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43_제기, 우리 놀이턴데...

순돌이 아빠^.^ 2010. 4. 4. 12:57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43_제기, 우리 놀이턴데...

 

밤이 되면 오사마와 함께 마을 뒤편에 있는 카페에 가서 놀곤 했습니다. 로마 유적들이 널려 있는 곳 주변에 몇몇 카페와 식당이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습니다. 요즘은 관광객이 많지 않을 때라 기념품 가게는 사람들이 좀 있다 싶어야 문을 엽니다. 처음에는 로마 시대 유물 위에 앉아서 놀자니 약간 미안한 기분도 들더라구요.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니 이곳 사람들처럼 그냥 아무렇지 않게 되더라구요.

 

카페에서 수다도 떨고 놀다 지루해지면 카페 근처에서 걷곤 합니다. 몇 십 미터 안 되는 길을 뒷짐지고 어슬렁어슬렁 왔다 갔다 하는 거지요. 처음에는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나, 저기 산에 가도 될 텐데 싶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산에는 군인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밤에는 그쪽으로 갈 수가 없는 거지요. 

 

로마 유적 위에 앉아 차도 마시고 과자도 먹고

 

카페라고 해서 한국의 카페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냥 장식이나 소품 없는 건물 안에 의자가 있고 거기서 차와 음료수를 팔면 사람들이 모여 수다도 떨고 카드놀이도 하는 곳이지요.

 

하루는 람지가 조그마한 동전 2개를 제게 건넸습니다. 웬 거냐고 하니깐 로마 시대 동전이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깜짝 놀라서 이런 걸 줘도 되냐고 하니깐 자기는 또 땅 파면 된다고 하더라구요.

 

카페에 있는데 한번은 오사마가 저 멀리 있는 누군가를 손짓하며 오라고 부릅니다. 휠체어를 타고 와서 제 오른쪽에 자리한 사람은 5개월 전 이스라엘군에게 총을 맞아 다리를 자른 무피드였습니다. 제가 복잡한 심정으로 어두운 표정을 지으니깐 무피드는 자기는 괜찮고 슬프지 않다며 웃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무피드와 쎄르비스 기사 아저씨

 

무피드 얘기가 끝나자 그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무함마드가 얘기를 꺼냈습니다. 자기 형 사메르는 2001에 이스라엘군에게 잡혀가 지금 깜빵에 있는데 평생 동안 깜빵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고 이스라엘이 그냥 사메르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답니다. 다른 사람은 면회가 안 되고 엄마와 아빠만 2주일에 한 번 30분씩 면회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오사마도 이스라엘군에게 총을 맞아 다리에 철심을 박았습니다. 오사마가 위즈단의 동생이니깐 그 가족은 땅을 빼앗기고 사위는 총 맞아 죽고 아들도 총을 맞은 셈이지요. 제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쉬라프는 17일 동안 이스라엘 깜방에 있었는데 17년은 있었던 것 같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군인들이 집에 들이 닥쳐 가재도구를 부수고 아쉬라프를 끌고 갔고, 3m×2m 공간에 6명이 생활을 했으니 그 기억이 좋을 리 없겠지요. 그날 함께 끌려간 아쉬라프의 사촌은 여전히 감옥에 있구요.

 

여러분이 만약 팔레스타인 셰밥들과 어울리게 되면 처음부터 이런 얘기를 꺼내지 않을 거에요. 서로 얼굴이 조금 익고 나서 그동안 이스라엘 때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 보세요. 저마다 할 얘기들이 많을 거에요.

 

이어지는 사건들

 

그제 덴마크에서 10여명의 사람들이 세바스티아로 왔었습니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알기 위해 10여 일 동안 여기저기를 여행하고 다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머리 허연 분들이 꽤 계시더라구요.

 

특별한 일이 없던 시간에 외부에서 사람들이 왔으니 저도 마치 팔레스타인인마냥 덴마크 사람들을 맞았고 그들과 함께 마을 여기저기를 둘러봤습니다. 모두들 저를 보고 신기해했습니다. 그도 당연한 것이 만약 제가 백인이거나 미국 출신이라면 ‘아하’ 하겠지만 익숙지도 않은 한국 사람이 팔레스타인인 마냥 그들 속에서 끼여서 외부인을 맞고 있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팔레스타인 친구들이 덴마크 사람들에게 저보고 로마 유적과 마을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하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구요.

 

해지는 산 위에서 니달과 위즈단

 

간단하게 이래저래 인사를 하고 나니깐 한 사람이 웃으며 ‘그래서 니는 누군데?’라고 했습니다. 이름이나 국적은 알겠는데 저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거지요. 이런 저런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한동안 여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본 뒤에 갈래길에서 헤어졌습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저쪽 길을 내려가고 우리는 배가 고파서 얼른 이쪽 길로 내려 왔죠.

 

어제 위즈단이 전해 준 얘기는 우리가 갈래길에서 헤어지고 덴마크인들이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군인들이 달려와서 여기서 뭐하느냐고 따져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덴마크인들은 그냥 관광하고 있다고 하고 가 버렸다고 합니다.

 

위즈단이 얘기가 마치자 니달이 또 다른 얘기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한 사람이 전봇대에 올라가 전기선 잇는 작업을 하다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겁니다. 그저께 큰 트럭 하나가 전선을 건드리는 바람에 동네가 정전이 되고, 그 이후에도 전기가 오락가락 했었거든요.

