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42_ 올리브 짱아찌를 아시나요?
오이 농장에서 일을 거들었습니다. 줄기를 타고 맺혀 있는 오이를 따서 상자에 담는 일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 하나는 저는 오이가 열리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그동안 먹을 줄만 알았지 그게 어떻게 자라는 지도 몰랐던 거죠. 게다가 일을 조금 하고 나니 손에 두드러기가 올라 와서 가렵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손으로 따서 모은 오이
팔레스타인을 다니다보면 식당이든 농장이든 공사장이든 장갑을 끼고 일을 하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흔한 손바닥이 빨간 장갑이 생각나더라구요.
올리브 이야기
올리브는 많이 열리는 해가 있고, 적게 열리는 해가 있는데 올해는 적게 열리는 해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온 집 안 사람이 동원돼서 며칠씩 올리브를 따야 했겠지만 올해는 두어 사람이 몇 시간 안에 일을 끝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덩달아 올리브 가격도 많이 올랐지요.
요즘은 한국에서도 올리브유를 쓰시는 분이 많이 늘어났지요. 세계 여러 곳에서 올리브유가 생산되는데 팔레스타인 올리브유가 품질이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팔레스타인 올리브유를 수입하는데 몇몇 분들은 이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부침용으로 쓰기에는 콩기름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 고민이시더라구요.
올리브
팔레스타인에서 올리브유는 그야말로 생활이에요. 늘 밥 먹을 때마다 올리브유를 접시에 담아 상에 올려요. 그러면 빵을 올리브유에 직접 찍어 먹곤 한답니다. 올리브 열매는 짱아찌처럼 담아 먹기도 해요. 김치 마냥 늘 빵과 함께 다니며 사람들의 손길을 부르지요. 올리브 열매에는 씨가 있으니깐 씹을 때 조심해야 해요.
올리브 가운데 품질이 좀 안 좋은 거는 올리브 비누로 만들어요. 여러분이 어느 팔레스타인인 집에 가서 손을 씻는데 하얀 비누가 있고, 흔히 가게에서 파는 것과는 달리 생김새가 어딘가 모르게 어리숙해 보이면 올리브 비누냐고 물어 보세요.
올리브 비누는 공장에서 만들어 팔기도 하고 올리브 농사를 짓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 쓰기도 합니다. 아셈의 얘기가 기억나네요. 한국에 올리브 비누를 가져갔었는데 사람들이 피부에 좋다고 했다니깐 하니깐 요즘 자기들은 올리브 비누 잘 안 쓴대요. 왜냐하면 가게에서 파는 비누가 훨씬 잘 씻기고 향도 좋으니깐요.
위즈단 어머니가 한국 갈 때 가져 가라고 올리브 비누와 짱아찌를 잔뜩 챙겨 주시더라구요. 그런데 문제는 비행기에 이런 먹을꺼리를 가지고 타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올리브 나무로는 가구를 만들거나 조각을 하기도 해요. 여러분이 팔레스타인 다니다 보면 올리브 나무로 사람 모양이나 팔레스타인 지도 모양을 만들어 파는 분들을 만나게 될 거에요.
오늘은 니달 집에서 올리브를 따러 간다기에 함께 갔습니다. 차와 빵과 반찬 등도 챙겼지요. 올리브는 대추처럼 작은 열매에요. 나무의 높이도 그리 높지 않아 선 채로 손을 뻗어 따기도 해요.
올리브를 따고 계시는 니달 어머니
작대기로 올리브 털기
올리브를 따는 또 다른 방법은 먼저 나무 아래에 넓게 천막 같은 것을 펴요. 그러면 사람들이 아래서 또는 나무로 올라가서 작대기로 가지를 후려쳐서 올리브를 떨어뜨려 천막에 모으는 거죠.
세 아들과 어머니 아버지가 함께 일을 하는데 이 과정도 재미나더라구요. 아들들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오늘은 올리브를 따러 왔고 담배도 피며 쉬엄쉬엄하더라구요. 그에 비해 나이 드신 어머니 아버지는 잠깐도 쉬지 않고 손을 놀리시더라구요.
