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41_다음에 만날 때도...

순돌이 아빠^.^ 2010. 4. 4. 12:45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41_다음에 만날 때도...

 

점령촌과 불과 30m 거리의 집에서 살고 있는 마르셀의 집을 찾았습니다. 마르셀은 올해 10살이고 4학년입니다. 마르셀에게 점령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아주 나쁘다고 해서 왜 나쁘냐고 물었습니다.

 

마르셀이 살고 있는 집과 주변 모습

 

거의 매일 밤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우리 집으로 와요. 모두 자고 있는데 와서는 문을 쾅쾅 두드리고는 문을 열라고 해요. 집에 들어와서 집안을 수색하기도 하고 우리를 한 방에 몰아넣고는 집안에서 집 밖을 감시하기도 해요. 왜냐하면 우리 집에서 보면 주변이 잘 보이거든요.

 

옆에 계시던 마르셀의 할아버지 마흐무드 씨가 얘기를 이어 받았습니다. 단 사진은 찍지 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만약 이 집에서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거나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을 했다네요. 둘러보고 글로 쓰는 것은 괜찮다고 합니다. 마르셀 사진을 찍기는 찍었지만 여러분께 보여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만약 제가 문 앞에 서 있거나 하면 이스라엘 군인들이 저기서 집으로 들어가라고 소리를 칩니다. 뒷마당이나 나무 밑에 앉아 있어도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고 소리를 쳐요. 꼬마인 마르셀조차 뒷마당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글로 쓰면 30m지만 뒷마당에 서서 눈으로 직접 보면 말 그대로 바로 눈앞에 점령촌이 있고 이스라엘 군이 감시탑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은 괜찮겠냐니깐 마흐무드 씨가 이골이 난 듯 괜찮다고 했습니다.

 

점령촌 때문에 이미 땅 55도넘(1도넘은 1㎢)을 빼앗겼어요. 이스라엘 군인들은 그 땅에 있던 올리브 나무도 베어버렸답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이 뒷마당을 지나는 장벽을 쌓으려고 했다니깐요. 그러면 우리 집 창문과 불과 50cm 거리에 장벽이 들어서게 되고 우리는 창문을 닫고 살아야 했을 거예요. 물론 2, 3년 뒤면 장벽이 우리 집 쪽으로 올 수도 있을 거예요.

 

한 번 만들어진 점령촌은 쉽게 없어지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빼앗으며 덩치를 키우고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기는 게 이스라엘이 처음엔 마흐무드 씨네 뒷마당을 지나는 장벽 건설 계획을 세웠었는데 왜 30m 거리를 두게 되었을까요?

 

처음엔 계획이 그랬는데 내가 계속 노력하고 싸우고 그랬지요. 이스라엘 군인들한테 만약 장벽이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오면 우리 가족 모두 죽어버리겠다고 했어요. 만약 누구라도 우리 마당에 들어오면 죽여 버리겠다고 했구요. 그래서 계획이 바뀌게 되었어요.

 

여러분 같으면 이런 곳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혹시 마르셀과 마흐무드 씨네 가족도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이사를 가고 싶지는 않냐고 물었습니다.

 

이사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여기는 내 땅이에요, 우리 땅이에요. 나는 여기서 살았고, 여기서 죽을 겁니다. 우리가 왜 나가요, 이스라엘과 점령촌이 나가야지요.

 

니하드 씨 이야기

 

올해 48살인 니하드 씨는 아내와 여섯 아이와 함께 세바스티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을 해서 돈을 모아 지금 살고 있는 땅에 집을 지었습니다.

 

1991년 5월의 하루,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에게서 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이스라엘군이 점령촌에서 불도저를 끌고 와서 니하드 씨 집을 때려 부수고 있다는 겁니다. 급하게 집에 와 보니 옷이고 가재도구고 어느 것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부서진 상태였습니다.

 

첫번째 집터를 뒤로 한 니하드 씨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내와 세 아이는 다른 집에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통역을 해 주고 있던 니달도 당시에 불도저가 집을 부수는 장면을 직접 봤다고 합니다. 니하드 씨네 가족이 모든 것을 잃자 동네 사람들이 먹을 거며 옷이며 도와 줬구요.

