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48_내가 좋아 왜 더듬어
어제 아침, 일어나 씻고 짐을 주섬주섬 챙겨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칼란디야 검문소에서는 모두 내려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대로, 차는 차대로 검문소를 지나서 다시 차에 타야 하는 거지요. 각자 짐뿐만 아니라 한국으로 붙일 짐까지 잔뜩 이어서 낑낑거리며 검문소로 갔습니다.
칼란디야 검문소. 이 검문소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게 된다.
칼란디야 검문소를 지나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짐을 들고 좁은 회전문을 통과하려면 애를 먹습니다. 겨우 겨우 가방을 끌고 회전문을 통과하고 무거운 짐을 검색대에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검문소를 지나 다시 버스에 탔습니다.
동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먼저 할 일은 서예루살렘에 있는 우체국으로 가는 겁니다. 쿠피예나 깃발 등 팔레스타인을 상징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우편으로 한국에 붙이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가방에 있으면 공항에서 귀찮아질 수 있으니깐요.
동예루살렘에는 우체국이 없냐구요? 당연히 있지요. 하지만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 서예루살렘이 좀 더 짐을 수월하게 보낼 수 있기에 서예루살렘으로 가는 겁니다. 택시비 아끼려고 무거운 짐을 낑낑거리며 들고 가느라 애 먹었지요.
귀중한 물건은 비행기로 붙였습니다. 요금이 아주 비싼 대신 안전하고 시간도 3~4일 밖에 안 걸린다네요. 천천히 도착해도 되는 물건은 요금이 훨씬 싼 배로 붙였습니다. 언제 도착할지는 알 수 없는데 보통 2~3개월 걸린다네요.
우체국을 나와서 다시 올드시티로 가서 한국으로 가져갈 선물을 이것저것 샀습니다. 해도 저물어 저녁을 먹고 텔아비브에 있는 벤구리온 공항으로 가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갔습니다.
행사장에서 노래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역시 이번에도 터미널 입구에서 검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호주머니에 든 것을 꺼내 몸에 쇠붙이 있는지를 검사하고 나서 x-ray 검색대 위에 또 짐을 올렸습니다. 우리는 무사히 통과했는데 뒤에 따라오던 한 아랍인 여성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이스라엘 경찰이 그 여성의 핸드백을 까뒤집고 있더라구요. 여러분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짐을 모두 까뒤집는 일을 당하면 기분이 어떠실 것 같은가요?
이러나저러나 공항행 버스를 타고 길을 갔습니다. 공항 근처에 와서 또 한 번 버스를 갈아타야 합니다. 물론 조금 돈을 더 주면 한 번에 가는 차를 탈 수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새 버스를 타고 얼마 달리니 버스가 서고 이스라엘 군인이 올라탑니다. 차 안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휴지통까지 열어 보더니 내려서 조그만 기계로 차 아래편까지 검사를 하더니 가라고 합니다.
버스를 내려 짐을 끌고 공항 건물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공항직원이 다가옵니다. 다른 검색은 예상 했지만 이건 예상 못한 채 갑자기 벌어진 일입니다.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해 둔 것이 ‘노 잉글리쉬’입니다. 상대가 뭐라고 하든 영어 못한다고 잡아떼는 거에요.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물어도 예루살렘, 거기서 뭐했냐고 물어도 멀뚱멀뚱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있다가 그냥 예루살렘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몇 가지를 더 묻고 몇 번 더 멀뚱멀뚱 하고 나니깐 직원이 그냥 가라고 합니다.
검색 검색 검색
저희가 탈 비행기가 오늘 새벽 4시 비행기여서 어제 밤부터 공항에 가 있었던 겁니다. 지루하게 시간을 기다리다 1시가 돼서 컴퓨터로 출력한 이티켓을 가지고 루프트한자 항공사 앞으로 갔습니다. 비행기 표를 받기 위해서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가방에 딱지 하나씩을 붙이고 옵니다. 표를 받고 나서 보안 검색을 할 줄 알았더니 반대로 검색을 거치면 가방에 딱지를 붙여 주고 그제야 표를 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1층에는 팔레스타인인 이 살고 있고 옥상에 이스라엘 군인 초소가 있는 모습. 옥상 왼쪽에는 감시 카메라
보안 검색을 지나기 위해 길게 줄을 섰습니다. 앞에 사람들이 검색대를 통과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사람은 x-ray 검색만 하고 그냥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검색대에 가서 잠깐 인터뷰를 하고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검색대 위에서 짐을 풀어 놓고 있습니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큰 소리로 따지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 이거는 우리를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등등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만큼 보안검색이 여행객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거지요. 다른 공항에서는 보통 출발 2시간 전에 공항에 오라고 하는데 여기는 최소 3시간 전에 오라고 합니다. 까다로운 보안검색 때문에요.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무거운 표정으로 어디서 오느냐, 거기서 뭐했냐, 누구를 만났느냐 등을 따져 묻습니다. 옆에 있는 반다가 짧게 대답을 하고 저는 노 잉글리쉬 작전을 유지했습니다. 두 사람 말이 꼬이면 안 되니깐 아예 입을 다무는 게 속 편합니다. 그 남자가 다른 사람을 부릅니다. 어떤 여자가 오더니 이번에는 비슷한 질문을 웃으면서 부드럽게 합니다.
