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34_길에서 생긴 일
돈 있냐?
오늘은 길을 가는데 동네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동네 아이들이 쫓아오고, 이름을 부르고, 여기저기서 자기 집에 오라고 하고 그랬는데 이상하게 쫓아오는 사람도 없고, 그저 쳐다만 볼 뿐 우리를 부르는 사람도 없습니다. 한 집 마당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동네 아이들이 몰려오니깐 어른들이 저리가라고 쫓아냅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며칠 전에 와엘이 여기서 생활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냐고 합니다. 다른 것은 없고 집 밖을 나서면 동네 아이들이 쫓아다니면서 이름을 부르고 낄낄대고 하는 것이 가끔 그렇기는 한데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가 어색해할 정도로 동네 아이들이 일제히 갑자기 조용해진 걸 보니 아마도 동네 반상회를 했든지 아니면 가정통신문이라도 돌렸나 봅니다.
당나귀 타고 농사지으러 가는 길
그제는 마을에서 큰 행사가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해방 민주전선(DFLP) 소속 활동가가 67년 전쟁 이후 쫓겨났다가 몇 십 년 만에 고향 마을에 온 거에요. 환영 잔치가 벌어진 거지요.
행사에 갔다가 마젠과 길을 걷는데 마젠이 혹시 여기 지내면서 불편한 거 없냐고 그럽니다. 없다고 하니깐 혹시 돈 문제없냐고 합니다. 순간 ‘돈 문제’가 뭘까 생각했지만, 사실 여기 있으면 먹여 주고, 재워 주고, 간식 사주고 그러니깐 돈을 쓸 일이 잘 없습니다.
돈 문제없다고, 돈 있다고 그러니깐 마젠이 혹시 필요 하면 자기한테 말하라고 합니다. 자기가 돈을 주겠다고 합니다.
아마 마젠과 잘 모르는 사이거나 했으면 그 얘기에 꽤 당황했을 겁니다. 얼마 전에 와엘 집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마젠이 요가 얘기를 꺼냅니다. 굳이 요가라고 할 것은 없지만 몸 풀기 동작을 보여 줬습니다. 그러니깐 마사지 얘기를 꺼내서 잠깐 만져 주려고 엎드리라고 했습니다.
웃옷을 들쳐 올리는데 허리 쪽부터 척추를 타고 등에 길게 상처가 나 있습니다. 인티파다 때 이스라엘군 총에 맞아서 난 상처라고 합니다.
흔히 한국에서 팔레스타인 생각을 하면 한국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받기만 하면 되는 사람입니다. 도움을 줘야 할 사람과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 현장에서는 그게 완전 반대에요. 혹시라도 우리가 돈을 많이 쓸까봐 여기 친구들이 안절부절 입니다.
나도 형편이 되면 남을 돕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도 있지요. 하지만 꼭 우리가 가진 게 많아야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걸까요? 어쩌면 우린 가진 게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요?
실랑이
마흐무드 집에서 저녁을 먹고 와엘과 마흐무드, 아셈, 무함마드 등과 길을 걷는데 동네 셰밥 하나가 다른 셰밥들과 벽에 기대어 놀고 있다가 제가 지나가니깐 뭐라 뭐라 소리를 합니다. 셰밥은 아랍어로 젊은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지요.
외국인이라고 놀리기도 하고 별 나쁜 뜻 없이 장난을 치기도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기분 나쁠 때도 있고, 오늘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흥분 잘하는 우리의 아셈이...
그 셰밥과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아랍어로 말을 해서 잘 모르겠는데 그냥 상황을 상상해 보면 이런 겁니다.
셰밥 : 아리까리모두까리숑~~~~(제가 한국어 하는 것을 흉내 낸다고 하는 겁니다)
아셈 : 그만 해라.
셰밥 : 뭐 임마!
아셈 : (아셈이 화가 잔뜩난 얼굴로 한 걸음 다가가며) 내가 고마하라 켔제. 와 자꾸 그라노!
셰밥 : 내가 머 어쨌는데 새끼야?
아셈 : 니 지금 미니 놀린 거 아이가?
셰밥 : 내가 놀리기는 뭐 놀려 새끼야. 사람이 말도 몬하나?
아셈 : 이기 진짜!
흥분 잘하기로는 아셈을 훨씬 능가하는 마흐무드도 한발 나섭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으르렁 대더니 주위에서 말려 상황은 일단 정리가 됐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셰밥도 크게 나쁜 뜻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 마을에 외국인이 다니는 것이 신기한 일이고 장난을 치고 싶었고 자신의 행동이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지 싶습니다.
팔레스타인 하늘에 뜬 무지개
또 그 일이 벌어진 장소가 마침 당구장 앞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도 당구장이 있냐구요? 당연하지요. 이합이 맨날 하는 인터넷 게임도 당구구요. 당구장 밑에는 일명 헬스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당구장이 한국도 그렇듯이 어른들이 보기에는 약간 날라리(?)들이 담배 피고 떠들며 노는 장소로 여겨지기도 하지요.