 

이스라엘이 첫 번째 집을 부수고 나서 니하드 씨는 그 옆에다 지금의 두 번째 집을 지었습니다. 집을 짓는 도중 이스라엘이 지붕과 창문을 만들면 집을 때려 부수겠다고 해서 지금은 지붕과 창문을 철판으로 가려 놓은 상태입니다.

 

또 이스라엘은 서류를 보내서 여기는 이스라엘 땅이니 이스라엘 땅에 대한 어떤 변형도 시도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집을 직접 부수든지 아니면 이스라엘이 와서 부수겠다는 것입니다. 니하드 씨는 5천 달러를 들여 변호사를 고용했고, 이스라엘 법원에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얻은 것은 ‘지금은’ 부수지 말라는 법원의 결정입니다. ‘지금은’ 부수지 말라는 것은 다음에는 언제든지 부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니하드 씨가 보여준 이스라엘이 보낸 서류와 변호사 비용 영수증

 

이스라엘 때문에 창문을 열지도 못하고 철판으로 가려 놓은 모습 

 

올해 6월27일에는 니하드 씨가 밀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점령민들이 몰려와서 밀밭에 불을 질렀습니다. 13㎢가 불탔고 1만 달러가량의 손해를 봤습니다. 이 땅은 니하드 씨 땅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땅을 선불로 주고 빌려 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땅 사용료는 선불로 냈는데 밀은 불타 버렸으니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오늘도 니하드 씨는 아들과 함께 다른 집에 가서 일을 하고 돈을 벌었습니다. 애들은 자꾸 커가고 대학도 보내야 하니 열심히 일을 할 밖에요.

 

지금 니하드 씨로써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스라엘이 집을 안 때려 부수길 바랄 뿐입니다. 신의 도움을 기다리신다고 합니다. 그래도 만약 이스라엘군이 집을 부수러 오면 무얼 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올리브 나무 밑에서 자야지요.

 

옆에 있던 니달이 만약 많은 돈이 생기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여기는 내 땅이에요. 내가 점령한 게 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이곳에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데 니하드 씨가 가져가 먹으라고 과일을 이것저것 챙겨 줍니다. 그리고 니하드 씨가 데려다 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트랙터를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가져온 인삼차와 책갈피를 선물 했습니다.

 

나피즈 씨 이야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에서 보는 폭격이나 총격은 늘,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상황은 자신이 가진 지식만큼 보이게 됩니다. 나피즈 씨의 사례는 여러 말보다 사진 한 장이 많은 것을 보여 줄 것 같습니다.

 

나피즈 씨와 그의 형제의 집은 작은 길 하나를 가운데 두고 서 있습니다. 길 오른쪽 나피즈 씨의 집은 오슬로 협정에 따른 C구역에 있고, 왼쪽에 있는 그의 형제의 집은 B구역에 있습니다.

 

나피즈 씨. 저 멀리 점령촌의 감시탑이 보인다

 

길을 하나 두고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형제. 오른쪽이 나피즈 씨의 집 

 

1993~1995년에 걸쳐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와 이스라엘이 맺은 오슬로 협정에 따르면 A구역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행정권과 경찰권을, B구역은 자치정부가 행정권을 가지고 이스라엘이 경찰권을, C구역은 이스라엘이 모두 가지는 지역입니다. 가장 큰 부분은 C 구역입니다.

 

나피즈 씨의 경우는 한 마을에 형제가 바로 옆에 살고 있는데도 전혀 다른 땅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집이 점령촌 가까이 있다 보니 B구역이고 C구역이고 이스라엘이 모두 집을 짓지 못하게 합니다. 오슬로 협정의 이행은 자치정부에게만 요구되는 것이지 이스라엘은 전혀 지키지 않습니다. 강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약속이었지만 그 마저도 지켜야 할 이유는 없으니깐요.

 

집을 짓다 이스라엘이 공사를 중단하라고 해서 기둥만 남은

 

이스라엘군과 점령민들이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하고 괴롭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떠나라는 거지요. 팔레스타인인들이 떠나면 별 골치 아픈 일도 없이 쉽게 점령촌을 확대할 것입니다. 쫓아내려는 자와 쫓겨나지 않으려는 자의 투쟁이 지금도 조용히, 때로는 시끄럽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음에 제가 다시 팔레스타인을 찾았을 때 마르셀도, 니하드도, 나피즈도 모두 모두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저를 맞으며 오랜만이라고 인사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