그러면서 순간 누구한테 선물 받은 게 있거나 짐을 옮겨달라고 한 것이 있냐고 묻습니다. 함정입니다. 여러분도 공항을 이용하면 이런 질문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데 순진하게 선물 받은 거 있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말이 길어 질 수 있는 행동이나 말을 하면 손해입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x-ray 검색대에 짐을 넣고 나니 또 다른 검색대로 가라고 합니다. 한 직원이 짐을 올려놓으라고 하더니 가방을 열라고 합니다. 이것저것 묻기도 했지만 저의 멀뚱멀뚱은 계속되었습니다. 아니면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했지요.
태어나서 그런 짐 검색은 처음 봤습니다. 여러 개의 가방에 있던 모든 짐을 다 꺼내게 하더라구요. 이것저것 다 만져보고 열어보고 노트북까지 켜 보라고 하더라구요. 오늘 하루만 칼란디야, 예루살렘, 공항에서 x-ray 검색을 거친 짐들이지만 이거저것 또 기계에 넣었다 뺐다 하더라구요. 검색을 예상했기 때문에 한 가방 맨 위에는 제 빤스들을 올려놨고, 깨질만한 것들도 빤쓰로 쏴 놨더니 제 짐을 뒤지던 직원이 약간 언짢은 표정을 짓더라구요.
노트북이나 카메라와 같은 전자기기들은 혹시 깨질지 모르니 화물칸에 들어갈 가방에 넣지 않고 직접 들고 가는 것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것들까지 비행기 안에 들고 들어갈 수 없으니 화물칸에 실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주 친절하게도 노트북 깨지지 말라고 뽁뽁이로 싸 주더라구요. 그 사이에도 공항 출국장에서는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이스라엘 깃발을 흔들며 크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올리브 나무
우락부락한 표정으로 질문도 하고 내 짐을 활짝 까뒤집더니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웃는 얼굴로 다가와 따라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또 다른 방 입구에서도 쇠붙이 검색기를 지났습니다. 먼저 외투를 벗고 주머니에 있는 것을 모두 바구니에 담으라고 하더라구요. 그때부터 제 몸을 만지기 시작합니다. 비닐 장갑을 낀 채 정말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온 몸을 더듬더라구요. 셔츠 옷깃까지 일일이 다 만져보구요. 제 숨결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싶다는 듯이 말입니다. 바구니에 담긴 것들은 또 어디로 들고 가더니 검사를 했는지 뭐를 했는지 가지고 와서는 가져가라고 합니다.
검색을 마치고 검색대로 다시 돌아오니 제 짐들은 그야말로 활짝 펼쳐진 채 넓게 널브러져 있습니다. 이미 비행기 떠날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러 갔는데 반다와 저만 남아 있었습니다.
갑자기 직원들이 시계를 가리키며 시간 다 됐으니 얼른 짐을 싸라고 재촉을 합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속에서 ‘이런 미친년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시간은 다 됐고 짐은 엉망으로 풀어져 있으니 짐을 싼 다기 보다는 그냥 이 가방 저 가방에 집어넣는 거지요.
가방을 챙겨 들고 여권을 달라고 하니깐 직원들이 우리 여권을 쥔 채 따라 오라고 합니다. 저희 짐의 일부도 아예 지네들이 들고 함께 갑니다. 항공사 앞으로 가더니 우리 표를 받아서 들고 따라 오라고 합니다. 비디오카메라 다리는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올 때도 비행기 안에 들고 탔었는데 이번에는 안 된다며 화물칸에 실으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우리를 데리고 가더니 여권에 도장 찍는 데까지 함께 갑니다. 거기서 도장을 찍고서야 여권을 우리에게 넘겨주면서 잘 가라고 합니다. 시간이 다 됐으니 우리는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얼른 비행기를 타야 했구요. 1시 조금 넘어 검색을 기다리기 시작해 4시가 다 돼서야 겨우 비행기를 타게 된 겁니다.
비행기를 타면서 생각하니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상황 가운데 안 좋은 상황을 겪어 봤으니 다음부터는 똑같거나 더 좋은 상황이 저를 기다리겠지요. 여러분에게도 안 좋은 상황은 이런 경우라는 것을 말씀 드릴 수 있게 되었구요.
이스라엘이 왜 그렇게 하냐구요? 이 또한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그 까닭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엿 먹이고 괴롭히려는 거지요. 짐 검색에 워낙 오랜 시간이 걸리다 보니 마지막 가방에 있던 몇 가지 물건들은 아예 꺼내 보지도 않더라구요. 정말 보안이나 항공 테러가 문제였다면 그것까지 꺼내 봤어야 했겠지요.
이스라엘에 와서 팔레스타인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 이렇게 귀찮고 피곤해지니깐 오지 말라는 거지요. 이것을 달리 생각하면 그 정도 피곤함은 당연하다 생각하고 우리는 기회가 되는 대로 팔레스타인에 가려고 해야겠지요.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삶의 현실은 우리가 겪는 몇 시간 피곤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니깐요.
그렇게 새벽 비행기를 탔습니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팔레스타인을 떠나게 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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