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46_팔레스타인에 희망이 있냐구요?
여러분 ‘우공이산’이란 말 들어 보셨죠?
나이 90의 우공은 집 앞 높은 산 때문에 먼 길 돌아가야 하는 고생을 그만 하기 위해 산을 퍼서 옮기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아내가 도대체 그 일을 할 수 있겠냐고 하지만 우공은 아들과 함께 흙과 돌을 퍼 옮기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이 인생도 얼마 남지 않은 마당에 왜 그런 짓을 하냐면 우공을 비웃자, 우공은 내가 죽으면 자식이 하고, 자식이 죽으면 손자가 계속 하면 된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들은 하늘님이 감동하여 산을 옮겨 주었다고 합니다.
결국 산을 옮긴 것은 우공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요. 우공은 산을 옮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그 목표를 장시간에 걸쳐 이룰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일을 했습니다. 이런 우공의 삶에 대한 태도가 하늘님까지 움직였던 거지요.
희망의 뿌리
3년 만에 라말라 근처에 있는 발레인을 다시 찾았습니다. 발레인은 5년째 장벽 건설 반대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곳입니다. 3년 전과 달라진 것은 그 때는 장벽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지금은 장벽이 이미 마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청년들이 돌을 던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린이/청소년들이 돌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청년들이 연일 감옥으로 끌려가고 있으니... 이 날도 이스라엘 군인들은 집회 도중 팔레스타인인 1명을 끌고 갔습니다.
한 팔레스타인인 때문에 재미(?)났던 일이 있었습니다. 마을 가운데서 집회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낮, 그러니깐 이슬람 사원에서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나오면 그 무리와 함께 장벽으로 행진을 해서 집회를 하는 거지요.
장벽에 처져 있는 철조망 끌어 당기기
보온병을 든 한 사람이 컵을 들고 와서는 커피를 한 잔 사서 마시라고 합니다. 커피 생각이 없어서 안 한다고 하니깐 두어 걸음 물러났다 조금 있다 다시 와서 한 잔 하라고 하고 생각이 없다고 하면 물러났다 또 한 잔 하라고 했습니다.
값이 얼마냐고 하니깐 한 잔에 10셰켈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웃었습니다. 대략의 물가를 알고 있는 저희를 외국인이라고 우습게보고 가당찮은 값을 부른 거지요. 심지어는 옆에 있던 그 사람의 친구들도 나무랐습니다. 그러자 2셰켈만 내라고 합니다.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발레인 마을 사람들과 함께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장벽으로 행진을 했습니다. 장벽 가까이 가면 2무리로 나뉩니다.
쉽게 말해 한 무리는 비폭력 무리입니다. 메가폰을 들고 항의도 하고 철조망에 줄을 걸어 당기기도 하지만 돌을 던지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다른 한 무리는 곧바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이 무리든 저 무리든 최루탄이 터지면 조금 물러났다 다시 모여 들기를 반복합니다.
조금 전까지 커피를 팔더니 곧 이스라엘 군인에게 돌던지는 사람
돌 던지는 무리 한 가운데 낯익은 얼굴이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저희보고 커피를 마시라고 하더니 지금은 곧바로 돌을 던지고 있는 겁니다. 예전에는 동네 형들이 중심이 되어 돌을 던졌다면 이제는 형들이 없는 자리를 동생들이 지키고 있는 거지요.
이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구요? 물론 얼핏 보면 그저 그런 일인가 보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돌 던지고 싸우는 것이야 팔레스타인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깐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돌보다는 사람입니다.
그 작은 마을, 오랜 세월 싸움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감옥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수시로 밤에 마을로 들어와서 사람들을 잡아가지요. 사람 얼굴이 새겨진 옷을 입고 있기에 누구냐고 물었더니 장벽 건설 반대 투쟁을 하다 이스라엘 군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희망으로 보입니다. 다른 나라는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까지 이곳으로 와서 팔레스타인인들과 함께 투쟁을 합니다. 그야 말로 국경을 넘는 연대의 현장이 되는 거지요.
