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31_ 장벽 너머 그곳에
2000년 알 아크사 인티파다가 시작되고 2002년부터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곳곳을 둘러싸는 고립장벽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높이 8~9m 콘크리트 장벽과 철조망을 이용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지역을 둘러치는 거지요. 감옥 속에 사람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지역을 아예 감옥으로 만드는 겁니다. 장벽을 만들어 놓고 몇 km마다 출입구 삼아 검문소를 만들어 뒀지요. 팔레스타인 전체가 거대한 감옥입니다.
철조망 너머 보이는 비탄 지역은 이스라엘 지역과 장벽 사이에 갇혀 버렸다
툴카렘 지역은 이스라엘이 장벽 건설을 시작한 초기부터 피해를 받고 있는 지역입니다. 특히 장벽이 1948년 전쟁 휴전선인 그린 라인을 넘어 서안지구 안쪽에 세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린 라인과 장벽 사이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쪽(48년 점령지)으로도 갈 수 없고 서안지구(67년 점령지)로도 갈 수 없는 신세가 된 거지요. 쉽게 말해 좁은 감옥이 싫으면 땅을 놔두고 조금 더 큰 감옥으로 떠나라는 거지요.
데이르 알 고쏜은 지금 세 동강 난 상태입니다. 48년 전쟁에서 한 쪽이 잘려 나가고, 장벽 건설로 또 한 쪽이 잘려 나가고 나머지 사람이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거지요.
장벽이 들어선 뒤 장벽 너머 고립된 지역으로 들어가려면 이스라엘에게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허가는 주로 장벽 너머에 땅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40세 이상의 결혼한 남성 일부를 대상으로 발급됩니다.
남성에 비하면 여성이 허가를 받기는 쉬우나 여기는 여성보다는 주로 남성이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외에 친척을 만나러 가려고 힘들게 허가를 얻어도 허가 시간이 채 몇 시간이 되지 않아 몇 년 만에 만나도 잠깐 얼굴을 마주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내가 만일
오늘은 마흐무드가 길 안내를 하고 슈룩이 통역을 도와 줘서 장벽 검문소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 봤습니다.
먼저 검문소 근처에서 오이 농사를 짓고 있는 아흐마드 가넴 씨를 만났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검문소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꺼지라고 소리를 치고,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폭격하기도 한답니다. 내가 만일 농민이라면 더운 날 힘들게 농사를 지었는데 다음 날 보니 비닐하우스며 밭이 포탄에 망가진 장면을 봐야 하는 심정은 어떨까 싶습니다.
아흐마드 가넴 씨
한국에서 가족이라고 하면 직계 가족 정도를 얘기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족이라고 하면 사촌, 팔촌을 넘어 그야 말로 대규모의 집안사람을 이야기 합니다. 이들은 집안사람들과의 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흐마드 씨의 경우도 장벽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어서 그저 전화로 연락을 하는 정도라고 합니다. 아흐마드 씨는 장벽 너머에 땅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더욱 통행 허가를 받기 어려운 거지요.
검문소 문은 하루 3번 6시30분, 12시30분, 4시30분에 잠깐 열렸다 닫힙니다. 12시30분, 장벽 너머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시도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벌어지지 않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대화를 잘 안하려고 하는 겁니다. 누구에게 말을 걸어도 잘 대해주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인데 오늘은 왜 이럴까 싶었습니다. 이유인즉 혹시나 외국인과 대화를 했다가 허가증 받는데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바쌈 아흐마드 이스마엘
몇몇 분들이 우리를 지나치고 나서 장벽 너머에 땅을 가지고 있는 바쌈 씨가 흔쾌히 자기 얘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장벽이 들어서기 전에는 모든 가족이 밭에 가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바쌈 씨만이 허가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올리브 나무가 열매를 맺어도 그걸 죄다 딸 손도 없고, 비닐하우스 같은 것을 하려고 해도 그걸 설치할 돈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작업을 하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장벽이 들어서기 전에 비해 수입이 90%가량 떨어졌다고 하네요.
그나마 매일 일을 하러 갈 때도 혹시 쇠붙이를 가지고 있지는 않나 해서 이스라엘이 설치해 둔 검색기를 통과해야 한다고 합니다. 매우 기분 나쁘지만 힘이 없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시네요.
지배와 단절
장벽 사진을 찍다가 슈룩에게 우리는 외국인이라서 사진 찍는 게 괜찮을 건데 팔레스타인인도 사진 찍는 게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괜찮아요. 팔레스타인인은 사진이 필요 없어요. 우리 마음속에 있으니까요.