부린
그제는 세바스티아와 조금 떨어져 있는 부린이라는 마을에 갔었습니다. 이곳도 주변에 점령촌이 있고 이스라엘은 땅을 빼앗았습니다. 팔레스타인 농민들은 올리브 수확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구요.
그날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지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올리브 수확을 하러 갔습니다. 외국인들이 있으면 점령민이나 군인들의 폭력이 약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보는 눈이 있으니 좀 덜 해진다는 거지요.
내 땅인데 왜 못 가냐는 농민과 군사지역이기 때문에 갈 수 없다는 군인
올리브 수확길을 가로막고 나선 이스라엘 군인들
마을 중앙에 있던 카페에 모여 함께 올리브 밭으로 갔습니다. 수십 명이 쭈욱 늘어서서 도로를 건너고 있는데 곧바로 이스라엘 군인들이 달려 왔습니다. 바로 제 뒤편에서 꼬리가 잘린 셈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도 외국인은 잽싸게 도로를 건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멈칫 멈칫 하다가 건너지 못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인과 군인들 사이의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어디 가느냐?”
“올리브 수확하러 간다.”
“여기는 군사지역이기 때문에 갈 수 없다”
“저기는 내 땅인데 왜 못 가느냐?”
“만약 계속 이러면 가만있지 않겠다.”
한참 실랑이가 벌인 뒤 도로를 건너지 못한 사람들은 놔 둔 채 앞으로 갔습니다. 작업 현장에도 이미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똑같은 실랑이가 오가더니 곧 농민들이 돌아가자고 합니다. 군인들이 사람들을 체포하겠다고 위협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네요. 결국 우리는 올리브 열매는 손에도 못 잡아보고 그대로 돌아 왔습니다.
올리브 나무는 오래된 것은 몇 백 년 씩 된 것들이 많아서 굶은 몸통을 안으려면 어른 서너 명의 팔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조상 대대로 팔레스타인인들과 함께 살아온 올리브 나무를 이스라엘이 숭덩숭덩 베어버리거나 하루아침에 빼앗아 갈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지 아시겠지요?
선물. 군인 사진은 괜찮냐구요?
군인이나 검문소 등의 사진을 찍을 때 어려움이 없냐고 물으시는 분이 가끔 있습니다. 군인들이 강하게 찍지 말라고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예루살렘에서 군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고 사람들을 두들겨 패고 잡아 가더라구요. 그 과정을 찍고 있으니깐 한 군인이 찍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니가 뭔데?’ 식으로 말했더니 욕을 해대면서 찍지 말라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다른 한 번은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에레즈 검문소에서 건물 바깥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곧바로 이스라엘 사람이 달려와 찍은 사진을 보자더니 지울 것을 요구했습니다. 물론 건물 안의 촬영은 불가능 했구요. 이스라엘이 일을 벌이고 있거나 꼭 감추고 싶은 곳이 아니면 보통의 경우는 무조건 사진을 찍고 나서 다음 문제는 그 다음에 해결하면 됩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면 되는 거지요. 외국인이라는 점을 적극 활용(?)하는 겁니다.
팔레스타인 친구와 함께 움직이고 있을 때는 약간 조심해야지요. 우리에게는 큰 문제가 생길래야 생길 것이 없지만 그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깐요. 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팔레스타인인이 먼저 카메라를 넣으라고 얘기할 겁니다.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바라는 사람들이 열심히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도 우리가 본 것을 혼자만의 기억으로 남기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글도 쓰는 거라 생각합니다. |
'팔레스타인·이스라엘 > 06년·09년 팔레스타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44_예루살렘에 가 봤니? (0) | 2010.04.04 |
---|---|
43_제기, 우리 놀이턴데... (0) | 2010.04.04 |
41_다음에 만날 때도... (0) | 2010.04.04 |
40_사람을 가슴에 묻는다는 거 (0) | 2010.04.04 |
39_ 멈춰 거기서! (0) | 2010.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