 

잘 보면 길의 왼쪽과 오른쪽 색깔이 다르다. 왼쪽은 이스라엘이 불도저로 도로를 뒤엎은 뒤 다시 깔았기 때문

 

그날 밤, 트럭이 전선을 건드리던 순간 펑하고 큰 소리가 나면서 동네가 정전 됐습니다. 마침 함께 사무실에 있던 오사마는 잽싸게 일어나 문 쪽으로 가더니 문을 걸어 잠급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절대 누가 와도 열어 주지 말라고 몇 번 당부를 하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갑니다.

 

까닭 모를 큰 소리가 났으니 오사마는 또 이스라엘 군인들이 일을 저지른 줄 알고 긴장을 했던 겁니다. 날이면 날마다 군인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 집 저 집 수색을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끌고 가니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자라보고 놀라는 거지요. 

 

세바스티아를 떠나던 날

 

오늘 아침, 그러니깐 제가 열흘 동안 머무르던 세바스티아를 떠나던 날 아침이었습니다. 9시에 알라를 나블루스에서 만나기로 해서 준비를 마치고 위즈단과 차를 마시며 떠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삐리릭 문자가 왔습니다. 알라가 사정이 있어서 9시가 아니라 10시에 만나자는 겁니다.

 

위즈단과 헤어지자니 섭섭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아침이나 먹자고 필라펠 샌드위치를 사러 나섰습니다. 마침 오사마를 다시 만났는데 표정이 뭔가 헐레벌떡입니다. ‘미니 저기 위에 이스라엘 군인들과 유대인들이 잔뜩 있어’라면서 말입니다.

우리 놀이터 입구를 틀어 막고 있는 군인들 

여기서 ‘저기’는 카페와 로마 유적이 있는 우리들의 놀이터를 말합니다. 거기에는 넓은 운동장도 있어서 평소에는 아이들이 공을 차기도 하고, 며칠 전에는 축제가 있어서 무대를 차리고 가수들이 노래를 하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 지금은 이스라엘 군인들과 유대인들이 잔뜩 몰려와 있다는 거지요. 곧바로 사진기를 챙겨들고 올라갔습니다. 우리들의 놀이터 입구에서부터 이스라엘 군인들은 짚차를 세워놓고 길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제가 모른 채 지나가려고 하니깐 군인이 차 안에 앉아서 손가락질을 하며 저를 오라고 합니다.

 

“어데 가노?”
“(공터와 카페를 가리키며)저기 간다.”
“머 할라고?”
“그냥 카페 가는데 와?”
“몬 간다.”
“와?”
“여기 폐쇄됐다.”
“카페 간다니깐.”
“거기도 폐쇄됐다. 니 어데서 왔노?”
“한국서 왔다.”
“여기서 머하노?”
“관광객이다. 그러는 니는 여서 머하노?”
“나도 모른다

 

그동안 여러 번 이스라엘 군인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해 봤지만 이 날은 참 기분 나빴습니다. 이스라엘 군인이라는 그 자체가 싫기도 하지만 차 안에 앉아 의자에 몸을 잔뜩 기대고서는 온갖 거드름을 피우며 저를 상대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인 저한테 이 정도인데 팔레스타인인들한테는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열 받은 마음으로 짚차 옆에 서서 놀이터를 자세히 보니 이스라엘 깃발이 줄을 서서 잔뜩 걸려 있고 옆에는 다른 짚차와 군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오늘 세바스티아를 떠나야겠기에 집에 가서 가방을 챙겨서 나오는데 짚차들이 마을 헤집고 다닙니다. 정류장에 가서 쎄르비스를 기다리는데 평소에는 그 많던 쎄르비스가 오늘따라 한 대도 안 보입니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동네 사람 한명이 나블루스 간다며 자기 차를 타라고 해서 차를 얻어 타고 길을 나섰습니다.

 

세바스티아에서 나블루스로 가려면 점령촌 옆에 있는 도로와 이스라엘 검문소를 지나야 합니다. 검문소 가까이 가니 차들이 가지는 않고 그대로 서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점령촌에서 관광버스가 몰려나오고 그 안에는 유대인들이 잔뜩 타고 있습니다. 관광버스 대열 앞에는 이스라엘 짚차 두 대가 앞서고 관광버스 대열 가운데도 군인들이 차를 몰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놀이터에 유대인 행사를 위해 늘어선 이스라엘 깃발과 군인들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이 정당성 부족입니다.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것이 아니라 원래 이곳은 유대인들의 땅이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어야 말이지요. 일본이 조선을 점령하면서 원래 이곳에 일본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바스티아가 워낙 오래된 곳이다 보니 이곳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과거와 이곳 유물들이 관계있다는 얘기를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유물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데 유대인들이 과거에도 살았다는 흔적을 찾거나 만들기 위한 거죠.

 

세바스티아에 있는 로마 원형 극장에 가면 원래 있던 돌이 몇 개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져다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유적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씩 하나씩 유대인의 유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거죠. 그리고 오늘은 유대인 기념일을 맞아 운동장에서 축제를 벌인다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그리 몰려갔던 겁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에 친구들을 두고 뜨내기 마냥 길을 떠나는데, 유대인들은 총을 들고 우리들의 추억이 담긴 곳으로 몰려가고 있었습니다. 나블루스로 가는 내내 눈물이 찔끔찔끔 흘렀습니다.

 

제기, 우리 놀이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