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44_예루살렘에 가 봤니?

순돌이 아빠^.^ 2010. 4. 4. 13:06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44_예루살렘에 가 봤니?

 

팔레스타인에 있다 기회가 되면 시리아와 레바논에 가 볼 생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공항을 통과할 때 ‘노 스탬프’라는 말로 여권에 도장을 찍지 말라고 했고, 별도의 종이에 도장까지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통과하는데 우리만 다른 방으로 불러서 한참 동안 귀찮은 문답을 해야 했던 것도 ‘노 스탬프’와 관련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제 여권에 한 자리 차지한 이스라엘 도장

 

공항을 통과한지 1달 반이 지나서야 여권에 이스라엘 도장이 버젓이 찍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눈앞에서는 별도 종이에 도장을 찍어 주고, 왜 노 스탬프냐고 묻기까지 하더니 안 보는 사이에 여권에 도장을 찍은 거죠. 그 도장 하나 때문에 시리아는 물 건너 간 거구요.

 

예루살렘을 뺀 서안지구만?

 

얼마 전부터 이스라엘이 외국 여권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북아메리카와 유럽 지역 국가가 발행한 여권에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로 제한함(Palestine Authority only)'이라는 도장을 찍는 겁니다. 아직은 시행 초기인데 이 제도가 확대․강화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지역보다는 서안지구나 가자지구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지역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자치지구로 제한함’ 도장을 가지고는 이스라엘 지역으로 가는 것은 물론이고 벤구리온 공항을 거쳐 서안지구로 올 수도 없겠지요. 결국 요르단을 통해 육로로 들어와야 합니다.

 

요르단을 통해 서안지구로 들어 왔다고 하지요.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하는데 이 도장으로는 예루살렘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주장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일부이고, 자치지구 관할이 아니라는 거지요.

어떤 사람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 출신인데 지금은 미국 시민권과 여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요. 이 사람은 지금까지는 그 여권을 가지고 라말라도 가고 나블루스도 예루살렘도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예루살렘으로는 갈 수 없게 되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 예루살렘은 또 한 번 멀어지게 되는 거지요.

 

'자치지구로 제한함’ 도장이 찍혀 있는 여권 

 

외국에서 들어온 많은 단체가 서안지구의 두 주요 도시인 예루살렘과 라말라에 사무실을 두고 활동가들이 오가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비자 제도가 확대 시행되면 국제 활동가들도 지금과는 달리 라말라와 예루살렘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게 됩니다.

 

이스라엘로써는 외국 여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이 예루살렘을 오가는 것도 막고, 가뜩이나 꼴 보기 싫은 국제 활동가들의 이동도 차단할 수도 있고, 예루살렘을 서안지구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할 수도 있는 거지요.

 

예루살렘에 가 봤니?

 

팔레스타인 친구와 제가 팔레스타인에 와서 찍은 사진을 쭈욱 넘겨보며 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찍은 사진이 나오자 여기가 어디냐고 하기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예루살렘에 가 봤니?’라고 묻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예루살렘 갔던 얘기를 신나게 떠들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고 특히 라마단 기간에는  더욱 가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가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팔레스타인인이 아니겠지요. 만약 라말라 출신 35세의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예루살렘 입구 검문소에서 군인에게 예루살렘에 가고 싶다고 하면 그 군인은 “예루살렘? 좋아. 가고 싶으면 가. 10년 뒤에 말이야”라고 할 겁니다. 서안지구 주민들 가운데 남성은 50세 이상, 여성은 45세 이상의 사람들만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하니깐요.

 

예루살렘에 있는 부서진  농구장. 이스라엘은 운동장을 때려부수고 점령촌을 만들었다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예루살렘에 가 봤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가 봤다고 합니다. 언제 가 봤냐고 물으면 모두 어릴 때 가 봤다고 합니다. 나이 많이 들거나 어린이들만 예루살렘에 갈 수 있고, 나머지는 이스라엘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허가가 잘 안 나오는 거지요.

 

얼마 전에 라말라에서 아베드를 만났습니다. 아베드의 부인은 팔레스타인인이기는 한데 예루살렘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인이 라말라로 와서 아베드를 만나는 것은 쉬운 반면 아베드가 예루살렘으로 가서 부인을 만나는 것은 허가 문제 때문에 아주 어렵습니다. 아베드가 예루살렘에 들어가 살 수도 없구요.

 

같이 살려면 방법은 부인이 라말라로 이사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번 예루살렘을 떠나면 다시 돌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인 인구수를 줄이는 방법의 하나로 선택하는 것이 결혼한 부부들이 예루살렘 밖에서 살도록 하는 거니깐요.

 

예루살렘을 가로지으며 서 있는 고립장벽

 

지금 아베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치정부도 찾아가고 국제단체에 편지도 보내며 부부가 자유롭게 만날 수 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다는 건 아베드도 저도 잘 알고 있지요.

 

예루살렘에 가 봤다고 하면 팔레스타인인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이유를 알겠지요? 그 눈빛을 받으며 괜히 잘못한 것도 없는 제가 미안해지는 이유도. 그리고 팔레스타인 친구가 ‘내가 예루살렘에 가는 것보다 미니가 한국 가는 게 더 쉬울 거에요’라고 할 때 두 사람 모두에게서 느껴지는 무거운 마음을.

 

집 나간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이스라엘 스스로도 그렇고 가끔 어떤 책에 보면 이스라엘을 중동지역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미국 하원의장인 펠로시는 지난 2008년 5월 예루살렘을 방문해서 이스라엘을 ‘민주주의의 등대’라고 표현했지요.

 

한국 외교통상부 신각수 제2차관은 지난 3월 매일경제에 기고한 ‘워킹홀리데이로 위기서 기회를’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사 직접 보기 http://news.mk.co.kr/newsRead.php?no=154861&year=2009 )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이웃으로 둘러싸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목전에 둘 정도로 민주주의와 경제를 발전시켰다. 이런 성장의 이면에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2~3년 병역의무를 마친 후 대학에 가기 전 1년 정도 세계를 여행하면서 세상 물정을 익히고 국제 감각을 배양하며 장래 기회의 창을 모색하는 것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신각수 차관

 

신각수 차관의 생각과는 달리 해외여행을 다녀보신 분들은 직접 경험을 하셨거나 아니면 소문으로 막 군대를 다녀온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해외여행 과정에서 예의 없고 막무가내식의 행동을 했던 것을 듣곤 하셨을 겁니다. 

 

민주주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200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를 하자 이스라엘은 미국, EU와 함께 하마스가 정부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경제봉쇄와 군사공격을 감행해서 하마스 정부를 무너뜨렸습니다. 팔레스타인 의회 의원과 정부의 장관 다수를 체포했습니다. 지난 9월2일 이스라엘이 9명의 의원을 석방 했지만 여전히 24명의 의원과 장관 2명이 이스라엘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신각수 차관님, 민주적인 선거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력으로 엎어 버리는 이스라엘에게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렇게도 가고 싶어 하는 예루살렘을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한숨 앞에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는 지금 가출이라도 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