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38_너 정말 어이없어
한국에 있을 때 한 팔레스타인 친구와 지하철 역 근처에서 만났습니다. 둘이서 어디를 갈까 두리번거리다가 제가 어디 가고 싶냐고 하니깐 그 친구가 아무 곳이나 좋다고 했습니다. 다만, 미국과 관련된 곳만 빼고라고 했습니다.
하루는 와엘이 컴퓨터에서 뉴스 기사를 읽고 있습니다. 무슨 내용이냐고 하니깐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은행이 계속 문을 닫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와엘은 기분 좋아 했습니다. 제가 미국이 망하면 함께 잔치를 벌이자고 했지요.
팔레스타인인들이 미국을 미워하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먼저 역사부터 볼까요? 1947년에 갓 태어난 유엔에서 팔레스타인을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로 나누는 분할안을 채택합니다. 쉽게 말해 어느 날 갑자기 유엔이라는 듣도 보도 못하던 잡놈이 나타나서 한국을 한국인의 나라와 일본인의 나라로 나누라는 거지요. 일본인이 원하니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이합이 즐겨하던 부시 머리에 신발을 맞추는 게임의 한 장면
아랍 국가들은 이 분할안에 반대합니다. 일부 다른 나라도 분할안에 반대하려고 하자 미국이 나서서 손을 썼습니다. 만약 분할안에 반대표를 던지면 무역 보복을 하겠다느니 뭐니 한 거지요.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이 탄생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유엔에서 이스라엘의 살인과 점령을 비난하는 온갖 결의안이 제안될 때마다 미국은 늘 반대표를 던졌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나라들도 이스라엘의 편을 들게 만들었지요. 여러 차례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들을 침공하거나 중동 전쟁을 벌일 때도 미국은 열심히 이스라엘에게 무기를 가져다 줬습니다.
요즘 미국은 이란과 북한에 대해 핵 개발을 하느니, NPT(핵확산 방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느니 하면서 욕을 합니다. 하지만 중동 지역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NPT에 가입하지 않아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시오니즘을 인종주의로 규정하자는 국제적인 움직임이 있을 때도 미국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식으로 반대를 하지요.
2006년에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해서 한참 사람들을 죽여대자 국제사회는 전쟁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은 없다’며 이스라엘의 침공을 지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2008~2009년 겨울, 가자지구에서 22일 동안 미국 무기를 들고 1,400여명을 살해하는 동안에도 미국은 또 대량의 무기를 그리스 통해 이스라엘로 보내려다 그리스 사람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기 수송을 중단했었지요.
한해에도 20~30억 달러 씩을 현찰 박치기로 이스라엘에게 줍니다. 미국 해외 원조의 가장 많은 액수가 이스라엘로 흘러 들어가는 거지요. 미국 시민들이 세금을 내면 미국은 이 돈을 이스라엘에게 줍니다. 이스라엘은 이 돈으로 미국산 무기를 사서 팔레스타인인을 죽이는 데 쓰는 거지요. 돈을 버는 거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수 업체들이고 돈과 목숨을 내놓는 것은 미국 시민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이지요.
노암 촘스키라는 미국 학자가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미국, 너 정말 어이없어
마흐무드 집 옥상에서 내려오는데 계단 아래 밀가루 자루가 하나 보입니다. 뭔가가 영어로 써져 있는 것 같아서 자세히 보니 USAID에서 보낸 겁니다. 쉽게 말해 USAID는 미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개발․원조 기관입니다.
USAID는 미군이 들어가는 곳에 함께 들어갑니다. 한국군이 이라크에 들어갈 때 코이카라는 개발․원조 기관이 함께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힘으로만 밀어 붙이면 남들 보기에 좀 거시기 하니깐 뭔가 나쁜 이미지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 거지요.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공원에 가면 공원 입구에 ‘미국의 친구들로부터’라는 글이 적힌 비석 같은 것이 있습니다. USAID에서 만들어준 공원이지요. 각종 교육 사업도 하고 마흐무드 집처럼 가난한 집에 먹을 꺼리를 나눠 주기도 합니다. 지원품을 받으면 사람들이 그걸 직접 쓰기도 하고 다른 집과 서로 필요한 것을 바꾸기도 해요. 아니면 내다 팔아서 돈을 만들기도 하구요.
이스라엘에게 돈을 퍼 줘서 무기도 사고 점령촌도 만들고 장벽도 쌓으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푼 돈 던지며 흔히 말하는 ‘인도주의’로 자신을 포장하는 거지요. 가끔 미국이 이스라엘에게 ‘점령촌 확대를 중단해라’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조폭 두목이 똘마니에게 ‘형님 입장을 봐서라도 남들 눈이 많을 때는 좀 살살 해라’는 것과 같습니다.
미국이 말로만 점령촌 확대 중단해라라고 하면서 마치 자신이 공정한 중재자인 것처럼, 아니면 ‘나도 팔레스타인 사람들 신경 쓰고 있다’라고 자신을 꾸미는 동안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점령촌을 지을 뿐이지요.
요즘 한국에서도 국제분쟁과 중재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저는 중재라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재도 잘못 하면 약자가 손가락에 끼고 있던 금가락지 빼서 강자의 주머니에 넣어주는 꼴이 되고 맙니다.
또 국제 개발․구호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좋은 마음으로 하시는 일인 만큼 내가 하는 일이 혹시 누군가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하는 일을 거드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참된 인도주의의 시작은 돈이 아니라 진실이겠지요.
그날이 올까?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만 없어도 팔레스타인 상황은 많이 좋아질 겁니다. 지금 이렇게 돈독한 사이가 변하겠냐구요? 제가 점쟁이는 아니지만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세계 유일의 패권 국가입니다. 각국의 군사비 지출만 봐도 1등인 미국이 2~11등까지를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미국이 망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망한다는 것은 미국이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라 깡패 국가로써의 미국이 약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팔레스타인 거리에 붙은 한걸음씩 나아가자는 미국의 광고판
그동안 조폭마냥 이라크니 아프가니스탄이니 여기저기서 전쟁을 하고 난리를 뽀개더니 지금은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인 전쟁에서도 제 마음대로 안 되나 봅니다. 미국의 힘이 예전 같지 않은 거지요. 금융위기로 휘청거리고 자동차 회사들은 정부 재정을 쏟아 붓고서야 겨우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로마와 몽골이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었던 것은 어느새 과거의 이야기지요.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고 했던 영국도 지금은 미국 꽁무니 따라다니며 미국의 푸들이라는 조롱까지 받고 있습니다. 강한 것은 언젠가 부러지기 마련입니다. 강자의 오만함은 곳곳에서 저항의 힘을 키우게 되구요.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국의 이익 때문이지요. 온갖 욕을 먹으면서 이스라엘을 감쌀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욕을 감당하고 반발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이 있는 거구요. 하지만 미국의 힘이 약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자국의 이익을 버리면서까지 이스라엘을 감싸고돌까요?
이스라엘이 미국이 언제나 세계 최강이기를 바라는 이유도 미국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기가 살기 위해서지요. 미국이 약해지면 이스라엘도 자기 살길 찾아 다른 나라에 붙겠지요.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영국을 제치고 미국의 힘이 강해지자 곧바로 영국을 버리고 미국에 철썩 달라붙었듯이 말입니다.
제가 팔레스타인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 것은 이스라엘은 홀로설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미국이 약해지고, 미국이 국제 정치 무대에서 더 빨리, 더 많이 힘을 잃기를 바라는 것도 팔레스타인인들이 더욱 자유로워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따로 떨어져 있을 것 같은 일들이 서로 얽히고 적혀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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