얼마 전에는 와엘이 화를 엄청 낸 적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마냥 웃던 와엘이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봤습니다. 이유인즉 우리가 길을 다니면서 겪은 몇 가지 언짢은 사례를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안 좋아할 것 같아서 웬만하면 그런 얘기는 하지 않는데 우연이 말이 나온 겁니다.
와엘뿐만 아니라 마흐무드나 아셈도 우리에게 혹시나 기분 나쁜 일이 생길까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오늘은 마침 다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그 셰밥이 장난을 쳤으니 딱 걸린 겁니다.
제나도 모두 건강했으면...
사람들을 만나보면 척 봐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가 여러 개 빠져 있는 사람도 많고, 심각한 비만에, 조금만 걸어도 헐떡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여성들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서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지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설탕과 담배는 엄청 먹어대구요. 손 씻는다고 주방용 세제를 쭈욱 짜서 쓰거나 설거지용으로 세제를 퍼붓는 모습을 볼 때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공통된 향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향수는 아닌 것 같고 무얼까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빨래할 때 아주 듬뿍 듬뿍 넣어주신, 제대로 씻기지 않은 세제의 냄새였습니다.
정치와 경제 상황은 건강을 나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죽이고 부셔대지, 속은 답답하고 열 받지, 돈이 없으니 비싼 병원에 가기도 어렵지, 건강에 대한 관심을 가질 거시기도, 관련된 정보를 얻을 기회도 적지...
죽은 아들의 사진이 담겨 있는 옷을 입고 있는 탈랄
얼마 전에 나블루스에 가서 탈랄을 만났습니다. 3년 전에 왔을 때 만났던 아들이 있었는데, 그 때 탈랄의 말이 아들이 병을 가지고 있고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3년 뒤 다시 와 보니 탈랄이 누군가의 사진이 찍혀져 있는 옷을 입고 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3년 전에 말했던 그 아들이 암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길을 가다 제나를 만나 안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나는 볼펜을 사려고 하니깐 그냥 가져가 쓰라며 주던 가게 집 주인의 꼬마 딸입니다. 세상 어딜 가나 아이들은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나는 아직 어려서 팔레스타인이니 뭐니 그런 거는 모르겠지요.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도 모를 거구요. 팔레스타인인들을 만나다 보면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라도 그럴 것 같습니다. 나야 이미 그렇다 치고 저 애들이 도대체 무슨 죄가 있냐는 거지요.
누구를 헤꼬지 한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욕 한 번 하지 않았지만 자기가 짓지 않은 죄의 벌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구는 양반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종으로 태어나는 신분과도 같이, 태어날 때 이미 삶의 많은 것이 정해져 있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초록색 주민등록증을 가지느냐 파란색 주민등록증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인생입니다. 가자와 서안 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은 초록색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파란색이거든요.
하지만 주인과 종이라는 신분이 세상에서 조금씩 사라졌듯이, 채찍을 든 백인과 일하는 흑인의 관계가 조금씩 바뀌었듯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신분의 차이도 언젠가는 사라지겠지요. 언젠가는...
제나야
오늘 너를 처음 만나 안아보니 어느새 내가 오래 알고 지내던 동네 아저씨 같네. 넌 아니라구? 섭섭하지만 할 수 없지 뭐.
아이고 귀여운 제나
너도 이제 조금 더 자라면 학교도 가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겪기도 할 거야. 그렇게 살다 보면 힘든 순간도 많이 있을 거구. 우리 어깨 위에 두 천사가 앉아 있는 것처럼 삶에도 행복과 불행, 고통과 기쁨이 함께 있는 거니깐.
어려운 일 있어도 쉽게 포기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희망이 없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기 때문에 희망이 우리에게 오지 않는 건지도 모르니깐. 우리에게 언제나 맛난 올리브를 안겨 주는 저 나무는 때마다 올리브를 맺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를 맞고 거센 바람을 견뎠을까 싶어.
그래도 그래도 살다가 정 힘들거든 아무도 모르는, 너만 아는 올리브 나무 아래서 눈물 바가지 크게 한 번 쏟으렴. 울어서 약해지는 게 아니라 더 강해지기 위해서 우는 거라 생각하고 말이야. 마지막 눈물 닦고 나서 일어서며 어금니 한 번 꽉 깨물고 ‘그래 까짓 거’하면서 웃어 버리려무나. 올 테면 와 바라 하면서 인생에 맞서 는 거지.
그렇게 그렇게 살다보면 느리지만 조금씩 바뀌는 삶을 경험하게 될 거야. 조금씩 조금씩 떠오른 해가 온 세상을 밝히듯이 말이야.
제나야, 난 조금 있으면 팔레스타인을 떠나. 언제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될지 그야 말로 ‘인샤알라’야. 지난번엔 너희 아빠가 나를 위해 볼펜을 선물 했지만 다음번 올 때는 내가 너를 위해 선물을 가지고 올게.
그때 우리 다시 만나자. 너도 나도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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