활동가입니다. 탈랄이 우리보고 세바스티아라는 지역으로 옮겨 가면 어떻겠냐고 합니다. 이유인즉...

 

여기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전하려고 반다가 영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데이르 알 고쏜이 워낙 시골이고 보수적이다 보니 여성들 촬영을 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 얘기도 솔직하게 친구들에게 했구요.

 

탈랄의 말은 이렇습니다. 데이르 알 고쏜은 YDA 활동을 하는 사람도 대부분 남성이지만 세바스티아는 여성 회원이 많다, 그러니깐 영상을 만드는 것도 쉬울 것이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 YDA 대표인 무함마드 가잘이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해 놓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여기서의 준비란 숙식과 안내 등 모든 것을 말하는 거지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여기 있든, 거기를 가든 언제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겁니다.

 

오늘 아침에는 와엘이 온갖 과일과 야채 등 먹을거리를 잔뜩 사들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평소에도 와엘이 음식을 만들고 그래서 먹을거리를 사들고 들어오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은데 그 양이 너무 많습니다.

 

과일과 야채를 바구니에 챙기더니 저보고 먹으라고 합니다. 라마단 기간이라 낮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있는 터라 머뭇거리니깐 와엘이 과일을 떼어서 쥐어 주며 먹으라고 합니다. 처음 보는 과일이라 이게 뭐냐고 하니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과일이라고 몸에 좋은 거라며 먹으라고 합니다. 먹어보니 맛있고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어제 농장에서 놀았습니다. 거기에 칠면조 무게를 재는 기계가 있었고, 제가 재미 삼아 몸무게를 재어 봤더니 팔레스타인에 온 뒤 3kg 정도가 빠졌습니다. 옆에 있던 마흐무드가 혹시 살 빠졌냐고 묻기에 아무 생각 없이 3kg 빠졌다고 했습니다.

결혼식에서 춤추는 사람들

 

오늘 와엘이 먹을 것을 잔뜩 챙기며 먹으라고 하고, 평소에는 단 한 번도 뭐가 몸에 좋으니 마니 한 적이 없던 와엘이 오늘 대뜸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과일까지 챙기고 나서는 걸 보니 혹시 마흐무드한테 제가 살 빠졌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에 한 필리핀 활동가가 한국에 온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과 직접 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여성이었지만 저희 집에서 둘이 며칠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 때 제가 해 줬던 건 정말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저희 집에서 서울까지는 한참을 가야 하는데 그저 길만 알려 주고 무사히 오가시라고만 했습니다.

 

저는 왜 그랬을까요? 낯선 나라에 와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데 왜 좀 더 따뜻하게 하지 못했을까요? 사람들이 서로 돕고 웃으며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은 잘 하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