이스라엘 군인들과 얘기를 해 보려고 저쪽 편으로 걸어가서 ‘헬로우, 헬로우’ 하는데 팔레스타인 친구들이 돌아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걱정하는 겁니다. 이때의 무슨 일이란 물론 총을 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외국인을 향해서 총을 쏘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안 벌어지는 일이니 걱정 없습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겨서가 아니라 시끄러워지니깐요.
검문소를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
3명의 이스라엘 군인에게 차례로 말을 걸었습니다. 첫 번째 군인은 얘기를 할 수 없고 자기 쪽으로 넘어오지 말라고 하면서 차 안에 있으라며 돌아서 버립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군인은 얘기 좀 할 수 있겠냐고 말을 걸어도 못 들은 척 합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입에서 ‘야 이 개새끼야. 사람이 무슨 말을 하먼 대답을 해야 될 거 아이가’가 튀어 나왔습니다.
이런 게 참 싫습니다. 같은 인간인데 지배당하는 자는 지배하는 자를 향해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복종해야 하고, 지배하는 자는 지배당하는 자를 향해 총을 들이대고 소리 치고 무시하는 것 말입니다. 상부의 지시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들의 행동이 떳떳하지 못해서인지 지배하는 자는 곁에서 바라보는 이의 눈빛마저 회피했습니다.
알아도 모르는
마흐무드 집 사정도 다른 집과 다를 게 없습니다. 아부 마흐무드는 부모님으로부터 땅을 물려받았는데 그 땅의 절반이 지금 장벽 너머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오가며 농사짓던 땅이 어느 날 갑자기 허가증이 있어야 정해진 시간에 오갈 수 있는 땅이 되어 버린 거지요. 이마저도 언제 오가는 길이 끊길지 아무도 모르지요.
농민들이 쉬면서 주위를 둘러 보던 곳을 가리키고 있는 아부 마흐무드
오늘은 아부 마흐무드가 장벽 너머 올리브를 수확하러 가는 길을 따라 가 보기로 했습니다. 허리 아픈 아부 마흐무드로써는 마흐무드와 아셈이 함께 일을 하러 가면 좋겠지만 마흐무드와 아셈은 허가증이 없습니다. 저는 외국인이니깐 혹시 어떻게 해서 검문소를 지날 수 있게 되면 제가 아부 마흐무드를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택시를 불러 타고 산속에 있는 검문소 근처까지 갔습니다. 물론 다른 길은 없습니다. 검문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려서부터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부 마흐무드가 외국인을 끌고 왔다고 시비를 걸지 모르니 알아도 모르는 사람이 된 거지요.
아부 마흐무드가 먼저 검문소로 들어갑니다. 조금 있다 저희가 검문소로 갔습니다. 군인에게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지나가면 안 되겠냐고 하니깐 자기한테는 그럴 권한이 없으니 안 된다고 합니다. 몇 번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역시 안 된다며 뒤돌아 가 버리네요.
아부 마흐무드가 지난 검문소에서 줄을 선 사람들
검문소 너머에서는 아부 마흐무드가 모른 척 하면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구요. 결국 아부 마흐무드에게 안 되겠다는 눈짓을 보냈습니다.
조용히 몸을 돌리는 아부 마흐무드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게 팔레스타인이구나 싶었습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알아도 아는 체 할 수도 없는 식민지.
선물. 고립장벽 인종차별장벽 분리장벽 보안장벽
여러분은 1950년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을 뭐라고 부르시나요? 어떤 분은 한국전쟁이라고 하고 저는 6․25라고 하고 누구는 조선반도전쟁이라고도 하지요. 하나의 사건을 두고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 겁니다.
아랍어로 ‘알 지다르’라고 하는 장벽을 두고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은 보안장벽이라고 부르길 원하지요. 테러리스트 팔레스타인인들로부터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인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드는 보안을 위한 장벽이라는 거지요.
또 흔히 언론에는 분리장벽이라고 나옵니다. 분쟁의 두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를 분리한다는 의미이지요.
팔레스타인인들 가운데는 인종차별장벽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백인이 지배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그러는 거지요.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백인이 흑인을 지배하면서 흑인 거주지역을 따로 만들어 관리했으니까요.
고립장벽이라는 말은 제가 활동하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만들어낸 말입니다. 보안도 분리도 아닌 오직 팔레스타인인들을 감옥 속에 가두는 장벽이라는 뜻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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