장벽 건설 반대 투쟁 과정에서 살해된 사람의 묘
팔레스타인뿐만이 아니에요. 영국에서는 대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농성과 집회를 하면서 학교 측이 이스라엘 기업과 거래를 중단하도록 만드는 일이 있었지요. 한국만 해도 제가 처음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을 시작할 때는 그야말로 ‘한국에서 웬 팔레스타인?’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팔레스타인에서 큰 일이 벌어지면 많은 분들이 한국이라고 뒷짐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도 뭐라도 해야 한다라고 하시지요.
팔레스타인에서 그리고 지구 곳곳에서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고 모이고 있는데 제가 왜 희망을 버리겠습니까?
사람과 함께 세상을 바꾸다
우리는 흔히 불행은 등 뒤에서 온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피할 수 없다는 거지요. 불행은 오래오래 떠나지 않을 것처럼 여기면서 행복은 곧 사라질 거라 불안해합니다. 불행은 운명이고 행복은 우연이라고도 여기지요. 웃음보다는 눈물을, 희망을 갖기보다 절망을 말하길 좋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려운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도 여기지요. 작은 불행은 크게 느끼고 큰 행복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경쟁, 열등감, 조바심, 불안감 등에 시달리기 때문에 불행을 습관처럼 안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30년 뒤에 죽을 것을 오늘부터 머리 싸매고 걱정하며 사는 거지요.
하지만 행복이든 불행이든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 듯이 현재가 미래를 만들어갈 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가운데 ‘사람의 마음을 얻어 세상을 바꾼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공이 움직인 것도 하늘님 곧 사람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진실 되고 노력을 아끼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이고,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일 때 세상도 바뀌는 거지요.
최루탄 연기와 파편
란다는 RWDS(Rural Women's Development Society. ‘농촌 여성 발전 협회’ 정도 될까요? 홈페이지 http://www.rwds.ps/) 활동가입니다. RWDS는 여성 교육도 하고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서로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 놓는 자리가 되기도 하지요. 란다는 매일 데이르 알 고쏜에서 툴카렘으로 출퇴근을 하지요.
란다에게 딸이 여럿 있는데 큰 딸도 란다처럼 히잡을 쓰지 않고 다닙니다. 란다가 거의 유일하게 이 마을에서 히잡을 쓰지 않고 다니는 성인 여성이듯, 란다의 딸도 학교에서 유일하게 히잡을 쓰지 않는 학생입니다.
팔레스타인 할머니. 사진_RWDS
하루는 학교 선생이 란다의 딸에게 집에서는 쓰지 않더라도 학교에서만이라도 히잡을 쓰면 어떻겠냐고 했답니다. 그러자 란다의 딸이 그것은 옳지 않다고 거부했고 선생도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혼자서 기존 사회 제도에 도전을 하고 바꾼 거지요. 이미 만들어진 것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의지로 삶의 새로운 모습을 만든 겁니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천지개벽이 일어난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혹시 우리는 불행에 익숙해지다 보니 천지개벽 수준의 것이 아니면 희망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나요? ‘에이 그 정도가지고 뭐가 되겠어?’라며 뒷짐 지고 훈수 둘 생각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코끼리를 길들여 이용하는 방법은 어릴 때부터 코끼리 발에 쇠사슬을 묶어 두는 거라 합니다. 어릴 때는 힘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더라도, 이제 커서 사슬을 끊을 수 있지만 코끼리는 자신은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며 그리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불행과 좌절에 익숙해지는 겁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바꿀 수 있는 삶이지만 그 조금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조금을 하는 것과 조금을 하지 않는 것이 결과를 놓고 보면 큰 차이를 만들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2007년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에 RWDS 회원들이 함께 한 집회. 사진_RWDS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온갖 집안일에 여섯 아이들까지 돌봐야 하는 란다가 피곤할 거라는 것은 말씀 드리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그런 란다가 늦은 밤 하품을 하면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바꾸고 있어요’라며 웃더라구요. 제 마음이 다 밝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불행을 운명으로 여기지 않고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사건으로 여기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공의 경우처럼 희망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을 때 하늘님도 마음을 바꾸듯 세상도 우리에게 행복을 안겨 주겠지요.
희망은 길과 같은 것이다. 길이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처음 누군가가 걸어가고 자꾸 사람들이 가게 되어 그게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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